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산스님의 여래선과 조사선
위산영우潙山靈祐 스님 문하에는 앙산혜적仰山慧寂 스님과 향엄지한香嚴智閑 스님 영운지근靈雲志勤 스님이 유명하다. 향엄스님은 달마11세손으로, 키가 7척이나 되고, 언변과 학문이 뛰어나 그를 당할 이가 아무도 없었다. 여러 차례 위산스님에게 참문하여 묻고 대답하기를 마치 물 흐르듯 했지만 끝내 계합하지는 못했다. 이에 위산스님에게 하직을 고하고 향엄산香嚴山 혜충국사의 유적에서 몸과 마음을 쉬었다. 어느 날 기와 쪽을 던지던 끝에 껄껄 웃으면서 크게 깨닫고는 이어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
한번 치는 소리에 알던 것 잊으니,
다시는 친히 수지修持하지 않느니라.
이르는 곳마다 자취가 사라지니,
음성과 색상色相 밖의 위의로다.
시방에 도를 통달한 이는
모두 상상기라 호칭하리라.
(一挃忘所知 更不自修持 處處無蹤迹 聲色外威儀 十方達道者 咸言上上機)
나의 견해: 위 오도송의 핵심은 제3구와 4구이다. 양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위산스님의 질문이다. “자네가 이전부터 학식이 있는 것은 눈과 귀를 통하여 타인의 견문이나 경권 서적에서 기억해 내놓은 것이다. 내가 이를 묻지는 않겠노라. 자네가 처음 부모의 포태 중에 출생하여 동서를 아직 알아보지 못했을 때의 본분사를 자네가 시험삼아 한마디를 일러보시라. 내가 자네를 수기하고자 하노라.”(汝從前所有學解 以眼耳於他人見聞 及經卷冊子上 記得來者 吾不問汝 汝初從父母胞胎中出 未識東西時本分事 汝試道一句來 吾要記汝)
“이르는 곳마다 자취가 사라지니, 음성과 색상色相 밖의 위의威儀입니다.”
문답이 이러하다. 모태에서 태어나 동서를 분간하지 못한 때의 본분사를 바로 이른 것이다. 위의威儀는 수행자가 반드시 준수해야 할 의칙儀則이다.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은 행주좌와行住坐臥 사행四行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르는 곳마다 자취가 사라지니, 음성과 색상色相 밖의 위의威儀로다. 본래면목의 본분사는 처처에 두루하여 없는 곳이 없지만, 만일 찾고자 하면 종적이 묘연하다. 종적이 없는 경계가 이러하다. “당처를 떠나지 않고 항상 맑고 고요하지만, 찾으면 바로 군주를 볼 수 없음을 알리라.”(不離當處常湛然 覓則知君不可見)
도인의 81행 중에 영아행을 으뜸으로 친다고 한다. 눈으로 색상을 보거나 귀로 음성을 듣고서 네 가지 위의를 보이는데, 영아는 견문각지가 색성향미 등 육진에 훈습되기 전이라, 그 위의 곧 행위는 눈이나 귀가 이르는 곳 바로 색상이나 음성마다 자취가 끊어진다. 이에 “응당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며,”(應無所住 而生其心) 행주좌와하는 그 행위를 음성과 색상 밖의 위의라 일컫는다. 본분사 곧 본지풍광 또는 본래면목을 드러내기 때문에 위의라 한다.
앙산스님이 전후의 사정을 위산스님으로부터 전해듣고 치하한 뒤에 다시 물었다.
“비록 그렇게 발명했다고는 하지만, 화상께서 또한 증험해 보셨습니까?”(雖則與摩發明 和尚還驗得他也無)
위산이 대답했다. “그를 증험해 보지는 않았느니라.”(潙山云 不驗他)
앙산이 곧바로 향엄의 처소에 가서 일체 경사를 치하하고 바로 물었다. “이전에는 바로 이와 같은 차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이 중인의 의혹을 해소하지는 못했지만, 어떻게 의혹이 생기게 하고, 미리 지어놓고 이른 줄 여겼겠습니까마는, 사형이 이미 발명해 마치셨습니다그려. 달리 생기 있는 말씀이 있다면, 그 말씀을 가다듬어 게송으로 보여주시겠습니까?”(仰山便去香嚴處 賀喜一切後 便問 前頭則有如是次第了也 然雖如此 不息衆人疑 作摩生疑聻 將謂預造 師兄已是發明了也 別是氣道 造道將來)
나의 견해: 앙산스님의 표현이 완곡하지만, 여탈與奪에 자유자재하다. 직설한다. 향엄산에서 미리 지어온 격죽게擊竹偈는 믿지 못하겠으니, 지금 발명하여 기도氣道가 있으면 당장 조도造道하라고 압박한다. 향엄스님의 학식과 언변은 향엄산에 가기 이전은 위산스님의 우환憂患이었고, 돌아온 이후는 앙산스님의 우려憂慮가 되었다. 이도 또한 식자우환識字憂患인가.
향엄스님이 바로 게송을 짓고 대응하여 말했다.(香嚴便造偈 對曰)
작년은 여전히 가난하지는 안했는데,
금년에야말로 비로소 가난하구나.
작년에는 송곳을 세울 곳도 없었는데,
금년에는 송곳마저 또한 없도다.
(去年未是貧 今年始是貧 去年無卓錐之地 今年錐亦無)
앙산이 말했다. “사형은 여래선이 있는 줄은 알고 계시지만, 여전히 조사선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합니다.”(仰山云 師兄在知有如來禪 且不知有祖師禪)
나의 견해: 세간에 회자되는 조사선의 출처가 이와 같다. 여래선도 여래지에 들어가는 수행의 관문이 아니고, 바로 여래의 경계이며, 조사선도 또한 조사의 경계를 말한다. 이는 조사교의 패궐처 중에 첫째이다. 경전에서 말하는 여래선의 정명을 여지없이 짓밟고, 다시 증도가의 여래선을 조사선의 아래 처박아버렸다. 달마11세손 앙산스님이 7세손 영가스님의 견처를 박살 낸 것이다. 조사는 가섭존자가 아니고, 달마조사를 말한다. 달마조사의 선이 서가 여래의 선보다 더 높다. 이것이 어찌 조사교의 패궐처가 아니랴.
경덕전등록은 통명집通明集을 의거하여 “동용에 고로를 휘날리니, 초연기에는 떨어지지 않으리라.”(動容揚古路 不墮悄然機)라는 양구를 추가하고 있다. 동용에 고로를 휘날리면 고인지古人地에 직입直入할 것이다. 하필 초연기에 떨어질까 근심하랴. 이를 취하지 않는다.
오등회원이나 지월록에는 향엄스님의 게송이 하나가 더 있다. 앙선스님이 조사선을 인정하지 않자 바로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나에게 하나의 기미가 있는데, 눈을 깜빡이며 보여주노라. 만일 당인이 알아듣지 못하면, 따로 사미를 부르겠노라.”(我有一機 瞬目示伊 若人不會 別喚沙彌)
“더욱 기쁩니다. 사형께서 조사선을 회득會得하셨습니다그려.”(且喜 師兄 會祖師禪也)
이 문답은 조당집과 경덕전등록을 건너뛰어 오등회원이나 지월록이 근거한다. 어떻든 조사선은 수행의 관문이 아니고, 조사의 경계인 점은 분명하다.
향엄스님의 3개 오도송悟道頌 중에 첫째를 세간에서는 격죽시擊竹詩이라 일컫는 듯하다. 나는 이를 오도송의 송頌자를 차용하여 격죽송擊竹頌이라 개칭하고, 둘째를 추무송錐無頌이라 호칭하며, 그리고 샛째를 일기송一機頌이라 칭명하고자 한다. 애래 문단은 혜봉스님과 전강스님의 조사선에 대한 법거량이다. 해설은 생략한다.
전강스님이 마곡사 인근 구암리에 계시는 혜봉 큰스님을 배방하고 거량한 문답은 아래와 같다. 내가 절을 하는 것을 보고 나를 척 쳐다보신다. 벌써 문답하기 전에 보면 안다. 나도 한번 쳐다보고는 합장하고 공경히 여쭈었다.
“제가 곡성 동리산 재를 넘어가다가 ‘담 너머 외 따오너라.’라는 말에 그만 무자 의지가 뒤집어저서 바로 견성을 한 것 같습니다. 큰스님께서 좀 보아주십시오.”
“그럼 물어 보시오.”
“천하에 노고추老古錐가 무자 반을 이르지 못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조주 스님의 무자 의지를 반만 일러 주십시오.”
“무無.”
“반이 될 이치가 있겠습니까?”
“나는 반을 일러라 해서 그렇게 일렀거니와, 다시 수좌한테 돌려 묻노니, 수좌가 무자 반만 한번 일러보오.”
반문反問을 척 하신다. 법두法頭를 나한테 돌려보낸다. 그런 반문이 얼른 나오지 않는 것이다. 참으로 훌륭한 선지식이기 때문에 벌써 묻는 것이 척 반문을 쓴다. 거기에다 무슨 다른 소리를 할 것인가? 내가 합장을 하고 일렀다.
“무.”
내가 무라고 이르니, 혜봉 큰스님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면서 고인의 말씀을 들어서 묻는다. 인제 뒷말이 더 무섭다.
“고인의 법문에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어서 송곳을 세울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비로소 가난이라 송곳까지 없다.’라고 했다. 그러니 다른 고인이 점검을 하되, ‘사형이 여래선은 보았지만, 조사선은 꿈에도 보지 못했다.’라고 하였으니, 수좌는 어떻게 일러야 거기에 조사선이 되겠느냐?”
“마름 뿔이 뾰족해서 저와 같지를 않습니다.”(菱角尖尖不似他)
고인의 송구에 “마름 뿔은 뾰족해서 뾰족한 것이 송곳 같고, 연잎은 둥글어서 둥근 것이 거울 같다.”(菱角尖尖尖似錐 荷葉團團團似鏡)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 때에 능각이 아무리 뾰족하지만 저와 같지가 않다고 썼다. 마름 뿔이 뾰족해서 저와 같지 않다고 이른 것이 말의 배에 바로 들어가는 것이다. 천하에 도무지 큰 죄를 지어서 무간지옥에 바로 갈 것이다. “반이 될 이치가 있습니까?” 인가하듯이 아니라고 한 것이 아주 건방져서 천하에 못 쓸 물건이다. 평생에 그 죄가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혜봉 스님께서 돌아가셨으니 다시 가서 뵙지 못하고, 나 혼자 돌아가신 영전에 깊이 참회했다.
“어떻게 일러야 조사선이 되겠는고?”
“무.”
그때 그 답이 나왔으면 끝나는 것이니, 혜봉 스님이 바로 파수공행把手共行을 할 것이다.
첫댓글 조사선은 묻지 않겠습니다`~
어던
것이 여래 선인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