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丁若鏞)-유세검정(游洗劍亭)(세검정에서 놀며)
層城複道入依微(층성복도입의미) 높은 성곽과 잔도가 아련히 뵈는 곳
盡日溪亭俗物稀(진일계정속물희) 종일토록 시냇가 정자에는 속물이 드무네
石翠淋漓千樹濕(석취임리천수습) 푸른 바위 물안개 온 숲은 젖어들고
水聲撩亂數峯飛(수성요란수봉비) 요란한 물소리가 몇 봉우리를 날아가네
陰陰澗壑閒維馬(음음간학한유마) 그늘진 시냇가에 한가로이 말을 매고
拍拍簾櫳好挂衣(박박염롱호괘의) 바람 치는 주렴 창에 옷을 고이 걸었네
但可嗒然成久坐(단가탑연성구좌) 우두커니 한참을 앉아 있기 좋다 보니
不敎詩就便言歸(불교시취변언귀) 시를 짓고 나서도 돌아가는 걸 잊게 하네
*위 시는 “한시 감상 景경, 자연을 노래하다(한국고전번역원 엮음)”(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양기정님은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다사 정약용이 1791년 여름 사간원 관리로 재직하고 있을 때에 세검정을 유람하면서 지은 것이다. ‘세검정에서 노닌 일을 적은 기문游洗劍亭記’에는 세검정을 찾아 가던 날의 일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한여름 태양의 뜨거운 열기가 대지를 다 태워 버릴 듯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먹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나며 마른천둥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조정의 동료들과 명례방明禮坊(지금의 명동)집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나는 창밖을 내다보다가 불현 듯 세검정이 떠올랐다.
‘이것은 폭우가 쏟아질 징조일세. 그대들은 세검정에 가 보지 않겠나? 가지 않으려는 사람에겐 벌주 10병을 한번에 내리겠데’
엉뚱하고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모두들 약속이나 했떤 것처럼 흔쾌히 일어나 말응ㄹ 타고 길을 나섰다. 광화문 앞 육조 거리를 지나 경복궁 서쪽 모퉁이를 돌아 창의문에 도착하니 주먹만 한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내 말을 달려 세검정에 다다르자 수문 좌우에서는 벌써 한쌍의 고래가 뿜어내는 것 같은 물줄기가 세차게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정자에 올라 자리를 펴고 난간 앞에 앉았는데, 나무들이 미친 듯이 바람에 흔들렸고, 흠뻑 젖은 몸에는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이때 갑자기 비바람이 한바탕 크게 일더니 산골짜기에서 거대한 물이 흘러와 눈 깜짝할 사이에 계곡을 채웠는데, 부딪치는 소리가 아주 요란하였다. 휩쓸려 내리는 모래와 구르는 돌이 물과 뒤엉켜 정자의 초석을 할퀴고 지나간 것이었다.
서까래와 난간을 뒤흔드는 웅장하고 맹렬한 기세에 놀란 나머지 떨리는 가슴이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술과 안주를 먹고 마시며 익살스러운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에 비도 그치고 구름도 걷혔으며 골짜기의 물도 잔잔해졌다. 석양이 나무 사이에 걸려 붉으락푸르락한 경치가 천태만상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서로를 베개 삼아 누워 시를 읊조렸다.
조선시대 서울 사람들은 장마철 물이 불 때면 세검정 계곡으로 물 구경을 가곤 했는데, 이곳은 비가 개고 나면 금세 물이 줄었다 한다. 그래서 서울의 사대부들은 비를 맞고 구경하러 가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계곡물이 불었을 때의 장관을 목격한 사람이 드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산은 평소 구경할 날을 벼르고 있다가 이날 비에 흠뻑 젖은 채 달려갔던 것이다.
비오는 날 세검정을 지날 기회가 있으면 다산이 물구경하던 그 자리에 서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정약용[丁若鏞, 1762년(영조 38) 6월 16일 ~ 1836년(헌종 2) 2월 22일, 자는 미용(美庸), 호는 다산(茶山), 사암(俟菴), 여유당(與猶堂), 채산(菜山), 경기도 남양주시 출생]은 실학을 집대성하여 부국강병의 꿈을 꾼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이익의 유저를 공부하면서 근기학파의 학문을 접하였고, 과거 급제후 정조의 총애를 받아 한강에 배다리를 놓고 거중기 등을 고안하여 수원 화성 건축에 도움을 주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으며, 민본의 정치관을 지닌 개혁가로 민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유학 사상을 현실정치에 맞게 실현하고자 하였으며, 천주교를 접하고 이로 인해 장기로 유배를 당하였다가 강진으로 옮겨가며 18년 동안의 긴 유배생활을 하였으나 그곳에서 많은 문도를 거느리고 강학, 연구, 저술에 전념하여 실학적 학문을 완성시켰으며 육경과 사서에 관한 저술을 근본으로 하여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을 써서 경세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산은 일생동안 2000여 수의 많은 시를 남겼는데, 시적 재능이 예사롭지 않아 7세 때 지은 시 “소산폐대산小山蔽大山, 원근지부동遠近地不同,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네”라는 시가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합니다.
*세검정(洗劍亭) : 서울 창의문(彰義門) 밖에 있던 정자. 조선 영조 24년(1748년)에 세웠다. 그 이름은 인조반정 때 이귀·김유 등 이곳에 모여 광해군 폐위를 결의하고 칼날을 세웠다는 데서 유래했다. 1976년 11월 11일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
세검정은 조선 숙종(재위 1674∼1720)때 북한산성을 축조하면서 군사들의 휴식처로 세웠다고도 하며, 연산군(재위 1494∼1506)의 유흥을 위해 지은 정자라고도 전한다. 세검정이란 이름은 광해군 15년(1623) 인조반정 때 이곳에서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날을 세웠다고 한데서 세검(洗劍)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영조 24년(1748)에 고쳐 지었으나 1941년에 불타 없어져서 1977년 옛 모습대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검정은 평화를 상징하는 정자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는 점 등에서 한국적인 건축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淋漓(임리) : (물이나 피가)흠뻑 젖어 뚝뚝 흘러 떨어지거나 흥건한 모양(模樣).
*淋(임) : 임질 림(임)/장마 림(임), 1.임질(淋疾ㆍ痳疾), 2.장마, 3.긴 모양, 痳(본자), 𩱬(동자)
*漓(리) : 스며들 리(이), 스며들 라(나), 1. (스며들 리(이), 2. 물이 땅에)스며들다, 3.질펀히 흐르다
*陰陰(음음) : 습기(濕氣) 차고 축축함
*簾(염) : 발 렴(염), 1. 발(햇빛 등을 가리는 물건), 2. 주렴(珠簾: 구슬 따위를 꿰어 만든 발), 3.주막기(주막의 표지로 세우는 기), 帘(간체자), 𢅖(동자)
*櫳(롱) : 난간 롱(농), 1.난간(欄干ㆍ欄杆), 2.우리(짐승을 가두어 기르는 곳), 3.창살 있는 창(窓)
*嗒(탑) : 멍할 탑, 1.멍하다, 2.핥다, 3.멍한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