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A-EJVvpoBoY?si=D2h9Xs9vuI0TeUgj
이 교향곡 전체에 넘치는 것은 국민적 특질인 열렬함이며, 이 웅대한 가락에는 중세 러시아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보로딘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 곡의 원고를 다듬어 오다가 1876에야 겨우 완성했으며, 이듬해 2월 26일에 초연, 런던에서는 1896년에 초연되었다.
제 1악장 Allegro. Allegro animato assai
악장 전체에 걸쳐 빛나는 '표어'와 같은 주요 주제가 대단한 기백과 힘찬 저력을 지닌 악상을 암시한다. 제2주제는 이에 비해 서정적이며 매우 아름답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동양풍 수법의 안개 속에서 힘차고 높게 불려진다.
제 2악장 Scherzo-Presstissimo-Allegrtto Tempo 1
찬연하고 아름다운 스케르쪼조는 마치 불꽃놀이의 광채처럼 빛난다.
제 3악장 Andante.
하프 반주를 수반한 클라리넷의 독주가 제 3악장을 서주하기 시작하고, 이윽고 호른이 주요 선율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몸과 마음이 서로 어울리는 듯한 아름다운 가락이다. 이것이 동양적인 정서로 이어져 제 3주제를 연주하고, 그 뒤의 짧은 전개가 굉장한 클라이맥스로 이끌어간다.
제 4악장 Allegro.
영웅적인 성격의 주요 주제가 높이 불려짐과 동시에 빛나는 전개부가 있으며, 열정을 담은 제 2주제가 번쩍이는 빛을 발한다. 곡의 분위기는 조금씩 고조되어 가다가 관현의 총합주로 마친다.
러시아의 소위 ‘5인조’의 한 사람인 보로딘의 완성된 교향곡 중에서는 제2번이 걸작이고 연주될 기회도 많다. 이 곡은 교향곡 제1번의 초연이 호평이었음을 발판으로 삼아 작곡에 착수하기 시작하였는데 오페라 <이고르공>의 작곡때문에 진행이 늦어져 1877년에 비로소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고르공>에서 사용되지 못했던 소재들이 이 교향곡에 사용됨으로써 <이고르공>과의 접근을 느끼게 한다. 또한 옛 슬라브음악도 사용되고 있으므로 매우 강한 민족색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과 더불어 러시아의 대표적인 교향곡으로 알려져 있다. 곡은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는 보로딘의 사후 림스키-코르사코프와 글라주노프의 개정에 의한 악보로 연주하는 것이 보통이다. 레코드는 앙세르메의 연주가 소위 러시아 음악에 탁월한 솜씨를 보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만큼, 이 보로딘의 교향곡에 있어서도 특히 러시아의 민족색 즉 슬라브적인 정취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색채감과 명쾌한 리듬감, 세찬 양감 등으로 해서 야성적이라기 보다는 다소 도회적인 세련미가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뛰어난 연주이다. 스베틀라노프와 소비에트 국립교향악단의 협연은 오케스트라의 강렬함으로 인해 소련의 연주답다 라고 느끼게 되는데 그렇다고 거친 것은 아니고 비교적 단정하게 마무리되어 있다. 그리고 힘찬 큰 진폭에서 러시아적인 정감이 물결처럼 전해온다. 그 때문에 스베틀라노프의 끈적거리는 표정 등은 없고, 오히려 보로딘 특유의 야성미와 도회적인 세련미가 잘 융합되어 있다. 이러한 연주는 역시 소련의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저력인 것 같다.
보로딘 (Alexander Borodin, 1833-1887)
러시아의 민족주의 음악가로는 먼저 '국민악파 5인조'를 들 수 있다. 다섯 사람을 생년월일 순으로 적으면 보로딘, 큐이, 발라킬레프,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 중 음악을 전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보로딘은 화학을, 큐이는 축성학(築城學)을, 발라킬레프는 수학을 전공했으며 무소르그스키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었고 림스키-코르사코프는 해군병학교 출신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마추어 음악가들이나 다름없는데 그러했기에 오히려 그들이 기성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나라 흙에서 솟아오르는 음악을 쓸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견해도 있다. 그럼 '국민악파 5인조' 중 우리에게 비교적 낯이 익은 세 사람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보로딘은 구르지아 호족의 후예인 루카스 세묘노비치 게데아노프 공작의 사생아로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사생아였기에 아버지의 성을 따르지 못하고 농노였던 포르피리 보로딘의 아들로 입적했다. 그의 음악에 동양적 요소가 있는 것은 생부의 동양인 혈통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의 사진을 보면 길쭉한 호박 같은 얼굴에 중국 사람 수염처럼 아래로 처진 콧수염 등이 한눈에도 호인처럼 느껴진다. 사실 그는 사람 좋기로 이름이 나있었다. 페테부르크 의과대학 화학교수 시절, 학교 구내에 있는, 과히 크지 않은 그의 사택에는 떼거리로 몰려들어 기식하는 가난한 처갓집 식구들, 찾아오는 학생, 친구, 동료 과학자들에 고양이까지 대여섯 마리씩이나 우글거려 언제나 북새통이었다. 뒷바라지를 해줄 아내는 남달리 건강하고 부지런해야 할 터인데 하이델베르크 유학 시절 알게 되어 결혼한 여류 피아니스트 에카테리나는 폐결핵 환자로 병상에 누워지내다시피 했다. 이런 와중에 그가 어떻게 작곡을 했는지는 지금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보로딘 자신도 "나의 일은 과학이고 음악은 취미이다."라면서 스스로를 '일요 작곡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이 결코 단순한 아마추어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았음은 규모의 대소를 막론하고 걸작품이 적지 않았다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명지휘자 바인가르트너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와 러시아의 국민성을 알려면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과 보로딘의 <제 2교향곡>을 듣는 것으로 충분하다."
5인조 중 그는 유일하게 후세에 남을 만한 가치가 있는 현악 4중주곡을 썼다. 또 동양적 색채가 물씬 풍기는 교향적 스케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등을 들어봐도 '일요 음악가'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타고난 음악적 소질을 그가 십분 발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https://youtu.be/lOYsz3pKkPc?si=o95GAtP_l_IB_G84
글출처: 참마음 참이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