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복음] 사순 제1주일 - 구원은 어디에?
2019.03.10 발행 [1505호]
▲ 한민택 신부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느님 말씀은 광야에서 유혹을 받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악마의 유혹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며 직접 겪으신 유혹이며, 우리가 신앙에서 늘 맞닥뜨려야 하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만화처럼 들리는 이 이야기 속에는 인간 구원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유혹은 돌더러 빵이 되라는 유혹입니다. 40일 동안의 단식으로 허기진 예수님께는 매우 치명적인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물음이 담겨 있습니다. 구원은 어디서 오는가? 무엇이 사람을 살게 하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돌을 빵으로 만드는, 마술과 같은 힘으로 구원이 주어지는가? 빵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유혹 앞에서 예수님의 태도는 단호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 인간을 진정으로 살게 하는 것은 빵이 아니라 하느님이며, 그분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유혹은 모든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줄테니 악마에게 경배하라는 유혹입니다. 이 역시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다. 곧 세상의 권세와 정치적 힘으로 구원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유다 민족을 로마 압제에서 구원할 정치적 혁명가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도 바로 그 유혹 앞에 섭니다. 그리고 답합니다. 주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기라고 말입니다. 그분만이 인간과 세상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정치적 혁명이 아닌 주 하느님께서 이루는 사랑의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셋째 유혹은 성전 꼭대기에서 몸을 던지라는 유혹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 하느님께서 응답하시는지 시험해보라는 것입니다. 이 유혹은 혹독한 시련 중인 사람, 하느님의 부재를 체험하는 사람에게 매우 치명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물리칩니다. 하느님은 시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살아계신 분이며 자유로운 분이십니다. 필요할 때 언제든지 불러낼 수 있는 ‘호주머니 속의 하느님’이 아닙니다.
악마의 유혹은 2000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음 기회를 노린’ 악마는 지금 우리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즉각적인 응답을 바랄 때, 세상 근심과 걱정이나 죄와 악의 세력에 몸과 마음을 빼앗길 때, 시련 중에 하느님이 어디 계시느냐며, 계신다면 응답을 달라고 시험하려 들 때, 우리는 사탄의 유혹 중에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구원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이며, 그 관계는 시간 안에서 성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시며 우리가 당신과의 인격적 관계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라십니다. 서로를 더 잘 알고 친교를 맺으며 성장하기를 바라십니다.
구원은 내적인 변화와 관계가 있습니다. 긴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라면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환상이나 눈속임일 뿐입니다. 변화를 위해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깨고 비우고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사순시기는 단순히 고행과 극기의 때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 안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시기입니다.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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