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숫타니파타Sutta Nipata'를 읽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법 유명한 경전으로 다들 아시겠지만~
간략하게 말해서 쿳다까니까야(小部經典)에 속하는 초기 불경입니다.
5가지 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요즘 재미가 들려서 읽고 있는데, 게중 '작은 법문의 품(Cula-Vagga)'에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바로 옛 바라문들과, 그 바라문들의 역사입니다. 저에게는 '화랑'의 이야기와 유사한 느낌의 들었습니다.
상식으로 읽어두면 연구하시는 데에 보탬이 될까 해서 올립니다.
* 출처 : <숫타니파타>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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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작은 법문의 품' 다섯번째인 수찔로마의경(Sucilomasutta)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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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가야Gayā에 있는 땅끼따만짜Tankitamanca에서 쑤찔로마라는 야차의 집에 계셨다.
그때 카라라는 야차와 쑤찔로마 야차가 세존께서 계신곳에서 멀지않은곳을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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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에서는 이렇게 나오더군요.
가야Gayā : Prj. I. 301에 따르면, 마을의 이름이다. 그곳은 성스러운 목욕장이 있었떤 유명한 곳이었다. 그 마을의 입국에 석상(石床)이 있었다.
땅끼따만짜Tankitamanca : Srp. I. 302에 따르면 네 개의 바위가 서 있고 다섯번째 바위가 그 위에 걸쳐져 있다(고인돌??).
원시적인 제단으로 사람들이 야차에게 제사지내던 곳일 것이다.
위에 구절을 주석에 따라 의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한때 세존께서 한 마을에 있는 제단(고인돌??)에서 한 야차의 집에 계셨다.'
뭔가 이상해도 상당히 이상하죠? ㅎ
본론으로 들어가서 숫타니파타 작은 법문의 품에 일곱번째가 바라문의 삶에 대한 경입니다. 주석의 설명을 옮기면
'이 경은 옛날 바라문들이 행했던 바라문들이 행했던 바라문의 삶과 비교하여 당대의 바라문의 타락한 삶의 원인을 규명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서 부처님의 역사의식을 엿볼수있다. 부처님 이전에 이미 인도의 국가는 전쟁을 통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사제 계급인 바라문들은 제사의식을 통해 그 부를 공유하면서 타락해왔다. 부처님은 이러한 역사 과정을 냉철하게 비판하고 있다.'
다음 전문을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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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문의 삶에 대한 경Brahmanadhammik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마침 그 때 많은 늙고 연로하고 나이가 들고 만년에 이르러 노령에 달한,
꼬살라 국의 큰 부호들이 바라문들이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았다.
그들은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서로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 한쪽으로 물러 앉았다.
한쪽으로 물러앉아 그들 큰 부호들인 바라문들은 세존께 여쭈었다.
[바라문들] "고따마여, 대체 현재의 바라문들은 옛날 바라문들이 행하던 바라문의 삶을따라 살고 있다고 봅니까?"
[세존] "바라문이여, 지금의 바라문들은 예전 바라문들이 행하던 바라문의 삶을 따라 살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바라문들] "그러면, 고따마여,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옛날 바라문들이 행하던 바라문의 삶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세존] "그러면 바라문들이여, 잘 듣고 새기십시오. 내가 말하겠습니다."
[바라문들]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들 바라문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 "옛날에 살던 선인들은 자신을 다스리는 고행자(수행자)였습니다.
그들은 감각적 쾌락의 대상을 버리고(금욕), 자기의 참된 이익을 위해 유행하였습니다.
그들 바라문들은 가축도 갖지 않고 황금도 곡식도 갖지 않고, 베다의 독송을 재보와 곡식으로 삼아,
하느님의 보물brahman nidhim을 지켰던 것입니다.
(brahman nidhim : Prj. Ⅱ. 315에 따르면, 하느님의 삶 또는 청정한 삶을 말한다.)
갖가지 채색으로 물들인 의복과 잘 만들어진 침상과 주거를 갖춘
풍요로운 지방과 왕국의 사람들은 모두들 바라문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바라문들은 처형될 수 없고, 정복될 수 없고, 법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또한 그들이 집집마다 방문하더라도, 아무도 그들을 막지 않았습니다.
(Prj. Ⅱ. 316에 따르면 "사랑스러운 자로서 인정받고 있고, 탁월한 계행을 갖춘 그들에 대하여 사람들은 어머니나 아버지에 대한 것처럼 깊은 신뢰를 보여주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에 들어와서는 안된다'라고 아무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옛날의 바라문들은 사십 팔 년 동안이나 동정을 지키며 청정한 삶을 살았고, 명지와 덕행을 구했습니다.
그 후에 바라문들은 다른 계층으로 가서 아내를 구하지 않았고, 아내를 사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살고 화목하여 즐거워했습니다.
월경 기간이 끝난 후인 바른 시기를 제쳐두고, 그 사이에 바라문들은 결코 성적 교섭을 갖지 않았습니다.
청정한 삶과 계행을 지키는 것, 정직하고 친절하고, 절제하고 온화하고, 남을 해치지 않는 것,
그리고 또한 인내하는 것을 칭찬했습니다.
그들 중에서 으뜸가는 '용맹스런 바라문들'은 성적 교섭에 빠지는 일은 꿈속에서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 행동을 본받아, 이 세상에 일부 양식있는 사람들은
청정한 삶을 사는 것과 계행을 지키는 것과 인내하는 것을 찬양했습니다.
그들은 쌀과 침구와 의복과 버터와 기름을 정의롭게 모아 그것으로 제사를 지냈고,
제사를 지낼 때에 결코 소를 잡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제 또는 다른 친척들과 마찬가지로 소들은 우리들의 최상의 벗입니다.
그리고 소들한테서는 약들이 생깁니다.
소들은 음식을 제공하고, 근력을 제공하고, 훌륭한 용모를 제공하고, 또 좋은 건강을 제공합니다.
소에게 이렇나 이익이 있음을 알아, 그들은 소를 죽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라문들은 손발이 부드럽고 몸이 크며 용모가 단정하고 명성이 있으며,
몸소 실천하며 할 일은 하고, 해서 안될 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이 세상이 있는 동안에 이 세상 사람들은 안락하고 번영하였습니다.
그런데 하잘것 없는것 중에서 히잘것 없는것, 왕자의 영화로운 삶과 화려하게 단장한 부인들을 보고 나서,
그들에게 전도된 견해가 생겨났습니다. (왕자들의 영화로운 삶과 화려하게 단장한 부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
중국과 비교하자면 왕위를 나라의 성현들에게 전해주다. 혈족직계로 넘어가는 시점으로 보이네요.)
잘 만들어지고 아름답게 수놓아진 준마가 읶는 수레, 여러방으로 나눠지고 잘 배치된 주택과 거처를 보고나서입니다.
소들의 무리에 둘러싸이고 아름다운 미녀들이 뒤따르는 인간의 막대한 부를 누리고 싶은 열망에
바라문들은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베다의 진언들을 편찬하고, 저 옥까까Okkāka 왕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재산도 곡식도 풍성합니다. 제사를 지내십시오. 당신은 재보가 많습니다. 제사를 지내십시오. 당신은 재물이 많습니다."
(옥까까Okkāka : 왕으로 싸끼야 족과 꼴리야 족의 조상이다. 한역에서는 감자왕甘蔗王으로 불린다. 리그 베다(RV. X. 60. 4) 이래의 베다 문헌에 등장한다. DN. Ⅰ. 91에 따르면, 부인을 총애하는 옥까까 왕은 그 부인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다른 아내의 나이든 왕자들을 쫓아내었다. 이 왕자들의 이름이 옥까무카Okkamukha, 까라깐다Karakanda, 핫티니까Hatthinika, 씨니뿌라Sinipura였다. 그들은 히말라야 산 기슭에서 살면서 싸끼야 족을 이루었다.)
그래서 수레 위의 정복자인 왕은 바라문들의 권유로 말의 희생제, 인간의 희생제, 핀을 던지는 제사, 쏘마를 마시는 제사,
아무에게나 공양하는 제사, 이러한 제사를 지내고 바라문들에게 재물을 주었습니다.
소들과 침구와 의복, 잘 치장한 여인들, 잘 만들어지고 아름답게 수놓아진 준마가 이끄는 수레,
여러 방으로 나뉘어 있고 잘 배치된, 즐길 수 있는 주택을 여러가지 식량을 가득 채워 바라문들에게 주었습니다.
이리하여 그들은 재물을 얻어 축적하는데 재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욕망에 깊이 빠져들었고, 그들의 갈애는 더욱 더 늘어만 갔습니다.
그래서 베다의 진언들을 편찬하여 다시 옥까까 왕을 찾아갔습니다.
"물과 토지와 황금과 재물과 곡식이 살아있는 자들의 필수품인 것과 같이, 소도 사람들의 필수품입니다.
제사를 지내십시오. 당신은 재물이 많습니다. 제사를 지내십시오. 당신은 재보가 많습니다."
그래서 수레 위의 정복자인 왕은 바라문들의 권유로 수백 수천마리의 소를 제물로 잡게 되었습니다.
두 발이나 양 뿔, 어떤 것으로든지 해를 끼치지 않는 소들은 양처럼 유순하고,
항아리가 넘치도록 젖을 짤 수 있었는데, 왕은 뿔을 잡고 칼로 소를 죽이게 했던 것입니다.
칼로 소들이 베어지자 신들과 조상의신령과 제석천, 아수라, 나찰들은 '법에 어긋나는 일이다'고 소리쳤습니다.
(제석천inda : 인드라신을 말한다. 인드라신은 번개의 신으로 부처님 당시에 인도인들이 가장 섬기던 신이었다.)
(아수라asura : 한역에서는 아수라阿修羅라고 하는데, 아수라는 불교에서 아귀 축생 지옥과 함께 나쁜곳에 속하는 존재이다. SN. Ⅰ. 222 등의 경전에서 신들과 아수라들의 전쟁이 자주 등장한다. 아수라의 왕은 아쑤린다Asurinda라고 불린다. 그들도 Jāt. Ⅰ.202-4에 보면, 원래 도리천에서 신들과 함께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역사적으로 인도유럽인들의 신이었으나 기원전 3000년 경부터 우랄산맥의 남쪽에서 민족 이동을 시작하면서 인도페르시아 쪽으로 들어가던 민족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 일부는 힌두쿠시 산맥을 넘지 못하고 페르시아로 들어가고 일부는 그것을 넘어 인도로 들어가 인더스강의 모헨조다로 하랍빠 문를 쳐부수고 인도에 정착하였다. 이 과정에서 페르시아 민족의 태양신인 아후라(ahura<->asura)가 인도에 와서는 원수나 적으로서의 아수라가 된 듯하다.)
예전에는 탐욕과 굶주림과 늙음의 세 가지 병밖에는 없었소.
그런데 많은 가축들을 살해한 까닭에 아흔 여덟 가지나 되는 병이 생긴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불의의 폭력으로,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것을 죽인다는 것은 그 옛날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제사지내는 자들은 정의를 파괴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옛날부터 내려온 풍습은 지혜로운 이의 비난을 받아 왔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일을 볼때마다 제사지내는 자를 비난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법이 무너질 때, 노예와 평민이 나누어지고,
여러 갈래로 왕족들이 분열하고, 아내는 지아비를 경멸하게 되었습니다.
왕족들이나 하느님의 친족들 또는 종족에 의해 지켜지고 있던 다른 자들도
태생에 대한 윤리를 버리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사로잡히고 만 것입니다.
============================================================= 본문 end
정사라기보다 어디까지나 하나의 설화로 바라봐야 하겠지만.
옛 바라문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이 세속적 탐욕에 사로잡혀 타락하는 과정을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감명깊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그 옛날의 바라문들은 동정을 지키며 청정한 삶을 살았고, 명지와 덕행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살고 화목하여 즐거워했습니다.
청정한 삶과 계행을 지키는 것, 정직하고 친절하고, 절제하고 온화하고, 남을 해치지 않는 것, 인내하는 것을 칭찬했습니다.
바라문들은 손발이 부드럽고 몸이 크며 용모가 단정하고 명성이 있으며
몸소 실천하여 할 일을 하고, 해서 안될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이 세상이 있는 동안에 이 세상 사람들은 안락하고 번영하였습니다.'
와 같은 구절들이 화랑의 모습들과 매우 유사했으며,
일반적인 인도철학에서 바라문들이, 수행과 계율과 독송으로 정신과 마음을 닦는 사람 = 정신적 지도자인데 반해
옛 바라문들에 대한 설명에 나오는 '그들 중에서 으뜸가는 용맹스런 바라문들'이라는 표현은
옛 바라문들이 文과 武를 겸비하였음을 암시하여 줍니다.
더하여 현재의 힌두교가, 소를 '신성한 동물'로 숭배하고 신성시 하고 있는데에 반해서
'소들은 음식을 제공하고, 근력을 제공하고, 훌륭한 용모를 제공하고, 또 좋은 건강을 제공합니다.
소에게 이러한 이익이 있음을 알아, 그들은 소를 죽이지 않았다(죽일 수도 있지만..의 의미가 내포됨).'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소들은 우리들의 최상의 벗입니다.'
'소들은 양처럼 유순하고, 항아리가 넘치도록 젖을 짤 수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소가 유용하고 많은 이익이 있기 때문에, 소를 벗으로 대하고 소중히 여긴다하여
신성시와는 거리가 있는, 매우 실리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여러모로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글이었습니다.
여러 회원님들 느낌에는 어떠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