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
우리는 오늘도,어제도,내일도 아침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사회라는 전쟁터에 던져지는 몸이 된다. 교통전쟁으로 시작하는 출근길, 거래처와의 입시름으로 벌어지는 장황함, 동료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밀리지 말고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감. 왜, 이것뿐이겠는가? 가까운 혈족과 가족, 그리고 이웃과의 일상적 만남에서 오는 생각 같지 않은 현실의 역행!
우리는 수많은 뜻하지 않은 상황을 만나고 잠시든, 오랜시간이든 대처하고 해결하고, 때로는 운명적으로나,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게 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인생은 끝임없는 변화, 변동의 연속 속에 삶을 유지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인간만이 겪는 것이 아니고 모든 만물이 다같이 변화와 변동속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진리의 명제를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삶의 숙제를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 것인가! 周易(주역), 우리는 주역을 모른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국민은 주역에 관심 조차 갖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주역의 범주에 깊숙이 들어가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만큼 주역이란 학문은 그 중요성에 비해 현대사회에서 철저히 외면당해 왔다. 최근에는 중국에의 정치가들이 주역이란 학문과 공자, 맹자사상을 새로이 조명하고 정치적, 사회적으로 또한 국민교육적으로 서서히 반영해 가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오늘도 우리사회는 갈등과 대립 투쟁과 대결, 암수와 꼼수, 반목과 불화로 얼룩져 있다. 오직 이뿐이겠는가?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萬象(만상)의 억지와 고통과 시련으로 시시각각 변동과 변화 속에 출생하고 메몰되고 흔적없이 사라져 간다. 모든 것을 희노애락으로 일축해 버릴뿐이다.
과연 우리는 이대로 운명과 숙명에 눌리여 그대로 방치하고 종교적 관점에서, 아니면 인간의 한계적 관점에서, 우연한 태생의 숙명으로만 바라보아야 할것인가?
우리는 수시로 다음과 같은 단어를 들추어 낸다.
단합, 화해, 양보, 타협, 협력
모두가 좋은 단어들이고 반드시 인간으로써 추구하여야 할 긍극적 표현들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진리의 명제를 어디에서 찿아야 할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우리들의 숙제이다. 그 숙제를 찾아 갈등의 파도를 가라앉히고 이를 변증법적으로 극복해서 새로운 삶과 사회와 국가를 꾸며 나가야 한다. 지금도 우리사회는 이념,세대,지역,계층,체제를 달리하는 집단들간의 중첩된 갈등으로 정치, 경제, 사회, 교육을 망라하고 조직적으로 암적 세포, 독버섯처럼 거미줄 같이 구멍 구멍 사이 사이에 모든 공간을 여백없이 메우고 있다.
이러한 어지러움은 동양의 가족 공동체적 윤리관과 서구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적 관념의 모순된 이질적 규범과 의식이 충돌하고 공존하면서 우연과 필연이 맞부딪히며 발생하는 가치관의 혼란과 결합되면서 바른 사고관념을 무너트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라 본다. 더 나아가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인류가 직면한 위기도 바로 국가간의 정치, 경제적 갈등,인종과 종교간의 분쟁으로 부터 시작하여 끝없는 폭팔성 내관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역할만으로 끝나는 것인가? 답은 '아니다' 라는 것이다.
이 모든 모순을 다시, 새로운 규범과 가치, 사회적제도를 잉태하는 동력이 되면서 인간의 삶은 변화와 변동으로 바꾸고 우리의 인식과 상식의 척도를 가름하는 진리를 얻고자 하는것이 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으로서의 양심의 선명성을 가름하고자 함이라 하겠다.
여기서 잠시 송대의 철학자 장횡거(張橫渠;1020~1077)의 주장을 검토해보자. “形象(형상)이 있으면 대립이 있고 대립은 반드시 상반적인 관계를 낳고 상반되는 관계가 있으면,원수(적대적인 모순, 갈등의 관계)가 있게 되지만 원수는 반드시 화해하여 그 갈등을 해소하여야 한다."
명나라 말기의 진보적 철학자 왕부지 (王夫之:1619~1692)는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았다. "强(강),柔(유),寒(한),溫(온),生(생),殺(살)은 서로 반대(相反(상반))로써 반드시 원수가 되지만, 마침내 서로를 이루어(相成(상성))적대적인 관계가 해소되고, 太虛(태허)로 돌아간다."
이렇게 왕부지는 적대관계를 화해시키고 상반상성(相反相成:서로가 반대됨으로써 서로가 이루어진다)의 논리를 제시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쁨'으로 보는 모든 것도 시간과 공간의 영역의 활동속에서 '좋음'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피력한 것이다. '서로 반대가 되는 관계야 말로 오히려 서로를 성취시키는 관계다.'라는 논증은 주역의 심오한 大學文(대학문)의 핵심적 陰陽(음양)의 원리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번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로 세계적인 역사가 아놀드 조셉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가 1970년에 내다 본 세계의 전망을 살펴보자.
"근대에서 현대에는 서양의 충격으로 세계를 뒤집어 놓았으나, 앞으로는 비서양적인 이데올로기와 종교의 충격이 서구를 뒤집어 놓을지 모르는 일이다. "
토인비의 예언대로 1970대초,미국에는 네오-오리엔탈리즘이라는 동양의 여러종교가 큰 파도 밀려들었다.(예;하리크리슈나,옴,라즈니슈사랑,히피,통일교등) 1970년도 후반에는 현대 자연과학의 패라다임의 전환이 일어나, 종례의 과학의 패라다임은 서양철학 전통을 전제로 한 아리스토텔레스적 형식론리학의 상호 모순적 二分法(이분법),즉 양자택일적 이분법에 기초한 기계론적 원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서양의 현대 물리학에 혁명을 일으켰다. 하지만 하이델베르크는 양자론을 통하여 긍정과 부정 사이의 진정한 중간상태(interferenz)로 정해진 또 다른 형태의 상호보안적 대답들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 하였다.
그래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의 이분법에는 악마적인 속성이 있어 양자택일적 이분법을 반복하면 우리는 혼란에 빠져들 수밖에 없으나 양자론적 상호보안성을 이용하면 제3의 가능성이 나타나 좋은 결과를 맺을수 있고 우리를 진정한 공간 속으로 이끈다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체적 체계속에 陰(음)과 陽(양)이 동등한 위치에서 원초적으로 출발하는 인식이 대진리의 명제로 시작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역의 음양설의 우주만물의 이치적 정답으로 고착화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보어(Niels Bohr;1885~1963)는 相補性(상보성)원리를 제시 하였다. “반대되는 것은 서로 보안적이다"(Contraria Sunt Complementa)라는 라틴어 구호 아래 음과 양이 서로 맞물려있는 태극문양을 채택한 사실이 입증하듯, 상보성 원리는 음과 양, 그리고 태극이라는 주역의 역학사상과 사유구조를 같이 한다. 여기서 우리는 현실의 절박한 과제인 갈등의 극복을 비서구적인 이데올로기에서 찿아야 한다면 이 작업이 주역의 음양적 사고구조에 대한 탐색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명확히 알수가 있다.
여기서 잠시 전 지구적으로 우리에게 닥쳐오고있는 심각한 환경문제를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20세기 산업 문명이 야기한 전 지구적 생태계 위기는 환경론자나 미래학자의 경고의 범위를 벗어나 버린지 오래다. 이미 우리 앞에 당도해 현실로 자리 잡았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 자원의 고갈, 자원의 편재, 환경의 오염 등에 의한 생태계 파괴는 위험 수위까지 이르렀다. 이런 현실적 대재앙의 위기 앞에서 우리사회의 지역간, 계층간의 갈등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고, 환경파괴의 재난은 세계의 종말을 예고하는 묵시록처럼 무섭게 번지고 있다. 이러한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한 주범 역시 서양인의 의식구조와 잘못된 이분법 구조에서 발생한 서구문명의 유산이다. 생태계의 위기는 자연 조작 기술이 향상됨에 따라 인간이 자신의 끝없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연과 생태계를 일방적으로 착취하여 마침내 생태계의 자기방어 기능(자정기능)이 무력해지면서 생겼다. 과학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대과학 기술문명의 모태가 된 서구의 기계론적 세계관의 뿌리는 “힘으로의 지식”을 강조한 베이건의 근대적 패러다임, 자연의 비신격화와 동일한 맥락에서 “정신과 물질을 분리시킨”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지명할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인간중심적인 성서의 자연관에서 찿아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더 이상 서양의 어떠한 이론으로도 도래한 위기에 대한 대처방안을 찾을수 없으며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즉 동양의 사유체계로 새로운 자연관을 모색해야 한다.
이에 대한 정답은 주역이다.
왜냐고 반문 한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하겠다. 우리가 사서오경이라 부르는 동양의 고전 가운데 자연에 관해 풍부한 견해를 담고있는 책이 오로지, 주역이라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대통인 안조영
[출처] 주역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작성자 대통인
周易 주역의 형성과정 (5)
이제 雜卦傳(잡괘전)을 설명 할 차례이다.
서로 반대되는 괘가 두 개씩 짝지어 있다. 잡괘전의 괘의 순서를 살펴보면, 乾(건)과 坤(곤)에서 출발하여 夬(쾌) 괘로 끝난다. 夬(쾌)괘는 결판과 결단을 要(요) 하는 것이다. 夬(쾌)괘의 맨 위에 陰爻(음효)를 바뀌면 乾(건)괘가 되어, 다시 시작을 나타내는 건괘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서괘전 하편의 첫 번째 咸(함)괘를 기준점으로 하여 잡괘전의 괘들을 上(상)과 下(하)로 분리하면 乾(건)에서 坤(곤)괘까지가 상편 30괘이며, 咸(함)괘에서 夬(쾌)괘까지가 하편 34괘가 되면서 서괘전의 괘 분리와 같게 된다.
< 좌측부터 복희씨, 문왕, 주공, 공자>
우리는 일반적으로 八卦(팔괘)를 만든 사람은 복희씨, 괘사를 만든 이는 문왕, 효사들을 만든이는(주공) 그리고 십익을 공자가 저술 하였다고 믿는다. 그러나 금세의 연구가들은 적어도 수백 년이상이나 아니면, 천년의 이상의 세월 동안 사람들의 두뇌의 발달과 자연과 인간의 생활의 경험을 유심히 관찰하던 선각자들의 이론이 조금씩 보안 되고 합쳐져 체계화된 것이라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적어도 주역의 經(경)인 괘사와 효사는 은나라 후반기에서 주나라 전반기에 다듬어 졌고, 傳(전)인 十翼(십익)은 전국시대와 한나라을 거치며 완성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또한 십익은 춘추전국시대와 한나라 초기 유가 계통의 학자들이 여러가지 학파의 사상과 이념을 정리하고 구체화 하여 만든 것이 주역의 해석서라 보기도 한다. 주나라의 봉건적 사회제도가 춘추전국시대의 과도기를 지나고 진나라와 한나라의 중앙집권적인 위정자의 관료적 국가관으로 변하며 경제, 사회적 대 변혁기에 주역의 발전 과정도 함께 변화를 거쳤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경제적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가족 내에서 가장을 중심으로 하는 가부장적인 독립성을 중시하게 되면서 위정자들은 가구단위의 생활과 생산의 조직성을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중앙집권적 통치행위가 일어나게 된다. 위정자들은 점점 자신들의 원하는 정책과 사상을 백성들에게 포고하고 강요 하는데 반하여 유가는 부정당성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잘못된 위정자와 그 세력파들에 대한 잘못됨을 예기나 중용, 그리고 십익이라는 사상으로 대적 하였고, 이러한 노력이 이어져 영원불멸의 문헌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십익은 자사, 맹자 계의 존재론과 실천 철학을 주류하면서도 음양가들의 자연 철학과 도가의 형이상학을 포함시켜, 주역 괘, 효사의 근본적 역학 사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대통인 안조영
[출처] 周易 주역의 형성과정 (5)|작성자 대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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