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에 내가 그 시간 가운데서 누린 것에 대한 의식하는 부분과 의식하지 못하 지만 내 안에 있는 것들이 있을거며....
그것들로 인해 내 삶의 많은 부분들이 영향을 받게 될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솔직히...아무 생각이 안난다.-_-
일장춘몽이라는 것이 이런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날 어둡게 하는 부분도, 그렇게 밝게한 한편의 사건들....도
내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각 사람들의 한 마디 역시...
되돌아보면 아무런...
내가 너무 무딘가 보다.
암튼간에...
재미있는 것은 내가 디티에스를 정리하는 가운데서 모든 사고가 헨리나우엔의 틀에 맞추어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디티에스를 가기전 까지 가장 많은 영향력을 받고 있던 인물이기에...
발돋음을 하는 사람들(영적발돋음)이란 책을 아는가..
나우웬의 이름 석자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접해보았을 책일거라 생각이 된다.
나에게 있어선 내 삶의 가장 많은 부분을 다루게 해준 좋은 책이다.
그 책을 보면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망상에서 기도로, 적대에서 환대로 이렇게 세 부분으로 쉽게 나누여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외로움에서 고독으로란 부분으로 항상 묵상하며 되씹는 부분이다.
그리고 가장 이해할수 없던 부분은 적대에서 환대란 부분이였다.
그 책을 읽을때 도저히 이해가 되어지지 않아 많은 부분을 눈으로 훌터본 기억이 난다.
그 적대에서 환대란 부분...이것이 나에게 디티에스가 준 아니 디티에스를 통해 주님이 주신 말씀이 아닐까 싶다.
디티에스 강의 시간 중 한번은 기도가운데 정말 깊은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들어간 시간이 있었다.
그분의 아낌없이 부어주시는 조건없는 사랑에 감격한 시간이였던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난 나역시 그분을 그 동일한 사랑으로 사랑하겠다 하였으나 그것은 나의 교만이였다.
나 자신의 나약함을 본 시간이였다.
그리곤 그렇게 사랑할수 없다면 지금보다 더 많이 내가 당신을 사랑하겠노라 했으나...내가 그 분을 사랑할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기도시간을 두배로 늘인다고 그를 두배로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니며 그에게 내가 헌금을 두배로 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정말 또 다시 나의 나약함을 깨닫는 순간이였다.
그때 주님은 말씀해 주셨다. 네가 나를 사랑로라 하면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말이다.
그때 그 전보다더 더 깊은 내안의 나약함을 보게 되었다. 평안함 가운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내 이웃을 더 사랑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였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의 차이를 아는가...
난 그전에 이 세상을 초월해 하늘보좌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를 알았으며,,,또 한 내 안에서 함께하며 항상 내주위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그 분을 만났다.
그게 전부다 인줄 알았다.
그러나 주님은 내안과 하늘에만 계신분이 아닌 내 주위의 모든이안에 계신분이시며 내가 싫어하며 경멸하는 이안에 역시 계신 분이라는 것...
심지어 우리가 상상도 못할 죄를 지은자안에 역시 계신분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의 모상으로 지은받은 모든곳안에 계신분...
좌절...~~~~!
변화산에서의 베드로를 보게 된다.
이곳이 좋으니 이곳에 천막을 지어 살자는 그의 모습....
하나님의 영광을 오직 산위에서만 볼 수 있던 그의 모습.....
그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아니였을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25:35-40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한 그것 이상으로 지극히 작은 자안에 계신 하나님을 보라고 말씀하신다.
적대에서 환대로...그 사람을 사람으로 보면 적대할수 밖에 없으나 그의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된다면 하나님을 바라보듯 환대할수 밖에 없을것이다.
이젠 주님이 그 변화산아래로 내려가자 말씀하신다.
그 산아래 내려 가며 다시금 세상이며 또 한 다시금 산위로 올라가야 할것이다. 주님의 중보기도와 함께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때 내가 졸지 않고 그와 같이 함께 이 세상을 위해 기도할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산위에서 잡혀 십자가를 짓게 될것이다.
암튼...적대에서 환대로...달갑지 않은 소리이다.
그 뒤로 잊고 살았는데....다시금 이렇게 정리 하는 시간에 생각나게 하신다.쩝~!
그리고...
전도여행중 다시금 친밀감에 대해 깊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친밀감...관계....
우리는 흔히 관계를 도식화 할때 삼각형을 그려서 위에 하나님을 그리고 아래각 꼭지점에 나와 이웃을 그려 넣는다.
그리곤 올바른 관계는 직선상의 나와 이웃의 관계가 아닌 위에 계신 하나님을 통해 관계를 맺는다고 말한다.
전도여행 중 그 관계에서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을 나와 이웃의 선상아래로 내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 그리고 하나님 이웃...
동일선상에 그 셋이 위치하는 것...
그리고 나와 이웃 사이의 하나님이 계신 공간이 무엇이라는 것 역시...
그것은 고독이란 장소였다.
고독이란 장소만이 나와 이웃사이에서 하나님을 볼수 있는 장소였다.
전도여행 중 친밀감을 위해선 서로 적나라하게 친해져야 하며 숨김없이 서로에 대해 모든것을 알아야 한다 생각하며 그렇게 지냈다.
그러나 전도여행을 통해 막마지에 내가 배운것이 있다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였다.
올바른 사랑은 그의 감추어진 것 역시 사랑할수 있으며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였다. 서로의 고독을 이해해주어야 하며 나의 외로움을 위해 그의 고독을 깨뜨려선 안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헨리 나우웬의 책에서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고독....과 참된 공동체안에서의 친밀감...전에는 이해할수 없었지만 전도여행을 통해 이해하게 된 부분이였다.
그리고 정리기간에 다시금 나의 교만에 대해 보게 되었으며 신앙안에서의 자아도취가 얼마나 무서운것인가를 보게 되었다.
정리기간 가운데 내안의 모든감정은 기쁨이였으며 그 기쁨의 원인의 나의 교만함이였다. 어느 누구보다 이 디티에스를 잘 맞쳤다는 뿌듯함.
강의기간 가운데서 누린 시간이나 전도여행에서 보낸 시간에서 내가 보인것에 대한 자부심(?) 하나님의 은총...
이 모든것이 나의 교만이였다는 것을 보게 된 시간이였다.
또한 내안의 자아되취된 시간으로 인해 내가 놓친게 많다는 것과 또 한 그 자아도취에서 벗어나는 것ㅇ 어렵다는 것이 것을 보게된 시간이였다.
겸손의 모양은 있으나 겸손이없는 삶....
디티에스에 왔을때 가장 다룸받고 싶었던 그 겸손이....
디티에스가 끝났을때 가장 나의 발목을 잡고 있을줄이야...
덧붙이자면....39명의 학생과 10여명의 간사님들..이렇게 50여명이 그 시간을 보냈는데...
과연 내가 50여명 중 몇 분의 하나님을 보았을까 싶다.(이상한가..)
하나님의 다른 모습들이 각각안에 틀림없이 있었을텐데....내가 이해하지 못해서 또한 나의 교만으로인해 보지 못한 하나님의 그 부분들이 무척이나 아쉽다.
암튼..용진이의 디티에스를 대충정리해 보니 이렇네요.
그리고 또 내가 잘나서 디티에스가운데서 하나님과 친밀한 시간을 보낸 줄 알았는데...그게 아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