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회갑을 앞둔
백우현 어르신댁에 경사가 났다.
아들 내외가 몇 해를 넘겼는데도
잉태하지 않았던 며느리가
손주를 잉태한 것이다.
3대 독자 백노인으로서는
더할나위없이 며느리의 귀한 임신이다.
아들 백민규는 결핵을 앓고 있었는지라
자식 보고싶은 욕심은 더 깊어졌다.
몸은 야윌대로 야위어 뼈만 앙상한
민규를 머슴인 이갑수가 업고
면내 공의를 여러번 찾았지만
나아지질않고 자꾸만 쇠약해져갔다.
시월에는 백민규의 아내
류정혜가 출산하는 달인데
민규는 병마와 싸우다
끝내 자식을 보지못하고
9월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백노인은 집안에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
아들 민규가 결핵으로 병을 얻어 죽었다며
며느리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민규가 죽고난뒤 한달후
민규와 속 빼닮은
5대 독자이고 유복자인 사내 아이를 낳았다.
시아버지인 백노인은
며느리가 손자를 낳고부터 날이 갈수록
며느리를 향한 마음이 누그러져
정혜는 한결 부드러워진 시아버지가 고마웠다.
청상과부가된 정혜는
서방님이 그리워 밤마다 울기를 2년
갑수는 애처러운 민규의 아내
정혜를 사모하게 된것은
민규가 죽고난후 부터였다.
견딜수 없을만큼 사랑하게된 갑수는
자정이 다된 달 밝은밤
정혜가 자는 방을 몰래 급습해
사랑을 이루게 되었다.
정혜도 내심 갑수의 호의가
사랑이었음을 이미 알고 있어서인지
두 사람은 숨이 멎을듯
숨가쁜 사랑은 익어가고 있었다.
백노인에게도 어렴풋이 수근대는
며느리와 머슴인 갑수와의 관계를
동네 아낙들의 말을 옅들은것 같았다.
청상과부로 사는 며느리를
어떻게 혼낼수도없고 고심하고 있었는데
민규가 죽고 3년 되던해
민규의 아내 정혜는
3살난 자식을 두고서
갑수와 야간 도주하여
이웃 마을에 정착했다.
갑수는 머슴 살이로 연명하기 어려워
틈틈이 남의 논밭을 소작하여
겨우 힘겨운 삶을 이어갈수 있었다.
그와중에도 아들,딸
남매를 키워가며 갑수는
행복한 나날을 보낼수 있었다.
갑수의 큰아들이 5살 되었을때
셋째를 임신한 정혜는 빨래터에서
10살 남짓한 꼬마가
"인네 봐라 인네 배봐라 배뿔뚝이 인네 배봐라"
(인네는 여인네를 낮추어 쓰는 대구지역 방언)
정혜가 임신한것을 놀려대고 있었다.
그 꼬마는 백노인의 아들
민규와 정혜와의 사이에서 낳은
3살난 어린 아들을 두고왔던 백석정이다.
석정이가 엄마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자신을 두고 떠나버린
엄마가 얼마나 미웠으면
그렇게 놀려대는걸까?
참으로 안타깝기만한 모자관계다.
이웃 마을 빨래터에 자주와
엄마를 보고 싶기도
엄마를 증오하기도 했기에
그렇게 놀려대는것이 아니였을까
천륜을 끊어버린 정혜와
아들 석정의 모자 관계가
왜 이렇게 뒤틀린 것일까?
어린 석정의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컸을까?
시대가 낳은 산물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혹하다.
세월은 흘러 석정이가
군대를 갔다오고 결혼하여
두 아들을 슬하에 두게 되었다.
15년후
큰아들은 대기업에 근무하고
몇해가 지나고 석정의 친모
정혜가 세상을 떠나고
갑수의 집은 울음 바다가 되었고
석정도 어머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백석정과 달리 의붓 아버지
이갑수의 두 아들과 딸은
석정을 대하는 표정은 서먹하기만 했다.
장례를 마치고 제사 문제로 백석정은
"내가 맡아들이니 내가 제사를 모셨으면 한다."
고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절대 안된다며 거절했다.
이미 노쇠한 이갑수는 아내의 제사 문제로
시끄러운 자식들의 다툼이
못마땅하여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일제 강점기 암울한 시대에 태어난
이갑수는 머슴으로서의 고달팠던 삶
그리고
사랑과 행복
부유한 백민규의 아내로 잠시 살다
평생 소작농의 아내로 전락한
류정혜의 지친 삶은
슬픈 시대의 한 단면이다.
류정혜의 묘지에는
시들지않는 조화가
그녀를 위로하며 지키고 있다.
지금
자식들은 60대 부터 80대가 되었지만
아직도 얽힌것을 풀지 못하고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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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있었던
내 고향 마을과 옆마을에 이야기를
어머님과 큰형님에게서 얻은것
그리고
옆마을 이갑수(가명)씨의 막내 아들이
나와 중,고등학교 동창이고
보고 들은 사연들을 참작해 기술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