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서나 중요한 것이었지만, 최근 들어 우리에게는 그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점차 인맥중심의 가족사회에서 개인중심의 사회로 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맥중심의 사회에서는 개인에게 발생할 수 있는 실수나 잘못을 그 당사자 이외의 주변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이다.
금전적인 문제나 기타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부모나 형제자매가 책임을 지고 도와주거나, 혹은 친구들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점차 분화되어 대가족사회에서 핵가족사회로 이미 변화했고, 심지어 1인 가구도 늘고 있는 추세이다. 이제는 개인이 모든 경제활동의 주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시스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스템은 이러한 변화에 후행하고 있다. 개인의 금융기록이 공공신용기관을 통해 정확하게 파악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의 금융거래에는 담보나 보증인제도가 동반되고 있다. 개인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경우에 개인의 신용기록에 의해 대출규모, 대출기간 및 이자율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담보나 연대보증인의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체제가 유지되어 왔다. 따라서 개인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담보나 보증인제도는 신용사회의 정착을 지연시키는 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신용사회는 담보나 보증인이 아닌 개인의 신용이 대출여부를 판단하는 전적인 근거로 이용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담보나 보증인에 의존하여 대출을 결정하였던 근본이유는 가족중심의 사회전통이 오랜 기간 유지되면서 개인의 신용기록에 대한 평가의 중요성이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에 따르면 2000년 7월에 신용회복을 신청한 5,200여 명의 신용불량자 가운데 9.2%인 431명이 빚보증으로 신용불량자가 된 경우로 조사되었다. 4월, 5월과 6월에 각각 30명, 33명, 56명에서 7월 431명으로 급증된 이유도 대부분의 보증이 가족관계에서 이루어 졌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개인신용이 가장 발달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보자. 가난한 한 개인이 신용을 잘 관리하여 어떻게 기업가로 성공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가난한 청년이 월급을 쪼개 열심히 예금을 했다. 그는 그 예금을 밑천으로 1만 달러의 융자를 받을 수가 있었다. 그는 1만 달러를 한푼도 쓰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가 상환기한이 오면 이자를 보태 은행에 상환했다. 이러한 일을 10여 차례나 반복하니까 은행은 그의 신용을 믿게 되었다. 그는 사업 계획을 세우고 은행에 가서 이번에는 거액의 융자를 신청했다. 은행은 그의 사업 계획이 타당성이 있고 그의 신용에 근거하여 그의 융자신청을 받아 들였다. 그는 그 자금으로 사업을 일으켜 마침내 크게 성공하였다('금융과 신용사회', 한은소식, 1998년 5월호)'.
미국에서는 Experian, Trans Union, Equifax 등 공공신용정보회사와 무디스 등 기업신용정보회사가 발달해서 연대보증제도를 이용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은 500만 엔 미만의 가계대출과 관련하여 신용이 부족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독일은 신용대출이 원칙이고 부동산 담보제도를 결합해서 운용하고 있다.
우리사회는 이미 신용중심의 사회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가족이나 친구가 개인의 문제 해결을 도와주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 스스로가 모든 경제적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신용의식은 신용사회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상황이다. 신용이 자신의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관리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 차원에서는 신용관리에 대한 인식 제고가 중요한 이슈이지만, 제도 차원에서는 개인신용을 엄밀하게 평가하는 기관 및 제도적 뒷받침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신용 평가시스템 개발로 담보나 보증인제도 대신 직업, 근무연수, 은행거래 실적, 소득, 소비성향, 연체실적 등을 상세히 조사 분석한 신용점수로 대출기준을 결정할 수 있는 개인신용평가를 강화해 나가는 것이 신용사회 정착을 위한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