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상어가 되었다
노해정(盧海靜)
머리 꼭대기까지 피가 몰리고 화끈거리며
가슴은 차디찬 얼음장처럼 변해가는
나를 보았지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을 때
마치 빙벽 속에 갇힌 것처럼
뜨거운 핏줄기는 꽁꽁 얼어가고
납덩이보다 무거워진 머릿속
겹겹이 쌓인 빙판을 뚫고
깊디깊은 심해 속으로 내 몸을 끌어들이지
깊은 곳에서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숨 쉬게 되고
매우 느린 속도로 몸을 계속 움직일 수 있게 돼
가라앉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야
그냥 그렇게 움직여지는 거야
심해의 바닥에 도달하는 것은
세상을 등지거나 삶을 포기하려 하는 것도 아니야
엄청난 수압에 짓눌리면서도
견뎌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면
오히려 가슴이 뭉클해질 거야.
어느 순간
상어가 된 나를 느끼게 돼
“ 양식장에 갇힌 철갑상어가 아닌 북극해에 사는 상어 ”
떠오르다 보면
나와 같은 모습을 한, 무리를 만나기도 해
나의 친구일지도 애인일지도 부모일지도 모르는
저들의 유영은 늠름하고 아름다워
계속 떠오르다 보면
싱싱한 피 냄새도 느낄 수 있어
“ 물개를 사냥하는데 정신이 팔린 북극곰 ”
서서히 다가가 턱을 크게 벌려
꿀꺽 삼킬 수도 있지
대박이지?
나는 상어가 되었으니까
웹진 『시인광장』 2024년 7월호 발표
노해정 (盧海靜) 시인
본명은 노경래. 1968년 서울에서 출생. 서정시학 100호 2023년 겨울호, 「이문동 도루묵 지붕」 외 2편으로 신인상 수상하며 등단. 현재 휴먼네이처 대표, 서정시학회 동인, 주역과 명리학 연구가, 시사랑 문화예술 아카데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