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 콩 타작 일손
입동 절기를 맞은 십일월 초순이다. 연이틀 안개가 짙게 낀 아침이었는데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 나타나는 기상 현상이다. 특히 호수와 같은 주남저수지를 낀 동읍 일대는 낙동강 물줄기도 가까워 대기 중 함유 습도가 높아 더욱 짙게 끼었다. 새벽이다시피 일찍 길을 나서 이틀째 안개가 짙은 들녘과 강둑을 걸어 사흘째는 자연학교 등교 시각을 늦춰 집에서 7시 지나 현관을 나섰다.
집 근처에서 대방동을 출발 월영동으로 가는 102번 시내버스를 탔더니 이웃 아파트단지 살며 모산리 강변 밭에서 농사를 짓는 노인을 만났는데 할머니를 동반해 다녔다. 올해 나이가 여든네 살로 20여 년째 거기서 콩 농사를 지었다. 지난여름은 이른 아침 첫차로 강가로 나다녀 가끔 뵈어 인사를 나누고 지낸다. 요즘 한해 농사를 마무리로 짓는 막바지 콩을 타작하는 중이라고 했다.
어제와 그제 이틀 안개 속에 들녘을 걸이 수산대교 근처에서 노인의 밭을 지나와 콩 수확 현장을 둘러봤다. 집을 나설 때 동읍 행정복지센터에서 동판저수지를 거처 주천강 둑길을 걸을 셈이었는데 동선을 바꾸었다. 할아버지 내외와 함께 모산리 농장으로 가 미력이나마 일손을 거들어줄 셈이다. 북모산에서 내려 포장된 들길을 십여 분 걸으면서 할아버지 내외 고향을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함안 대산면이 고향이고 할머니는 거기서 가까운 의령 지정면이 친정이었다. 나는 남강 하류 합강정이나 반구정 일대로도 트레킹을 다녀 그곳 강변 지리에도 훤하다. 남강 하류를 거름강이라고 하는데 임진란 때 의병장 곽재우가 이순신이 옥포에서 거둔 첫 전승보다 일 주 전 최초의 승전보를 전한 곳이다. 할머니는 지정 두곡 산골이 친정이라 약초와 산나물도 잘 알았다.
두곡은 전의 이씨 집성촌이다. 두곡 출신 인사로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을 얘기하니 집안 할아버지라고 했다. 해방 후 김구와 함께 평양을 찾은 남북 협상단 대표였는데 북쪽에 남아 김일성 정권 초대 각료를 지내면서 북한의 한글 전용 어문정책 수립자다. 나는 이극로 생가를 찾은 적 있는데 그 집 바로 앞이 친정이고 ‘극로 할배’로 자손들이 공직 진출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단다.
두곡 출신 인사로 KBS 전국노래자랑 심사를 맡는 작곡가 이호섭은 같은 항렬 집안 남동생이었다. 어릴 적 백부에 양자로 입양 마산에서 자라 가요계에서 꽤 알려진 인물이라 내 고향 의령에서는 해마다 봄에 여는 홍의장군 축제 때 그의 이름을 딴 가요제가 열려 명성이 자자하다. 고향을 지키는 친구들을 이호섭과 동문이 아니면서도 개띠 동갑이라고 열성적인 팬이 더러 있었다.
할아버지 농장은 4대강 정비 이전에는 강둑과 인접한 논이었는데 밭으로 바뀌었다. 농지가 꽤 넓어 상당 면적은 현지인이 무상으로 경작하면서 트랙터 경운이나 탈곡에 도움을 받았다. 콩대를 잘라 말려두면 트랙터가 바퀴를 굴러가게 해 콩깍지를 벗겼다. 할머니는 전날 탈곡한 콩을 가리는 사이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트랙터로 굴러간 콩대를 뒤집어 치우고 알곡을 추슬러 모았다.
아침나절 안개는 끼지 않아도 이슬에 덜 깨고 바람이 불지 않아 콩깍지 검불을 날리기는 햇살이 번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1시간 남짓 할아버지 일손을 거들고 오후까지 남아 있을 수 없는 처지라 작별 인사를 하고 농장을 벗어나면서 유채와 시금치 씨앗을 구했다. 들판을 걸어 송등에서 가술로 오니 추수한 논에는 농부들이 뒷그루 당근을 심으려고 비닐하우스를 짓느라 바쁜 철이었다.
가술에 닿아 추어탕으로 점심을 때우고 며칠 전 정식 개관한 문화나눔센터로 가봤다. 농림축산식품부 공모사업에 선정된 지역민 편의 공간이다. 엊그제는 빨래방 코너에서 운동화를 세탁했는데 카페에 드니 자원봉사자들이 원두커피를 내려 팔아 한 잔 받았다. 실내는 소품으로 장식한 공예품이 눈길을 끌었는데 부산에 사는 자원봉사자 지인이 개업을 기념해 보내주어 전시해 두었다. 25.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