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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 스크랩 대한민국의 대형사고=한국의 최악의 참사=한국의 참사
안광진(진카자마/안양/84) 추천 0 조회 124 10.05.20 14:02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대한민국의 대형사고=한국의 최악의 참사=한국의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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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 억새 태우기-4명 사망

2009.02.10
경남 창녕군 화왕산에서 대보름을 맞아 억새 태우기 행사를 하다
4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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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 고시원 방화 및 살인 사건

2008년 10월 20일 오전 8시 15분 경 D고시원에서 2003년부터 거주하던
정상진(1978년 2월 27일생, 당시 30세)이 논현동의 D고시원에 화재를
일으킨 뒤, 화재연기를 피해 복도로 뛰어나온 피해자를, 미리 준비하고
있던 칼로 피해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찔러 살해 또는 중상을 입힌 사건이다.
이번 방화로 고시원의 세 층이 일부 전소했으며, 피해자는 중국동포
이월자(50세)와 서진(20세)을 비롯해 사망자 6명, 중상 4명, 경상 3명이
발생했다.
2009년 4월 22일 서울중앙지검 신영식 검사는 현주건조물방화치사,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상진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5월 12일 오후 2시에 열린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피고 정상진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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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40명 사망

2008년 1월 7일,오전 10시 49분에 발생하였다.
대한민국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에 위치한 (주)코리아 2000의
냉동 물류 창고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이다.
사망자:40명(실종자 전원 사망),부상자: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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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대교 연쇄 추돌 사고-12명 사망

2006년 10월 3일 오전 7시 50분경 (한국 표준시)
짙은 안개로 인한 29중 연쇄 추돌 사고가 발생하여, 12명이 사망하고
50여명[3]이 부상하는 인명피해를 냈다. 기상 상황 뿐만 아니라
운전자들의 과속, 일부 운전자들의 갓길 주행도 피해의 원인이었다.
피해액은 약 40억원으로, 한국의 자동차보험 역사상 가장 큰 사고로
기록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사고 이후, 서해대교 여러 구간의
안전시설이 보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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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콘서트 압사참사-11명 사망

2005년 10월 3일
경북 상주에서 열린 MBC 가요 콘서트 녹화 현장에서 인파가 갑자기 몰려 노인과
어린이를 비롯한 11 명이 압사를 하고 70여 명이 다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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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부대 총기 난사사건-8명 사망

2005년 6월 19일
새벽 경기도 연천군 중면 중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내 국군 28 사단 소속
GP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이다.
8명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당했다.
2004년에 군 복무 중 사망한 병사는 총 134명으로 95년 330명 사망의 절반
수준이다.
***다른 주장***
2007년 9월 28일,
연천군 총기 사건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김동민 일병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 작전 수행 중 북한의
공격을 받아 발생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유가족 대책위원회의 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사망자 8명 중 6명은 GP의 노루골 차단작전 지역에서, 2명은 GP 옥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로켓추진수류탄(RPG-7) 9발의 공격을 받아 사망한 후 시신이
내무반으로 옮겨져 내무반에서 살해된 것으로 꾸며진 것으로 보인다.
상황실, 취사장 등 범행 현장에 총알심이나 총알 부스러기가 없다.
내무반에 수류탄이 폭발했다는 직접적 증거도 없다.
GP에 근무했던 2명의 병사로부터 관련 진술을 확보했다.
김동민 일병의 아버지는 유가족 대책위원회의 위의 기자회견 이후에도, 목격자,
증인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이 계속 자신이 단독범행을 했다고
주장한다면서,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모든 것이 명백하게 밝혀진 사안이라면서,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기자회견에 대해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의 주장을 참고하여, 단순히 남북간의 긴장관계 사건의 날짜만을
살펴보면, 1999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이 발생하여 북한군이 패퇴했다.
3년이 지난 2002년 6월 29일 제1연평해전에 대한 보복을 위해 북한군이 다시
보복공격을 하는 제2연평해전이 발생했다. 역시 북한군이 패퇴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05년 6월 19일 총기 난사사건이 있었다.
여러가지 의혹들을 남겨둔 채, 2008년 5월 14일 범인 김동민 일병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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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태풍)-사망·실종 132명

2003년 9월에 한반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태풍이다.

기상관측을 실시한 이래 중심부 최저기압이 가장 낮은 950hPa을 기록했다.

인명피해 130명, 재산피해 4조 7810억 원이 발생했다.

태풍의 이름은 북한에서 제출한 것이다.

한반도에서 기상관측을 실시한 1904년 이래 중심부 최저기압이 가장 낮은

태풍으로, 12일 사천 부근의 해안에 상륙했을 때의 최저기압은 1959년 9월 발생한 태풍 사라(사망·실종 849명)의 952hPa보다도 낮은 950hPa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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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화재사고-192명 사망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방화로 일어난 화재이다.
이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범인인 김대한(당시 56세)의 방화사유는
지적장애로 생긴 판단력 상실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병으로 인한 울분을 방화로 토한 사건이라는 분석도 있어
방화사유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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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사(태풍)-124명이 사망하고 60명이 실종

2002년 8월 말에 한반도에 상륙했던 태풍이다. 그 당시 최대 순간풍속은 초당 39.7m, 중심 최저기압은 970hPa이었으며 강원도 동부에 많은 강수를 내리면서 많은 피해를 남겼다. 대개의 태풍이 한반도의 동서로 펼쳐진 북태평양고기압의 기압골에 따라 편서풍을 타고 빨리 이동하는 것과 달리 루사가 상륙했을 때는 편서풍이 일지 않아 태풍이 느리게 한반도를 관통하였다. 더욱이 태백산맥 상층부에 형성된 비구름대에 북서쪽의 저온다습한 공기가 합류해 강원도 동부에 심한 비를 뿌렸는데, 이로 인해 다른 어떤 태풍보다도 많은 피해를 남겼다.
124명이 사망하고 60명이 실종되었으며 총 5조 4696억 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그 이름은 말레이시아반도에 사는 사슴과의 일종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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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학원 화재사고-10명 사망

2001년 5월 16일 밤 11시 30분경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에 위치한 5층짜리 건물에서 수업하던 도중 담뱃불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화재 사고이다. 10명이 숨지고 22명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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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52명 사망

1999년 10월 30일 저녁 7시쯤 인천시 중구 인현동에 위치한 4층 상가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건물 2층 라이브호프집과 3층 그린당구장에 있던 10대 청소년 등
손님 52명이 불에 타거나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또 71명이 연기에 질식되거나 화상을 입고 인천길병원, 인하대병원, 인천의료원
등 인천지역 8개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사고가 난 호프집은 건물 지하에 있는 노래방 내부수리 공사장에서 처음 발생하여
계단을 타고 2층과 3층사이로 번졌다. 이 때문에 있지도 않은 비상구과
비상계단을 찾아 갈팡질팡 헤매다가 학교축제 후 뒤풀이 하던 많은 청소년들이
졸지에 변을 당했다.
불은 출동한 소방차 15대와 구급차 19대 소방관 180명과 경찰관 160명이 동원되어 35분만에 진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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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랜드 화재-23명 사망

1999.06.30.am 01:30
취침중이던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및 강사 4명 등 23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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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LPG 충전소 폭발사고-1명 사망

1998년 9월 11일 오후 2시 14분 쯤
사망자 : 1명
중상자 : 11명
경상자 : 85명
건물 전파 : 20동
총 피해 규모 : 약 120억원의 재산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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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사고-501명 사망

1995년 6월 29일 오후 6시경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사건으로,
건물이 무너지면서 1천여 명 이상의 종업원과 고객들이 다치거나
사망했다.
사망자는 501명, 부상자는 937명, 실종 6명,
피해액은 약 2700여억원으로 집계됐다.
피해자들 중 최명석은 11일, 유지환은 13일,
박승현은 16일간 갇혀있다가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현재 서초동 삼풍백화점 자리에는 주상복합 아파트인 아크로비스타가
2004년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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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101명 사망

1995년 4월 28일 오전 7시 52분경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영남고교 사거리 지하철 1호선 제 1~2구간
공사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이다.
이 사고로 학생 42명을 포함해 101명 사망, 20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차량 통행을 위해 공사장 위에 임시 설치한 복공판 400m가 무너졌고,
건물 346채, 자동차 152대가 파손되어 피해액은 540억원에 다다른다.
이는 역대 세계 지하철 참사 가운데
사상자 규모에서 3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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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12명 사망

1994년 12월 7일 오후 2시 50분쯤
서울특별시 마포구 아현1동 도로공원 한국가스공사 아현밸브스테이션
지하실에서 계량기 점검시 전동밸브 틈새로 다량 방출된 가스가
환기통 주변 모닥불 불씨에 점화되어 폭발한 사고이다.
이 사고로 사망자가 12명, 부상자 101명 등의 인명피해와
건물 145동(전파 75, 부분파손 70), 동산 431건, 영업손실 47점,
차량손실 92대 등의 물적 피해 및 이재민 210세대 555명 등 엄청난
손실을 초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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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페리호 침몰사고-292명 사망

1993년 10월 10일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에서 여객선 서해페리호가 침몰한 사고로,
292명의 사망자를 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32명 사망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경에 제10·11번 교각 사이 상부 트러스 48m가 붕괴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 하였다.등교 길의 학생들을 포함한 32명이 숨지고,17명이 부상을

입었던 대참사였다.이 사고는 해외에도 크게 보도되어 건설업계에 큰 타격을

입혔을 뿐만 아니라 국가 이미지도 크게 실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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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사고-68명 사망

1993년 7월 26일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추락하여,
68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이다
해당 항공기는 아시아나항공 창립당시 주문한 보잉 737기로,
14시 20분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하여 15시 15분 목포공항에
도착예정이었다. 당시 목포 지역의 기상 상태는 비가 내려
해당 항공기의 도착이 지연될 정도로 좋지 않았으며,
해당 항공기는 15시 24분 첫번째 착륙 시도를 실패하고
이어 15시 28분의 두번째 착륙 시도, 15시 38분 세번째
착륙 시도까지 세번의 착륙 시도에 실패한 후 15시 41분
목포공항 레이더에서 사라지며 관제탑과의 교신이 두절됐다.
이어 15시 50분 이 여객기는 목포공항에서 10여킬로미터 떨어진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뒷산에서 추락한 채 발견됐다.
사고 소식은 해당 항공기에 타고 있던 생존 승객 2명이 탈출하여
산 아래 마을의 화원 지소에 신고함으로서 알려졌고 구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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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촬영 헬기추락사고-7명 사망

1993년 6월 14일 영화 촬영중의 헬리콥터가 한강에 추락한 사고로, 7명의
사망자를 냈다.
오후 4시 경, 영화 《남자 위의 여자》 의 첫 장면인 선상 결혼식 장면을
촬영하던 중, 영화제작 관계자와 주연 배우 변영훈, KBS 〈연예가중계〉
취재팀 등이 헬리콥터에서 근접촬영을 위해 고도를 낮추다가 불시착하여 한강에
추락하였다.
사고이후 뒤늦게 구조활동을 벌여 헬기에서 탈출한 KBSPD 김 모씨를 제외한
헬기 기장 최 모씨 등 5명은 구조 당시 이미 숨진 상태였고, 배우 변영훈과
영화사 대표 이 모씨는 병원에서 치료 중 숨졌다.
이 사고는 필수 탑승 요원인 부기장이 탑승하지 않았고, 정원수 이상의 정원이
헬기에 탑승하여 발생한 사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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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사고-78명 사망

1993년 3월 28일 오후 5시 29분
부산광역시 내에 있는 경부선 하행선의 구포역 인근에서 일어나,
78명의 사망자와 198명의 부상자를 낸 사고이다.
사고발생 5분 전(17:40분경) 약 94㎞/h로 사고현장을 운행한 제175열차가
통과한 후 노반이 함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역을 12:45분 출발하여 부산으로 가던 무궁화호 제117열차가 물금역을
17:23분경 통과하여 약 85km/h로 운행 중 선로 노반이 침하되어 있는 것을
약 100m전방에서 발견하고 비상 제동을 걸었으나 제동거리가 미치지 못해
기관차 및 발 전차 객차 2량 등 총 4량이 탈선 전복되어 사상자가 다수
발생함으로써 열차운행이 37시간 30분 동안 불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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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상가 아파트 붕괴사건-27명 사망

1993년 1월 7일 청주시에서 일어나, 27명의 사망자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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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 집단 피살-32명 사망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의 오대양(주)
공예품 공장에서 발생한 집단 피살 사건이다.
공장 내 식당 천장에서 오대양 대표 박순자(朴順子)와 가족, 종업원 등
추종자 32명이 집단 자살한 시체로 발견됨으로서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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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마(태풍)-사망·실종자 345명

1987년7월 15일

태풍 셀마는 대한민국 기상청에 큰 오점을 안겨준 대표적인 태풍이다. 한반도에 상륙하기 하루 전인 7월 14일, 기상청은 태풍이 일본의 큐슈 지방으로 향할 것으로 판단하여 한반도에는 간접적인 영향만을 끼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7월 15일, 태풍은 기상청의 예상과 달리 한반도에 상륙할 듯한 기세로 계속 북상했으며, 같은 날 외국에서는 태풍의 한반도 상륙을 내다보고 있었다. 반면에 기상청은 14일의 예상 진로에서 조금 변경되었을 뿐인 태풍의 대한해협 통과를 예상, 한반도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기상청의 예보대로 태풍이 한반도를 비켜가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대다수로, 태풍에 대한 대비는 그야말로 취약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345명에 달하는 사망·실종자와 10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특히 사망·실종자 345명 중에서 절반 가까이가 태풍의 한반도 상륙 사실을 모른 채 피항을 하지 않았던 선박들의 침몰·좌초로부터 비롯된 것으로서, 진로 예측의 실패가 피해를 키웠음이 분명했지만,기상청은 실수를 덮고자 태풍이 이미 한반도를 관통하여 동해로 진출했음에도 “태풍 셀마는 대한해협을 지나 동해로 빠져나갔다”고 태풍의 이동 경로를 조작하여 발표했다.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이 사실이 드러난 것은 후일 기상청이 잘못을 시인하면서였다.인명 피해  사망·실종 345명 이재민 10만여 명 6천억여 원 (2002년 화폐가치 기준)의 재산피해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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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호 유람선 화재사고-27명 사망

1987년 6월 16일 오후 2시50분경, 경상남도 거제군 남부면 다포리 속칭
'솥뚜껑' 해상에서 관광객 86명(선장·선원 2명 포함)을 태우고
해금강 관광을 마치고 충무로 돌아가던 충무 유람선협회 소속 목조유람선
24톤급 '극동호'가 기관실 엔진 과열로 불이 나면서 침몰,
관광객 27명(남3·여22) 이 숨지고 8명이 실종, 51명이 구조된 인명사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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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아호텔 화재사고-43명 사망

1984년 1월 14일 오전 8시쯤
1984년 1월 14일 오전 7시 50분경에 최초로 발화된 4층 헬스클럽을
시작으로 해서 8시경 호텔 내 다른 층으로 번져 호텔 외부까지 연기가
많이 퍼지게 되자, 119에 화재신고를 접수하여 소방대가 도착한 것은
오전 8시 17분에 시작되어 진화작업이 개시되었으며,
초기 진화작업이 결국 9시에 완료되었다.
이후 인명구조대, 고가사다리차, 낙하용 매트 등을 준비하여 구조작업에
나섰고 공군 헬리콥터를 비롯한 7대의 헬기가 투입되어 옥상에 고립된
투숙객들을 구출하는 작업에 나섰지만 구조작업 과정 중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대대적인 구조, 수색작업은 오전 11시 30분에야 시작되었고 화재 발생
전날인 1월 13일, 인기 연예인들의 공연이 있어 주로 젊은 층이
많이 호텔을 찾았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과음,
과로로 인하여 아침에 쉽게 일어나지 못해 화재 발생 경보를 들을 수
없어서 인명피해를 더 키우게 만들었다.
또한 이 사건은 약 2천 200여평 규모에 해당하는 호텔 건물 전체 중
460여평을 잿더미로 소실, 의자와 옷장, 텔레비전 등 집기류들이
전부 불에 타버려 3억원의 물적 손실을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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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버스 추락사고-33명 사망

1981년 11월 22일 오후 4시 15분
사고 버스는 산성교통 소속의 부산시내버스 203번으로,
오후 3시 50분 산성마을을 출발했다.
오후 4시 15분 부산 동래구 장전2동 금정산 산성고갯길 급경사를 내려오다,
동래경찰서 장전2파출소 위 2.1킬로미터 지점 커브길에서 브레이크가
고장났으며, 제어력을 잃은 버스는 낭떠러지로 내달린 뒤 떨어졌다.
버스는 길을 벗어나고도 16미터를 더 날아가서 소나무에 부딪친 뒤
앞쪽부터 70도 각도로 바닥에 떨어졌다.
도로와 바닥 사이 높이는 7미터[1]였다.
사고 당시 버스에는 69명[2]이 타고 있었으며, 이 중 33명이 숨졌다.
사망자를 제외한 36명[1]도 중상을 입고 부산 시내 병원 여러 곳에
분산되어 치료를 받았다.
경찰은 사고 뒤 도주한 산성교통 대표 강청자를 긴급수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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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열차 추돌사고-56명 사망

1981년 5월 14일 오후 4시
1981년 5월 14일 경상북도 경산군 고산면 매호리 매호건널목 경부선
상행선에서 사고 5분 전, 부산발 서울행 제116호 특급 열차가 건널목에
버려진 오토바이와 부딪힌다.
이에 제116호 특급 열차의 기관사는 통제실에 알리지 않은 채 오토바이와의
출돌 현장을 확인하기 위하여 서행으로 후진하는데,
후속 열차인 부산발 대구행 보급 열차가 후진하던 부산발 서울행 제116호
특급열차 뒤부분을 추돌했다.
특급 열차의 후미 7호 객차 및 보급 열차 기관실 동력차가 크게 파손되고,
특급 열차 8호, 9호 객차 2량이 탈선, 5m 철길 아래로 굴러 떨어져,
56명 사망, 244명 부상이라는 참사를 빚었다.
경부선 상·하행선이 하루동안 불통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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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역 폭발 사고-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
전북 이리시(현 익산시)의 이리역(현 익산역)에서 발생한
대형 열차 폭발 사고이다.
인천에서 광주로 가던 한화의 전신인 한국화약의 화물 열차는 당시 정식
책임자도 없이 다이너마이트와 전기 뇌관 등 40t의 고성능 폭발물을
싣고 이리역에서 정차하던 중 폭발사고를 냈다.
당시 수사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호송원이 어둠을 밝히기 위해 밤에 켜놓은
촛불이 화약상자에 옮겨 붙은 것이 원인이었다. 당시 화약류 등의 위험물은
역 내에 대기시키지 않고 바로 통과시켜야 하는 원칙을 무시하였고,
허술한 안전 의식이 인재를 불러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이리역에는 지름 30m, 깊이 10m의 거대한 웅덩이가 파였고
이리 시청 앞까지 파편이 날아갔다.
이리역 주변 반경 500미터 이내의 건물이 대부분 파괴되었고
1647세대 78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사건 당시 무명이였던 개그맨 이주일이 가수 하춘화를 구출하여
유명세를 탔다.
또, <기찻길 옆동네>란 책에 이리역 폭발사고가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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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10월 28일-317명 사망

동해어선 27척 침몰
폭풍우로 오징어잡이 어선 27척이 침몰해 타고있던

선원 317명이 익사하거나 실종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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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2월 2일-51명 사망

서울시민회관 화재
조명장치 과열로인해 화재가 발생 51명이 사망하고

76명이 중화상을 입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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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각 호텔 화재-163~168명 사망

1971년 12월 25일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동의 대연각(大然閣) 호텔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이다.
사망자가 163~168명이 발생하였고 부상자는 63명이 발생하였으며
재산 피해는 당시 소방서 추정으로 약 8억 3820만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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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아파트 붕괴-33명 사망

1970년 4월 8일 오전6시40분 경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는 1970년 4월 8일 오전6시40분 경
서울특별시 마포구 창전동 산2에 위치한 와우지구 시민아파트
5층 15동이 무너져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고이며, 부실공사가 원인이었다.
무면허 건설업자는 가파른 산 중턱에 아파트를 지었으며,
건설 허가를 따내기 위해 쓴 뇌물 때문에 공사자재를 아껴야 하였다.
그래서 철근 70개를 넣어야만 튼튼하게 유지될 기둥에 달랑
5개의 철근을 넣었으며, 결국에는 준공 4개월 만에 아파트가 무너져
사망 33명, 부상 40명의 인명피해가 일어나고 말았다.
이후 서울시내 405개 동 시민아파트 전체에 대한 안전진단이 실시되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 부실공사 관행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출처http://ko.wikipedia.org/wiki/%EC%99%80%EC%9A%B0_%EC%95%84%ED%8C%8C%ED%8A%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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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호(태풍)-사망,실종 849명

1959년 9월 한반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태풍이다.

최대 중심 풍속은 초속 85m, 평균 초속은 45m, 최저 기압은 952hPa을 기록하여, 그 당시에 기상관측 이래 가장 낮은 최저 기압이였다.

경상도에 특히 큰 피해를 남겼다.

사망·실종 849명, 이재민 37만 3459명, 총 1900억 원(1992년 화폐가치 기준)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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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전 대화재-29명 사망

1953년 11월 27일
경상남도 부산시 중구의 피난민 판자촌 일대에서 발생하여,
당시 부산 중구 거의 전역과 부산역을 태워 버린 화재 사건이다.
당시의 부산역은 1908년 착공하여 1910년 완공한 벽돌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부산을 대륙 침략의 거점으로 삼으면서,
부관연락선과 철도가 쉽게 연계되도록 부두 근처에 세관과 함께
역사를 건설하였다. 역사의 1층은 여객 시설, 2층은 호텔로 영업하였다.
화재 이후 1966년까지는 가건물 역사를 사용하였다가,
그 해 역사를 착공하여 1968년 현재 위치인 초량동 인근으로 이전하였다.
이 외에도 부산일보, 부산방송, 부산우편국 등 도시의 교통, 통신,
방송이 마비되었다.
주택 3,132채가 전소되었고 사상자 29명,

이재민 6000여세대 3만여명이 발생하였다.
피해액은 177억 환으로 현재 화폐 가치 기준 1조 7700억원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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