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그룹
DL을 주축으로 한 건설업 특화 기업집단으로, 예전 명칭은 대림그룹이었다.
1939년 수암 이재준, 이석구, 원장희 등이 '부림상회'라는 건설자재 가게를 연 게 그룹의 뿌리다. 1947년 건설업체 '대림산업'으로 개편 후 1954년 서울증권을 세워 금융업에도 손을 뻗었다. 모기업 대림산업은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 따른 특수로 급성장하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 중동 진출로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1965년 대림콩크리트를 비롯해 1968년 대림요업, 1968년 대림흥산, 1970년 대림통산, 1974년 대림엔지니어링 등을 각각 세워 그룹의 형태를 갖추어 1970년대 재계순위 10위권에 진입하기도 했다.
1978년 자동차부품 회사인 대림공업을 설립하고 이륜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79년 1월 호남에틸렌을 인수하여 석유화학사업에 진출했다. 1987년 호남에틸렌을 흡수합병했으며, 1986년과 1987년에 삼호와 고려개발을 인수했다.
2000년 1월 대림아파트 'e편한세상' 브랜드를 첫 출시했고, 12월에는 국내 최초의 강합성 사장교인 서해대교를 준공했다. 2020년 7월 삼호가 고려개발을 흡수합병하여 대림건설로 사명을 변경했다. 2021년 3월 대림건설의 사명이 DL건설으로 변경되었다.
2021년 1월부터 지주사 체제로 출범하여 DaeLim의 줄임말인 DL그룹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대림산업 사업부문 중 건설사업부문을 인적분할하여 DL이앤씨, 석유화학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하여 DL케미칼을 설립하고, 분할 후 대림산업은 DL(주)로 상호를 변경하여 존속하며 투자사업부문을 영위한다. 계열사인 대림에너지, 대림에프엔씨, 대림자동차도 각각 DL에너지, DL에프엔씨, DL모터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지방대생을 제법 뽑는 회사이기도 한데, 원래는 다른 대기업처럼 서울 지역 유명 대학 위주로 뽑던 것을 노태우 정부 출범 후 정부의 "강권"에 거점국립대학교 졸업자 비율을 늘린 게 시작이라고 한다. 이 무렵 뽑힌 사람들의 남다른 노력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공채에서 지방대 졸업자 비율은 훨씬 적었을안습이었을 것이라는 게 아는 사람들의 중론이다.
2013년 대림산업 고문으로 LG전자를 대차게 말아먹은 남용 전 부회장이 들어왔다. 2010년 스마트폰 뜨던 때에 '스마트폰은 곧 망하고 피처폰이 계속 대세가 될 것이다'라는 굳은 신념으로(...) 고성능 피처폰 MAXX같은걸 만드는 등 세대를 잘 못 따라간 사람. 여기에 전략컨설팅 회사 맥킨지도 같이 손을 잡고 그 주장을 밀었다.
대림그룹 시절 일반인들 중 대림산업을 대림건설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았는데, 임직원들은 대림건설로 불리는 일을 매우 불편해했다. 심지어는 입사원서에 붙이는 자기소개서에도 대림건설이라고 쓰는 사람들이 많아서, 채용설명회에서 인사담당자가 "대림산업 건설사업부로 써달라"며 읍소하는 일까지 자주 있었다. 2021년 대림산업이 DL이앤씨로, 대림건설이 DL건설로 사명을 변경함에 따라 이런 문제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룹의 지배구조가 취약하다는 평이 많다. 대림산업을 인적분할해 DL이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었지만 인적분할로 인해 정작 그룹의 핵심사업인 건설사업은 DL과 지배관계가 없다. 진짜 지주회사는 DL과 DL이앤씨의 지분을 동시에 갖고 있는 (주)대림이라고 볼 수 있는데, 대림과 오너 일가의 DL·DL이앤씨 지분이 23%대에 불과해 적대적 M&A에 노출되기 쉽다는 우려를 받는다. 특히 2019년에 KCGI가 대림 2대 주주가 되면서 향후 경영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북극곰 마크과 함께 대림이라는 로고를 대한민국 공공화장실 대부분의 변기에서 볼 수 있는데 이 회사는 주식회사 대림바스(구 대림요업)다. 대림산업 계열사는 아니지만 아주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림그룹 이재준 창업주의 동생 이재우 전 대림통상 회장이 분가시킨 회사로 대림그룹 계열사 중 하나를 놓고 싸우다 갈라섰다.
2020년작 KBS 2TV 드라마 비밀의 남자에서 나오는 기업 이름이 DL그룹이다. 물론 대림그룹일 때 써진 대본이니 배경이 실제 DL그룹인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