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186호 마음과 신앙이 맞으면 우주를 준다 해도 바꾸지 말라 (막3:13~35)
중남미 선교드림팀이 있습니다. 통역을 담당하는 이현숙 선교사와 라구나, 엑토르, 김성자 전도사, 그리고 국내에서부터 함께하는 한은택 목사와 송초현 전도사입니다. 이들은 척 하면 삼천리요, 툭 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임을 알만큼 손발이 맞는 자들로 저에게는 천군만마와 같습니다. 다윗의 37명 용사와 같은 자들이지요. 우주를 준다 해도 그들과 바꿀까요? No! 그들뿐 아니라 장로들과도 마음이 잘 맞습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가 불협화음 없이 잘 가는 이유입니다.
멀리 가고 싶습니까? 끝까지 잘 가고 싶습니까? 그러려면 신발이 맞아야 합니다. 명품 신발이면 뭐합니까? 발에 안 맞으면 시장에서 산 운동화만 못한 겁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렸죠? 일본에 갈 때 어떤 사람이 명품구두를 사줬는데 사이즈가 안 맞아 발뒤꿈치가 다 까졌고, 결국 신발을 벗은 채 맨발로 걸어 다닌 이야기요.
여러분, 인생은 장거리 달리기입니다. 멀리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학벌이, 가문이, 인물이 명품이라고 덜컥 함께하자고 선택하면 어찌 될까요? 무엇보다 마음이 맞아야 합니다. 어른들 말씀대로 맴이 맞아야 잘 가고, 멀리 갈 수 있습니다. 마음이 맞는 자와 동업해야, 마음이 맞는 자와 결혼해야 행복하고 장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마음이 맞는 자와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마음에 맞지 않자 다른 이를 대신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삼상13:14). 그가 바로 다윗입니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행13:22). 하나님은 마음에 맞는 다윗을 찾자 그의 혈통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는 대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그의 제자 열둘을 세우실 때 기도하신 후에 자기의 원하는 자, 마음에 합한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막3:13~14). 그리고 제자들을 세상에 내보실 때도 마음이 맞는 자끼리 둘씩 내어 보내셨습니다(눅10:1).
모세도 장인 이드로의 조언에 따라 재덕이 겸전한 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 곧 마음이 하나 된 자들을 백성 위에 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으로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갔습니다(출18).
마음이 맞지 않으면 정말 죽을 맛입니다. 오죽하면 성경에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21:9)고 하셨겠습니까? 움막은 그래도 낫지요. 잠언 21장 19절에는 ‘싸우며 사느니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게 낫다’고 하셨습니다. 싸우고 다투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이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왜 다툽니까? 마음이 안 맞아서 그런 겁니다. ‘다투는 여인’ 대신에 ‘다투는 직원’이나 ‘다투는 동업자’를 넣어보세요. 공감되지 않습니까? 싸워서 심령이 상하면 누구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잠18:14). 그래서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 말씀에도 동행했던 조카 롯과 헤어진 겁니다(창13). 지혜롭지요.
사도 바울도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출발에 앞서 생질인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이 달랐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행15:2). 그래서 이 둘은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바울은 실라와 함께 각각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떠나기로요(행15:37~41). 그럼요, 마음이 맞지 않을 때는 갈라서는 것이 상책입니다.
옛말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왜 산으로 갑니까? 마음이 안 맞으니까 그런 겁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더 빨리 바다로 가야 옳지요. 그러나 마음이 안 맞으니 배가 산으로 가는 겁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때면 꼭 줄다리기를 했었습니다. 그때 팀워크가 잘 돼야 이깁니다. ‘영차 영차’ 구령에 마음이 하나 되면 상대를 이겼습니다.
나이 든 어르신들, 제 말 잘 들으세요. 마음이 맞는 자식하고 살아야 오래 살고, 병나지 않습니다. 꼭 장남하고 살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딸이 마음에 맞으면 딸하고 사는 겁니다. 둘째 아들하고 마음이 맞으면 둘째 아들하고 사는 겁니다. 아니면 혈압 오르고 그러다 큰일 납니다.
또한 신앙이 맞아야 잘 갈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신22:10)라고 말씀하셨고, 신약에서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후6:14)고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불신자와의 동업이나 결혼, 모사나 대업을 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휴, 믿게 하면 되지요.” 하십니까?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위에서 소와 나귀를 함께 매지 말라고 했지요? 안 믿는 사람이 소요, 믿는 자들이 나귀에 비유된 겁니다. 소와 나귀가 함께 매여 있으면 누가 힘들까요? 몸체와 힘이 적은 나귀가 고통을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거칠 것이 없지만, 믿는 자들은 절제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그렇게 잘 나가던 그가 왜 마지막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까? 믿지 않은 자와 멍에를 같이 메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취한 천여 명의 이방 여인들이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들여왔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또한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산당과 아세라 상을 제하는 등 종교개혁을 단행하던 왕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셔서 나라를 강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견고해지자 그는 지속적으로 나라가 강성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그의 아들을 아합의 딸과 정략결혼을 시켰습니다. 또한 정략결혼으로 아합과 동맹을 맺은 그는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는 길르앗 라못을 공격하다 아합은 전사하고, 자신은 겨우 목숨만 건지는 사태에 이르고 맙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여호사밧에게 선견자 예후가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대하19:2).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메어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이스라엘 왕 아하시아와 공동으로 배를 만들어 다시스에서 오빌의 금을 수입하려고 했지만 그 배가 파선되고 맙니다. 왜요? 그 답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하여 예언하여 가로되 왕이 아하시아와 교제하는 고로 여호와께서 왕의 지은 것을 파하시리라”(대하20:37).
숯을 가까이하면 숯검정이 묻게 되어 있고, 생선가게에 오래 있으면 비린내가 옷에 배는 법, 그래서 신명기 7장 3~4절에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찌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가 목회하기 전에 시멘트 대리점과 벽돌 공장도 경영한 적이 있는데요. 시멘트를 만들 때 모래에 흙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마른 후에 깨집디다. 성분이 같아야 시멘트가 강력하더란 말입니다. 신앙이 같아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둘이 하나 되어 융합할 때 시너지 효과가 나는 법이거든요. 외줄보다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전4:11~12).
마라톤 선수에게 가장 힘든 것은 코스가 아니라 신발 속에 든 작은 돌멩이 하나이듯, 인생이 고된 것은 마음과 신앙이 맞지 않은 사람으로 인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명품 신발이라고 무조건 신지 말고, 내 발에 맞는 신발을 신고 달려봅시다. 마음과 신앙이 맞는 자와 같이 가야 멀리 갈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고름이 살 안 된다 아파도 짜내야 한다
물과 기름은 절대 하나 될 수 없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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