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丁若鏞)-獨笑(독소)(혼자 웃다)(혼자 웃는 이유)
有粟無人食(유속무인식) 곡식 넉넉한 집엔 먹을 사람 없는데
多男必患飢(다남필환기) 자식 많은 집에서는 굶주림을 걱정하네
達官必憃愚(달관필용우) 영달한 사람은 어리석기만 한데
才者無所施(재자무소시) 재주 있는 사람은 기회조차 얻지 못하네
家室少完福(가실소완복) 복을 다 갖춘 집 드물고
至道常陵遲(지도상릉지) 지극한 도는 늘 펴지지 못하네
翁嗇子每蕩(옹색자매탕) 아비가 아낀다 해도 자식이 늘 탕진하고
婦慧郞必癡(부혜낭필치) 처가 지혜로운가 싶으면 신랑이 꼭 어리석네
月滿頻値雲(월만빈치운) 달이 차도 구름이 가리기 일쑤고
花開風誤之(화개풍오지) 꽃이 피어도 바람이 떨구네
物物盡如此(물물진여차) 세상만사 이렇지 않은 게 없어
獨笑無人知(독소무인지) 혼자 웃는 그 뜻을 아는 이 없네
*위 시는 “한시 감상 情정, 사람을 노래하다(한국고전번역원 엮음)”(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하승현님은 “다산 정약용은 세상만사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홀로 웃는다. 그러나 웃는 것이 꼭 즐거워서만은 아니다. 이런 면이 있으면 저런 면이 있고 저런 면이 있으면 이런 면이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애잔한 웃임이고,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서 흘리는 쓸쓸한 웃음이다.
곡식이 필요한 집에 필요한 만큼의 곡식이 있으면 좋으련만 어떤 집에는 먹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곡식이 남아돌고, 어떤 집에는 식구들이 주릴 정도로 곡식이 모자란다. 하늘이 공평무사하지만은 않구나 싶어 한번 웃는다. 현명한 사람이 높은 벼슬에 오르고, 재주 있는 사람이 재주를 다 펴 보면 좋으련만 높은 자리에 어리석은 사람이 있고 재주가 있어도 쓰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하늘의 뜻을 알 수 없어 또 한번 웃는다.
그러나 그 또한 완벽하거나 변치 않는 것은 아니다. 처가 지혜로운가 싶으면 남편이 어리석은 경우가 많고 아비가 아껴서 재산을 모아 놓으면 자식이 탕진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라도 세상은 공평해지는 것인가 싶어 또다시 웃음이 난다.
어디 인간사만 그럴까? 달이 차올라 밝다 싶으면 구름이 이내 가려버리고, 꽃이 피어 예쁘다 싶으면 바람이 떨구어 버린다.
어떤 것도 영원히 좋을 수만은 없구나 하는 생각에 무상함을 느끼며 또 한번 웃는다.
세상은 온통 알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어쩌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일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세상사에 헛웃음 짓는 그 마음을 누가 알까? 아는 이 없으니 함께 웃을 수도 없다. 그러니 혼자 웃을 수밖에, 혼자 웃고 있는 시인의 눈에 눈물이 그렁하다.”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정약용[丁若鏞, 1762년(영조 38) 6월 16일 ~ 1836년(헌종 2) 2월 22일, 자는 미용(美庸), 호는 다산(茶山), 사암(俟菴), 여유당(與猶堂), 채산(菜山), 경기도 남양주시 출생]은 실학을 집대성하여 부국강병의 꿈을 꾼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이익의 유저를 공부하면서 근기학파의 학문을 접하였고, 과거 급제후 정조의 총애를 받아 한강에 배다리를 놓고 거중기 등을 고안하여 수원 화성 건축에 도움을 주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으며, 민본의 정치관을 지닌 개혁가로 민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유학 사상을 현실정치에 맞게 실현하고자 하였으며, 천주교를 접하고 이로 인해 장기로 유배를 당하였다가 강진으로 옮겨가며 18년 동안의 긴 유배생활을 하였으나 그곳에서 많은 문도를 거느리고 강학, 연구, 저술에 전념하여 실학적 학문을 완성시켰으며 육경과 사서에 관한 저술을 근본으로 하여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을 써서 경세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산은 일생동안 2000여 수의 많은 시를 남겼는데, 시적 재능이 예사롭지 않아 7세 때 지은 시 “소산폐대산小山蔽大山, 원근지부동遠近地不同,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네”라는 시가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합니다.
*達官(달관) : 높은 관직(官職).
*憃(용) : 어리석을 용, 어리석을 창, 어리석을 충, 어리석을 장, 1.(어리석을 용), 2.어리석다, 3.둔하다(깨침이 늦고 재주가 무디다)
*陵遲(릉지) : 시들시들해짐, 평평해짐, 완만하다.
*嗇(색) : 아낄 색/거둘 색, 1.아끼다, 2.아껴 쓰다, 3.인색하다(吝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