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기(宋相琦)-4월 3일 밤 꿈에……(꿈에서나마 너의 모습을)
夢汝雖時有(몽여수시유) 꿈속에서 너의 모습 가끔 보았지만
尋常恨不明(심상한불명) 늘상 또렷치 않아 한스럽더니
那知當此夜(나지당차야) 웬일인지 이날 밤 꿈속에서는
忽復似平生(홀복사평생) 홀연히 마치 살았을 적 같았지
宛爾提携樂(완이제휴악) 손잡고 즐기는 모습 눈앞에 선하고
琅然笑語聲(낭연소어성) 웃으며 말하는 소리 귓가에 쟁쟁한데
前林杜鵑哭(전림두견곡) 건너편 숲속의 두견새 곡소리에
驚起淚縱橫(경기루종횡) 놀라 일어나니 눈물만 흐를 뿐
*위 시는 “한시 감상 情정, 사람을 노래하다(한국고전번역원 엮음)”(옥오재집玉吾齋集)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김성애님은 “
4월 3일 밤 꿈에 죽은 아이가 곁에서 함께 자다가 이불을 제치고 앉아 평소처럼 말하고 웃는 것을 보았다.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목소리와 모습은 생생하였는데, 갑자기 놀라 깨니 보이는 것이라곤 적막한 창뿐이고 사방엔 사람 소리 하나 없었다. 그 흔적을 찾아보려 해도 이미 간데없어 멍하니 자리를 쓰다듬다가 베개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고 있었는데, 홀연히 들려오는 집 앞 숲의 두견새 소리에 너무도 괴로웠다. 이때의 이런 심정을 진실로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지만 차마 기록하지 않을 수도 없기에 아침에 일어나 쓴다(四月初三日夜分 夢見亡兒在傍同宿 披衾而坐 言笑如平生 言則不記 而音容宛然 俄而驚覺 則但見虗窻悄閴 四無人聲 欲覓其蹤 而已無所矣 撫席惝怳 倚枕流淚 忽聞前林杜鵑聲正苦 此時此情 誠不忍形諸言 而亦不忍不志 朝起書之)(사월초삼일야분 몽견망아재방동숙 피금이좌 언소여평생 언즉불기 이음용완연 아이경각 측단견허창초격 사무인성 욕멱기종 이이무소의 무석창황 의침류루 홀문전림두견성정고 차시차정 성불인형제언 이역불인불지 조기서지)
송상기는 1684년 숙종10에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 관리로 출사해 과감하고 강경한 의론을 펼쳐 이름을 떨친 자이다. 부수찬 시절 장희빈의 세력에 저항하다 파직된 뒤 다시 복직하였고, 이후 수많은 관직을 거치면서 노론의 영수가 되어 정론을 주도하였다. 1722년 경종이 병이 들자 당시 세제世弟였던 영조에게 대리청정시킬 것을 주장하다가 강진으로 유배되고 1723년 그곳에서 죽었다.
그의 일생을 사업으로만 보자면 화려한 가문에서 뛰어난 자질을 갖고 태어나 일찍부터 우암 송시열의 기대를 받았으며, 조정에 들어와서는 조금도 거리낌 없이 주장을 펼쳐나갔으니, 더할 수 없이 강직하게 신념에 따라 살다 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읊은 위의 시에서는 송상기의 전혀 다른 일면을 볼 수 있다.
위 시는 옥오재 송상기가 14세에 홍역을 앓다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하여 쓴 시이다.
송상기는 이 시 외에도 아들의 첫 번째 기일에 지은 「죽은 아들에 대한 제문祭亡兒文제망아문]」과 10년 후 장지(葬地)를 옮기면서 지은 「죽은 아들을 옮겨 장사지낼 때의 제문祭亡兒遷葬文제망아천장문]」을 지었는데,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잊지 못하는 부모의 애끓는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이 시는 제목이 시문을 겸하고 있어 이 시를 지은 배경을 잘 설명해 주고 있기에 굳이 사족을 붙일 필요가 없다.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도 있듯이 먼저 간 자식을 부모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죽은 자식에 대한 애달픈 심정을 읊은 글 가운데 명문장으로 꼽히는 글이 또 있다. 김창협(金昌協)의 농암집農巖集에 실린 「죽은 아들의 소상 때에 쓴 제문 亡兒初朞祭文망아초기제문]」이다.
우두커니 외로이 지내고 정신없이 막막하게 사는 것이 마치 가지 없이 쓰러진 나무 같고 불타지 않는 식은 재 같으니 사람이 이렇게 살면서 어찌 즐거울 수 있겠느냐?. 그런데도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추우면 옷을 입고 아프면 약을 구하여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가고 있으니, 심하구나! 나의 무디어진 마음이여!
사람들은 나의 병이 오래도록 낫지 않는 것을 두고 슬픔이 지나쳐 몸이 상한 것이라 생각하고는 네 생각을 하지 말고 있으라고 충고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지나치게 슬퍼한 적이 없다. 하지만 어찌 생각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책을 펼치면 생각이 나고 술과 밥이 있으면 생각이 나고 옛사람의 좋은 시문을 보면 생각이 나고 의논할 만한 일이 생기면 생각이 나고 집 안팎을 출입하며 너와나이가 비슷한 후생을 보면 생각이 나고 산수를 만나면 생각이 나고 풀이 나고 꽃이 피면 생각이 나고 바람이 맑고 달이 밝으면 생각이 나고 꾀꼬리의 지저귐, 매미 소리, 기러기 울음 소리, 학 울음 소리가 들리면 생각이 나곤 한다. 만물을 대하여 감정이 솟구칠 때는 어떤 경우인들 네 생각이 나지 않겠느냐? 생각이 나는데 보지 못하면 슬픔이 따르기 마련이다. 술픔은 그래도 억제하여 너무 심한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할 수가 있지만, 우연히 사물을 보고 생겨나 무한히 맴도는 생각이야 내가 또 어떻게 안 할 수가 있겠느냐? 그것은 아마도 마음이 담벼락처럼 꽉 막혀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니, 내 아무리 무디다 하나 그럴 수야 있겠느냐?
이 글은 지금 보아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부모의 마음은 고금을 막록하고 시공을 뛰어넘어 동일한 것인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불 꺼진 재와 같아서 더 이상 희망을 찾아볼 수 없다. 인생의 아무 낙을 느끼지 못하고 목석같이 살면서도 생의 기본적인 욕구인 먹고 자는 것과 추위와 아픔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조차 죄의식을 가진다. 자신의 마음이 무뎌져 가고 있다고.
한데 아무리 무뎌져 간다 해도 모든 만물을 대할 때마다 솟구치는 슬픔, 머리를 치는 생각은 막을 수가 없다. 남들은 시간이 지났으니 더 이상 슬퍼하지 말고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한다. 그러나 슬픔에 어찌 유통 기한이 있겠는가?
오늘날에도 이러한 큰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는 많은 부모들이 우리 옆에 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몇 년이 흘렀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에게 이제 그만 잊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슬프고 원통하고 혹독하다고 느끼는 고통 앞에 선 그들을 우리는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부끄럽고 미안하고 참담할 뿐이다.”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송상기[宋相琦, 1657년(효종 8)~1723년(경종 3), 본관 은진(恩津 :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 자는 옥여(玉汝), 호는 옥오재(玉吾齋).]-조선 후기에, 홍문관저작, 충청도관찰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학유(學諭) 송희원(宋希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송국전(宋國銓)이고, 아버지는 예조판서 송규렴(宋奎濂)이다. 어머니는 동지(同知) 김광찬(金光燦)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84년(숙종 10)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등용되었다. 홍문관저작을 지내면서 문장에 능하고 학식이 풍부하여 홍문관에서 상주하는 글은 대개 송상기가 지었다. 박사·검열을 거쳐, 부수찬으로 있을 때 희빈 장씨(禧嬪張氏) 어머니가 가마를 탄 채 대궐에 출입하므로 가마를 불태워야 한다고 청했다가 파면되었다.
1689년 부교리로 복직되었으나 이 해에 기사환국이 일어나 송시열·김수항(金壽恒) 등이 사형당하고 남인이 집권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로 민비(閔妃)가 복위되고 남인이 제거된 뒤,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에 임명되었고 홍문관부교리·사간원사간·충주목사를 거쳐 보덕·교리·사인을 지냈다.
1697년 세자 책봉에 대한 주청사(奏請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가서는 여러 번 정문(呈文)을 지었는데, 문장(文狀)의 사리가 명확하여 청나라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돌아온 뒤에는 품계가 올라 승지가 되었다. 그 뒤 노론의 중신으로서 대사성에서 예조·이조의 참의가 되고 승문원부제조를 겸하였다. 충청도관찰사로 내려가서는 크게 치적을 올렸다.
대제학·대사헌·예조판서 등의 요직을 지내고 이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1718년 민회빈(愍懷嬪: 昭顯世子妃)의 시호 개정을 반대하다가 한때 파직되었는데 곧 예조판서에 기용되었다. 다시 이조판서·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를 지내다가 경종이 병이 있으므로 세제(영조)에게 청정(聽政)을 시키자고 여러 대신들과 더불어 상소하였다. 이 일로 1722년 신임사화를 입어 강진으로 유배되어 이듬해 배소에서 죽었다. 1725년(영조 1)에 관작이 복구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로는 『옥오재집(玉吾齋集)』이 있다.
첫댓글 천붕의 마음...
가슴에 무든 아비의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다가오네요....
회장님의 댓글에 감사드리고,
8월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행복한 9월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