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5일 대림 제1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신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1-24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지?
‘어벙 8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리석고 덜렁거리고 주책이 없고, 어안이 벙벙한 일만 저지르는 사람이나 사오정처럼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동문서답(東問西答)하거나 쓸데없는 말이나 엉뚱한 말로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사람에게 붙이는 이름입니다. 어벙한 사람이 가장 철부지일 것입니다. 어벙하게 보여서 사람들을 웃기는 개그맨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예수님의 제자들도 가끔 어벙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귀를 정말 알아듣지도 못하고, 엉뚱한 말로 예수님을 곤란하게도 하고, 천방지축으로 살기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나는 정말 어벙한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알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약게 살지도 못하고 순진하고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들이 그렇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약아빠진 사람이 잘 사는 세상에서 언제나 뒤처지고, 변두리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순진하고,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어벙 8단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분명 어리석다고 할지 모릅니다. 오히려 약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주어지는 환경과 세상 돌아가는 대로 휩쓸려 살지 않고 힘들더라도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당시에 사회적 수준에 비해서 비교적 순진하고 잘난 척하지 않고, 열심히 몸으로 일해서 먹고 살던 어부들과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마태오와 같은 세관장도 있었고, 열혈 당원들도 있었고, 토마스처럼 과학적 사고를 가진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태오는 벼슬도 재산도 모두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고, 열혈 당원들도 분노와 살의(殺意)를 삭이고 살았습니다. 토마스처럼 비교하고, 분석하는 명석한 머리를 모두 버리고 돈도 생기지 않고, 보수도 주지 않고, 권세 있는 사람들에게 대접도 받지 못하는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에 그들은 철부지이고, 어리석은 어린 아기와 같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특별히 많이 받은 것은 그들은 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이상과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품을 수 있는 그런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메시아를 기다리고, 그 메시아가 주시는 말씀이나 명령에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을 달지 않고 그냥 순종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따라다니는 사람이 그리스도이시고, 메시아이신지도 잘 알지도 못하고 믿음으로 기대와 소망과 사랑으로 목숨까지 버려 가면서 주님을 따르며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은 평신도들도 많이 배우고 전공분야에서는 뛰어난 석학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뛰어난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성령께 의지하는 영성에 관하여는 자신들의 지식이나 지혜를 고집하지 말고 성령의 가르침에 따라 성령에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간직하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을 간직하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어벙 8단’이라도 주님의 성령으로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지금 어벙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11,1-10
그날 1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2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3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4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5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8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1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
축일12월 5일 성 사바 (Sabas)
신분 : 수도원장
활동 지역 : 팔레스티나(Palestina)
활동 연도 : 439-532년
같은 이름 : 사바스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 교외 무탈라스카(Mutalaska)에서 어느 장교의 아들로 태어난 성 사바는 부친이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전근감에 따라 삼촌의 도움으로 자랐다. 숙모의 학대를 이기지 못한 그는 불과 여덟 살의 나이로 다른 삼촌에게 도망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삼촌들이 집안 재산에 대한 소송 문제로 괴롭히자, 이번에는 고향에서 가까운 어느 수도원으로 피신하였다. 18살 때인 456년 예루살렘의 파사리온 수도원으로 옮겨 성 에우티미우스(Euthymius, 1월 20일)의 제자가 된 성 사바는, 스승에 의해 와디 무켈릭(Wadi Mukelik)에 있는 성 테옥티스투스(Theoctistus)의 수도원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17년을 보냈다.
478년부터는 예루살렘 남동쪽의 와디 엔나르의 동굴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스승인 성 에우티미우스가 운명하자 그는 예리코(Jericho)와 가까운 사막으로 가서 혼자 4년 동안 지냈는데, 이때부터 제자들이 모여 들기 시작해서 483년에는 일종의 수도 공동체인 '마르 사바 라우라'를 형성하였다. 150명이나 되는 제자들의 요구 때문에 그는 하는 수 없이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었는데, 이집트와 아르메니아(Armenia)에서 제자들이 계속 몰려들었기 때문에 또 다른 수도원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팔레스티나 지방의 모든 은수자와 독수자 그리고 회수자들의 지도자로 임명되었으나, 그 권한을 행사한 사실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병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음식물을 섭취했을 따름이었다. 또한 사막의 은수자였지만 정통교리 수호를 위하여 헌신했는데, 오리게네스파와 그리스도 단성론을 특히 배격하였다.
531년 고령인 그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가서 사마리아인들의 봉기에서 주민들을 보호하려는 운동을 전개할 만큼 현실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진 은수자였다. 이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자신의 후계자를 선임한 뒤, 532년 12월 5일 94세의 고령으로 마르 사바(Mar Saba) 수도원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초대 수도자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며, 동방 수도회의 설립자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사바 (Sabas)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이배근 가브리엘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