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풍탁金銅風鐸
이하 (李下)
폐사지 어스름에서 파란의 우는 소리 듣는다
벌판에서 몰려온 바람은 솟구치다 꽃잎처럼 떨어진다
수없이 새긴 오롯한 마음 모아 사라진 퇴창의 빈틈을 부르고
내 느린 발소리도 숨죽여 천년을 웅크린 탑을 본다
적막은 통곡 없이 무너진 탑을 돌아
옛 자취에 취해 노을의 앞섶에 스러져 있다
묵언의 몸으로 단단한 화두를 벼렸던 돌탑의 문은
엇나간 사랑처럼 쩌귀를 잃어버렸다
오랜 기원은 흩뿌린 마른 꽃잎의 바랜 이름표를 달고
바람의 상처를 휩싼 입동立冬의 허물처럼 무겁게 있다
밀경密經에 박혀 별빛에 밤새 타버린 것인지
대웅보전을 울리며 경을 외던 소리, 금강의 숨결로 스미고
낡고 희미한 기둥만 달빛 뼈대의 흔적으로 있다
전하지 못한 불국토佛國土의 영면에 들지 못한 원願이 되어
허공의 파편으로 눕혀져 있다
구원의 행로는 유랑하던 소란에 의탁한 건가
오랜 바람의 그림자 된 무덤으로 버려져
고요에 씻긴 그늘의 몸을 가리고 있다
검붉은 어스름은 몰아쉬는 풍탁의 여운을 끌고
내 초라한 눈빛을 지나고 가슴을 휩쓸고 가려니
기운 탑에 매달려 수천만 번 그 흔들림의 여백에
의탁한 풍탁만이 청록으로 물든 궁륭穹窿을
두드려 망연한 몸으로 울고 있다
독경에 출렁이던 일몰 더욱 붉어지고
태우지 못한 몸 금강의 바람에라도 씻겨
숨 끊긴 종소리 빈 들판을 떠돌다
무간無間에 갇혀 어쩌지 못하는 여린 떨림 속을
나 우두커니 서
어둠에도 일렁이는 천년의 풍탁
깊이 울리는 어진 소리 듣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24년 7월호 발표
이하(李下) 시인
2020년 웹진 《시인광장》 등단. 시집 『반란』이 있음. 2023년 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한국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