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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딱 30초만 제 말 들어보세요. 지금 이 순간 여러분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돌아가고 있나요? 이번 달 카드값은 어떻게 되지? 아니면 그 사람은 왜 나한테 그런그 사람은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했을까? 혹시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까? 이런 생각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지 않나요? 그런데요 지금으로부터 약 1400년 전에 어떤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 스님도 똑같이 두려웠어요. 그때 누군가가 이 스님에게 딱 한 가지를 건네줬습니다. 종이 한 장이었어요. 고작 260자짜리 짧은 글과 오늘 저도 여러분께 그 260자를 드리려고 합니다. 어렵지 않아요. 같이 가봅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은 제가 정말 오랫동안 준비한 영상을 들고 왔어요. 바로 반야심경 이야기입니다. 아 잠깐 지금 불교 얘기야? 나 불교 아닌데 하시면서 뒤로 가기 누르려고 하시는 분들 잠깐만요. 제가 오늘 종교 얘기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반야심경은 종교를 넘어서 인간이 왜 고통받는지 그 고통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는지를 다루는 2600년 된 최고의 심리학 교과서거든요. 실제로 현대 심리학자들 뇌과학자들이 반야심경의 원리를 연구하고 있어요. 고작 260자밖에 안돼요. 문자 메시지 2개 분량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우주의 위치가 들어 있다고요? 오늘 그게 사실인지 여러분과 함께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옛날에는 서기 629년 당나라 현장 스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이분은 진짜 진짜 고집스러운 사람이었어요. 왜냐하면 당시 황제가 외국 나가지만 라는 출국 금지령을 내렸거든요. 근데 이스님 그냥 갔어요. 몰래요. 목적지는 인도 즉 천축국이었습니다. 중간에 뭐가 있냐고요. 바로 타클라막한 사막이 있어요. 타클라막한 이름의 뜻이 뭔지 아세요? 이구려로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뜻이에요. 이름부터 절망적이죠. 실제로 이 사막을 지나던 여행자들은 길잡이로 삼았던 게 뭔지 아세요? 바로 앞서 간 사람들의 해골이었습니다. 해골들이 사막 곳곳에 있었고 그게 유일한 이정표였다고요. 이렇게 죽음이 발미돼 빨리 사막을 걷던 스님에게 출발 전에 딱 한 가지를 건네준 분이 있었습니다. 병든 노스님이었어요. 그 노스님은 아무 말 없이 종이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반야심경습니다. 이걸 외워라. 그러면 어떤 마기도 어떤 두려움도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현장 스님은 사막을 걸으면서 260자를 계속 계속 계속 읊었어요. 그리고 살아남았습니다. 인도까지 가서 불경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게 바로 소설 서유기의 실제 모델이 됩니다. 삼장법사 아시죠? 바로 현장 스님이에요. 절망적인 사막 한가운데서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 한 인간을 지켜준 건 다름 아닌 260자의 지혜였다는 거죠. 반야심경은 이렇게 시작해요. 마하바냐 바라밀다. 심경 이걸 풀어보면 굉장히 멋진 말이에요. 마을은 크다. 위대하다는 뜻이고요. 바냐는 지혜 바람일다는 저 언덕에 이른다. 건너간다. 심경은 마음의 경전이에요. 합치면요? 위대한 지혜로 저 언덕 깨달음에 이르는 마음의 경전이에요. 여기서 저 언덕이 뭐냐? 이쪽은 괴로움의 세계고 저쪽 언덕은 자유롭고 평온한 세계예요. 강을 건너야 하는데 그 강을 건너는 배가 바로 가냐. 즉 지혜인 거죠. 지혜의 배를 타고 공통에 강을 건너는 이야기. 그게 반야심경 전체를 한 줄로 요약한 겁니다. 반야신경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주인공이 2명 있어요. 첫 번째는 관좌재 보살이에요. 자유롭게 세상을 관찰하는 존재예요. 두 번째는 사리자입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 지혜가 가장 뛰어났던 부분인데요. 반야심경은 이 두 사람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 첫 번째 가르침이 바로 이겁니다. 깊은 지혜로 수행할 때 5 가지 무더기가 모두 비어 있음을 껴들어 보고 모든 고통과 재앙을 건너갔느니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딱 3개예요. 오온 0555는 나를 이루는 5 가지 요소예요. 공은 비어 있다는 뜻이에요. 돈은 고통이죠. 즉 나를 이루는 5 가지가 모두 비어 있음을 알면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거예요. 반야신경에서는 나라는 것이 5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요. 그게 바로 5온입니다. 첫 번째는 색 이 몸뚱이에요. 물질 형태를 의미해요. 우리는 이 몸에 얼마나 집착하나요? 살이 좀 쪘다고. 하루 종일 기분 나쁘고 피부에 뾰루지 하나 났다고 예측하기 싫어지고 근데요. 사실 이 몸은 내 것이 아니에요. 이 몸을 이루는 원자들은 태초의 별에서 온 거예요. 우리 몸을 이루는 탄소 철 칼슘 이런 원소들이 전부 수십억 년 전 초신성 폭발에서 만들어진 거거든요. 우리는 문자 그대로 별의 먼지에요. 그리고 이 몸은 언젠가 다시 흙으로 돌아갈 거예요. 영원히 내 것인 몸이란 없어요. 잠시 빌려 쓰는 거죠. 두 번째는 수 느낌이에요. 좋다 나쁘다 아무 느낌 없다. 이 세 가지예요. 이게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몰라요. 예를 들어 볼게요. 오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커피가 좀 싱거운 거예요. 그 순간 불쾌하다는 느낌이 따봤죠. 그 느낌 하나로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해요. 오늘도 별로일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막 퍼져나가는 거예요. 고작 싱거운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망칠 수 있는 게 우리 인간이에요. 근데 반야심경은 말해요. 그 느낌도 실체가 없다고요. 이미 지나갔잖아요. 느낌은 물거품 같은 거예요.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 그게 수의 본질이에요. 세 번째는 상 생각이에요.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인식이에요. 눈으로 뭔가를 봤을 때 뇌가 이게 뭐다라고 이름 붙이는 작업이에요. 근데 이게 왜 문제가 되냐고요. 우리가 사람을 볼 때도 내 생각의 필터로 걸러서 보는 거예요. 더 무서운 건 자기 자신한테도 똑같이 한다는 거예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는 어차피 안 돼. 이런 생각들이 전부 상이에요. 사실이 아닌데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이미지인 거죠. 그리고 그 이미지에 갇혀서 평생 살아가는 거예요. 반야심경은 말해요. 그 생각도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요.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생각 자체가 환상이에요. 네 번째는 행 의지이자 행위로 이끄는 에너지예요. 쉽게 말하면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는 충동이에요. 배가 고프면 먹고 싶은 충동 누군가한테 화가 나면 한마디 쏘고 싶은 충동 이게 다행이에요. 문제는 이런 충동들이 모여서 습관이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습관이 굳어지면 어 즉 카르마가 되죠. 나는 왜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화를 내면 후회할 걸 알면서도 또 화내고 과식하면 살찐다는 걸 알면서도 야식시키고 이게 전부 행의 힘이에요. 오랫동안 쌓인 위지와 충동의 패턴이 나도 오르게. 나를 이끌고 다니는 거죠. 그런데 반야심경은 이행도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해요. 바꿀 수 있다는 거예요. 다섯 번째는 식 인식 의식이죠. 한마디로 기억과 경험의 총체예요. 우리가 뭔가를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그게 전부 기억으로 쌓여서 저장되어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이랑 비슷한 개념이에요. 오래전에 저장된 기억들이 현재의 나를 지배하는 거죠. 자 지금까지 오온을 다 살펴봤어요. 색 즉 몸수 즉 느낌 상 즉 생각 행 즉 의지 시 즉 기억 이게 전부 나를 이루는 요소들이에요. 그런데 반야심경은 이 5 가지가 모두 공 즉 비어 있다고 해요. 이게 무슨 의미냐고요? 다음으로 넘어가 볼게요. 왜냐하면 2 0이 바로 반야심경의 심장이거든요. 옴이라는 말을 들으면 비어 있다. 없다 허무하다. 이런 생각 드시죠? 근데 그건 오해해요. 큰 오해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공은 허무주의가 아니에요. 불교의 공사상은 아무것도 없다는 게 아니라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이에요. 지금 여러분 옆에 커피 한 잔이 있다고 해봐요. 이 커피 원두는 어디서 왔을까요? 에디오피아 농장에서 왔겠죠? 적당한 햇빛 비 흙 농부의 땀방울이 들어 있죠. 가공하고 포장하고 운송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이 들어 있어요. 커피는 커피 혼자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수없이 많은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지금 이 순간 커피라는 형태로 잠깐 나타나 있는 거예요. 이걸 불교에서는 연기라고 해요. 공은 바로 이 연기의 다른 표현이에요. 독립적으로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거죠. 이걸 나한테 적용해봐요. 나는 지금 나라고 생각하지만. 이 나도 수없이 많은 인연의 선물이에요.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조건들이 지금 이 순간 나라는 형태로 나타나 있는 거예요. 이게 오히려 해방이에요. 왜냐면 내가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말은 곧 나는 변할 수 있다는 말이거든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은 거짓말이에요. 지금까지 쌓인 조건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거고. 오늘 어떤 조건을 새로 드리느냐에 따라 미래의 나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요. 이게 공의 지혜예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에요. 색즉시00즉시색 이 구절은 물지 형태가 고공이고 공이 곧 물지 형태이다라는 뜻이에요. 파도가 곧 물이고 물이 곧 파도다. 얼음을 생각해 봐요. 녹으면 물이 되고 끓이면 수증기가 되죠.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죠. 색즉시공이란 게 이런 거예요. 형태는 다르지만 그 바탕은 하나라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 봐요. 너제에나 오늘에나 내일에나다 다 달라 보여도 그 바탕에는 같은 의식이 흐르고 있어요. 나이 든나 건강한 나가 다 달라 보여도 그 안에 있는 본질은 바뀌지 않아요. 그리고 역으로 공직 시세 텅 빈 그 바탕에서 수많은 형태가 나타날 수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고요함 속에서 수없이 다양한 가능성이 펼쳐질 수 있어요. 이어서 불생 불멸 불구부정 부징불감 불생불멸 태어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무리 증발해서 구름이 되고 비가 되고 다시 바다로 가고 진짜 사라지는건 없어요. 불구부정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본질에는 좋고 나쁨이 없어요. 우리가 그렇게 이름 붙이고 분류하는 것뿐이에요. 부증불감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에너지는 새로 생기거나 없어지지 않고 형태만 바뀐다는 현대 물리학의 법칙과 같아요. 내가 뭔가를 잃은 것 같아도 실제로는 그 에너지가 사라진 게 아니에요. 실패했다고 생각해도 그 경험에서 뭔가를 배웠다면 그건 줄어든 게 아니에요. 오히려 다른 형태의 지혜가 생긴 거죠. 수행이 깊기로 유명한 스님을 시험하고 싶었던 노파가 딸에게 스님을 안아보라고 시켰어요. 딸이 스님을 앉아 스님은 차가운 바위에 마른 나뭇가지를 B비는 것 같다고 했죠. 노파는 스님이 너무 차갑다며 화를 냈어요. 사실 이 이야기에는 정답이 없어요. 반야심경에 공을 이해하는 방식이 2개 있는 거예요. 분별을 내려놓는 수행적 공이 있고 따뜻한 연결을 느끼는 공이 있어요. 진정한 공은 차갑게 초연한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기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거예요. 공을 이해했다면 종교는 없어도 따뜻함은 있어야 해요. 비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이 채울 수 있는 거거든요. 원리전도몽상 뒤집어진 꿈과 생각에서 멀리 벗어나라는 뜻이에요. 불교에서는 우리가 세 가지를 거꾸로 본다고 해요. 첫째 무상한 것을 영원하다고 착각해요. 그래서 이별이 아픈 거예요. 영원할 줄 알았으니까요. 둘째 고통인 것을 즐거움이라고 착각해요. 뭔가를 성취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건 일시적인 만족감일 뿐이죠. 셋째 실체적인 나가 있다고 착각해요. 나라는 건 사실 잠깐 뭉쳐 있는 것인데 우리는 내 자존심에 엄청나게 집착해요. 부상함을 알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해지는 거예요.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소중한 거예요.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 때 우리는 그것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어요. 그게 전도공상에서 벗어났을 때 오는 선물이에요. 만약에 내가 정말로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면 남을 해치는 건 곧 나를 해치는 거예요. 나비 효과처럼 작은 원인이 큰 결과로 이어지는 거죠. 요즘 사람들이 이렇게 외로울까요? 나라는 경계를 너무 단단하게 쳐두었기 때문이에요. 상처받지 않으려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거예요. 근데 반야심경이 말하는 봉의 지혜는 이래요? 그 경계 자체가 환상이에요. 나는 사실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어요. 이 연결을 느낄 수 있을 때 외로움은 줄어들어요. 깨달음을 얻었으면 나만의 평온함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관자재보살은 고통받는 이들의 소리를 듣고 계속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요. 모두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진정한 공의 이해는 더 깊은 공감 더 따뜻한 사랑이에요. 반야심경의 지혜를 일상에서 어떻게 적용할까요? 상사한테 한 소리 들어서 기분이 나빠졌을 때 반야신경의 관점으로 보세요. 그 기분 나쁨이라는 느낌도 영원하지 않아요. 내 자존심이 상했다는 생각의 실체도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이에요. 이걸 안다고 해서 기분이 즉각 좋아지진 않지만 그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는 있어요. 불안이 심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마음의 걸림이 없으면 두려움이 없어요. 두려움은 대부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에요. 일어나지 않을 90%의 일을 걱정하며 고통받는 거예요. 그 걱정은 실체가 없어요.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주의를 가져오세요. 반야심경이 2600년 전에 이미 말했던 마음 챙김입니다. 아재아제 바라아제 바라스나제 모지사바하 가자 가자. 저 언덕으로 가자 함께 저 언덕으로 가자. 깨달음이여 이루어지다. 어때요? 이건 외침이고 격려예요. 이 주문의 가장 중요한 단어는 함께해요. 나 혼자 깨달음에 이르는 게 아니라 같이 가는 거예요. 나 혼자 해타라는 게 아니라 모두와 함께 건너가는 것 지금 이 순간 여러분 마음속 깊은 곳에는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있어요. 반야심경은 그 고요함을 찾아가는 지도예요.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널 때 260자를 꺼내세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실체는 없다. 영원한 것도 없다. 그러니 이 순간에 충실해라. 함께 가자 가자. 저 언덕으로 함께 가자. 오늘도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