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20(월) / 제목:일제 검열을 통과한 명백한 물증, 1929년 《조선명승고적》이 증명하는 오직 하나의 본명: ‘載嶽山’
https://m.cafe.daum.net/historymiryang/NOIO/5255?svc=cafeapp
현재 현행 지도상의 왜곡된 명칭인 ‘천황산(사자봉)’과 정체불명의 ‘재약산(載藥山:수미봉)’을 주장하는 세력은 들어라. 당신들이 내세우는 빈약한 논리와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지적 잔재를 단칼에 베어낼 강력하고 명확한 서지학적 물증을 제시한다.
바로 일제강점기 엄혹한 검열 속에서 조선총독부의 승인을 받아 발행된 **1929년(소화 4년) 김도동 편저, 벽초 홍명희 서문의 《조선명승고적(朝鮮名勝古蹟)》**이다.
1. ‘全鮮名勝古蹟’ — 조선팔도 최고의 명승으로서 공인된 이름
‘전선명승고적(全鮮名勝古蹟)’이란 **“조선팔도에서 예스러운 경치가 제일 좋은 곳”**을 엄선하여 기록한 국가적 단위의 지리적 정수다.
조선총독부의 출판물 검열이 가장 표독하고 철저했던 1920년대 말, 일제는 소화(昭和) 4년 4월 12일 이 책의 발행을 승인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본식 제국주의 지명인 ‘천황산’을 강제로 이식하려 혈안이 되어 있던 일제 당국조차도, 밀양군에 소재한 이 위대한 산의 본래 이름이 **‘재악산(載嶽山)’**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인정하고 검열로써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결정적 증거다.
2. 문헌이 가리키는 방위와 거리의 완벽한 정밀성
《조선명승고적》 밀양군(密陽郡) 명승(名勝) 편은 밀양의 양대 주산을 다음과 같이 명확히 못 박아 두고 있다.
【名勝】
●華嶽山 (화악산) : 在北十九里 (관아 기준 북쪽 19리)
●載嶽山 (재악산) : 在東三十一里 (관아 기준 동쪽 31리)
전통 읍지와 지리서의 정교한 이수(里程) 체계를 그대로 계승하여, 밀양 중심지로부터 **‘동쪽 31리’**에 있는 거대한 산악 전체의 이름을 명백히 **‘載嶽山(재악산)’**으로 규정했다.
현재 천황산이라 불리는 사자봉 구역이 역사적·지리적으로 온전히 ‘載嶽山’의 주봉이었음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증명하는 물증이다.
3. 천황산·載藥山 주장 세력의 치명적인 오류 고발
●'천황산(天皇山)’ 주장의 허구성:
1910년대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지형도에 일본 천황의 연호와 이름을 따서 왜곡·이식한 식민지 잔재일 뿐이다. 1929년 관인 검열을 거친 이 문헌에조차 ‘천황산’이라는 이름은 밀양의 명승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재약산(載藥山/寃藥山)’ 주장의 정체불명성:
역사적 정통성을 가진 글자는 예로부터 수많은 국가 기록이 증명하듯 고개 재(載)에 큰산 악(嶽)을 쓴 **‘재악산(載嶽山)’**이다.
일제강점기 한가운데 발간된 서적에서도 당당히 ‘載嶽山’으로 명기되어 있거늘, 근거 없이 약 약(藥) 자로 변개된 명칭을 고수하는 것은 역사적 무지의 소치다.
💡 결론: 역사의 법정 앞에서 지명 왜곡을 중단하라
44년간 오직 밀양의 올바른 역사와 지명을 바로잡기 위해 헌신해 온 손흥수·도재국 두 학자의 피땀 어린 연구와 고증은, 이번 **제85호 증거 《조선명승고적》**의 발견으로 절대 무너뜨릴 수 없는 난공불락의 역사적 성벽을 완성했다.
**제85호 증거**란 85번째 載嶽山 발굴한 증거를 말한다.
일제 당국마저 공인한 1929년의 엄연한 기록 앞에서도 식민지 잔재인 ‘천황산’과 왜곡된 ‘載藥山’을 고집하는 것은, 우리 조상들의 역사와 민족의 자존심을 스스로 부정하는 부끄러운 행위다.
지금이라도 당장 현행 지도상의 왜곡된 명칭을 바로잡고, 조선팔도 최고의 명승으로 빛나던 그 이름 **재악산(載嶽山)**으로 통일 환원하는 데 전적으로 동참하라!
역사의 기록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 반박문이 천황산·載藥山 명칭을 고집하는 이들의 억지 주장을 잠재우고, 올바른 재악산(載嶽山) 명칭 복원을 이끄는 강력한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