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명에는 전설이 나 유래가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수원시는 다른 지방에 비해 전설이나 유래가 있는 지명이 많다.
300여 년 전 어느 마을에 거지 떼들이 하루가 멀다 하게 동냥을 하러 왔다. 마을사람들은 거지 떼들 때문에 진저리가 날 지경이다. 그런데 어느 날 스님이 찾아와 부처님께 시주를 하라고 한다. 거지 떼들에게 진저리가난 마을사람들은 시주는 무슨 놈의 시주냐며 집집마다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러면서 거지 떼들이 찾아오지 않는 방법이나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스님은 마을사람들의 야박한 인심에 혼을 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거지들을 못 오게 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자 반가워했다. 앞산 허리를 자르면 거지들이 안 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마을사람들은 거지들이 안 온다는 말에 무두 나와 열심히 앞산 허리를 잘랐다.
그 후 스님의 말대로 거지들의 발길이 끊겼다. 산으로 다니는 길을 끊었으니 거지들 뿐만 아니라 이웃마을 사람들의 왕래까지 끊겼다. 그 후 마을이 점점 쇠락해지면서 마을사람들이 한집 두 집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 살던 파주염 씨, 강릉유 씨, 안동장 씨 등 세 성 씨도 마을을 떠나 새터 전을 잡고, 열심히 밭을 일구어 밤나무를 심었다. 당시는 새 터전이라 마을 이름이 없어 밤나무골이라고 불렀다. 세 성씨가 일가를 이루고, 마을이 형성되자 밤나무골의 의미를 담은 율(栗 밤나무율) 전(田 밭 전) 동(洞마을동)이라는 법정동이 되었다. 그 후손들은 지금도 살고 있고, 염씨의 후손은 수원시장을 지낸바 있다.
1905년 일본이 경부선 1호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철길이 밤나무골 한가운데를 관통해 마을은 두 동강이 났다. 두 동강 난 철길 아래에 마을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는 지하도(일명 굴다리)를 만들었다. 그 후 사람들은 지하도에서 성균관대학교 일대를 하율전(下栗田 아랫밥밭)이라 부르고, 청개구리공원 일대를 상율전(上栗田 윗 밤밭)이라고 불렀다.
그 후 1970년대 수원시가 도시화로 개발하면서 밤나무를 모두 베어내어 옛 밤밭 모습은 사라지고, 율전동이라는 마을이름만 이어져오다가 행정동 개편으로 천천동(泉川洞)과 통합 지금의 율천동(栗泉洞)이 되었다. 윗 밤밭(上栗田)은 산에서 자생한 일부 밤나무들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아랫밤밭(下栗田)은 성균관대와 주택이 들어서면서 밤밭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수원시는 밤나무와 함께 살아온 주민들의 애환과 추억을 회상하고, 마을의 정체성을 되살리고자 아랫밤밭에 면적 11,000평방 미터(3,300평) 부지에 쉼터와 정자, 간이의자 등을 만들고, 운동기구시설과 동물사육장(닭, 토끼) 등과 삼각단풍나무, 계수나무, 왕벚나무 등 수종의 나무를 심은 휴향 시설을 하고, 주민들의 밤나무 헌수로 2011년 3월 21일 밤나무동산을 조성했다.
지금은 밤나무가 자라 밤이 주렁주렁 열리고, 추석명절이 가까이 다가오면 밤송이가 벌어져 검붉은 커피색 알밤을 드러내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예부터 밤나무와 밤은 인간과의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조상의 제사를 모실 때 위패(位牌)와 신주(神主)는 밤나무를 깎아서 만든다. 또 밤 껍데기는 밤이 싹이 터서 줄기가 올라와도 뿌리에 붙어서 수년을 간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아는 나무로 여겨왔다. 그래서 밤은 과일이나 오를 수 있는 제사상에도 오르게 된다.
또 혼례를 마치고, 신랑신부가 부모님께 폐백을 드릴 때 시어머니가 신부에게 밤과 대추를 던져주면 신부는 치마를 펼쳐 받는 풍습이 있다. 밤과 대추는 한 가지에도 수십 개의 밤송이와 대추가열린다. 이는 자손을 많이 나으라는 의미였다. 옛사람들은 자손이 많아야 집안이 번성한다고 여겨왔다. 이렇듯 밤과 인간의 관계는 옛 조상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율전동의 밤나무동산과 청개구리 주변 산의 밤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밤들은 추석명절에 고향을 찾아온 귀성객들에게 한가위를 즐기는 풍성한 선물이 될 것이다.
E수원뉴스 차봉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