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불古佛, 과거칠불過去七佛과 유덕승有德僧
고불은 기본이 과거칠불이다. 곧 현겁 이전의 과거겁 중에 비바시불毘婆尸佛과 시기불尸棄佛 비사부불毗舍浮佛이 있고, 현겁에 구류손불拘留孫佛과 구나함모니불俱那含牟尼佛 가섭불迦葉佛 그리고 서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있다. 대승의 발흥 이후 과거와 현재 미래에 각기 1천불이 있어서 3천불의 명호가 경에 나온다.
그런데 중국의 선종은 고불의 명칭을 격하시킨다. 그저 덕망이 있다고 여기는 고승이라면 고불이라 호칭함을 사양하지 않는다. 선종에서 고불이란 호칭이 최초 출현은 아마도 위 운암담성스님의 객승에 대한 고불이 아닐까 한다. 운암스님은 고불을 유덕승으로 폄하하고, 앙산스님은 여래선을 여래지如來地로 전의轉義시켰다. 정명正名의 훼상이다. 진정코 고불이라면 응당 명호가 있어야 한다. 고불이란 호칭의 남발은 용납할 수 없다. 다시 있어서도 안 된다.
운암스님의 고불 호칭 연발
운암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십니까?”(師問僧 何處去來)
대응하여 말했다. “향을 피우고 옵니다.”(對云 添香去來)
운암스님이 말했다. “또한 부처님을 보았습니까?”(師曰 還見佛不)
대응하여 말했다. “보았습니다.”(對曰 見)
운암스님이 말했다. “어디서 보았습니까?”(師曰 什摩處見)
대응하여 말했다. “하계下界에서 보았습니다.”(對曰 下界見)
운암스님이 말했다. “고불이로다, 고불이야.”(師曰 古佛 古佛)
나의 견해: 운암담성雲嵒曇晟 스님은 약산유엄藥山惟儼 스님의 법을 이었다. 스승과 제자의 문답을 법거량法擧揚이라 하며, 통상 제자가 묻고 스승이 답하는 것이 상례이다. 운암스님이 객승한테 먼저 묻는 차서가 예사롭지 않다.
“어디를 갔다 오십니까?” “향을 피우고 옵니다.” 법당에서 스님이나 신도가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는 예법을 첨향예불添香禮佛이라 한다.
“또한 부처님을 보았습니까?” “보았습니다.” 객승이 본 부처님은 법당의 본존불일까? 아니면 자성불일까? 그도 아니면 또 다른 법신불일까?
“어디서 보았습니까?” “하계下界에서 보았습니다.” 하계가 있으면 상계上界가 있을 것이다. 산속에서 청정하게 수행하는 도량을 상계라 말하면, 산 아래 들판에서 살아가는 세상을 하계라 말할 수도 있다. 시끌벅적하게 살아가는 그 남녀노소 중에서 부처님을 보았다.
운암스님이 감탄하며 칭찬한다. “고불이로다, 고불이야.” 그 사람이라야 바로 그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다. 지나가는 객승을 응무소주應無所住하는 마음으로 보고 고불이라 호칭할 수 있는 그 고승은 누구이냐? 또한 중생심과 불심을 평등하게 보는 그 객승의 안목도 범상하지 않다.
첫댓글 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놈이 고불 입니까 ? ~
어찌 네 이름을 모르느냐?
자성불이 고불이니라.
@자성불 어떤 놈이 고불 입니까 ? ~ 라고 묻기에,
어찌 네 이름을 모르느냐?
자성불이 고불이니라. 라고 답했습니다.
자꾸 묻기만 마시고 차례로 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놈이 고불 입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