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운제산(481m)
대왕암에서 바라보는 영일만의 겨울
운제산은 포항시 오천읍과 대송면에 걸쳐있는 나지막한 산이다. 높이는 481m에 불과하지만 산의 위치와 역사, 새천
년의 찬란한 미래는 까마득 높은 산을 외려 능가할 명산이다.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널리 알려진 경주의 토함산 북녘 줄기가 추령을 넘어 구불구불 능선을 달려 황룡사지가 자리한
664봉과 시루봉(503.4m)을 지나 운제산을 솟구치고 그 여맥을 형산강과 영일만에 스르르 잠기게 되거니와, 그 높이마
저 5만분의 1 지도에는 432m, 2만5천분의 1 지도에는 481m, 경상북도에서 발행한 책자 <경상북도의 명산>에는 478
m, 정상석에는 482m로 기록된 신비로운 산이다.
동녘 자락에는 만고의 충신 정몽주의 후손 연일 정씨들이 대를 이어 살아오던 문충리-문충은 정몽주의 시호다-와 신
라의 고승 혜공스님, 원효대사, 자장율사가 수도한 1400년 고찰 오어사를 품고있어 겨레의 역사와 전설이 흥건히 살아
있는, 참으로 유서깊은 산이다.
운제산의 들머리는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에 자리한 오어사다. 버스 종점에서 내려 오르막길로 잠시 가면 그득한
초록 못물에 산, 구름이 둥둥 더있는 오어지. 절경의 못을 왼쪽으로 끼고 걷는 1km의 멋진 들머리길을 따라 오르면 원
효대사와 혜공스님의 이름을 딴 원효교와 혜공교를 건너게 되고 뒤이어 제법 넓은 오어사 주차장에 도달한다.
운제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주차장 뒷쪽으로 안내판이 있거니와 아무리 산행 여정이 빡빡하더라도 반드시
오어사와 원효암을 먼저 들러보길 권한다. 오어사에는 보물 1280호인 동종과 경상북도문화재 88호인 대웅전, 원효대사
가 사용했다는 삿갓과 수저가 있다. 신라 진평왕 때 이곳 항사리에 세워진 오어사의 원래 이름은 항사사(恒沙寺)였다
(인도 갠지스강을 한자식으로 앍으면 恒河고 수학에서는 10의 52승을 恒河沙라 하는데 갠지스강변의 모래만큼이나 많
다는 뜻으로 恒沙里라는 지명도 고승들이 이를 본따서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선덕여왕 때 후일 신라의 열 분 성인으로 숭상되는 혜공스님이 살았다. 비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출가 후에도
자주 술에 취한 채 삼태기를 지고 거리에서 노래와 춤을 추어 사람들이 부궤화상이라 불렀다. 만년에는 항사사에 머물
렀는데 당시 이 절의 암자에서 불경의 주소를 편찬하던 원효스님과 자주 만나 불경에 대한 토론을 나누었다.
하루는 두 스님이 서로의 법력을 겨루게 되었다. 냇가에 나가 고기 한 마리씩을 잡아먹고 즉석에서 바위 끝에 앉아 냇
물에 대변을 보았다. 그런데 한 마리는 죽어 둥둥 떠내려가고 다른 한 마리는 싱싱하게 살아 상류로 헤엄쳐 가는 것이었
다. 두 스님은 헤엄치는 고기를 가리키며 서로 "내 고기야(吾魚也)" 라고 했다 하여 그 후 절이름을 오어사라고 바꾸었
다는 재미난 전설이 전하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오어지를 건너가는 오어겨와 크고 작은 일곱 개의 다리를 건너 원효암에 오른다. 물고기 형상의 나무현판에 흰 글씨
로 "元曉庵" 이라 써놓은 옛날 법당과 3년 전에 완성한 관음전, 삼성각의 단출한 암자다. 15분 거리.
신을 벗고 법당에 들어 무릎을 꿇었다. 겨레의 위대한 스승 원효스님이 입적한 지도 어언 천삼백년여. 자재무에의 큰
삶을 살다간 그리운 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나목을 스치는 겨울바람 소리, 풍경 소리... 금방이라도 낭낭한 스님
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 환청으로 들려오는 것만 같다.
다시 산길을 되돌아 내려와 오어사주차장에 이른다. 자장암으로 향한다. 본격적인 오름 산길이 시작된다.
까마득 절벽 끄트머리에 세운 자장암은 밑에서 올려다보면 한 마리 학처럼 수려하고 올라서 내려다보는 오어사와 오
어지의 경치도 빼어난, 참으로 절경의 암자다. 절벽 끝에 아슬아슬 솟은 바위에 올라서서 오어사를 굽어보고... 멀리, 지
금부터 우리가 오를 정상과 대왕바위가 올려다보이는 자장암의 절경에는 누구든지 탄복을 금하지 못한다.
이 자장암까지는 신작로가 연결되거니와 서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이 길과 두어 번 만나고 헤어진 후에 솔숲으로
들어간다. 산여농장을 지나면 대각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에 이른다.
오늘 산행에는 고양규 시산(詩山) 회장과 이용숙 포항등산학교 교수처장이 고맙게도 동행하셨다. 이 지방의 산악계
유지인 이용숙씨는 운제산에서 단체산행 중이던 포철청솔산악회의 여성회원들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포항에서
비교적 근거리에 위치한 운제산은 포항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 평일인데도 제법 산꾼들을 만나게 된다.
삼거리를 지나자 갑자기 날시가 흐려지고 자욱한 안개 속에 간간히 비마저 내린다. 이용숙 교수처장은 "만날 때마다
비가 내리는 것은 김선생이 비를 몰고 다니는 까닭" 이라고 나를 탓한다. 나는 이용숙씨의 이름 속의 용(龍) 자 때문에
비가 내린다고 책임을 전가하노라니 어느덧 정수리에 올라선다.
안게 자욱한 산정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99년 11월 영일만산악회에서 만든 아담한 정상석이 놓여있다. "운제산
482m" 라 음각된 정상석 뒷면에는 <양일만 찬가>가 새겨져 있어 더욱 운치가 있다.
문득 하늘이 밝아온다. <사람과산>의 독자들을 위해서 잠시 하늘이 문을 열었다. 보라! 북동녘의 저 영일만을. 영일
만 깊숙히 자리한 포항제철의 거대한 정경을. 해돋이로 유명한 고장 새 즈믄햇빛을 채취하여 영원의 불씨로 보간중인
호미곶의 저 장관을. 태평양으로 시원스레 달려가는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을.
새해 아침 이 운제산 정상에 올라 장엄하게 솟아오는 동해의 일출은 분명 가슴 뛰는 장관이리니... 남쪽으로 눈을 돌
리면 아득히 먼 곳에 토함산(745.1m)이 뚜렷이 솟아오고 서쪽으로는 낙동정맥의 첩첩산이 파노라마를 펼쳐보인다.
정상에서 남동쪽 능선을 이르면 십분 거리에 대왕바위(大王岩)가 있다. 옛날에는 운제산의 정상을 대왕바위라고 생각
하였다. 38년 전인 1962년 나도 고등학교 교복 차림으로 대왕암에 오른 아득한 추억이 남은 곳이기도 하다.
이윽고 대왕바위에 이른다. 높이 10m, 둘레 약 30m인 대왕암은 바위가 거의 없는 흙산의 꼭대기에 우뚝 쌓아 올려
영일만을 굽어보는 유별난 자태로 저절로 경외감과 심비감을 불러일으키거니와 '창해역사와 영일만의 형성' 같은 재미
난 전설도 있어 아득한 옛날부터 이 고장 사람들이 우러르던 신령한 바위다. 게다가 이 고장에 자리한 해병훈련소에서
"귀신잡는 해병의 찬란한 전통을 길이 계승하고자 이 대왕암에 해병혼을 심는다" 는 팻말을 1986년 해병훈련단장의 명
의로 세워 또 다른 전설을 남기게 되었다.
대왕암에 올라 영일만을 내려다본다. 아득한 역사를 뒤돌아보면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를 간직한 저 영일만. 오랜
후진국의 오명을 씻고 조국근대화의 선두에 서서 힘찬 발걸음의 신화를 창조한 저 포항제철. 내일의 조국을 두 어깨에
메고 나갈 포항공대의 저 캠퍼스. 아득한 옛날 이 운제산 자락에서 겨레의 스승 원효스님이 위대한 민족을 위한 불국정
토를 꿈꾸며 불경의 주소를 편찬하고 구도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다시 운제산의 동북자락인 영일만에서 조국근대화의
힘찬 역사가 펼쳐지고, 민족의 장래를 이끌 인재들이 새로운 학문을 불철주야 연마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운제산이야말
로 겨레의 영광에 크게 기여하는 신령한 산이라고 생각된다.
정상으로 되돌아가서 북쪽 능선을 이어 산을 내린다. 그 옛날 고승들이 구름사다리로 단숨에 오르내리셨다는 그 산길
을 천천히 걸어 내린다. 새로운 천 년에는 진정 자연을 사랑하는 민족으로서 인류의 번영에 크게 기여하는 위대한 겨레
의 삶이 되길 간절히 기원하면서.
*산행길잡이
오어사주차장에서 15분만에 자장암에 이르고, 자장암에서 신작로를 따라가면 리본이 달린 산길이 있고 다시 찻길을
만났다가 리본을 따라 산길로 들면 산여농장(055-285-0206) 옆을 지나 30분이면 삼거리에 이른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난 확실한 산길을 따르면 30분만에 정상 밑 삼거리를 거쳐 종상에 이르고,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약 10분 거리에 대왕암이 있다. 대왕암을 보고 정상으로 되돌아와 정상 밑 삼거리에 이르면 오른쪽은 올라왔던 길이되
고, 왼쪽길을 따르면 홍계폭포 갈림길과 헬기장을 지나 대골다리에 이른다. 취재진과 같은 코스를 이용해야만 오어사를
거쳐 영일만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오리진흙구이의 별미를 맛보게 된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무박단체산행의 경우 국토의 호랑이꼬리에 해당되는 호미곶에 가서 '영원의 불'과 일출을 구경하
고 운제산을 등산하면 좋다. 오어사와 원효암을 둘러보고 자장암~정상~대왕바위~정상~헬기장~대골다리를 거치는 총
산행시간은 4시간이다.
*들머리 찾기
오어사주차장 자장암 안내판 옆 계단길이 산행 들머리다.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팻말과 리본이 있다. 대송면 대각리
에서 오를 때는 영일만 온천을 지나 대각산불감시초소 옆의 대골다리가 기점이 된다. 왼쪽으로 오르는 길은 정상까지 1
시간30분, 오른쪽 전신철탑을 거리는 길은 1시간10분이 소요된다.
*교통
포항~오어사: 기차 또는 고속버스로 포항까지 가서 수시 운행하는 시내버스로 오천읍에 내린다. 오천읍에서는 매시
간 출발하는 오어사행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대각~포항: 하산지점인 대각에서 포항 시내버스가 운행되는 송동까지 영일만온천 셔틀버스가 10분 간격으로 운행한
다. 송동에는 택시가 있으며 포항시내까지의 요금은 3,000원 안팎이다.
*잘 데와 먹을 데
산행기점인 오어사 버스종점에는 영진가든(055-291-3848), 새포항식당(291-7364), 오어사식당(291-5055)과 영일
만여관이 있다. 하산지점에는 광은가든(285-0357)을 비롯 계림원식당, 대나무식당, 죽림가든 등이 있다. 산촌오리진흙
구이(285-5289)에서는 별미의 오리고기를 맛볼 수 있는데 조리시간이 2시간쯤 걸리므로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예약해둘 필요가 있다.
참조:운제산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0년 2월호
Copyright©2002 J00MG-YOUNG,PARK I'll Right Reserved.
var Long_URL=document.domain; TMPdomain=Long_URL.split(".");if (TMPdomain.length==4) { ID = TMPdomain[0]; } else { ID = TMPdomain[TMPdomain.length - 4]; } document.writel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