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늙지 않는 법입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부안 변산에 있는 채석강과 적벽강, 두 명승의 아름다움 중 적벽강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석달 가뭄에 콩 하나 나듯 드물다. 채석강의 아름다움이 열 가지라면 적벽강의 아름다움은 천 가지, 만 가지인데, 그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드물기만 하니,
채석강(採石江)은 격포 서북쪽 해안을 따라 있는 변산반도 명승지의 한 곳이다. 해안을 끼고 층암절벽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한데 쌓아 놓은 것처럼 높이 솟아 있고, 그 밑에는 바닷 물결이 끊임없이 들썩이고 있다. 가는 모래밭에는 여러 빛깔의 바둑만한 돌이 수없이 깔려 있어 유람객들은 이 돌을 주워다가 그대로 바둑알로 썼다고 하며, 절벽 위로는 달기봉의 숲이 우거지고 멀리 칠산(七山)바다의 섬들이 보인다. 저녁 무렵엔 돌아오는 돛단배와 지는 해가 바다를 아름답게 수놓아 좋은 경치를 이루는데,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李太白)이 뱃놀이를 했다는 중국 채석강과 비슷하다 하여 그 이름을 땄다고 한다. 조선후기에 을사오적 중의 한 사람인 이완용(李完用)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이곳까지 관광시찰을 자주 왔다는데 부안읍에서 이곳까지 음식, 침구를 마련하는 등 민폐가 심했다고 한다. 하얗게 펼쳐진 격포해수욕장을 지나면 개양할미를 모신 수성당에 이른다. 개양 할미는 칠산 바다를 맡아 보는 바다신이다. 아득한 옛날 적벽강 대막골(죽막동) 뒤 ‘여울골’에서 개양 할미가 나와 바다를 열고 풍랑의 깊이를 조정하여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물고기가 많이 잡히도록 살펴 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개양 할미를 물의 성인으로 높여 수성 할미라 부르며 여울골 위 칠산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절벽에 구랑사를 짓고 모셔 오다, 지금은 수성당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이 개양 할미는 키가 어찌나 컸던지 나막신을 신고 바다를 걸어 다녀도 버선조차 젖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곰소의 ‘게란여’에 이르러 발이 빠져 치마까지 젖자, 화가 난 개양 할미가 치마로 돌을 담아다 ‘게란여’를 메웠다고 한다. 지금도 깊은 물을 보면 “곰소 둠병 속같이 깊다.”는 속담이 전해 오고 있는데, 개양 할미는 딸 여덟을 낳아 위도와 영광, 고창, 띠목 등 칠산 바다 곳곳에 두고, 막내딸을 데리고 구랑사에 머물러 서해 바다를 다스리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수성당 할머니라고 부르며, 음력 정월 보름이면 죽막 등을 중심으로 한 주변 마을 어민들이 안전과 물고기 풍년을 비는 수성당제를 지낸다. 수성당에서 산비탈을 내려가면 적벽강에 이른다. 채석강과 달리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드문한 적벽강(赤壁江)은 대막골 북쪽에 있는 명승지로 해안을 따라 500여m의 붉은 빛 절벽이 휘돌아 있다. 돌벽 사이로 짙푸른 바닷물이 출렁이고, 있다. 적벽강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놀던 적벽강(赤壁江)의 이름을 따서 적벽강이라 한다. 삼발리(三發里) 는 마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곳에 세 사람이 살다가 각각 헤어졌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는데 멀리 보이는 하섬은 삼발리 북서쪽에 있는 섬으로 지형이 새우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원불교의 수도원이 있다. 예로부터 민어, 조기, 도미, 대화, 삼치, 조개 등이 많이 잡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썰물 때는 모세의 기적처럼 물길이 열리는 곳이기도 한데, 그곳에서 북쪽에 자리잡은 해수욕장이 고사포해수욕장이다.
유둑 물이 많이 빠진 적벽강의 기기묘묘한 아름다움에 취해서 보낸 시절이 그새 추억이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