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내장죽
어향숙
CT나 MRI 검사 날은
병원 푸드코트에서 전복내장죽을 먹는다
통 안에 갇혀 나가지 못한 소리와
금식으로 버틴 빈속을 달래준다
죽집에서 가장 비싼 음식이라 좋다
절약이 몸에 밴 나에게 후한 선심을 쓴다
먼길 온다고 단단해진 껍데기를 버리고
물컹대던 마음을 안아준다
딸이 아프면 연탄불 위에서 휘휘 저어가며
볶고 끓이던 돌아가신 엄마표 손맛이다
푸른 물결이 입 안 가득 일렁이며
바닷가 억센 바람이 몸 깊숙이 들어와
전복된 나를 일으켜 세운다
<예술가> 2024. 여름호
아버지의 약국
어향숙
벗어둔 가운에서 약 냄새가 난다
그 냄새엔 기억의 부스러기들이 묻어 있다
진열된 약들이 훤히 보이는 약국
드르륵, 유리문 열고 들어가면 새콤달콤 냄새가 났다
몰래 병뚜껑에 부어 카아! 마시던 박카스
함께 나눠 마신 마당가 채송화와 민들레도
내 오줌 색깔처럼 샛노랗게 피었다
짝꿍 남자아이 까진 무릎보다
무릎에 바른 빨간약보다
더 빨개진 얼굴이 약국 의자에 남아있다
대일밴드로 덕지덕지 붙여주고 싶었다
진열장마다 둥근 기둥을 세운 약통에서
알약들이 나와 상처 난 마음을 따라가고
온장고에서 알맞게 데워진 쌍화탕이
쓸쓸한 사람들 품에 안겼다
가루약이 젖니와 붉은 혀를 훑으며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입 안 가득 고인 쓴맛을 어루만지며
눈물 콧물 범벅인 얼굴을 닦아주던 손이 있었다
오늘도 유발 안에서
기억의 부스러기들이 잘게 부숴진다
약 냄새가 풀풀 날린다
<예술가> 2024. 여름호
어향숙 시인
강원도 속초 출생.
경희사이버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2016년 ‘김유정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2020 문학나눔 선정 도서)
현재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