가을 길
부질없는 인생은 없는 거라고
폐지를 가득 실은
헐거운 손수레
가을이 겨울로 밀며 갑니다
일상을 디카시 하라!
저는 2003년부터 시화전과 사진 전시 그리고 포토포엠 전시회를 매년 울산에서 해오고 있었습니다. 시를 쓰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의미 있는 사진과 여백이 있는 사진을 찍어오던 저에게 2012년 디카시를 만난 건 운명이었습니다. 디카시를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그 매력에 빠져들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디카시를 알리는 역할자로서 운영하고 있는 여러 카페와 밴드에서 디카시 백일장과 디카시 전시회를 계속 진행해 오면서 지금은 도서관에서 디카시 강좌를 열어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휴대 전화를 갖고 있습니다. 더구나 휴대전화에 내장된 카메라 성능은 날이 갈수록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어 2억만 화소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느 곳에서나 쉽게 해상도가 높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디카시가 급속도로 확장하며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디카시를 어떻게 창작하느냐고 저에게 묻는다면 저는 일상이라고 답합니다. 제가 강의하는 디카시 강좌의 주제도 “일상을 디카시 하라!”입니다.
2023년 새해를 시작하며 세운 목표 중 하나가 ‘하루를 살아가며 보고 만나지는 이미지 하나를 선택해서 하루를 옮겨 놓듯 매일 한편의 디카시를 쓰자’로 정하고 한 달에 한 번 전자책으로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디카시 쓰기는 따로 시간을 정해두고 쓰기보다는 아침에 일어나다, 출퇴근길에 보이는 풍경에 스며든 심상에서, 직장에서 생기는 일들에서, 밭에서 일하다 다가오는 느낌에서, 문득 씁니다. 그리고 그렇게 쓴 초고를 완성시키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생각하고 다시 써보기를 반복하며 여러 번 읽어보며 글다듬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디카시를 나무라고 생각한다면 뿌리가 있고 기둥이 있고 가지가 있고 잎이 있고 꽃이 있고 열매가 있는데, ‘이 디카시를 왜 썼는가? 독자에게 무엇을 느끼게 하려고 하는가? 그냥, 나의 감정에 치우쳐 독자가 생각할 여백도 느낌도 남지 않게 쓰지는 않았는가’를 생각해 보며 처음 심었던 나무에 열매가 맺어 독자에게 맛을 느끼게 했나를 생각합니다.
표제 시 “가을 길” 또한 도로에서 친구의 차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폐지를 가득 실은 할머니께서 손수레를 밀며 가는 모습과 때마침 세차게 부는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은행잎에서 가을이 겨울에게로 자신을 밀고 가는 모습과 오버랩 되었습니다. 어쩌면 저 할머니는 이제 돌아오지 않을, 다시는 맞볼 수 없는 가을을 건너 겨울로 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과 나에게 주어진 가을은 몇 번이나 남았을까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디카시의 힘은 이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에 감춰진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보편타당성을 뛰어넘어 함축된 언어로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일상이지만 그 일상이 특별하게 다가와 언제 어디서나 문학을 할 수 있는 일상성과 함께 영상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디카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생활문학으로서 쉽고 평범한 문학적 활동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 평범함 속에 촌철살인의 날카로운 통찰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저는 디카시를 알게 되면서부터 하루라도 디카시를 생각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디카시와 사랑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봄과 여름을 보내면서 사과나무는 사과를, 감나무는 감을 익혀 그만의 독특한 맛을 보여 주는 것처럼 저의 디카시 나무에서도 이시향만의 맛과 향이 묻어나도록 나만의 시안으로 세계를 통찰하고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이시향 제주도 삼양 출생. 2003년 《시세계》 등단. 디카시집 『우주정거장』 외. 울산아동문학상 외 수상.
현 한국디카시인협회 울산지부장.
[출처] 48호/ 이시향. 강회진|작성자 dpoem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