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2 (마 10:12-13)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오늘도 “평안”에 대해서 말씀드릴 때 평안하심이 여러분에게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당부하신 말씀인데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하셨습니다. 여기 “집”은 가정이나 교회를 말씀한 것이고、 “빌라”는 기도나 축복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이 주는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기도와 평안’입니다. 기도하면 평안해집니다. 집도 평안해지고 나도 평안해집니다。 그리고 본문에는 그 배경을 살펴볼 때 평안을 위해 기도해야 할 두 대상을 알려줍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까요¿
1. 가정의 평안을 기도해야 합니다.
12절에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여기 집은 일차로 가정입니다。 가정을 위해 기도해야 할 이유는 시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 했기 때문입니다。 즉 기도 없이는 가정을 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하고 소중한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항상 함께 살아가는 생활공동체이기에 가정처럼 쉽지 않는 것도 드뭅니다.
살다 보면 가족 구성원 간에 오해나 성격, 경제적 문제, 부모 자녀 친척 친구 관계, 혹은 건강상의 문제로 근심과 탄식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가정을 이루었다가 파탄을 내고 혼자 사는 사람도 많은데, 그만큼 쉽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이 내색을 안 할 뿐이지 누구에게나 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시121:1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집을 세워 주셔야 합니다. 어떻게 세울까요¿ 시128:3-4에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그런 다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했습니다。 기도의 관점에서 본다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를 보십시오. 처음에는 기쁨이 넘치는 잔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치의 즐거움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처럼 가정도 처음에는 사랑하고 기뻐하며 잔치집처럼 시작하지만, 살다 보면 포도주가 떨어지듯 사랑이 떨어지고 인내가 떨어지고 기쁨이 떨어지고 대화가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할 만큼 주님을 주님답게 모시자 그 집은 또다시 더 좋은 포도주로 넘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문제점만 들추지 말고 기도의 부족이라 생각하고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가정과 기도하지 않는 가정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과 우리의 연약함에만 맡겨진 가정이 어찌 같겠습니까? 기도가 약해지면 우리의 연약한 본성이 쉽게 드러납니다. 참을성이 없어지고, 말이 거칠어지고, 작은 문제도 큰 문제가 됩니다. 마10:36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한 대로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들이 잘못하면 가장 큰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을 따르는 과정에서 가족 간에도 갈등과 반대가 생길 수 있습니다. 혹은 가정을 사랑한 나머지 주님을 따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제자는 부모에 대한 의무를 다한 후에 따르겠다고 했지만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누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무슨 문제가 터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미련한 가족이 있으면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일이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현대 과학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문학가 사상가 역사학자인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요,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다. 가정은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으며,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사랑받는 곳이다.”
가화만사성이라고 가정이 평안하면 다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에 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아서입니다. 배우자를 위해서 하루에 5분씩만 기도해도 가정은 달라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2. 교회의 평안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마10:12에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하신 것은 시기상조 같지만 사도들이 머문 곳이 교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가정의 집이기도 하지만 교회를 가리킨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과 아울러 교회를 축복해야 합니다.
엘리야나 엘리사가 머문 집이 경제나 자녀 문제로 어려울 때 평안을 축복한 것과 같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집에서 핍박하면 저 집으로 저 집에서도 핍박하면 다른 집으로 피하라 하신 것을 보면, 이 축복은 일회성 축복이 아니라 그 집에서 떠나기까지 견지해야 할 기도의 자세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단의 시험이 아닌 한 부딪히지 않아야 합니다. 끝까지 싸워서 교회가 몇 조각이 나도록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지상의 거점이요, 마귀와 싸우는 최고의 요새이기 때문에 그만큼 마귀의 공격도 많기 때문입니다.
시122:6에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한 것처럼 교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삶을 붙드시고 복되게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무슨 일 있다면 내가 기도하지 않아서구나 그렇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가 소란할 일이 생겼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원인을 이야기하며 “누구 때문에 그렇다.”고 탓했습니다. 그런데 한 연로한 권사님은 아무 말 없이 매일 교회에 일찍 나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성도가 물었습니다. “권사님, 왜 그렇게 매일 일찍 나오셔서 기도하세요?” 권사님이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교회에 문제가 생겼는데 누구를 탓하겠어요. 제가 교회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던 것이 먼저 생각났어요.” 그 말에 그 성도들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더욱 은혜로워지고 문제는 서로에게 먼저 손을 내밀면서 이름답게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명기 20장 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앞둔 이스라엘에게도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가족이나 함께 예배하는 성도라면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비판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십시오. 싸우기 전에 평안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를 통해 가정이 회복되고, 교회가 든든히 서며,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넘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