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착齷齪
권혁웅
몰강이라, 파고가 제법 높은 강이라고 들었다 오래된 고성 하나쯤 모퉁이에 세워둔 동유럽의 수로 아닌가 싶었다 몽골 기병들이 옥작옥작 몰려들 때 죄어드는 공포로 제 몸에 입 벌린 표정을 새겼다던가 동그랗게 오므린 순음은 끝내 내향성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몰강은 따로 없고 몰강의 그림자만 드리워져 있다 몰강스럽다(형) 모지락스럽고 악착스럽다 모지락은 그 강에 사는 조개의 일종, 슬픔을 오래 섭식하면 패류 독소를 품어 위험하다고 한다 끓는 물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수면에 얼비치는 문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모지락스럽다(형) 몰강스럽고 악착스럽다 그러니까 몰강의 조개는 그 강의 화신이기도 한 것, 어디에나 후렴처럼 악착이 붙어 있다 악착에 들러붙은 저 촘촘한 이빨들을 보라 입 벌린 조개 같은 것, 한 벌의 틀니처럼 꽉 물고는 떨어지지 않는 것이 거기에 있다 이별하는 자리에서 울면서 상대의 몸을 깨문 애인이 있었다 이러면 날 기억할 거예요 떠나온 그는 때로 제 몸에 쌓인 그 조그만 패총을 바라본다
―《시와 세계》 202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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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 1967년 충북 충주 출생. 199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소문들』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세계문학전집』, 평론집으로 『미래파』 『입술에 묻은 이름』, 연구서로 『시론』, 산문집으로 『꼬리 치는 당신』 『외롭지 않은 말』 『몬스터 멜랑콜리아』 『생각하는 연필』 『미주알고주알』 『원피스로 철학하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