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유쟁신(君有爭臣)
임금에게는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신하가 있어야 한다.
君 : 임금 군(口/4)
有 : 있을 유(⺝/2)
爭 : 다툴 쟁(爫/4)
臣 : 신하 신(臣/0)
익주목(益州牧)인 유장(劉璋)은 조조와 장로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하여 고심하던 중, 형주에 있는 유비를 불러들여 이를 해결하기로 하였다. 이에 장송(張松)이 법정(法正)과 맹달(孟達)을 추천하고 유장은 이들을 사자로 삼아 유비에게 보낸다.
장송과 법정, 맹달은 일찍부터 유장이 익주를 다스리기에는 무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유비가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권(黃權)과 이회(李恢), 왕루(王累) 등은 유비를 불러들이는 것은 유비에게 익주를 넘겨주는 것이라며 적극 반대하였다.
마침내 유비는 유장의 요청으로 군사를 이끌고 익주로 향하였다. 유장은 각 현에 공문을 보내 유비군에게 전량(錢糧)을 공급하라고 지시하고 자신은 직접 부성(涪城)으로 나가 유비를 영접하려고 하였다.
이때 황권과 이회가 유장에게 유비를 불러들이지 말 것을 재차 간청하였다. 특히, 이회는 “임금에게는 간하는 신하가 있어야 하고, 아비에게는 간하는 아들이 있어야 한다”면서 유비를 들어오게 하는 것은 대문에서 호랑이를 맞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유장은 “유비는 나의 종형인데 어찌 해치겠느냐?”면서 다시 거론하는 자는 목을 베겠다고 일축해 버린다. 왕루가 죽음으로 간하였지만 유장은 자신을 업신여긴다고 분노하였다. 그리고 부성에서 유비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군유쟁신(君有爭臣)
태시친쟁신(泰始親爭臣) : 진무제 태시, 간언하는 신하를 가까이 하다.
십상시들로 몸살을 앓던 후한은 환제(桓帝)와 영제(靈帝)의 시기를 겪으면서 황건적의 난을 계기로 대혼란에 들어갔다. 그 혼란한 정국을 평정하겠다고 나선 영웅들은 초기에는 난의 평정에 최선을 다했으나 후에는 천하를 가질 욕망을 드러냈다. 그래서 천하를 두고 치열한 싸움을 거듭했다. 그리고 판세는 ‘조조의 위, 유비의 촉한, 손권의 오’라는 삼국으로 정립하였다. 삼국의 국력은 위나라가 가장 강성했으며 촉한이 가장 약했다.
유비는 지략과 충성의 대명사인 29살 아래의 제갈량을 얻어 촉한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유비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고 그 뒤를 이은 것은 아들인 유선이었다. 제갈량은 유선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장장 7년에 걸친 6차례의 북벌전에 나섰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진중에서 죽었다. 지략의 대명사로 알려진 제갈량의 북벌전을 상대하여 막아낸 명장은 사마의였다.
그는 끝까지 촉의 공격에 응수하지 않고 지구전을 벌였다. 촉은 마침내 오랜 원정에 물자가 떨어지고 군사들이 지쳐 자멸을 초래했다. 263년 유비의 촉한은 위에 의해 멸망했다. 이후 오나라가 멸망함으로써 70년간 계속되었던 삼국시대는 막을 내리고 통일되었다.
사마의는 각종 개혁에 성공함으로써 위나라의 최고 명문 가문으로 지위를 굳혔다. 그 사마의의 손자가 사마염(司馬炎)이었다. 조조의 후손인 조환은 위왕에 즉위하였으나 무능하였다. 이에 사마염은 부하들의 뜻을 받들어 조환을 겁박하여 스스로 옥새를 넘겨주도록 하여 왕이 되었다.
사마염은 왕이 되자 나라를 안정시키고 군사를 결집하였다. 그리고 오나라를 정벌하여 천하를 통일했다. 그것이 바로 서진(西晉)이었다. 훗날 사마예가 건국에 건설한 동진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마염이 건국한 진을 서진이라 부른다.
그래서 사마염은 서진(西晉)의 초대 황제인 서진(西晉) 세조(世祖) 무황제(武皇帝)가 되었다. 서진(西晉)은 사마염(司馬炎) 시대에 가장 강성하였으나 사마염 이후 쇠퇴하여 건국 51년 만에 사마예의 동진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한때 서진을 강성한 나라로 만들었던 사마염은 지략과 기개뿐 아니라 호방하고 정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마염은 신하들의 직언을 가까이 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사마염은 특히 직언을 일삼는 우장군 황보요(皇甫陶)를 신임했다.
서진 세조 무황제(西晉 世祖 武皇帝) 사마염은 강직한 대신들과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다. 무제 8년(272)이었다. 황제 사마염은 우장군 황보요와 정사를 논하고 있었다. 황보요는 강직하고 솔직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무제와 토론하는 도중 무제와 의견이 엇갈리자 무제의 말을 가로막고 자기의 주장을 강력하게 역설했다. 무제도 물러서지 않고 황보요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런 과정에서 무제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무제는 한동안 침울했다. 이를 알고 있는 신기시랑 정휘(鄭徽)가 기다렸다는 듯이 황보요를 처단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정휘에게 황보요는 정치적인 경쟁자였으며 황보요가 황제의 심기를 심하게 건드려 눈 밖에 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상소를 다 읽고 난 무제는 화를 크게 내면서 대신들을 향해 말했다. “이런 고약한 사람이 있나? 정직하게 진실을 말하는 것은 짐이 그대들에게 언제나 바라는 바이다. 그래야만 짐이 여러 가지 장점을 두루 살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짐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짐에게 듣기 좋은 말만 일삼는 신하들이다.
짐의 환심을 사려고 달콤한 말만 하는 것은 짐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무릇 군주의 우환은 아첨하고 칭송하는 말만을 일삼는 신하들 때문에 생기는 법이다. 정직하게 쟁론을 펼치는 신하들 때문에 군주와 나라를 망친 예는 일찍이 없었다. 정휘가 황보요를 처단하라는 주장은 근거 없는 잘못된 지적이며, 자기의 권한 밖의 주장이자 짐의 본심을 흐리려는 것이다. 오히려 정휘가 짐에게 죄를 지은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무제는 정휘의 관직을 박탈하고 쫓아내었다. 아첨하며 중신을 모함하는 신하는 황제의 눈과 귀를 흐리게 한다는 이유였다.
한참의 세월이 흘러 무제도 나이가 들었다. 남교에서 제천행사가 열렸다. 술을 얼큰하게 하여 기분이 매우 좋아진 무제가 느닷없이 대신인 유의(劉毅)에게 “그대는 짐을 한 대에 누구와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은가?” 하고 물었다. 이에 유의는 “소신의 생각으로는 후한의 환제(桓帝)나 영제(靈帝)에 비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하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주위에 있는 신하들이 대경실색(大驚失色) 했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환제와 영제가 누구인가? 십상시들의 농간으로 주색에 빠져 후한을 멸망으로 몰아간 황제들 아닌가? 무제를 이 두 황제와 비교한다는 것은 죽음을 부르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무제도 화가 나 낯빛이 바뀌었다.
그러나 늘 호방했던 무제는 한참 화를 참더니 말을 이었다. “짐을 나라를 환란에 빠뜨린 두 황제에게 비유하는 것은 좀 지나친 것 같소. 비록 짐의 덕행이 명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짐은 욕망을 다스리고 정사를 잘 살피어 동오(東吳)를 평정하므로 천하를 통일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유의는 직언을 계속하였다. “환제와 영제는 관직을 팔아 관고(官庫)를 채웠지만, 폐하께서는 관직을 팔아 사고(私庫)를 채우셨습니다. 하여 폐하께서는 환제나 영제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은 황제를 크게 조롱하고 질책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무제는 웃으며 말했다. “환제와 영제는 아첨하는 환관들만 가까이하여 이토록 날카로운 지적을 들은 바 없었는데, 짐에게는 두려움 없이 잘못을 말해주는 신하가 있으니 짐이 환제나 영제보다 못하진 않은 것 같소.”
간언하는 신하를 가까이하는 군주는 호방하면서도 정직하다. 호방하고 정직하다는 것은 성격적인 특성도 있지만, 그만큼 자신감이 있고 꾸릴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군주가 정직하면 주변에 정직한 신하가 많기 마련이다. 군주가 바른말을 가까이하면 신하는 거짓과 음모를 함부로 할 수 없다. 이는 현대의 모든 통치 원리에도 통하는 말이다. 최고 통치자가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정치를 한다면 주변에 간언하는 정직한 참모가 많기 마련이다.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 최고 통치자가 자기의 주변에 어떤 인물을 두느냐에 따라 그의 정치적 판단과 결정이 달라진다. 특히 최고 통치자의 의사결정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여 격렬한 토론을 하므로 보다 신중한 정책 결정을 하도록 하는 참모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에 직면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런 참모를 둘 수 있음은 순전히 최고 통치자의 몫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최고 통치자는 그런 참모를 멀리한다. 권위에 도전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유명한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최고 통치자의 곁에는 항상 악마의 대변인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악마의 대변인이란 어떠한 조직이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다수의 의견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하는 자를 말한다. 이 악마의 대변인은 최고 통치자가 치우침 없는 바른 의사결정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이다. 유명한 케네디 대통령이 유명한 쿠바봉쇄 사건 때 이를 잘 활용했다).
건국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의 주변에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하였던 참모는 얼마나 되었을까? 지금의 대통령 주변에는 악마의 대변인이 얼마나 될까? 대통령은 악마의 대변인을 둘 마음의 여유와 자신감이 있을까? 최고 통치자는 지나치게 호방하여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소심하여도 안 된다. 아첨과 간언을 구분할 줄 아는 균형 잡힌 판단력과 자기를 다스릴 줄 아는 셀프 리더십(Self leadership)이 중요하다.
최고 통치자가 주변에 간언하는 참모를 두고 그 간언을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간언을 새겨듣고 자신을 성찰하며 합리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서진의 세조 무황제(西晉 世祖 武皇帝) 사마염의 일대기를 통해 이를 본다.
[참고]
조조가 세운 위나라에서 사마염의 집안은 조부인 사마의 때부터 융성했다. 조부인 사마의는 정적인 조상을 물리쳐 실권을 장악했다. 그 후 사마씨 일족은 조조가 세운 위의 3대 황제 조방과 4대 황제 조모를 폐위하고 원제인 조환 때에 사마씨 일족의 수장인 대장군 사마소가 승상에서 진공(晉公)을 거쳐, 진왕(晉王)이 되었다.
이로써 조씨의 위나라는 사실상 끝이 나고 사마씨의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사마염은 왕세자가 되었다. 신하들은 사마소에게 황위에 오를 것을 권했으나 순리가 아니라며 황위에 오르지 않았다.
서기 265년, 사마소가 죽고 왕세자 사마염이 진왕을 승계했다. 사마염은 위나라의 마지막 황제 조환을 겁박하여 선위를 요구했다. 조환은 사마염의 겁박에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스스로 옥새를 넘겨주었다. 사마염은 황위를 선위 받은 후 조환을 진류왕(陳留王)으로 봉하고 낙양에서 국호를 진(晉)으로 바꾸고 새로운 나라를 열었다.
그리고 서기 280년, 명장 두예(杜預)와 왕준(王濬)을 시켜 손오(孫吳)가 다스리고 있던 동쪽의 오나라를 침공하게 했다. 사치와 방탕에 빠졌던 오나라 왕 손오는 상당수의 대신과 백성들이 진으로 귀순하는 바람에 겁에 질려 크게 싸워보지도 않고 진에 항복하였다. 이로써 70년의 삼국시대는 종료되고 새로운 통일 국가가 탄생했다. 이것이 사마염이 세운 서진(西晉)이다.
말 그대로 삼국을 통일한 사마염은 호방한 풍운아였다. 그는 스스로 성군(聖君)을 자처하며 주변에 직언하는 신하를 두고 두둔하며 검소한 생활을 장려했다. 그의 정권 초기에는 그것이 통했다. 그러나 사마염의 생활은 이중적이었다. 그는 말로는 성군을 자처하며 호방하고 대신들의 칼날 같은 직언을 들었지만, 행동의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말년의 그는 재물을 모으고 주색을 일삼으므로 부패와 향락에 빠졌다. 그는 아마 성군에 대한 자아도취에 빠진 모양이었다. 사마염 말년의 서진은 상당히 부패하고 혼란해졌다. 사마염 말년부터 서진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마염의 뒤를 이은 것은 사마충이었다. 사마충은 유약하고 올곧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정실 부인인 가남풍이 정권을 잡고 전횡을 일삼았다. 나라는 점점 피폐해졌다. 그래서 ‘팔왕(八王)의 난(亂)’을 초래하였다.
팔왕의 난으로 서진 왕조가 혼란할 때 북방의 오호(五胡: 서북방에서 중국 본토에 이주한 다섯 민족인 흉노匈奴· 갈羯· 선비鮮卑· 저氐· 강羌)들이 침입하여 서진은 몰락했다. 이후 중국의 판도는 5호 16국 시대를 열었고 그 후손인 사마예는 동쪽으로 가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다. 그것이 동진(東晉)이다.
말년에 성군에 대한 자아도취에 빠진 사마염은 나라가 어지러운 것을 탓하며 신하들에게 “짐에게는 왜 공명 같은 신하가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신하들이 “지금의 폐하께는 공명 같은 신하가 열이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고 말했다.
말년의 사마염은 신하들의 직언을 들었지만, 자기 성찰의 도구로 삼지 않고 다만 직언을 듣는 것 자체를 두고 성군의 행세만 하였다. 그는 점점 사치와 행락에 빠졌다. 그래서 후세의 사가들은 말년의 사마염은 이미 후한 말기의 십상시들에 둘러쌓여 사치와 향락만 일삼았던 환제와 영제 못지않았다고 평가한다. 사마염은 직언을 듣기는 했지만 다른 귀로 흘려보내고 말았다.
어느 시대건 최고 통치자가 직언을 새겨듣지 않으면 나라는 기울게 되어 있다. ‘직언을 새겨 듣는다’는 것은 그 직언을 곱씹으며 자기를 성찰하고 정책 결정을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시대건 최고 통치자가 부패와 향락에 빠지면 나라는 기울고 민심은 동요된다. 그래서 최고 통치자와 그 주변 인물의 청렴과 정직 등 도덕성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정치인들은 능력을 내세우며 도덕성을 별것 아닌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그 지지자들도 동조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분명 자신들의 도덕적 결함을 가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팬덤화된 정치는 위험하다. 분명한 것은 그 어떤 능력도 도덕성을 상실하면 흉기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린 앞으로 대통령,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지방의원 할 것 없이 정치인들에게 도덕성을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성비위 문제, 뇌물 수수, 횡령, 친인척 부당 채용, 선거법 위반 등 심각한 도덕적. 법적 결함이 있는 자들은 정치적 지도자의 지위에 오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
▶️ 君(임금 군)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尹(윤, 군)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尹(윤, 군)은 손에 무엇인가를 갖는 모양으로 천하를 다스리다는 뜻과, 口(구)는 입으로 말, 기도하다의 뜻의 합(合)으로, 君(군)은 하늘에 기도하여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君자는 '임금'이나 '영주', '군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君자는 尹(다스릴 윤)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尹자는 권력을 상징하던 지휘봉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다스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직책이 높은 사람을 뜻하는 尹자에 口자가 결합한 君자는 군주가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君(군)은 (1)친구나 손아랫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에 그 성이나 이름 아래에 붙여 쓰는 말 (2)조선시대, 고려 때, 서자(庶子) 출신인 왕자나 가까운 종친이나 공로가 있는 산하(傘下)에게 주던 작위(爵位). 고려 때는 종1품(從一品), 조선시대 때는 정1품(正一品)에서 종2품(從二品)까지였으며, 왕위(王位)에 있다가도 쫓겨나게 되면 군으로 강칭(降稱)되었음. 이를테면, 연산군(燕山君), 광해군(光海君) 등이다. 이와같은 뜻으로 ①임금, 영주(領主) ②남편(男便) ③부모(父母) ④아내 ⑤군자(君子) ⑥어진 이, 현자(賢者) ⑦조상(祖上)의 경칭(敬稱) ⑧그대, 자네 ⑨봉작(封爵) ⑩군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백성 민(民), 신하 신(臣)이다. 용례로는 세습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을 군주(君主),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를 군국(君國), 임금의 명령을 군령(君令), 임금의 자리를 군위(君位), 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을 군자(君子), 처방에 가장 주되는 약을 군제(君劑), 임금의 총애를 군총(君寵), 임금의 덕을 군덕(君德), 임금으로써 지켜야 할 도리를 군도(君道), 임금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군림(君臨), 임금과 신하를 군신(君臣), 남에게 대하여 자기의 아버지를 이르는 말을 가군(家君), 엄하게 길러 주는 어버이라는 뜻으로 남에게 자기의 아버지를 일컫는 말을 엄군(嚴君), 남의 남편의 높임말을 부군(夫君), 남의 부인의 높임말을 내군(內君), 거룩한 임금을 성군(聖君), 어진 임금을 인군(仁君), 재상을 달리 일컫는 말을 상군(相君), 임금께 충성을 다함을 충군(忠君), 포악한 군주를 폭군(暴君), 임금의 신임을 얻게 됨을 득군(得君), 덕행을 베푸는 어진 임금을 현군(賢君),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첫째는 부모가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 둘째는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것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군자삼락(君子三樂), 임금과 신하와 물과 물고기란 뜻으로 떨어질 수 없는 친밀한 관계를 일컫는 말을 군신수어(君臣水魚), 임금은 그 신하의 벼리가 되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군신유의(君臣有義),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똑같다는 말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임금과 신하 사이에 지켜야 할 큰 의리를 일컫는 말을 군신대의(君臣大義),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는 말을 군자무본(君子務本), 군자는 큰길을 택해서 간다는 뜻으로 군자는 숨어서 일을 도모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고 옳고 바르게 행동한다는 말을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군자는 일정한 용도로 쓰이는 그릇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군자는 한 가지 재능에만 얽매이지 않고 두루 살피고 원만하다는 말을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표범처럼 변한다는 뜻으로 가을에 새로 나는 표범의 털이 아름답듯이 군자는 허물을 고쳐 올바로 행함이 아주 빠르고 뚜렷하며 선으로 옮겨가는 행위가 빛난다는 군자표변(君子豹變),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아서 백성은 모두 그 풍화를 입는다는 뜻으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을 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가 죽는다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는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군욕신사(君辱臣死) 등에 쓰인다.
▶️ 有(있을 유)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달월(月; 초승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𠂇(우; 又의 변형)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有자는 '있다, '존재하다', '가지고 있다', '소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有자는 又(또 우)자와 月(육달 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月자는 肉(고기 육)자가 변형된 것이다. 有자의 금문을 보면 마치 손으로 고기를 쥐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내가 고기(肉)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有자는 값비싼 고기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져 '소유하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有(유)는 (1)있는 것. 존재하는 것 (2)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 소유 (3)또의 뜻 (4)미(迷)로서의 존재. 십이 인연(十二因緣)의 하나 (5)존재(存在)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있다 ②존재하다 ③가지다, 소지하다 ④독차지하다 ⑤많다, 넉넉하다 ⑥친하게 지내다 ⑦알다 ⑧소유(所有) ⑨자재(資財), 소유물(所有物) ⑩경역(境域: 경계 안의 지역) ⑪어조사 ⑫혹, 또 ⑬어떤 ⑭12인연(因緣)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재(在), 있을 존(存)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폐할 폐(廢), 꺼질 멸(滅), 패할 패(敗), 죽을 사(死), 죽일 살(殺), 없을 무(無), 빌 공(空), 빌 허(虛)이다. 용례로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음을 유명(有名), 효력이나 효과가 있음을 유효(有效), 이익이 있음이나 이로움을 유리(有利), 소용이 됨이나 이용할 데가 있음을 유용(有用), 해가 있음을 유해(有害), 이롭거나 이익이 있음을 유익(有益), 세력이 있음을 유력(有力), 죄가 있음을 유죄(有罪), 재능이 있음을 유능(有能), 느끼는 바가 있음을 유감(有感), 관계가 있음을 유관(有關), 있음과 없음을 유무(有無), 여럿 중에 특히 두드러짐을 유표(有表), 간직하고 있음을 보유(保有), 가지고 있음을 소유(所有), 본디부터 있음을 고유(固有), 공동으로 소유함을 공유(共有),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우환을 당하지 아니함 또는 뒷걱정이 없다는 뜻의 말을 유비무환(有備無患),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뜻으로 변명할 말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구무언(有口無言), 있는지 없는지 흐리멍덩한 모양이나 흐지부지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유야무야(有耶無耶),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천지간에 있는 모든 물체를 일컫는 말을 유상무상(有象無象),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명무실(有名無實), 머리는 있어도 꼬리가 없다는 뜻으로 일이 흐지부지 끝나 버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유두무미(有頭無尾), 다리가 있는 서재라는 뜻으로 박식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서주(有脚書廚), 만물은 조물주가 만드는 것이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일컫는 말을 유생불생(有生不生), 다리가 있는 양춘이라는 뜻으로 널리 은혜를 베푸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유각양춘(有脚陽春),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라는 뜻으로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유지경성(有志竟成),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온다는 뜻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을 유붕원래(有朋遠來), 시작할 때부터 끝을 맺을 때까지 변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시유종(有始有終), 무슨 일이든 운수가 있어야 됨을 이르는 말을 유수존언(有數存焉),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있으나 마나 함을 이르는 말을 유불여무(有不如無), 말하면 실지로 행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함 또는 각별히 말을 내 세우고 일을 행함을 이르는 말을 유언실행(有言實行), 끝을 잘 맺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으로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결과가 좋음을 이르는 말을 유종지미(有終之美), 입은 있으되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정이 거북하거나 따분하여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유구불언(有口不言), 행동이나 사물에 처음과 끝이 분명함 또는 앞뒤의 조리가 맞음을 일컫는 말을 유두유미(有頭有尾),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 융통함을 이르는 말을 유무상통(有無相通), 장차 큰 일을 할 수 있는 재능 또는 그 사람을 일컫는 말을 유위지재(有爲之才), 끝까지 일을 잘 처리하여 일의 결과가 훌륭함을 이르는 말을 유종완미(有終完美),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그대로 있지 않고 인연에 의하여 변해 가는 것이라는 말로 세상사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유위전변(有爲轉變), 가기에 잎을 더한다는 뜻으로 이야기에 꼬리와 지느러미를 달아서 일부러 과장함을 이르는 말을 유지첨엽(有枝添葉),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이 개방되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유교무류(有敎無類) 등에 쓰인다.
▶️ 爭(다툴 쟁)은 ❶회의문자로 争(쟁)의 본자(本字)이다. 손톱 조(爪)와 또 우(又) 그리고 물건을 가리키는 갈고리 궐(亅)을 합친 글자로서, 위와 아래에서 손으로 물건을 잡고 서로 잡아당기며 다툰다는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爭자는 ‘다투다’나 ‘경쟁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爭자는 爪(손톱 조)자와 又(또 우)자, 亅(갈고리 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爪자는 ‘손톱’이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단순히 ‘손’의 동작으로 쓰였다. 갑골문에 나온 爭자를 보면 소의 뿔을 놓고 서로 잡아당기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금문에서는 소뿔 대신 쟁기가 그려져 있었지만 서로 다투고 있다는 뜻은 같다. 爭자는 이렇게 무언가를 놓고 서로 다툰다는 의미에서 ‘다투다’나 ‘경쟁하다’라는 뜻을 갖게 된 글자이다. 그래서 爭(쟁)은 ①다투다 ②논쟁하다 ③다투게 하다 ④간하다(웃어른이나 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말하다) ⑤경쟁하다 ⑥모자라다 ⑦차이(差異) 나다 ⑧다툼 ⑨싸움 ⑩어찌 ⑪어떻게 ⑫하소연(딱한 사정 따위를 간곡히 호소함)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다툴 경(競)이다. 용례로는 서로 다투는 중요한 점을 쟁점(爭點), 싸워서 빼앗아 가짐을 쟁취(爭取), 서로 다투어 무슨 사물이나 권리 따위를 빼앗는 싸움을 쟁탈(爭奪), 서로 다투며 송사를 일으킴을 쟁송(爭訟), 서로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여 다툼을 쟁의(爭議), 서로 권리를 다툼을 쟁권(爭權), 앞서기를 다툼을 쟁선(爭先), 우승을 다툼을 쟁패(爭覇), 일을 먼저 하기를 서로 다툼을 쟁두(爭頭), 서로 다투어 토론함을 쟁론(爭論), 같은 목적을 두고 서로 이기거나 앞서거나 더 큰 이익을 얻으려고 겨루는 것을 경쟁(競爭), 싸움으로 무력으로 국가 간에 싸우는 일을 전쟁(戰爭), 상대를 쓰러뜨리려고 싸워서 다툼을 투쟁(鬪爭), 얼크러져 다툼이나 말썽을 일으켜 시끄럽게 다툼을 분쟁(紛爭), 말이나 글로 논하여 다툼을 논쟁(論爭), 버티어 다툼을 항쟁(抗爭), 말로써 옥신각신 함을 언쟁(言爭), 여러 패로 갈라져 다툼을 분쟁(分爭), 당파를 이루어 서로 싸움을 당쟁(黨爭), 말로써 굳게 간하여 실수를 바로잡고 잘못을 고치게 함을 간쟁(諫爭), 앞서기를 다투고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쟁선공후(爭先恐後), 서로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다툼을 이르는 말을 쟁장경단(爭長競短), 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은 물에 젖는다는 쟁어자유(爭魚者濡) 뼈와 살이 서로 다툼의 뜻으로 형제나 같은 민족끼리 서로 다툼을 골육상쟁(骨肉相爭), 도요새와 조개의 싸움으로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휼방지쟁(鷸蚌之爭) 등에 쓰인다.
▶️ 臣(신하 신)은 ❶상형문자로 본디 크게 눈을 뜬 모양을 형상화했다. 내려다 본 사람의 눈의 모양으로 전(轉)하여 신을 섬기는 사람, 임금을 섬기는 중신(重臣), 신하(臣下)를 말한다. ❷상형문자로 臣자는 '신하'나 '하인', '포로'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臣자는 고개를 숙인 사람의 눈을 그린 것이다. 臣자가 '신하'라는 뜻을 가진 것은 왕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는 사람의 눈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臣자는 본래 '포로'를 뜻했던 글자였다. 고대에는 포로로 잡히거나 항복한 노예들을 왕실의 노예로 삼았다. 臣자는 그들을 일컫던 글자였다. 그러나 후에 왕을 섬기는 모든 사람을 통칭하는 용어로 쓰이면서 지금은 '신하'나 '하인'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臣자는 단독으로 쓰일 때는 '신하'를 뜻하지만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監(볼 감)자나 臥(엎드릴 와)자처럼 고개를 숙인 사람의 눈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臣(신)은 ①신하(臣下) ②백성(百姓) ③하인(下人) ④포로(捕虜) ⑤어떤 것에 종속(從屬)됨 ⑥신하(臣下)의 자칭(自稱) ⑦자기(自己)의 겸칭(謙稱) ⑧신하(臣下)로 삼다 ⑨신하로서 직분(職分)을 다하다 ⑩신하답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임금 주(主), 임금 후(后), 임금 군(君), 임금 제(帝), 임금 왕(王), 임금 황(皇), 임금 후(矦), 임금 벽(辟)이다. 용례로는 임금을 섬기어 벼슬을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을 신하(臣下), 신하와 서민 또는 많은 신하를 신서(臣庶), 신하가 되어 복종함을 신복(臣服), 신하된 처지를 신분(臣分), 나라에 공로가 있는 신하를 공신(功臣), 국가나 임금의 명령을 받고 외국에 사절로 가는 신하를 사신(使臣), 임금과 신하를 군신(君臣), 중직에 있는 신하를 중신(重臣), 봉토를 받은 신하 곧 제후를 봉신(封臣), 슬기와 꾀가 있는 신하를 모신(謀臣), 문관인 신하를 문신(文臣), 무관인 신하를 무신(武臣), 남의 신하를 인신(人臣), 간사한 신하를 간신(奸臣),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절을 다하는 신하를 충신(忠臣), 지위가 낮은 신하를 미신(微臣), 이름난 신하를 명신(名臣), 다리와 팔뚝에 비길 만한 신하라는 뜻으로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중신을 이르는 말을 고굉지신(股肱之臣), 다리와 손에 비길 만한 신하라는 뜻으로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중신을 이르는 말을 고장지신(股掌之臣), 임금과 신하와 물과 물고기란 뜻으로 떨어질 수 없는 친밀한 관계를 일컫는 말을 군신수어(君臣水魚),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 또는 불충한 무리를 일컫는 말을 난신적자(亂臣賊子), 간사한 신하와 불효한 자식을 일컫는 말을 간신적자(奸臣賊子), 임금은 그 신하의 벼리가 되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군신유의(君臣有義),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듣기에 괴로운 직언을 하는 강직한 신하를 일컫는 말을 골경지신(骨骾之臣), 임금의 사랑을 잃게 된 외로운 신하의 원통한 눈물을 일컫는 말을 고신원루(孤臣冤淚), 임금과 신하 사이에 지켜야 할 큰 의리를 일컫는 말을 군신대의(君臣大義), 풀을 베는 천한 사람이란 뜻으로 평민이 임금에 대해서 저를 낮추어 일컫던 말을 자초지신(刺草之臣), 임금의 명령을 비롯한 나라의 중대한 언론을 맡았다는 뜻에서 승지를 일컫던 말을 후설지신(喉舌之臣), 벌이나 개미에게도 군신의 구별은 뚜렷이 있다는 뜻으로 상하 위계 질서를 강조할 때에 이르는 말을 봉의군신(蜂蟻君臣),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가 죽는다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는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군욕신사(君辱臣死), 풀떨기 같은 신하라는 뜻으로 벼슬하지 않는 백성을 이르는 말 또는 신하인 자가 스스로를 낮추어 이르는 말을 초망지신(草莽之臣),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가 임금의 치욕을 씻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도와 생사고락을 함께함을 이르는 말을 주욕신사(主辱臣死)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