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어른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해 왔다.
그리고 드디어 예술 고등학교에 들어와 처음으로 공모전에 나의 그림을 제출했다.
나의 완벽한 보아구렁이를! 그런데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다.
나의 그림이 어린왕자에 나온 비행사가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어렸을 때부터 그림 말곤 관심이 없어서 어린왕자라는 책을 읽진 못했지만 어린왕자의 일러스트는 많이 보았다.
아무리 봐도 내 그림과는 완전히 다르다.
형식은 비슷해도 엄연히 다른 그림이다. 어린왕자의 그림은 딱딱하다.
어른들은 그 정도면 독창성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그림은 다른 어른들의 그림과 비슷한 느낌이다.
피카소의 그림은 독창성 있는 그림이라 칭송 받지만 내가 보기엔 그 그림도 딱딱해 보인다.
그에 비해 나의 그림은 다르다. 보아 구렁이의 몸을 매끄럽게 표현하고 그가 삼킨 짐승의 존재도 뚜렷하게 표현했다.
무엇보다 나의 보아구렁이는 어린왕자의 보아구렁이보다 더 작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다.
이렇게 다른데 어른들은 그 다름을 못 알아본다. 심지어 다른 아이들도 이 그림을 못 알아본다.
“젠장!”
욕이 절로 나온다.
원래 이 예술 고등학교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왔다.
이번 공모전에서 대상을 타지 못하면 부모님의 말씀을 듣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나는 공모전의 대상은커녕 입상도 못 탔다.
이젠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공부를 해야 된다는 생각에 암울하다.
“안녕?”
옥상에서 바람을 쐬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나는 깔끔하고 담백한 목소리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 곳에는 한국인이라기엔 너무 반짝이는 금발을 가진 아이가 서 있었다. 대충 나보자 한두 살 어린 아이 같았다.
반짝이는 금발과 하얀 피부를 가진 아이는 언뜻 보면 외국인 같았지만 한국인 특유의 생김새와 검은 눈동자를 가졌다.
“여기서 뭐해, 떨어지게?”
아이의 말에 나는 발끝을 한번 쳐다봤다.
나는 난간에 앉아 있었기에 발끝 아래에는 장난감 같은 건물들과 자동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살짝 어이없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아님 말고.”
아이는 입을 뚱하게 내밀더니 천천히 내 옆 난간에 앉았다. 그 이후엔 전혀 대화가 없었다.
아무 말도 없자 나는 내심 그 아이가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해져 살짝 시선을 돌렸다.
아이는 검고 둥근 눈을 크게 뜨고 나를 하나하나 살폈다.
그러다가 우연히 눈이 마주쳤고 내가 흠칫 몸을 떨자 아이는 큰 눈을 시원스레 반달로 만들며 눈웃음을 지었다.
“손에 쥐고 있는 건 뭐야?”
한참 웃던 아이는 내 손에 들린 종이에 관심을 보인다.
이건 이번 공모전에 그린 나의 보아구렁이 그림이다.
문득 아이의 말에 잊었던 심사위원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그림을 더 꽉 쥐었다.
아이는 나의 구겨진 얼굴을 한번 살피더니 크게 웃는다.
“하하하. 그렇게 인상 쓰니깐 괴물 같아.”
이게 누구 놀리나.
나는 아이의 말에 더욱 인상을 썼다.
아이는 나를 보며 웃다가 나의 이마에 있던 주름을 꾹꾹 누른다.
“그렇게 인상 쓰지 마. 그러다가 못생긴 얼굴 더 못생겨 진다.”
염장을 지르는 그 아이의 말에 나는 인상을 쓸 수도 그렇다고 웃을 수도 없게 되었다.
아이는 해맑은 눈웃음을 짓는다.
※지은이/ 서리(서님)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ms0480 (미리보기 가능)
첫댓글 해맑게 웃네요
네. 아주 밝게 웃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