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부정한 걸음걸이.짧게 깎은 머리.동료들을 격려하는 박수.영락없이 아버지를 빼다박은 모습이었다.하지만 아버지의 긴 그늘은 그에게 항상 부담이었다.어린시절부터 아버지를 능가하는 선수가 되어보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지금은 그 꿈을 접었다.다만 아버지의 명성에 누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소박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뿐이다.
차두리(21·고려대 3년).그의 이름석자 앞에는 늘 차범근이란 불세출의 영웅이 접두어처럼 붙어다닌다.암울했던 시절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차붐'이란 작위와 함께 한국인의 기상을 유럽에 떨쳤던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바로 그의 아버지다.
차두리가 18일 대한축구협회가 발표한 올림픽대표팀 명단에 포함됐다.아버지를 이어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그를 만나봤다.
올림픽 대표팀 첫 선발 "명성 잇겠다"
올림픽대표팀에 선발됐는데.
▲부끄럽다.대표팀에 선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주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
아버지도 알고있는가.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하고 축하전화를 해주셨다.무척 기뻐하셨다.그동안 늘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다.
평소 아버지가 경기장에 자주 나오시는가.
▲워낙 바쁘신 분이라 거의 뵙지 못했다.중-고교 시절엔 프로팀과 대표팀에 몸담고 계셔서 얼굴 뵙기도 어려웠다.지난 3월 봄철 대학연맹전이 열리는 효창구장에 잠깐 들르신 적이 있는데 나의 플레이에 크게 실망하신 것 같았다.'그런 식으로 축구를 할거면 당장 그만두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유명인인 탓에 불편하게 많을텐데.
▲내가 잘하면 문제될 게 없는데 실수를 하면 화살이 아버지에게 돌아간다.하지만 이런 일도 이젠 이골이 났다.아버지는 내가 넘어설 수 없는 큰 산이다.아버지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아버지가 중도하차하는 바람에 마음고생이 많았을텐데.
▲한국이 네덜란드전에서 참패를 당할 때는 정말 울고 싶었다.며칠 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셨는데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다.당시 집안 분위기는 조금 가라앉았을 뿐 평상시와 큰 차이는 없었다.아버지 친구분들이 가끔 집에 오시곤 했다.
전공이 신문방송학인데.
▲어린시절부터 축구 선수로 성공하지 못하면 축구 기자로 필명을 날리고 싶었다.이런 이유로 운동 선수들은 대개 체육관련 학과를 선택하는데 나는 주저없이 신문방송학과를 지망했다.요즘엔 스포츠재활에 관심이 많다.지난해 오른쪽 새끼발가락을 다쳐 독일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그 때부터 이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꿈을 이루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할텐데.
▲지난 여름 무릎을 다치면서 축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약 한달 동안 쉬면서 중앙도서관에서 공부를 해봤다.그런데 공부라는게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그래도 현역에서 은퇴하면 꼭 스포츠재활 분야를 공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