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 천 시인 천상병
시인은 자신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시인이라고 했다. 서정주니 하는 시인은 유명한듯 하지만, 자신은 버스안내양도 알아 줄 정도라고 했다.
그 사연은 이렇다. 종로 5가에서 시인의 집이 있는 의정부까지 운행하는 113번 버스 안내양들은 천상병을 모를 수 없었다. 늘 술에 취해 있어 대화가 어렵고, 늘 주머니가 비어서 차비가 없고. 해서 시인을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 줘야 하는지를 입사 첫 날 부터 교육받게 돼 있었다.
그런데 그 정류장에 도착해서 안내양이 시인을 깨울 때는 중요한 원칙이 있다. 아저씨나 외모에 걸맞는 할아버지 같은 호칭으로는 시인은 전혀 반응 하지 않는다. 시인 아저씨라고 부르거나 최소한 시인 할아버지 정도는 돼야 눈을 뜨고 안내양의 부축을 받으며 보무도 당당하게 하차를 승인하곤 했다.
종점까지 갔다가 돌아 오거나 한바퀴 더 돌아 종로5가 기독교방송국 앞에서 시인이 소피 보는 걸 기다리느니 정중히 모시는 게 문화대국의 국익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버스회사는 판단한 것이다.
어쨌든 버스 안내양도 알아 주는 시인 천상병은 버스 안내양들이 잘 모르는 서정주 정도의 시인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키가 작고 몸이 작은 만큼 막걸리가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천 상병 시인은 생전에 지인들에게 세금(?)으로 500 원에서 1,000원을 받아냈다. 80년대 이후로는 1,000원~2,000 원이 되었다. 그런데 징수(?)의 기준이 특이했다. 꼭 지인 한테만 받았고 지인이 아닌 사람 한테는 돈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어른이라 생각하면 1,000원, 어른이 아니라 생각하면 500원씩을 받았다고 한다. 그 기준도 나이 같은 게 아니라 결혼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결혼한 사람에게는 1,000원, 결혼 안했으면 500원씩 받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천 상병이 스스로 어지간히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면 돈을 걷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돈을 주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게 현금지급기나 마찬가지인 김인 국수가 어느 날 천 원을 못 주겠다고 했다. 자신은 대한민국 바둑의 최고봉인 국수인 만큼 오늘부터 천 원이 아니고, 이 천원으로 올리면 주겠다고 으름짱을 놨다. 천 상병이 김 인을 한참 노려 보다가 하는 말 왈,
“어이, 김 인이! 까불지 마라! 넌 아직 천원짜리 밖에 안돼 !”
둘은 호쾌하게 까르르 웃었다. 그는 자신이 구차하게 돈을 구걸하는 게 아니라, 형편을 봐줘서 받아 주는 것이고 그만큼 호의를 베푸는 것이라고 편하게 생각했던것.
이렇게 천 상병이 걷어간 돈은 대부분 술값으로 쓰였다고 한다. 평소 친하게 지낸 김동길 교수가 매일 술을 마시니까 이왕이면 좋은 술을 마시라고 비싼 조니 워커 위스키 한 병을 선물했는데 다음에 만났더니
"교수님이 주신 그 비싼 양주에는 입도 대보지 못했다, 아내가 비싼 술이니까 팔아서 막걸리나 사서 마시라고 해서 팔아서 막걸리를 마셨다"! 라고 천진난만하게 얘기했다. 당시 '귀천'에 자주 다니던 사람이 천 상병 시인에게 빌린 돈을 언제 갚을 거냐고 묻자 천상병 시인 답.
"허허, 내가 죽으면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포장마차를 하고 있을 테니 오거든 갚을 만큼의 공짜술을 주겠네."!
이 이야기는 일본인이 쓴 세계 유명인의 명 대사란 책자에 나온 적도 있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중퇴 ! 그는 천재? "서양문학사" 정도는 책한권을 다 외웠다! 그는 천재이고 부인이었던 목 순옥씨 는 천사였다! 하늘나라에서나 둘은 행복할까? 나이 먹어가니 "귀천" 같은시가 좋아진다!
⛩️ 귀 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모셔온 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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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공감해요
좋은 글에 많이 배우고 갑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