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위(申緯)-송별서치가예보이거파산(送別徐穉嘉禮輔 移居坡山)(파주로 이사하는 서치가를 송별하며)(은거하러 떠나는 친구를 보내며)
問君何事厭囂塵(문군하사염효진) 자네는 왜 그리 속세를 싫어하여
盡室坡山訪隱淪(진실파산방은륜) 온 가족 다 데리고 파주로 은거하려는가
酒熟茶香花月夕(주숙다향화월다) 술 익고 차 향기로운 꽃 피는 달밤이면
忘年記否舊東隣(망년기부구동린) 친구여, 옛 이웃인 나를 기억해 주려나
*위 시는 “한시 감상 情정, 사람을 노래하다(한국고전번역원 엮음)”(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권경열님은 “신위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소문나서, 어전에 불려가 임금에게 크게 칭찬을 받은 적이 있다. 그 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시와 글씨, 그림에 능했는데, 조선 5백년 이래로 제1인자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한시를 잘 지었다. 청나라에 사신으로 가서도 당시 경학과 금석학의 대가였던 옹방강翁方綱 등을 만나 인정을 받았다.
어느 날 그의 친구가 속세가 싫어졌다며 가족들을 데리고 이사를 간다고 한다. 꽃이 만발한 봄날에 함께 달 아래서 술을 마시고 차를 마시던 친구. 이젠 그에 관한 모든 것들을 추억이라는 공간에 넣어두어야 한다.
흔히 이별을 앞둔 사람은 슬픔과 눈물을 언급하지만, 이 시에서는 그저 담담하게 옛 추억을 더듬고 있을 뿐이다. 술과 차, 꽃, 달밤, 친구가 소재로 등장하는 장면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시인의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운문이든 산문이든 앞에서 한껏 미화하고 찬양한 후에 뒤에서 그것이 사라졌다는 것을 말하면, 독자가 느끼는 상실감은 훨씬 더 커지는 법이다.
제3구에서 언급한 추억이 서정적이고 아름다울수록 이별 후의 심정이 더욱 애절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시인은 지금 70세가 넘은 노인이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오래도록 변하지 않고 진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먼저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당나라 두보가 가난할 때의 사귐에 대해 읊은 시 빈교행貧交行에서는 첫 부분부터 세상의 인심이 수시로 변함을 지적하고 있다.
飜手作雲覆手雨(번수작운복수우) 손을 뒤집으면 구름 되고 다시 뒤집으면 비가 되니
紛紛輕薄何須數(분분경박하수수) 그 분분함과 경박함을 어찌 따질 것이 있으랴
지족당(知足堂) 권만두(權萬斗,1674~1753)도 ‘한가롭게 지내며 읊다(閒居漫詠한거잡영’)이라는 시에서 친구의 사귐이 그 사람이 놓인 처지에 따라 좌우되는 것을 한탄하였다.
늙어갈수록 점차 책 읽는 재미를 알겠고 老去漸知讀書好(노거점지독서호)
궁해질수록 친구 맺기 어려움을 실감하네 竆來偏覺結交難(궁래편각결교난)
세상의 인심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그런 면에서 친구가 처한 상황에 상관없이 오래도록 그이 곁에 남아주는 친구가 있다면,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다 할 수 있겠다.”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신위[申緯, 1769년 ~ 1845년,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한수(漢叟), 호는 자하(紫霞)·경수당(警修堂)]-조선 후기의 문신. 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좌의정(정1품) 문희공 신개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신동이라 불리었고 14세 때 정조가 그를 불러 크게 칭찬하였다. 1799년 알성 문과에 급제하여 도승지·이조참판(종2품)을 지냈다. 당시 시·서·화의 3절로 일컬어졌으며, 조선 이래 시작이 가장 많았었고 백년 이후의 시인들도 모두 그를 작시법의 스승으로 추대하였다. 천재적 시인으로 그의 이름은 국내보다 중국에 널리 알려졌고, 청조의 시풍을 민감하게 받아들여 참신한 시를 썼다. 그의 시작품 속에는 애국 애족적인 정신이 잘 나타나 국산품 애용, 양반 배척, 서얼의 차별대우 철폐, 당쟁의 배격 등을 제시했다. 그는 또한 서도와 그림에도 뛰어났다. 저서에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가 있는데, 그 가운데 있는 〈소악부(小樂府)〉에는 45수의 시조가 한역되어 실려 있다. 그가 쓴 〈동인론시(東人論詩)〉 35수는 신라의 최치원으로부터 그 당시까지의 시인들의 작품을 평가해 놓은 대표적인 평론집이라 할 수 있다.
*囂(효) : 들렐 효, 많을 오, 1. (들렐 효), 2.들레다(야단스럽게 떠들다), 3.시끄럽다.
*坡(파) : 언덕 파, 1.언덕, 2.고개, 3. 비탈(기울어진 상태나 정도), 岥(동자)
*淪(륜) : 빠질 륜(윤), 물 돌아 흐를 론(논), 성씨 관, 1.(빠질 륜(윤) 2.빠지다, 빠져들다, 3.망하다, 몰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