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꼰대 세대' 이다!♡
지금의 60~70~80대 세대들이 살아온 길
1. 우리는 세대였다. 90%는 '전깃불ㅏ'이 없고 '호롱불'을 켜놓고 공부했다.
2. 우리는 세대였다. 90%는 '실내 화장실'이 없고, 엄동설한 한겨울에도 '뒤 구석' '재래식변소'에서 '볼 일' 을 봤다.
3. 우리는 세대였다. '상수도'가 없어, 동네 '공동우물'에 양동이로 물 길어 '항아리'에 담아 놓고 마셔야 했다.
4. 우리는 세대였다. 98%는 '목욕탕'이 없어 '가마솥'에 물을 끓여 '목욕'을 했다.
5. 우리는 세대였다. 100%가 "세탁기"가 없어, 개울에 나가 추운 겨울에도 '얼음장'을 깨고 '빨래'를 했다.
6. 우리는 세대였다. 95%는 "자가용"이 없어 대부분은 걷거나 일부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7. 우리는 세대였다. 95%는 '구두'도 '운동화' 도 없어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8. 우리는 세대였다. 100%가 '이발비'가 적게 드는 '까까중 머리'로 다녔다.
9. 우리는 세대였다. 98%는'책가방'이 없어 "보자기"에 '책'을 싸서 '허리'에 차고 다녔다.
10. 우리는 세대였다. 100%가'장난감' 이나 '놀이기구'가 없어 여자애는 '고무줄' 넘기하고, 사내애는 '새총'을 만들었다.
11. 우리는 세대였다. 100%가 '쌀'이나 '보리쌀'이 없어 '학교'에서 주는 강냉이 가루로 '강냉이 빵' 이나 '꿀꿀이 죽'을 만들어 '끼니'를 때워야만 했다.
12. 우리는 세대였다. 98%가 낮에는 '가사일, 농사일 돕기' 풀베기, 나무하기, 소먹이기, 동생돌보기 등을 하고서 밤이 되어야 '학교숙제'를 했다.
13. 우리는 세대였다. 100%가 전자계산기나 '컴퓨터'는 없고 다섯 알 짜리 '주판'을 굴리면서 '셈'을 했다. 급수를 따야 은행 등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
14. 우리는 세대였다. 100%가 입학 / 졸업은 물론이고,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전교생이 일제히 '시험' 을 치르고 '등수'를 매겨 '경쟁'했다.
15. 우리는 세대였다. 100%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본고사 입학시험"을 치러 '상급학교'에 '진학'을 했다.
16. 우리는 세대였다. 하도 '가난'하여 '진학'하지 못하면 '식모살이' 아니면 구로공단 같은 공장에서 '공돌이' '공순이' '버스차장'을 하면서 땀 흘려 일을 하고 야간에는 교복입고 야간학교에 등교했다.
17. 우리는 세대였다. 80%가 "신혼 살림집"을 구할 '돈'이 없어 거의 모두가 "사글세 단칸방"부터 시작하여 '전세'로 옮겨 다녀야만 했다.
18. 우리는 세대였다. 나라가 '빈곤' 하여 '목숨'걸고 전쟁터에서 돈을 벌어 와야만 했다.
19. 우리는 세대였다. '최 빈곤국'으로 '독일'에 가서 석탄 광부와 시체 닦는 일로 '돈'을 벌어 와야 했다. 그나마 고졸이상 경쟁이 치열했다. 평균 5:1이었다.
20. 우리는 세대였다. 열사의 나라 '중동지역' 에서 가족과 자식을 위해 '돈'을 벌었다. 우리가 피 땀 흘려 열심히 일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건재하고 있지 않는가?
젊은이들이 우리를 "꼰대"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꼰대“이다.
우리 중에는 지금도 재활용 폐품을 줍는 '부모'도 있다. "부모"는 "자식과 가족"을 위해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일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가난하고 엄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나와 열심히 "캥거루 세대"를 키워낸 죄밖에 없는 "샌드위치 세대" 들일 뿐이다.
우리가 바로 7080세대 우리들이 아닌가? 눈물겨운 지난날들 지금은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혹 어렵게 일구어 낸 이 나라가 위기에 빠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杞憂(기우)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우리는 일제 36년과 북한 공산당 김일성이가 6.25 남침으로 망가질대로 망가져 세계에서 가장 두번째로 못 사는 나라를 일으키려고,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죽기 살기로 논밭을 일구고,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고 가꾸고,
풍랑과 싸우며 노를 젓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월남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달러를 벌어 들였고,
서독에서 1,000미터 넘는 깊은 땅굴에 들어가 석탄을 캐고 서독의 병원에서 요양원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를 돌보고 대 소변을 치우고 시체를 닦으면서 염을 하면서 외화를 벌어들이고,
노무자를 담보로 차관을 얻어와 공장을 지으며 산업전사로서 공돌이 공순이로 살아왔다.
퇴근하여 집에 가면 연탄과 석유가 없어 밥 지을 나무를 주으려고 산과 들로 헤메고 다녔다.
그래서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놓은 세대를 '꼰대 세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 우리는 “꼰대”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꼰대”들이다.
♡추억♡
우리는 대부분 1960년 이후에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기다랗고 커다란 안테나가 달린 흑백티비에 리모컨이 없는 로터리식 이어서 손으로 직접 채널을 돌렸던 걸 기억합니다.
티비 화면이 잘 안나오면 한사람이 옥상에 올라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실외안테나를 좌우로 돌려 안테나 방향을 맞추곤 하였고, 티비에는 문도 달렸고,
열쇠가 있는 티비도 있었고, 다리도 네개가 있었습니다.(대한전선, 이코노TV) 친구들과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김일, 여건부, 천규덕, 장영철, 홍수환, 유제두, 염동균, 김태식 등의 시합과 이회택, 차범근, 허정무, 펠레, 에우제비오,마라도나, 김봉연, 김재박, 장효조, 최동원, 장훈,
백인천 등의 경기 여로, 팔도강산, 전우, 아씨 같은 드라마와 보난자, 초원의 집, 전투, 육백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원더우먼, 형사 콜롬보, 등의 외국 드라마를 보았던걸 기억합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부엌에 나가 아궁이에 나무를 때거나 일산화탄소를 마시며 연탄을 갈았습니다, 때로는 곤로에 불을 붙여 밥을 하시던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부모님의일 또는 농사일등을 도와야만 했으며 일이끝나면 해가 져 어두울 때까지 형 누나들과 오징어 찜. 안까스 박까스.
얼음땡, 딱지와 구슬치기, 팽이치기, 자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고무줄, 땅 따먹기, 가이상, 숨박꼭질, 새총, 고무총이나 나무칼싸움, 다방구를 하며 놀았습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나풀거리며 간혹 떨어지던 삐라를 보았고... 그것을 모아 학교에 갖다주면 공책 한 권과 연필 한 자루를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황금박쥐, 타이거마스크, 철인28호, 용감한4인조, 밀림의왕자 레오, 마린보이, 아톰, 유성가면 피터, 캔디..달려라 캐산..은하철도999..마루치 아라치..똘이장군..마징가Z..그랜다이져..짱가 등 이런 만화영화를 보고 자랐습니다.
우리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우리는 라면땅..자야..아폴로..크라운산도 등 같은 과자와 쫀드기, 쭐쭐이, 달고나, 띠기 같은 불량식품을 먹고 자랐으며.. 동네마다 울려퍼졌던 화약총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운동회때 하얀 체육복을 어김없이 입었고 곤봉, 마스게임, 차전놀이, 단체무용, 포크댄스 (손잡기싫어서 나뭇가지를 서로 잡고)등등 무수히 연습했던걸 기억합니다.
우리는 하굣길에 애국가가 울려퍼지면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가던 길을 멈춰 서 있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새마을운동 이란것에 익숙해.. 어김없이 아침무렵 동네 어귀에 울려퍼지는 새벽종이 울렸네-새아침이 밝앗네~라는 노래를 듣고 자랐습니다.
우리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받들어"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아무뜻도 모르고 외웠고 기미년 삼월일일 하는 3.1절 노래를 알고있고 무찌르자 공산당 하는 6.25노래도 알고있습니다.
학교에서 뗏장, 대변(기생충 검사용), 나락, 쥐꼬리 가져오라고도 하고, 단체 위생차원에서 냇가에서 단체 목욕을 실시했고, 조막손으로 봄에는 식목하고, 가을에는 길가에 코스모스 심었으며, 학교내에서는 통일동산을 꾸몄습니다.
교정에는 이순신장군동상과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단 소리를 듣고.. 어린맘에 나라가 망하는줄 알았고, 티비에서는 영정사진만 몇 일동안 나왔던걸 기억합니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죠다쉬..빌리진..뱅뱅..써지오바렌테.. 핀토스 등등의 청바지들과 승마바지도 기억합니다.
우리는 쇼 비디오쟈키에 나오는 뮤직비디오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우리는 올림픽을 보면서 손에 손잡고를 따라 불렀습니다.
우리는 영웅본색의 주윤발이 한국에 와서 "싸랑해요 밀키스" 라고 떠드는 걸.. 테레비 광고에서 봤습니다.
우리는 천녀유혼의 왕조현이 한국에 와서 "반했어요 크리미"라고 하는 것도 봤습니다.
우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좋아하는 노래를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했으며.. 팝송을 한글로 적어 따라부르곤 했습니다.
우리는 런던보이스..왬..모던토킹..아하 라는 외국 가수들을 통해서 유로댄스란 걸 알았습니다.
우리는 친구들과 카세트 어깨에 매고, 모닥불 피워놓고 밤새도록 놀던 기억이있습니다.
우리는 썬데이 서울이나 건강다이제스트를 기억하며. 플레이보이, 팬트하우스와 같은 외국성인잡지를 친구들과 돌려보면 어떤 불량한 녀석(?)이 볼(^^)만한 페이지를 몰래 찢어가곤 했습니다.
우리는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고, 학과목에 교련과목이 있어 제식훈련,총검술과 구급법을 익혔습니다.
큰 도시에는 시내버스 토큰도 있었지만~ 학생때에는 매점에서 회수권을 다발로 구입하고 그걸 아끼려고 열 한장으로 작업해서 잘랐습니다.
우리는 이미자, 남진. 나훈아, 하춘화, 조미미, 배호, 펄시스터즈, 박상희, 윤항기, 패티김, 조영남,이종용,이용복,이현, 정미조, 김정호 등의 가요와 장현, 양희은,어니언스,서유석,이장희, 트윈폴리오,부터 남궁옥분,소리새, 해바라기, 이문세, 이연실 과 같은 통기타 포크송을 두루 섭렵하고, 들고양이들, 사랑과 평화, 산울림, 다섯손가락,이치현과 벗님들을 비롯하여 대학 가요제에서 배출한 라이너스,샌드페블스,휘버스,영사운드
블랙테트라,옥슨,건아들,로커스트,송골매,런웨이, 마그마,해오라기, 노고지리 등 그룹사운드 음악을 들었습니다.
조용필과 이용과 전영록도 기억하며 묘하게 그때는 그 중 한명만을 좋아했습니다.
이선희, 김현식, 이상은, 김광석, 유심초를 좋아했고 그러다 나타난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에 세대차이를 느끼고, 한때에는 맘모스, 크리스탈, 부림호텔
나이트에서 밤문화를 풍미했던 바가 있지만 젊은 아이들이 테이블에서 술 마시며 그 자리에서 춤을 춘다는 락카페가 참 신기했습니다.
암튼 우리는 밤12시 넘어서 새벽까지 술집에서 당당하게 솔담배와 접대용(?) 청자담배를 피우며 술을 마실수 있다는게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우리는 삐삐의 암호와 같은 숫자의 뜻을 모두 알고 3535란 숫자를 제일 좋아 했습니다.
우리는 일부러 공중전화부스 옆에 가서 삐삐와 씨티폰을 꺼내 통화하며 뿌듯해 했습니다.
희한하게도 우리는 이렇게 제도의 변화란 변화는 모두 겪으며 그렇게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중요한 고비마다 닥쳐왔던 불리한 사회적 여건을 원망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벌써 오십대에 와 있었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던 본인들 모습에... 영화처럼 머릿속으로 옛 추억이 스쳐지나가는 당신은...... 친구입니다.
고향생각에 눈물이 마음속에 눈물을 흘리며서 글을 편집하여서 올려봅니다.
보고싶은 부모님, 어릴적 친구들도 12월 겨울밤에 더욱더 그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