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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장복(天命長福)
순오지의 작가 홍만종은 천명장복(天命長福: 천명을 다해 오랫동안 복을 누린다)을 위해 첫째, 양성보명(養性保命: 성품을 기르고 목숨을 잘 보전한다)할 것, 둘째, 입신행기(立身行己: 몸을 세우고 자기부터 행하여야 한다)할 것 셋째, 처가이물(處家理物: 가정에 거처하여 사물을 잘 다스리라) 할 것, 넷째, 거관이정(居官莅政: 관직에 나아가 정사의 자리를 지켜라) 할 것을 강조했다.
홍만종은 천수(天壽)를 누리기 위해 왜 이 네 가지에 힘쓸 것을 강조했을까? 아마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를 중심으로 가장 가깝게는 가족관계가 있고 나와 관계하는 남이 있다. 그리고 세상에 나아가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나를 바르게 경영하는 일)를 둘러싼 가족(가정을 다스리는 일)과 남(사람들과 조화롭게 지내는 것), 일(옛날에는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중요한 일로 여김)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관계 요소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관계에서 스트레스도 받고 즐거움도 얻으며 삶의 절망을 느끼기도 하고, 삶의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중요한 문제는 나를 포함하여 그것들과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에 있다. 따라서 위의 네 가지를 강조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 첫 번째로 양성보명(養性保命)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① 양성보명(養性保命) (1)
성품을 기르고 목숨을 잘 보전한다 (1)
養 : 기를 양(食/6)
性 : 성품 성(忄/5)
保 : 지킬 보(亻/7)
命 : 목숨 명(口/5)
사람이 명을 재촉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첫째가 성품이 강박(剛薄)하여 자기가 자신을 해치고 타인의 원망을 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품이 강박한 사람은 사고를 저지르기 쉬우며 타인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쉽다. 따라서 양성보명(養性保命: 성품을 기르고 목숨을 잘 보전한다)은 천명장복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양성보명(養性保命)에서 양성(養性)은 순후하고 덕성 있는 성품을 기르는 것이다. 순후하다는 것은 성급하지 않고 매사에 신중하며 함부로 화를 내지 않으며 내면을 평온하게 다스릴 줄 아는 것이고, 덕성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있으며 타인에게 마음으로나 물적으로 베풀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지니는 것을 의미한다.
보명(保命)한다는 것은 수명(壽命)을 잘 보전한다는 것인데 수명은 원래 탄생부터 하늘이 부여한 것이므로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하늘이 부여한 수명을 훼손하지 말고 그 수명만큼 잘 사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리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며 몸을 근면하게 움직이고 절제하여야 한다.
또 세상사에서 타인과 잘못된 관계로 인해 수명을 해치는 일도 많기 때문에 남과 원수지는 삶을 살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일이다. 당시는 왕권 시대이므로 정치적으로 매사에 신중하여 탄핵이나 척살(刺殺)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특히 정치적으로 잘못되면 자기 명을 보전할 수 없음은 물론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신중하여야 한다.
그러면 홍만종이 순오지에서 제시하는 양성보명(養性保命)의 방법을 알아보자
첫째, 사람이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은 모두 정신과 기운을 소모시킨다. 따라서 그것을 막기 위해선 면벽(面壁)과 좌한(坐閑)에 힘써야 한다. 면벽이란 불가(佛家)에서 벽을 마주 대하고 좌선에 몰입하는 것이다. 달마 대사가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이 수행법으로 9년의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여기서 생겨난 말이 면벽좌선(面壁坐禪)으로 이는 목표를 세우고 오랫동안 갈고 닦으면 높고 깊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한다.
좌한(坐閑)이란 좌(坐)는 앉을 좌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고요히 앉아있는 것을 말하며 한(閑)은 막을 한으로 사방이 막혀 있는 상태이므로 좌한이란 사방이 막힌 상태에서 고요히 앉아있는 것을 말한다. 세상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 오로지 마음을 정화하는 것을 말한다.
불가(佛家)나 선가(仙家)에서는 인간의 모든 질병과 죄악은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되므로 이를 버리는 것이 수행의 시작과 끝이며 수행을 하면 신선과 같은 지경에 이르러 장생(長生)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청성(淸性)에 힘써야 한다. 청(淸)은 ‘맑을 청’으로 맑고 빛이 청명하여 사념과 탐욕이 없는 것을 말한다. 성(性)은 성품이다. 청명에 힘쓰는 방법은 사나운 것과 노여운 것을 버리고 자기의 성품을 길러야 하며, 생각을 적게 하여 그 정신을 길러야 하고 말을 조금만 해야 그 기운을 길러낼 수 있다. 성품에 사나운 것과 노여운 것은 자기를 상하게 할 뿐 아니라 타인을 상하게도 한다. 사람은 욕심이 많으면 생각도 많으므로 생각을 적게 하라는 것은 욕심을 적게 가지라는 뜻이다.
말을 많이 한다는 것 역시 욕심과 오만에 기반한 것이므로 말을 조금만 해야 한다는 것은 겸허함을 배우고 타인을 존중하라는 듯이 된다. 그렇게 하여야 밝고 바른 정신을 길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도학자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길과 같이 느껴진다.
우리가 사는 현대는 매우 바쁜 시대이다. 따라서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시대이다. 치열한 생존 경쟁의 시대에 삶을 위해 끊임없이 욕망을 쫓다 보면 자신의 몸과 마음이 소진(小盡: 바닥이 나는 일)되는 것조차 모른다. 그래서일까? 현대는 정신적인 질환이나 우울증 환자가 늘어난다. 곳곳에 명상원이 늘어나고 어떤 이들은 엄청난 돈을 주고 그 명상수행을 배우려 하기도 한다.
산업사회의 이러한 현대인을 일컬어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즈먼(David Riesman)은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이라 하였다. 그는 1950년대 미국 사회에서 시민들의 심리와 생활상을 분석하고 사람들의 삶의 유형에 따른 인간형을 전통지향형, 내부지향형, 타인지향형 등 세 가지로 구분하였는데 수많은 미국 시민들이 산업화의 물결에 자아를 잃고 욕망을 향해 끝없이 타인을 쫓는 타인 지향형의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전통지향형 인간은 고도성장을 지속하는 사회에서 전통적인 도덕과 인습을 자신의 행위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미국 사회에서는 많이 나타나지 않는 형태지만 이들도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타인 지향형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하였다.
내부지향형은 과도기적 인구 성장기 사회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특히 급속한 공업화와 함께 형성된 가족 내에서 학습된 도덕과 가치관을 행동 기준으로 삼은 인간형이다. 이들은 유아기에 형성된 가치 기준을 바탕으로 대체로 사회적 순응을 중심 가치로 삼는다.
타인 지향형은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서 자기 자신이나 전통적 가치가 아닌 타인과 매스미디어 등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남들과 분리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바로 자아가 상실된 오늘날 현대인으로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이다.
이 타인 지향형의 인간형은 무한히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며 따르고 소설, 영화 등의 등장인물, 유명 연예인에 열광하며 유행에 민감하여 정체불명의 대중문화 소비양식을 양산한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하며 왜곡된 인간관과 도덕관을 인격의 기준으로 삼으려 하며 강요된 고립화에 빠지기도 한다.
이들은 더 자극적인 오락과 게임 등에 몰입하며 자아를 상실해 간다. 이것은 어쩌면 고도산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병리 현상이다. 이들은 산업과 상업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자신이 소진되어 가는 줄도 모르고 거기에 몰입하고 탐닉하면서 욕망의 늪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들은 자기 충전에 힘쓰지 않으며 끝없이 자신을 소모하다 탈진에 빠지기도 한다.
오늘날 정신 질환자가 늘고 마약 등에 빠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그러한 병리 현상의 한 범주에 속한다. 이들은 자아를 성찰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아 상실과 소외의 연속이다.
리즈먼이 말하는 '고독한 군중'은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넘쳐난다. 한국 사회는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의해 끝없이 욕망과 물질, 향락과 소비를 쫓고 있는 사회인지 모른다.
전통지향 인간형의 급격한 붕괴와 타인 지향형 인간형이 급속하게 출현하였다. 당장 먹을 것이 부족해도 고급 외제차를 타고 연인과 바캉스를 떠나야 한다. 벤츠 S클래스 판매율이 세계 1위이다. 그러한 현상은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에 이르기까지 나타난다.
정치적인 영역에서도 타인 지향형의 정치인들이 넘쳐난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철학을 상실하고 끝없이 정당과 집단의 정치적 견해에 몰입한다. 물론 정당정치라는 것이 정당의 견해에 동조하여야 하지만 한국은 지나치게 집단화되어 자기 정치를 하는 정치인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현상은 유권자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정치인의 도덕이나 능력보다 진영 논리에 빠져 집단화 되어 있다. 이런 현상들 또한 타인 지향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고도의 경쟁 사회는 그러한 타인 지향성 인간형을 양산하고 있다. 정치에서도 상당수는 살아남기 위해 자기 주체성을 집단에 저당 잡힌다.
어쨌든 한국의 현대인들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더 많은 욕망과 향락 그리고 소비에 노출되며 더 많은 상처와 유혹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뿐 아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인 이념과 유행 등에서도 나타나는 타인 지향성은 상당히 팬덤화되어 많은 사람이 그 팬덤의 무덤에 갇히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더 소외되고 더 자아를 상실하고 더 소외되기 쉽다. 자신만의 소신을 지키고 정체성을 확립하여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이들을 올바른 삶의 길로 인도할까? 올바른 삶의 길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들이 자아 중심의 삶을 사는 길이다. 그것을 리즈먼은 주체적인 삶이라고 한다.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합리적 보편적인 도덕률을 존중하면서 자기에 몰입하고 자기를 충전하며 자기의 행복을 위하여 합리적인 자기 삶의 방식을 구축하고 개선하며 또 창조해 간다.
오늘날 소외된 많은 사람이 자기 삶을 회복하기 위해 '워라벨'을 강조한다. '워라벨'은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줄여 이르는 말로 일과 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을 지향한다는 뜻을 지닌다. 직장 생활에서나 일상에서도 '나를 위한 투자'를 하겠다는 것인데 '워라벨' 역시 타인 지향성인 경우가 드러난다.
진정한 '워라벨'은 개인적으로는 자기의 몸과 마음을 충전하면서 가족과 삶의 행복을 추구하고 사회적으로는 정의와 공정에 노력하는 일이다. 진정한 나를 위한 투자는 물질적인 면이나 향락적인 면이 아닌 정신과 생활의 건강을 위한 성찰과 모색, 절제와 겸허가 있는 주체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절대 필요한 것이 바로 성찰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화두로 등장한 월빙, 웰다잉, 워라벨 등의 단어는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물질문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물질문명의 굴레에서 성찰하면서 자신을 찾아 나서는 길이다. 그 성찰과 모색의 길이 바로 홍만종이 말하는 양성보명(養性保命)에 힘쓰는 일이며, 그 방법으로 면벽(面壁)과 좌한(坐閑), 청성(淸性)에 힘쓰는 일이다.
천명장복(天命長福: 천명을 다하고 오랫동안 복을 누리며 산다) 하려면 양성보명(養性保命: 성품을 기르고 목숨을 잘 보전한다)하여야 하고 양성보명(養性保命)하려면 면벽(面壁)과 좌한(坐閑), 청성(淸性)에 힘써야 한다. 성찰하는 삶이 바로 그러한 삶이다. 성찰이 있어야 모색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① 양성보명(養性保命) (2)
성품을 기르고 목숨을 잘 보전한다 (2)
모든 사람이 천명장복(天命長福: 천명을 다하여 오래도록 복을 누린다)을 원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살아가면서 몸과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스스로 자기를 해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만종은 천명장복을 위한 양성보명(養性保命: 성품을 기르고 목숨을 잘 보전한다)의 세 번째 방법으로 절제 절욕(節制節慾)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절제 절욕(節制節慾)을 위해 첫째로 주색(酒色: 술과 여자)을 멀리해야 하며 두 번째로 욕심을 끝까지 쫓지 말라고 한다.
홍만종에 의하면, 사람이 산다는 것은 오직 원기(元氣)에 의존하는 것인데 이 원기는 술과 여자에 의한 피해가 제일 크다. 따라서 늙을수록 이 두 가지를 삼가야 한다. 주색은 원수와 화살을 피하듯 하라. 특히 막끽공심주(莫喫空心酒)를 강조한다.
공심(空心)은 공허한 마음이니 이는 빈속이라고도 하는데 빈속에 술을 마시는 사람은 마음이 공허하여 아무 준비 없이 강술을 마시는 것을 일컫는데 그렇게 마시는 술이야말로 가장 몸을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사람은 즐거운 일이나 욕심은 끝까지 해서 뿌리를 뽑으려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적절한 시점에 절제하여 끝낼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적절한 시점에 끝낼 줄을 모르면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할 뿐 아니라 재산을 탕진하고 세상의 물의를 일으킬 수 있으며 타인으로부터도 배척당하여 결국 삶을 무너뜨린다는 점을 아래와 같은 시로 설명한다.
避色如避讎 (피색여피수)
색을 피하기를 원수를 피하듯 하고
避風如避箭 (피풍여피전)
바람 끝을 피하기는 화살 피하듯 하라
莫喫空心酒 (막끽공심주)
빈속(혹은 허전한 마음)에서는 술을 마시지 말고
小食中夜飯 (소식중야반)
밤중에는 밥을 조금 먹어라
樂不可極 (낙불가극)
즐거운 일이라고 끝까지 하지 말고
慾不可縱 (욕불가종)
욕심을 끝까지 쫓지 말라
油盡燈滅 (유진등멸)
기름이 다하면 등불은 꺼지고
髓渴人亡 (수골인망)
골수가 마르면 사람은 죽게 되느니라
위의 시에서 절제 절욕(節制節慾)을 위해 첫 번째로 강조되는 것이 주색의 문제이다. 색(色)은 이성을 의미하며, 풍(風)은 이성을 밝히는 바람기를 의미한다. 옛날에는 주로 남자에게 적용되었던 말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여자에게도 적용된다. 이성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는 여인이 상당수에 이른다. 얼마 전에는 애인에 빠져 어린 자녀를 돌보지 않은 여자가 사회적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최근 이준석 국민의 힘 당 대표가 성 상납 문제로 당 윤리위원회에서는 한국 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당 대표를 중징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혈기 넘치는 젊은 남자가 여자를 상대하지 말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정치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더구나 업자로부터 로비의 한 수단으로 성 상납을 받았다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된다. 이 일도 결국 술집에서 이루어졌다. 주색은 늘 함께 인간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충청의 기수를 자청하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정치생명을 끊어 놓은 것도 색(여자)의 문제이며, 박원순 전 서울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민주당에 치명타를 준 것도 색(여자)의 문제였다. 당 현종이 한동안 양귀비에 빠져 정사를 게을리하게 한 것도 색(여자)의 문제이며, 강성했던 한나라가 망하게 된 것 역시 성제를 비롯한 황제들이 정사보다는 주색에 빠진 결과였다. 조선의 연산군이 폭정을 일삼은 데도 역시 주색이 개입되어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삼손의 그 괴력을 상실하게 하는데도 주색이 개입되어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색에 도를 넘으면 자신의 몸과 마음은 물론 가사를 탕진하고 직장 및 사회적인 길까지 망쳐버리며 정치지도자의 경우 국가를 망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색은 인간의 삶과 가장 밀착되어 있어 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수많은 실수 중에 술이 개입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었다. 몸을 망치는데도 술의 피해가 가장 컸다. 술에 취하면 분별력이 사라지고 감정의 노예가 되어 절제하지 못하고 욕망의 늪에 빠지기 쉽다. 현대 사회에서 음주운전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사회적 죄악(범죄)이 되었다. 음주운전은 사고로 인해 자신을 상하게 할 뿐 아니라 불특정 타인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재물을 파손하는 등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게 한다.
정치인들의 음주운전(특히 상습 음주운전)은 큰 논란거리가 되고 결국 그의 정치적 진출을 막는 일이 된다. 엄청난 교통사고의 상당수가 음주운전에 의한 것임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아직 음주운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나친 음주는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한다. 상당수의 사람이 상습적이고 지나친 음주로 인해 간과 위를 망가뜨리고 결국엔 자신의 몸을 망가뜨려 천명을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상습적인 음주는 중독을 일으켜 반사회적 행동을 표출하게도 한다.
도가 넘은 음주는 자기 통제력을 상실하게 하고 극한의 감정을 표출하게 하여 타인을 해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나친 음주로 인한 가정 파탄이 많으며, 우발적 살인도 음주로 인한 것이 많다. 지나친 음주는 몸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탕진하며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한다. 삶과 술은 불가분의 관계라 하지만 그 폐해 또한 지대하다.
주색은 서로 다른 것이지만 한 몸이다. 술이 있는 곳에 여자가 있고 여자가 있는 곳에 술이 있다. 현대 사회에 와서는 여자들이 주색에 빠지는 일도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그것에 취하면 인간의 무의식 저변에 있는 근원적이고 강렬한 욕망이 용암처럼 솟아 인간을 마음대로 농락한다.
그리고 인간은 점점 그 농락에 빠져든다. 그 과정에서 향락의 늪에 빠지고 스스로 몸을 상하게 하고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게 하고 정사를 그르치게 한다. 주색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마녀와 같다.
그래서 홍만종은 "색을 피하기를 원수를 피하듯 하고(避色如避讎), 바람 끝을 피하기는 화살 피하듯 하라(避風如避箭). 빈속에서는 술을 마시지 말고(莫喫空心酒), 밤중에는 밥을 조금 먹어라(小食中夜飯)"고 한다.
특히 끽공심주(喫空心酒)는 대단히 위험하다. 공심주(空心酒)를 빈속에 마시는 술이라 하지만 실은 단순한 빈속이 아니다. 왜 빈속에 강술을 마시는가? 빈속에 마시는 술은 마음이 빈 상태에서 마시는 술이다. 마음이 비었다는 것은 우울하고 스트레스가 많으며 공허한 것을 말한다.
이런 상태에서 마시는 술은 폭주하기 쉬우며 중독에 이르게 한다고 한다. 따라서 가장 피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몸이 지치고 마음이 복잡할 때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 옛 성현들은 술은 즐거울 때 마시되 절제하라고 말한다. 문제는 주색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분별없이 주색에 빠지기 때문이다.
주색에 지나치게 빠지는 것은 양성(養性)되지 못한 사나운 성정 탓이기도 하다. 그래서 양성(養性)은 매우 중요하다. 양성(養性)된 자는 주색을 즐기더라도 분별할 줄 알며, 정도를 넘지 않는다. 그러나 주색의 정도를 지킨다는 것은 인간의 범주 밖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양성(養性)을 위한 끊임없는 절제 절욕의 노력이 필요하다.
위의 시에서 절제 절욕(節制節慾)을 위해 두 번째로 강조되는 것이 욕망의 문제이다. 그래서 홍만종은 "즐거운 일이라고 끝까지 하지 말고(樂不可極), 욕심을 끝까지 쫓지 말라(慾不可縱)"고 한다.
즐거운 일도 지나치게 즐기다 보면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할 뿐 아니라 가사를 탕진하고 사회적 관계성을 무너뜨리게 된다. 인간의 모든 성취는 욕망을 쫓는 일이지만, 욕망을 사력을 다해 쫓다 보면 그 욕망의 늪에 빠져 결국 자신과 세상을 망치게 된다. 지나친 정치적 욕망은 개인파산은 물론 독재에 빠지게도 한다.
옛날 팔관회 등 축제는 연례행사로 국민에게 위안을 주고 국민 단합을 도모하기도 하여 권장하였지만, 문제도 많았다. 오늘날도 축제는 지역 곳곳에서 성행하지만, 축제가 지나치면 축제로 인해 피해는 크다. 그 피해는 세 가지로 크게 나타난다. 하나는 국가나 지방의 재정을 어렵게 하고 다른 하나는 국민의 근면성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리고 지나치게 흥분된 축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고와 일탈 행위는 사회질서와 안전을 위협한다. 따라서 축제도 어느 정도의 선에서 절제가 필요하다.
욕망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다. 그러나 그것에 인간의 행위가 개입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인간의 욕망 충족의 행위에는 개인적인 삶과 사회적인 관계성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제를 요구한다. 이는 공자가 말한 낙이불음(樂而不淫: 즐기기는 하나 음탕하지 않는다)과 같은 말이다(논어 팔일편). 아무리 즐거운 일이라도 적절한 시점에 중단할 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절제가 없는 즐거움, 절제가 없는 욕망은 피해만 남길 뿐이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욕망 과잉의 시대이다. 어쩌면 국가 사회적으로 욕망을 부채질한다. 욕망은 개인적으로는 성취의 동력이고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욕망 과잉이 주는 피해 또한 엄청나다. 절제 절욕 없는 욕망 과잉추구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와 같다. 중요한 것은 주색(酒色)이든, 즐거움이든, 그 어떤 욕망이든 절제 절욕할 줄 아는 자세이다. 절제 절욕의 능력은 양성(養性)하는 노력으로 형성된다.
홍만종이 강조한 "색을 피하기를 원수를 피하듯 하라(避色如避讎). 빈속에서는 술을 마시지 말라(莫喫空心酒). 즐거운 일이라고 끝까지 하지 말라(樂不可極)." 욕망 과잉의 시대에 함께 새겨 볼 말이다.
① 양성보명(養性保命) (3)
성품을 기르고 목숨을 잘 보전한다 (3)
다시 말하지만, 모든 사람이 천명장복(天命長福: 천명을 다해 오랫동안 복을 누린다)을 원하지만 쉽지 않다. 살다 보면 일상에서 혈기와 욕심, 잘못된 생활 습관 등에 의해 자신의 천명을 단축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홍만종은 가장 먼저 양성보명(養性保命: 성품을 기르고 목숨을 잘 보전한다)할 것을 강조하였다.
홍만종이 말한 양성보명의 방법으로 첫째 면벽(面壁)과 좌한(坐閑)에 힘쓸 것, 둘째, 청성(淸性)에 힘쓸 것, 셋째, 절제절욕(節制節慾)에 힘쓸 것, 그리고 이번에는 양성보명의 네 번째 방법으로 강조하는 안분지족(安分知足)에 대하여 살펴 보고자 한다.
홍만종은 '안분지족'하는 길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영역에서 실천할 것을 주문한다.
以不寒爲溫(이불한이온)
以不飢爲飽(이불기위포)
춥지 않을 만큼 따뜻하게 하고, 시장치 않을 만큼 배를 채우네.
以無辱爲榮(이무욕위영)
以無禍爲福(이무화위복)
욕심 없는 것으로 영화를 삼고, 화가 없는 것으로 복을 삼아라.
대부분은 지나치게 따뜻하게 하므로 몸을 늘어지게 하여 상하게 하고 지나치게 많이 먹어 탈을 만들고 지나치게 욕심을 많이 부려 부귀영화도 망치고 화를 크게 만들어 복을 망치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절제와 삶에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잘 아는 한 소화기 내과 전문의와 위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은 위암과 그 치료에 관한 책을 몇 권 썼는데 대부분이 자신의 습관 다스리기와 관련되어 있다. 그분에 의하면 도저히 고칠 것 같지 않은 위암 말기 환자도 고치는 경우가 있고, 정말 초기라 쉽게 고칠 것 같은 위암 환자도 치료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였다. 그분의 이야기를 분석해 보니 모든 것이 성정(性情)과 생활 습관에서 기인하였다.
말기 암 환자지만 고칠 수 있었던 사람은 자기관리가 분명하여 의사의 지시대로 생활하며 특히 규칙적인 식사와 생활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하였으며,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며 화가 날 수 있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며 화내는 일을 삼갔다고 했다.
그러나 초기지만 고치지 못하는 사람은 불규칙한 식사와 운동 부족, 때로는 폭식을 하였다. 그 원인으로는 잘못된 생활 습관과 스트레스였다는 것이다. 특히 모든 것의 원인은 스트레스였는데 그 스트레스로 인해 생활의 리듬이 깨어지고 정상적인 치료 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스트레스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내려놓지 못하는 자신의 욕망과 인간관계 등에서 형성된 화를 참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욕망과 화로 인한 스트레스는 불규칙한 식사와 폭식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해 암을 이겨낸 사람은 안분지족하였으나 이겨내지 못한 사람은 안분지족하지 못했다.
안분지족이란 단순히 현재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고 절제하며 욕심을 줄이고 화를 참아내는 자세이다, 만족하고 참다 보니 일상에서 화가 닥치지 않으며, 평온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흔히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는 말은 스트레스는 모든 생체리듬을 경화시키고 생활 습관을 불규칙하게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이 스트레스의 원인은 욕망과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자신의 성정(性情) 때문이다. 따라서 열심히 일하지만 안분지족하며 즐기는 자세는 스트레스를 제거하고 생체리듬을 활성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어서 홍만종은 안분지족하기 위한 생활 자세로 다음 여섯 가지를 추가로 제시한다.
첫째,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잘 먹어라
身閑不如心閑(신한불여심한)
藥補不如食補(약보불여식보)
몸 편함이 마음 편함만 못하고, 약으로 보하는 것이 먹는 것으로 보하는 것만 못하다.
위의 둘은 관계가 없는 듯하나 지극히 깊은 관계가 있다.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은 평정심을 잃은 것이다. 화나는 일이 생기거나 바라는 일이 잘되지 않거나 엉뚱하게 바쁜 일이 생기거나 하면 규칙적인 생활이 깨어진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매사가 뒤틀린다. 생활에서의 규모 있는 시간 관리가 되지 않고 특별히 바쁘지도 않은데 늘 쫓기기도 한다.
그러면 식사가 불규칙하고 수면 등 모든 생활의 질서가 깨어진다. 그러면 생체리듬도 깨어진다. 그러면 몸은 균형을 잃고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때 사람들은 보약을 찾는다. 그런데 몸에 좋다는 것을 아무리 먹어도 회복되지 않는다. 약은 약일 뿐이다. 약도 효과가 있으려면 마음에 평정심을 찾고 순하게 받아들여야 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 심보(心補) 즉 마음을 보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특히 바쁜 현대인들은 시간의 굴레에서 직장의 틀에서 늘 스트레스를 안고 산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긍정적인 마음 자세이다. 바쁘게 살다 보니 생활의 균형이 깨어지고 식사 등 모든 것이 불규칙하다. 스트레스도 쌓인다. 그래서 체격은 좋으나 영양은 불균형을 초래하고 각종 질환에 허덕인다. 그래서 찾는 것이 건강 기능식품과 보약이다.
현대는 보약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눈만 뜨면 텔레비전과 신문 등 광고에 건강기능식품 등 보약 선전이다. 물론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먹어 결핍된 영양을 보충해야 한다. 그러나 지나치면 그 건강기능식품과 보약이 오히려 몸을 망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약으로 보하는 것보다 음식으로 보하는 것이 낫다는 것은 마음이 평정심을 가질 때 음식을 균형 있게 골고루 먹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그 어떤 보약보다 낫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근원에는 마음의 평정심이 있다.
둘째, 말을 적게 하고 적게 먹어라
口中言小(구중언소)
心頭事小(심두사소)
입속에 말이 적으면, 마음과 머리에 복잡한 일이 적어진다.
肚中食小(두중식소)
夜間睡小(야간수소)
배 속에 먹은 것이 적으면, 밤중에도 졸음이 적게 온다.
이 말은 모든 것을 기준보다 적게 하려고 노력하라는 의미인데 그게 정말 쉽지 않다. 홍만종은 말이 많으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많이 먹으면 몸이 힘들어하기 때문에 언소(言小)와 식소(食小)야말로 신선으로 가는 첩경이라 하였다. 대체로 말이 많은 사람은 어떤 유형이든 욕망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욕망이 물욕과 권세욕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자신을 들볶는다.
술에 취하면 말이 많은 사람은 역시 내면의 욕망이 술기운을 받아 용솟음치기 때문이다. 나도 술에 취하면 말이 많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지나고 반성해 보면 역시 욕망이 솟구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물욕과 권세욕은 지적 욕망이나 다른 욕망과 달리 혈기와 투기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니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마음과 머리가 복잡하다는 것은 그만큼 욕망이 많다는 것이다.
먹는 일도 욕망과 비례한다. 식욕은 건강한 삶의 척도이다. 그러나 그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 역시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입맛에 맞는 음식이 있으면 한없이 먹는 것은 몸의 피로를 가중시킨다. 그 많은 음식을 소화하려면 몸은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마리의 양을 두고 실험을 하였다. 한 마리의 양에게는 그 양이 좋아하는 먹이를 먹는 대로 계속 주었다. 다른 한 마리의 양에게는 시간을 정해놓고 일정량을 주었다. 몇 년이 지났다. 먹고 싶은 대로 먹은 양은 털이 빠지고 늙어 버렸다. 그러나 매일 일정량만을 먹인 양은 털에 윤이 나고 늙지 않았다.
무엇을 말해 주는가? 먹고 싶은 대로 먹은 음식은 자신의 머리와 몸을 망친다. 그런 점에서 최근 텔레비전의 '먹방 프로그램'은 걱정이 된다. 많이 먹으면 누구나 저절로 졸음이 온다. 그러면 먹은 것이 채 위에서 안착도 하기 전에 누워 잔다. 그러면 위산이 역류하여 식도염을 일으킬 수 있다. 식도염이 심하면 식도암이 된다. 그뿐 아니다. 소화불량과 함께 운동 부족으로 비만을 가져오고 대사증후군이 발생한다. 많은 현대인이 외식 등을 통해 지나치게 많이 먹기 때문에 대사증후군에 시달리는지도 모른다.
셋째, 그칠 줄을 알아라
富貴不知止殺身(부귀부지지살신)
飮食不知止損壽(음식부지지손수)
부귀를 그칠 줄을 모르면 자기 몸을 죽이고, 음식을 그칠 줄을 모르면 자기 목숨을 줄인다.
두 번째와 같은 맥락이다. 부귀를 그칠 줄을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 더 많이 갖기 위해 부정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면 처벌을 받는다. 옛날에는 부귀를 지나치게 누리려 하다가 탄핵을 받으면 재산을 몰수당하고 처형까지 당할 수 있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치게 부귀에 눈이 먼 사람은 온갖 편법을 쓰기 때문에 법적 처벌은 물론 주위의 원한을 산다. 그 원한 맺힌 사람들은 그를 그냥 두지 않는다. 늘 기회를 보면서 그를 처단하려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대통령으로 만족하였다면 옥살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권세욕에 물욕까지 더했으니 불명예스러워졌다.
부귀를 그칠 줄 모르는 사람은 대체로 향락도 그칠 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부귀를 그칠 줄 모르면 결국 자신을 죽이는 일이 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음식을 그칠 줄 모르면 수명을 줄이게 되어 있다. 그런데 상당수의 부귀를 그칠 줄 모르는 사람은 음식을 그칠 줄 몰라 늘 맛나는 음식을 찾아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몸을 망치고 보약을 찾아 나선다.
넷째, 검소하고 탐욕을 버려라
福生於淸儉(복생어청검)
道生於安靜(도생어안정)
복은 맑고 검소한 곳에서 생겨나고, 도는 편하고 고요한 곳에서 생겨나네.
患生於多慾(환생어다욕)
禍生於多貪(화생어다탐)
근심은 욕심 많은 데서 생겨나고, 화는 재물을 탐내는 곳에서 생겨나네.
복(福)이 맑고 검소한 곳에서 생겨난다는 것은 결코 가난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근면 성실하여 부지런히 일하고 소득을 구하되 부정되지 않으며 안분지족할 줄 안다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복이 권세와 재물에서 온다고 여긴다. 물론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재물이 있어야 생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서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은 늘 부족하다. 이웃이 고급 외제차를 타니 그보다 못한 국산 세단을 타는 것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쪽팔린다고 여기는 사람)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 이웃이 1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가는데 자신은 못 가기 때문에 삶이 우울하고 불만인 사람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 두 식구가 사는데 이웃은 50평 아파트에 사는데 자신은 32평 아파트에 산다고 우울한 사람 역시 절대 행복할 수 없다.
재물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먹고 살 수 있으며 편히 잠잘 수 있으면 될 수 있다. 권세도 마찬가지이다. 동창 친구 누구는 벌써 어떤 자리에 올랐는데 ‘나는 왜 이꼴이냐’고 한탄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단지 그것이 자신의 성취동기를 일깨우는 데만 작용하면 족하다.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면 늘 부족할 수 있고 불행할 수 있다. 자기만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갖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현대는 욕망 과잉의 시대이며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즈먼(David Riesman)이 말한 타인 지향형의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이 넘치는 세상이다. 그래서 소득은 높고 좋은 집에서 사는데도 행복지수는 낮다.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세계적으로 하위수준이다. 그만큼 삶을 타인과 비교하며 타인 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낮은 행복지수는 세계 최하위의 출산율과도 연관이 된다. 국가 정책적으로도 이를 살펴야 하지만 개인의 삶의 가치관도 점검해 보아야 한다.
도생어안정(道生於安靜) 즉 '도는 편하고 고요한 곳에서 생겨난다'고 하는데 여기서 도(道)는 도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의 도리, 아름다움, 즐거움, 즉 행복이라 생각하면 된다. 행복은 결코 나이트클럽이나 시끄러운 관광지나 화려한 축배, 넘치는 밥상에서 생겨나지 않고 몸과 마음이 편안한 데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앞의 복생어청검(福生於淸儉)과 통한다.
그리고 늘 욕심은 근심을 부른다. 그래서 욕심은 늘 근심의 근원이다. 재물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화(禍-재난, 허물)를 부른다. 재물에 대한 집착으로 화를 부른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이 말은 재물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가지는데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다섯째, 맑고 참된 곳에 자신을 의탁하라
風流得意之事(풍류득의지사)
一禍便生悲凉(일화편생비량)
풍류로 득의한 일이라도, 한번 편히 지나고 나면 처량한 생각이 들고.
淸眞寂寞之鄕(청진적막지향)
愈久轉增意味(유구전증의미)
맑고 적막한 시골에서도, 오래 머무르면 의미가 있어지네.
풍류(風流)는 화조풍월(花鳥風月)이란 말과 같이 속된 일을 떠나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음악을 즐기며 노는 것을 말한다. 꽃과 새와 바람과 달이 어우러졌으니 얼마나 좋으랴. 신선의 경지이고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의 '신선놀음'이다. 득의(得意)는 모든 일이 뜻대로 되어 참으로 만족스러운 상태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일장춘몽(一場春夢)이다. 모든 것은 흐른다. 상황이 바뀌기에 새로운 상황이 다가오면 맞지 않고 새로운 일이 생긴다. 영원히 붙잡아 놓을 수도 없다.
그러기에 풍류득의지사(風流得意之事)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고 허무해진다. 그러니 너무 그런 풍류득의지사(風流得意之事)를 쫓지 말라는 것이다. 비록 청진적막지향(淸眞寂寞之鄕)이라도 유구전증의미(愈久轉增意味)이다. 청진적막지향(淸眞寂寞之鄕)은 탐욕적인 세속에 때묻지 않은 맑고 고요하고 적막한 산중의 마을이다.
그런 곳은 사람의 왕래가 적고 호젓하지만 외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런 곳도 오래 머무르면 마음이 맑아지고 삶에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탐욕이나 풍류 등 세속적인 것보다는 맑고 고요하며 의미 있는 삶에 의지하라는 것이다. 안분지족하라는 의미이다.
여섯째, 취하지 말고 건강할 때 쉬어라
醉後狂言醒時悔(취후광언성시회)
安不將息炳時悔(안불장식병시회)
취한 후에 미친 소리 하면 깨고 나서 후회하고, 편안(건강)할 때 쉬지 않으면 병이 나서 후회하네.
술에 만취해 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안다. 술에 취했을 때는 온갖 말을 다하고 고집도 부리고 자기주장에 열을 올린다. 때로는 혈기를 참지 못해 울분을 터뜨리기도 하고 술이 화근에 되어 만용을 부리므로 큰 화를 만들기도 한다. 음주운전이 곧 그런 것이며 술로 인한 다툼도 그런 것 때문이다.
술은 처음에는 즐거움이지만 취하고 나면 마약이 되어 이성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그러니 깨고 나면 후회할 수밖에 없다. 깨고 나서 후회를 하지 않는 사람은 감정이 왜곡되었거나 성정(性情)이 사나워져 자기 극복과 성찰 능력이 무너진 사람이다. 그러니 취하지 말라는 뜻이다. 술을 마시되 취하고 나서 후회할 일을 미리 생각하여 절제하고 어느 정도에서 만족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이태백도 그랬듯이 처음에는 내가 술을 마시는데 취하고 나니 술이 나를 마시기 때문이다.
몸이 피로하고 어딘가 문제가 있는 듯하여 병원에 가면 의사는 무조건 좀 쉬라고 한다. 쉬는 것 즉 휴식도 보약 이상의 보약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건강할 때 휴식하지 않고 일하고, 휴식하지 않고 즐기고. 휴식하지 않고 먹고 마시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몸이 망가져서 극한에 이르면 후회한다.
그러니 안불장식(安不將息: 건강할 때 쉬라)하라. 그렇지 않으면 병시회(炳時悔: 병이 나고 나서 후회한다)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애주가는 병을 얻어야 술을 끊고 애연가는 병을 얻어야 담배를 끊는 경우가 많다. 이미 늦었다. 미리 어느 정도의 선에서 만족하고 절제할 줄 알라는 뜻이다.
삶을 돌이켜 보면 모든 화(禍), 병(炳), 불행은 부족한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넘치는 곳, 단순하고 고요한 곳에 아니라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 만족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지려 하는 과욕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현대인의 삶에서 부족함에 만족하고 그칠 줄 아는 삶을 살기는 매우 어렵다.
재독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라고 그의 책에서 현대인들은 피로 사회에 살고 있다고 했다. 무한경쟁과 욕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옛날과 달리 현대는 그것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개인이 마음을 먹어도 어찌하기 힘든 문제가 많이 도사린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데이비드 리즈먼이 말하는 것처럼 '고독한 군중'이 되어 있는지 모른다.
오늘날 정신질환자가 넘쳐나고 명상과 마음 회복, 정신 상담 기관이 늘어나는 것도 '피로사회'에서 '고독한 군중'이 되어 있는 현대인들이 우울과 자기 상실을 회복하기 위한 절규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떤 명상과 정신 치료도 스스로 자기의 욕망과 화를 내려놓고 만족하지 않는 한 고칠 수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화가 닥치기 전에 자기를 다스리는 지혜이다. 그 지혜의 하나로 홍만종은 안분지족을 강조하였다. 이 말들은 '피로사회'에서 '고독한 군중'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이 깊이 새겨볼 말들이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되기를 희망한다. 건강하고 행복함이 어우러진 세상을 희망한다.
▶️ 養(기를 양)은 ❶형성문자로 飬(양), 餋(양)은 통자(通字), 养(양)은 간자(簡字), 羪(양)은 동자(同字)이다. 養(양)은 뜻을 나타내는 밥 식(食=飠; 먹다, 음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羊(양)이 합(合)하여 기르다, 양육하다를 뜻한다. 羊(양)은 양의 고기로, 중국에서는 고급 요리이다. 食(식)은 식사를 하는 일이다. ❷회의문자로 養자는 '기르다'나 '먹이다', '봉양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養자는 羊(양 양)자와 食(밥 식)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글자의 조합으로만 보면 養자는 마치 양에게 밥을 먹이는 모습과도 같다. 그러나 養자의 갑골문을 보면 羊자와 攴(칠 복)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목축업을 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후에 '기르다나 '번식시키다'라는 뜻이 파생되자 攴자를 食자로 바꾸게 되면서 지금의 養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養(양)은 어떤 명사(名詞) 어근(語根)에 붙어서 남의 자녀(子女)를 데려다가 길러 자기(自己)의 자녀(子女)로 할 때에 그 상호(相互) 관계를 나타내는 데 쓰는 말로 먹을 것을 주다, 양육하는 일의 뜻으로 ①(낳아서)기르다 ②(젖을)먹이다 ③(심어)가꾸다 ④수양(收養)하다(다른 사람의 자식을 맡아서 제 자식처럼 기르다) ⑤봉양(奉養)하다, 공양(供養)하다 ⑥가르치다 ⑦맡다, 관장(管掌)하다 ⑧치료하다, (질병을)다스리다 ⑨취(取)하다 ⑩숨기다, 은폐(隱蔽)하다 ⑪가렵다 ⑫즐기다 ⑬(시간적으로)길다 ⑭다스리다, 수양(修養)하다 ⑮땔나무 산지(山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기를 양(奍), 기를 육(育), 기를 사(飼)이다. 용례로는 가르쳐서 유능한 사람을 길러 냄을 양성(養成), 길러 자라게 함을 양육(養育), 영양이 되는 성분을 양분(養分), 가축을 기름을 양축(養畜), 인공적으로 길러서 번식시키는 일을 양식(養殖), 닭을 기르는 일을 양계(養鷄), 양아들을 양자(養子), 누에를 기름을 양잠(養蠶), 꿀벌을 길러 꿀을 채취하는 일을 양봉(養蜂), 물고기를 기름을 양어(養魚), 부모의 뜻을 받들어 지극한 효도를 다하는 일을 양지(養志), 양 아버지를 양부(養父), 학문과 식견을 넓혀서 심성을 닦음을 함양(涵養), 식물이나 미생물 따위를 인공적으로 가꾸어 기름을 배양(培養), 휴양하면서 치료하는 것 또는 그러한 치료를 요양(療養),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 갈 수 없는 사람의 생활을 돌봄을 부양(扶養), 범을 길러 화근을 남긴다는 뜻으로 화근을 길러서 걱정거리를 산다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는 말을 양호유환(養虎遺患), 항상 부모의 뜻을 받들어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효행을 이르는 말을 양지지효(養志之孝), 도를 좇아 뜻을 기르고 시세에 따라서는 어리석은 체하며 언행을 삼가야 한다는 말을 준양시회(遵養時晦), 아침 저녁으로 웃어른에게 인사를 드린다는 말을 조석공양(朝夕供養), 부담을 가볍게 하여 백성의 힘을 펴게 한다는 말을 민력휴양(民力休養) 등에 쓰인다.
▶️ 性(성품 성)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生(생; 풀이나 나무의 싹틈, 타고난 모양, 성)으로 이루어졌다. 사람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마음(心)을 합(合)하여 성품을 뜻한다. 사람이 타고난 마음의 경향을 일컬음이다. ❷회의문자로 性자는 '성품'이나 '성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性자는 心(마음 심)자과 生(날 생)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生자는 초목이 올라오는 모습을 그린 글자로 '태어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태어나다'라는 뜻을 가진 生자와 心자를 결합한 性자는 '타고난(生) 심성(心)'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타고난 천성이 있다. 어떤 아이는 말수가 적고 얌전하지만 어떤 아이는 한시라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꼭 이런 비유가 아니더라도 性자는 태어날 때부터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심성을 뜻한다. 워낙 원초적인 것을 뜻하다 보니 때로는 이성 간의 성적인 관계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性(성)은 (1)사람이나 사물 따위의 본 바탕 (2)만유(萬有)의 본체 (3)남성(男性)과 여성(女性) 또는 암컷과 수컷의 구별 (4)인도(印度), 유럽어(語)에서 명사(名詞), 대명사(代名詞) 따위의 문법(文法) 상(上) 성질(性質)의 하나. (5)성욕(性慾) 등의 뜻으로 ①성품(性品), 타고난 사람의 천성(天性) ②바탕 ③성질(性質), 사물(事物)의 본질(本質) ④생명(生命), 목숨 ⑤마음 ⑥만유(萬有)의 원인(原因) ⑦성별(性別) ⑧남녀(男女), 자웅(雌雄)의 구별(區別) ⑨모습, 자태(姿態) ⑩생활(生活) ⑪오행(五行) ⑫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사람이나 동물이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마음의 바탕을 성질(性質), 성질이 급함을 성급(性急), 성질 상의 경향을 성향(性向), 성질과 품격을 성품(性品),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는 성질과 심정을 성정(性情), 이성 사이에서 성적 관계를 맺음을 성교(性交), 어떤 물건이 지닌 성질과 능력 또는 기능을 성능(性能), 남녀 또는 암수의 구별을 성별(性別), 그것에만 있는 특수한 성질을 특성(特性), 개인의 천품으로 타고난 특유한 성격을 개성(個性), 급히 심해지지도 않으면서 쉽사리 낫지도 않는 병의 성질 또는 버릇이 되다시피 하여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상태나 성질을 만성(慢性), 이치에 따라 사리를 분별하는 성품을 이성(理性),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굳어져 있는 좋지 않은 버릇을 타성(惰性), 사물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나 성질을 속성(屬性), 무엇에 알맞은 성질을 적성(適性), 급한 성질 또는 급히 일어나는 성질의 병을 급성(急性), 타고난 성품을 천성(天性), 사람된 바탕과 성질이나 성격을 품성(品性), 지혜로운 성품을 지성(知性), 사람이 본디부터 가진 성질을 본성(本性), 세균 따위의 생물체가 어떤 약에 견디어 내는 성질을 내성(耐性),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성질을 음성(陰性), 성품이 고요하면 뜻이 편안하니 고요함은 천성이요 동작함은 인정이라는 말을 성정정일(性靜情逸), 사람의 본성은 여울물과 같다는 뜻으로 여울물이 동쪽으로도 서쪽으로도 흘러갈 수 있듯이 천성적으로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말을 성유단수(性猶湍水), 도를 통하여 깨달음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성통공완(性通功完), 정신에 이상이 생길 정도로 슬피 통곡함을 이르는 말을 실성통곡(失性痛哭), 구름 같은 마음과 달 같은 성품이라는 뜻으로 맑고 깨끗하여 욕심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운심월성(雲心月性), 사람이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심성이란 뜻으로 지극히 착하고 조금도 사리사욕이 없는 천부 자연의 심성을 이르는 말을 본연지성(本然之性), 습관과 풍속은 끝내 그 사람의 성질을 바꾸어 놓는다는 말을 습속이성(習俗移性), 몹시 놀라 얼굴빛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대경실성(大驚失性), 오래될수록 매워지는 생강과 계수나무의 껍질이라는 뜻으로 늙을수록 더욱 강직해지는 성품을 이르는 말을 강계지성(薑桂之性) 등에 쓰인다.
▶️ 保(지킬 보)는 ❶회의문자로 어른이(人) 아이를(呆) 지키고 보살핀다는 데서 보전하다를 뜻한다. 옛 모양은 사람 인(人=亻; 사람)部와 子(자; 아이)로 쓰고 好(호)의 얼개와 비슷하고 뜻도 관계가 깊다. ❷회의문자로 保자는 '지키다', '보호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保자는 人(사람 인)자와 呆(어리석을 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呆자는 子(아들 자)자가 변한 것이기 때문에 뜻과는 관계없이 아이를 형상화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保자의 갑골문을 보면 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保자는 부모가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에서 '보호하다'는 뜻을 갖게 된 글자이다. 그래서 保(보)는 (1)보증(保證) (2)보증인(保證人) (3)고려(高麗) 때 세자(世子) 첨사부(詹事府)의 으뜸 벼슬. 곧 세자보(世子保)의 일컬음 (4)옛날 중국에서 행해진 인보조합(隣保組合). 일정한 호수(湖水)로 조직되어 연대 책임을 짐. 보갑법(保甲法) (5)대만(臺灣)의 지방자치 단위의 하나. 10갑(甲; 1갑은 10호)을 1보로 하여 연대 책임을 지게 함 (6)보포(保布) 등의 뜻으로 ①지키다, 보호하다, 보위하다 ②유지하다, 보존하다 ③보증하다, 책임지다 ④보증을 서다 ⑤돕다, 보우하다 ⑥기르다, 양육하다 ⑦붙다, 귀순하다 ⑧편안하다, 안정시키다 ⑨차지하다, 점유하다 ⑩믿다, 의지하다 ⑪보증인(保證人), 보증(保證) ⑫보험(保險) ⑬고용인(雇傭人), 심부름꾼 ⑭조합(組合) ⑮보(조선 시대 장정의 조직 단위) ⑯포대기 ⑰작은 성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지킬 수(守), 지킬 위(衛)이다. 용례로는 잘 보살피고 지킴을 보호(保護), 일이 잘 되도록 보호하거나 뒷받침함을 보장(保障), 보전하여 지킴을 보수(保守), 물건을 어느 곳에 안전하게 두는 것을 보관(保管), 간직하고 있음을 보유(保有), 어떤 일을 처리하지 않고 미루어 둠을 보류(保留), 보호하여 남아 있게 함을 보존(保存), 보호하여 유지함을 보전(保全), 남의 신분이나 행동을 뒷받침하여 책임짐을 보증(保證), 건강을 잘 지켜 온전하게 하는 일을 보건(保健), 어린아이를 돌보아 기름을 보육(保育), 사회의 안녕 질서를 보호함을 보안(保安), 보호하고 방위함을 보위(保衛), 몸을 보전함을 보신(保身), 일정한 온도를 그대로 지킴을 보온(保溫), 눈을 보호함을 보안(保眼), 확실히 보유함을 확보(確保), 편안히 보전함을 안보(安保), 빚을 대신할 수 있는 신용으로 제공하는 보장을 담보(擔保), 뒷날로 미루어 둠을 유보(留保),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이 아주 확실함을 일컫는 말을 보무타려(保無他慮), 일신을 보전해 가는 꾀를 일컫는 말을 보신지책(保身之策), 한마음을 가지면 큰 의미의 대화합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보합대화(保合大和), 총명하여 도리를 좇아 사물을 처리하고 몸을 온전히 보전한다는 뜻으로 매사에 법도를 지켜 온전하게 처신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을 명철보신(明哲保身), 백성은 신의가 있을 때에 안정된다는 뜻으로 백성은 신의에 의해서만 잘 다스려진다는 말을 민보어신(民保於信) 등에 쓰인다.
▶️ 命(목숨 명)은 ❶회의문자로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令(령)의 합자(合字)이다. 입(口)으로 뜻을 전한다는 뜻으로, 곧 임금이 명령을 내려 백성을 부린다는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命자는 '목숨'이나 '명령'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命자는 亼(삼합 집)자와 口(입 구)자, 卩(병부 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亼자는 지붕을 그린 것으로 여기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을 그린 卩자가 더해진 命자는 대궐에 앉아 명령을 내리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상관이 내리는 명령은 반드시 목숨을 걸고 완수해야 한다. 그래서 命자는 '명령'이라는 뜻 외에도 '목숨'이나 '생명'이라는 뜻이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命(명)은 (1)목숨 (2)운명(運命) 등의 뜻으로 ①목숨, 생명(生命), 수명(壽命) ②운수(運數), 운(運) ③표적(標的), 목표물(目標物) ④명령(命令), 분부(分付)⑤성질(性質), 천성(天性) ⑥말, 언약(言約) ⑦규정(規定), 규칙(規則) ⑧가르침 ⑨작위(爵位), 작위의 사령서나 그 신표(信標: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하여 서로 주고받는 물건) ⑩하늘의 뜻, 천명(天命) ⑪도(道), 자연의 이법(理法) ⑫호적(戶籍) ⑬명령하다 ⑭가르치다, 알리다 ⑮이름짓다, 이름을 붙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윗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무엇을 하도록 시킴을 명령(命令), 시문의 제목을 정하여 주는 것을 명제(命題), 사람이나 물건에 이름을 지어 붙임을 명명(命名), 살아 있는 목숨을 이어 가는 근본을 명백(命脈), 겨냥한 곳에 바로 맞음을 명중(命中), 생명의 근본을 명근(命根), 목숨의 한도를 명한(命限), 앞으로의 존망이나 생사에 관한 처지를 운명(運命), 관직에 명함 또는 직무를 맡김을 임명(任命), 타고난 수명이나 하늘의 명령을 천명(天命), 날 때부터 타고난 운명을 숙명(宿命), 제 명대로 살지 못하는 목숨을 비명(非命), 맡겨진 임무나 맡은 일을 사명(使命), 생물이 살아 있는 연한을 수명(壽命), 사람의 목숨을 인명(人命),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뜻으로 숨이 곧 끊어질 지경에 이름이나 거의 죽게 됨을 이르는 말을 명재경각(命在頃刻), 한 시대를 바로잡아 구할 만한 뛰어난 인재를 일컫는 말을 명세지웅(命世之雄), 연거푸 생기는 행복을 일컫는 말을 명야복야(命也福也), 병이나 상처가 중하여 목숨에 관계됨을 일컫는 말을 명맥소관(命脈所關), 팔자가 사나움을 일컫는 말을 명도기박(命途奇薄), 목숨을 의에 연연하여 가볍게 여기다는 뜻으로 의로움을 위해서는 생명도 아끼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명연의경(命緣義輕)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