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신비한 도성
MISTICA CIUDAD DE DIOS
VIDA DE LA VIRGEN MARIA
가경자 아그레다의 마리아
Maria de Jesus de Agreda
제 6 장
바오로의 개종
바오로는 유다교에서 뛰어난 인물입니다. 제일 첫 번째의 이유는 그 자신이 정확하고 두 번째 이유는 그의 자연적으로 좋은 우수함을 악마가 끈질기게 이용한 것입니다. 바오로는 관대하고 고결하고 고귀하며 친절하고 활발하고 용기와 항상 변함없는 성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도덕적으로 모든 덕(德)도 가졌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신봉하는 교수로, 그 학문을 닦은 사람으로서 영예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디모테오가 생각을 말한 것처럼 그 정수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오로의 학문은 인간적, 세상적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유다인처럼 그는 율법을 겉으로만 알고 있을 뿐 그 정신을 모르고 하느님으로부터 통찰력을 받지 않았기에 올바르게 알 수가 없었고 그 신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율법을 논리와 공식재판에 의해 온전히 파괴시키려 생각했습니다만 박해라고 하는 범죄에 자신을 떨어뜨리고 암살의 한쪽을 맡는 것은 자신의 위엄과 명예에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성모님을 죽이려고 생각하면 더욱 큰 공포를 느꼈습니다. 성모님이 여인이기 때문이고 성모님이 침착하셔서 고통과 그리스도의 수난을 언제나 잘 인내 하신 것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이 고결한 여성으로 숭배와 존경의 가치가 있다고 바오로는 생각했고 많은 사람들의 면전에서 성모님이 어느 정도로 슬퍼하시고 고통을 당하셨는지를 알고 있어 조금은 동정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을 죽이라는 악마의 비인간적인 암시를 떨쳐버렸습니다.
그 반면에 개종하고자 하는 마음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루치펠의 권고에도 관계하지 않고 사도들의 암살에도 마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악마의 사악한 생각을 배척하면서도 교회를 박해하고 그리스도의 이름도 지상에서 지우도록 모든 유다인을 불렀습니다. 용과 수하들은 사울을 거기까지 결심시킨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이 남자의 생명을 어떻게 해서 유지할까에 대해서 서로 의논했습니다. 사울의 보호자 그리고 생명과 건강을 위해 의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생사는 하느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그리스도의 신앙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고문과 멸망을 위해 돌아오리라고는 악마들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사울의 개종이 더욱 훌륭하며 영광이 되도록 하느님은 원하시어 사울을 대사제들이 있는 곳에 보냈습니다. 사울은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쫓아 잡아들이고 예루살렘의 죄인으로서 데리고 돌아오는 것에 허락을 원했습니다. 이 때문에 사울은 자신의 지위, 재산과 생명까지도 제공합니다.
자신의 선조의 율법이 십자가에 달린 자의 새로운 율법을 깨는 것이 사울의 희망입니다. 사울의 말은 대사제와 고문단을 기쁘게 합니다. 사울의 의도는 예루살렘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들어간 몇 명의 제자들을 잡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돈으로 재판소의 관사들과 병사들에게 보수를 주고 여행 준비를 합니다. 여행을 따르는 큰 무리는 지옥에서 온 악마의 무리입니다.
교회를 불과 피로 전멸시킨다는 기세로 사울과 같은 생각입니다.
이 움직임은 성모님에게 확실히 보입니다. 사람들과 악마들의 마음속을 보여주시는 환시와 지식 외에 사도들로부터 오는 보고도 있습니다. 박해는 점점 심해지고 사울의 개심(改心)은 일어날 것 같지도 않으므로 성모님은 교회를 위해 사울의 개심(改心)을 위해 새로운 용기와 신뢰를 불러일으키고자 기도하셨습니다. 어떤 감각적 고통과 일종의 실신까지도 성모님의 몸에 닥치게 되었습니다. 보다 못한 주님은 성모님의 희망을 받아들이시고 말씀하십니다. “어머니, 당신의 뜻을 바로 행합니다. 당신의 원대로 사울을 바꾸겠습니다. 그때부터 사울은 자신이 지금까지 박해해온 교회의 수호자가 되어 나의 이름과 영광의 설교자가 됩니다.”
얼마 후, 다마스쿠스 가까운 길에서 사울에게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주님은 위대한 영광 속에 계시고 빛나는 구름 위에 계신 주님 자신을 사울에게 보이십니다. 동시에 사울은 하느님의 빛에 싸여 심장도 감각도 압도됩니다. 말에서 땅에 엎어지자마자 돌연 목소리가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공포와 경악 속에 말합니다.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목소리는 대답합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겁을 먹고 벌벌 떨며 사울은 말합니다. “주여,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목소리는 대답합니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질문과 답변을 들었습니다만 아무도 볼 수는 없었으므로 멍하게 서 있었습니다.
사울을 에워싼 빛을 보고 두려워하여 너무 놀란 나머지 한동안 입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새로운 불가사의한 사건은 그때까지 세상에 있던 것보다 중대하고 감각적으로 알려지는 것보다 더욱 멀리 다다릅니다. 사울은 큰 타격을 입어 무기력해지고 하느님에게 기대지 않았다면 죽었을 것입니다. 사울의 몸속에서는 어머니의 임신 때 무에서 유로 전환한 그 이상으로 괴로움이 있었습니다. 과거의 사울로부터의 전환은 어둠속에서 빛의 출현, 천지의 분할보다도 더욱 큰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악마의 얼굴 형상에서 최고위의 가장 열렬한 세라핌으로 몸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 변화의 시간은 극히 단시간으로 루치펠이 자신의 자만에 의해 위대한 아름다운 상태에서 매우 추한 모습이 되어 천국에서 지옥에 떨어진 것과 같은 정도로 눈 깜짝할 새의 일이었습니다.
바오로의 변화는 하느님이 루치펠과 수하들에게 이긴 것입니다. 은총의 회복입니다. 그것과 함께 바오로에게 영광도 주셨습니다. 하느님을 보는 영광으로 루치펠은 받은 것도 없고 받기 위한 공덕(功德)도 쌓은 적이 없습니다. 바오로의 경우는 한 순간에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거룩한 은총을 받고 더욱이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고 하느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은 구세주의 덕분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죄보다 강하고 바오로를 본래의 은총 상태로 돌려놓은 것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시킨 것은 천지창조보다도 맹목적인 사람에게 시력을, 병자에게 건강을, 죽은 자에게 생명을 돌려주는 것보다도 위대합니다. 바오로가 된 것과 같은 것을 하느님은 우리들에게도 주시는 것이 가능합니다.
바오로는 땅에 엎드려있는 동안 성화(聖化)되는 은총에 의해 전신이 새롭게 바뀌고 내적 능력의 모든 것이 회복되고 높은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바오로는 셋째 하늘이라고 부르는 거기에 몸이 오른 것인지 영혼만 이었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합니다(2코린 12,2). 아주 짧은 시간이었습니다만, 하느님을 명확하고 직감적으로 봅니다. 하느님의 본성과 무한한 완전성의 속성, 잉태와 구속의 신비, 은총의 율법과 교회의 상황을 바오로는 깨닫습니다.
자신의 의화(義化)라는 누구에게도 미치지 않는 축복, 스테파노의 기도와 성모님의 기도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개심(改心)은 성모님의 덕분으로 빨랐다는 것, 자신을 하느님께서 맞이해 주신 것은 주님 다음으로 성모님의 공덕(功德)에 의한 것을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바오로는 성모님에게 감사와 헌신의 마음으로 가득차고 동시에 자신이 사도직에 불림 받은 것도 인식합니다. 바오로는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자신을 바칩니다. 거룩한 삼위일체의 하느님은 바오로를 받아들이시고 이방인들의 설교자로서 온 세계에 주님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선택하신 도구로서 임명합니다.
사울의 개심(改心)과 시력 상실 후 삼일 째에 다마스쿠스에 사는 제자 하나니아스에 나타나시어 시내의 유다라고 하는 사람 집에 가서 타르소의 사울을 만나도록 말씀하십니다. 동시에 사울은 하나니아스가 와서 자신의 시력을 회복시켜 줄 것이라는 환시를 봅니다. 하나니아스는 주님의 명령에 대답합니다.
“주님,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 사제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사도 9,13~14). 주님은 대답하십니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사도 9,15~16). 하나니아스는 사울의 개심(改心)을 알려주셔서 바오로를 만나러 나갑니다.
기도에 열중하고 있는 바오로에게 인사합니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사도 9,17). 바오로는 성체를 배령하고 힘이 나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삼일간의 단식 뒤에 처음으로 식사를 합니다. 다마스쿠스에 한동안 머무르고 제자들과 의논합니다. 제자들의 발아래 엎드려 용서를 청하고 가장 가치 없는 종으로서 형제로서 받아달라고 청합니다. 제자들의 승낙을 얻어 바오로는 그리스도가 온 세계의 구세주인 것을 열심히 그리고 지혜에 의해 설교하며 돌아다닙니다. 다마스쿠스의 많은 회당에 있는 유다인들은 혼란스러워하며 말합니다.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입에 담는 자들을 불과 검으로 박해한 남자가 아닌가? 그 같은 자들을 잡으러 여기에 온 것이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바오로는 매일 강하게 되어 유다인과 이방인에게 점점 강력한 설교를 계속합니다. 그러자 유다인들은 그의 생명을 노립니다.
바오로의 개심(改心)은 1월 25일에 일어났습니다. 개심(改心)할 때, 바오로는 35세 1개월이었습니다. 그 해는 우리 주님이 탄생하신지 36년째가 됩니다.
성모님은 바오로의 박해로부터 다마스쿠스에서의 활약까지 그 모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모후의 말씀
나의 딸이여, 개심(改心)할 때 바오로가 외친 말을 되새기십시오.
“주여,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요?”
이때 자기중심의 생활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바오로는 바뀌었습니다. 그때 진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 생애를 주님의 거룩하신 뜻에 계속 따랐습니다.
주님은 많은 영혼을 이 같은 극적이 아니더라도 눈을 뜨게 하실 수 있습니다. 눈을 뜬 자들 중에서 인내를 통해 성취하는 사람은 조금 밖에는 없습니다. 영적인 생활을 시작해도 마음이 풀어져 내적인 생활을 끝냅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어중간한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자기애를 항상 가지고 명예욕, 소유욕, 육욕과 죄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한, 이러한 사람들은 바로 발이 걸려 넘어집니다.
자기 자신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거룩하신 뜻에 몸을 바치고 바오로의 말씀 “주여,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에 바오로의 구원이 걸려 있습니다. 주님께 선택된 도구가 자기가 주장하는 것 등 일체 전체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첫댓글
지랄을 한다.
=>성모님을 죽이려고 생각하면 더욱 큰 공포를 느꼈습니다. 성모님이 여인이기 때문이고 성모님이 침착하셔서 고통과 그리스도의 수난을 언제나 잘 인내 하신 것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냐??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 공회에 넘기는 사람이고
공회에서 심판하고 죽였지
스데반을 죽일때. 찬성한 사람이 바울이 바울이 사람을 죽이는 그런 자가 아니야
무식아
ㅋㅋ 성전에 넘기면 어찌될 거 같으냐?
마귀가 가만히놔두겠는고?
난독인고?
@불가타
성전에 넘기면??
왜 성전에 넘겨??
잡아다가 이스라엘의 총회에 넘기지 병신아
@나그네1004 산 헤드린이라는 곳이다.
총회 같은 소리를...
어쨋든 거기 다 마귀에게 잡혀있는 인물인데
가만히 놔두겠냐는 말이다.
=>도덕적으로 모든 덕(德)도 가졌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신봉하는 교수로, 그 학문을 닦은 사람으로서 영예를 받았습니다.
교수가 아니고 학생 ㅋㅋㅋ
지랄을 한다.
사도행전 22 :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교훈을 받은 사람이지 교훈을 가르치는 교수가 아니란다.
무식아
ㅋㅋ 가믈리엘은 최고 선생이고 그 밑의 수하도
또 수하에게 가르침읕 준단다.
학생이면서 교수라는 사실을 알아야지.
별 걸 다 시비를 거는구나.
@불가타
지랄을 하다.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
가말리엘이 가르치는 교수야 등신아.
이런 무식한 넘을 봤나. ㅋㅋ
교수를 했다가 아니고 교훈을 받았다고 등신아
=>교회를 불과 피로 전멸시킨다는 기세로 사울과 같은 생각입니다.
=>이 움직임은 성모님에게 확실히 보입니다.
성모님이 알았다는 말이냐
지랄을 한다.
사도들의 모후요 은총으로 모든 것을 아시고 보시는 분인데 그걸 못보시겠냐?
@불가타
지랄하는 한다.
니들은 그렇게 믿고 싶은것이고.
성서에는 없은 소설이지. ㅋㅋㅋ
바오로는 땅에 엎드려있는 동안 성화(聖化)되는 은총에 의해 전신이 새롭게 바뀌고 내적 능력의 모든 것이 회복되고 높은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바오로는 셋째 하늘이라고 부르는 거기에 몸이 오른 것인지 영혼만 이었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합니다(2코린 12,2). 아주 짧은 시간이었습니다만, 하느님을 명확하고 직감적으로 봅니다. 하느님의 본성과 무한한 완전성의 속성, 잉태와 구속의 신비, 은총의 율법과 교회의 상황을 바오로는 깨닫습니다
ㅋㅋㅋ
땅에 엎드려있는 동안 성화되었어??
그리고 셋째 하늘로 올라가 ??
지랄을 한다
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다메섹 성으로 들어가지 무식아
ㅎㅎ 사도들도 일시에 변화가 됐는데 왜 불가능이라
생각하는고?
그럼 성령께서 한 달 걸려 변화시킨다 이 말인고?
무식한 소리를...
공동번역
3.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환히 비추었다.
4. 그가 땅에 엎드러지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5. 사울이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6. 일어나서 시내로 들어가거라. 그러면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7.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도 그 음성은 들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벙벙해서 서 있기만 하였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끌고 다마스쿠스로 데리고 갔다.
사울이 셋째 하늘로 간 것이 아니고. 마마스쿠스에 들어갔지 ㅋㅋㅋ
지랄들한다.
성서 좀 처 읽어
병신들아
@불가타
먼 개소리야.
사도들이 일시에 변화되었다고 ??
소설도 지랄하게 쓴다
@불가타
이넘들은 지들이 보는 성서도 무시하는 넘들여
성서를 보지도 않고 남이 쓴 소설을 믿고 자빠졌으니. ㅋㅋ
성서를 찾자 줘도 지랄 염병을 하고 자빠졌으니.
@불가타
그리고 병신아
다마스쿠로 갈때 사울이 성령님을 만났냐????
예수님을 만났지.
예수님을 통해서 개종을 한 것이지.
성령님을 통해서 개종을 했냐. 변화는 머야??
지랄을 한다. 병신들
@나그네1004 ㅋㅋ 성경을 뭘로 읽은 것이냐?
성령강림 전엔 두려워 떨다가 강림을 받고 변화되어
두려움없이 예수에 관한 설교를 당당하게 했음이
사도행전에 나오는 걸 보고도 깊은 뜻을 모르는구나.
두번째 성령강림도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시기에.
타종교도 가톨릭으로 돌아오고 모든 병자들이 일시에 치유받는다 나오는데 성령께서 뭐 천천히 변화시키는 줄 아는 모양이구먼...ㅋㅋ
@나그네1004 ㅋㅋ 무식한...
하늘에서 빛이 내려 앞을 못봤는데 그게 성령이.아니면 누구란 말인고?
저 넘들은 지들의 보는 성서도 믿지 않고
교주들이 쓴 소설을 믿고 자빠진 넘들
저 넘이 성서를 인용해서 말한 적이 없어
왜 저 넘들은 성서를 보지 않거든.
성경을 한국 개신교처럼 단죄하려구 보는 개신교가 없단다.
스위스 개신교는 성모상도 교회 앞에 세워놓았고
상모님 성화는 유럽 개신교에 부지기 수란다.
한국 개신교는 유럽 개신교의 이단이지...
사도들과 로마교회는 아무 상관도 없다 로마에서 변질되어 썩어문드러진게 로마 가톨릭교다
ㅋㅋ 그 때 가톨릭은 로마에서 300년간 박해로 많은 순교자가 배출된 믿음의 황금기였다.
다시말해 성령께서 그느르시는 교회라는 얘기다.
@불가타 그건 가톨릭이 아니지 니들은 변질된 교회지 사도시대 교회와 연관시키지 마라
@신인류건설 무삭한 소리는 화장실에서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