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력황제는 왜 가정 嘉靖 도자기로 부장품을 했는가 万历皇帝为何用嘉靖龙缸陪葬
소스: 동북아문물감정연구원
베이징 서교 13릉 중 딩링(定陵)은 명나라 만력 황제 주익균(朱钧的)의 능으로 무덤 출토품 중 지름이 70cm에 달하는 청화대룡항아리 3점이 있으며 청화운룡이 그려져 있어 색이 매우 선명하다.장서 "대명 가정년제".
주익균은 왜 가정년이 만든 용항아리로 부장했을까.
청화대룡항아리
원래 경덕진 어요공장에는 32기의 용항아리가마가 있었는데, '대용항아리'를 전문적으로 굽는데, 용항아리를 굽는 장인을 '용항아리장'이라 불렀고, 또 타청장·화장·각종 부역 등이 있었는데, 하나의 용항아리를 굽는 데는 많은 공력이 필요했고, 기술적 요구가 높아 자칫 불량품이 될 수도 있었다.
만력 27년(1599) 세감 반상(镇相)이 경덕진(景德鎭)에서 용항아리를 감조하였는데, 요공들은 굶주림과 고통에 시달렸고, 가죽채찍까지 맞았으나, 핍박으로 인해 요공 동빈(童跳)이 불을 질러 분신하여 장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에 '소란정'하여 다시 일을 재개하지 않고 만력 황제 주익균이 죽을 때까지 용항아리를 만들지 않아 가정(靖时) 때 만든 용항아리로 입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