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지 않으면
오늘 복음의 주제는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회개하지 않으면 엄중하게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사는 게 죄다.’라고 말씀하셨나 봅니다. 살아가는 데 우리는 혼자 살 수 없으며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아갑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갑니다. 공동체에는 반드시 문화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섞여서 사는 것입니다. 문화를 만들기도 하고 문화를 따르기도 합니다. 그 문화 속에 흡수되거나 동화되지 않는다면 그는 그 공동체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문화는 공동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문화란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모든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문화는 학습하면서 생성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에게 짓게 되는 죄도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학습되거나 악습으로 체득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악마는 간교한 술수를 활용해서 인간을 죄로 이끌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그 자체가 죄이면서 다른 죄와 악습을 일으키는 일곱 가지 죄의 근원을 칠죄종(七罪宗)이라고 가르쳐왔습니다. 이 죄의 근원 때문에 인간은 죄악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악마는 인간을 죄악의 사슬로 묶어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일곱 가지 죄의 근원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인간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런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① 교만: superbia(라틴어), pride(영어) 옛 교리서에는 교오(驕傲)
② 인색: avaritia(라틴어), greed(영어) 옛 교리서에는 간린(慳吝)
③ 시기(질투): invidia(라틴어), envy(영어)
④ 분노: ira(라틴어), anger(영어), wrath(영어)
⑤ 음욕: luxuria(라틴어), lust(영어) 옛 교리서에는 미색(美色)
⑥ 탐욕(탐식): gula(라틴어), gluttony(영어) 옛 교리서에는 탐도(貪賭)
⑦ 나태: acedia(라틴어), pigritia(라틴어), sloth(영어) 옛 교리서에는 해태(懈怠)
사람에게는 모든 일과 매 순간 결단이 필요합니다.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생활에서 겸손하고, 공손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면 교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누고 봉사하면서 산다면 인색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자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시기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친절과 부드러운 마음으로 너그럽게 산다면 화를 내거나 마음 상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정결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면 음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재물에 욕심을 버리고, 음식을 과도하게 탐하는 것도 죄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게으른 것도 죄의 원인이 됩니다. 언제나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렇게 잘 살지 못합니다. 언제나 7죄종과 그 결과인 죄에 빠져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곧 뉘우치고 다시는 잘못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은 회개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논어의 위령공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왈 ; 과이불개 시위과의
子曰 ; 過而不改 是謂過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을 바로 잘못이라 한다.”
죄를 짓고 고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엄중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더욱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완악한 성품이라서 회개를 제대로 못하니......
주님, 양선하고 겸손해지도록 저를 이끌어 주소서.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수산나 자매님
아멘.
감사합니다. 아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