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시나트라 : 1915. 12. 12~ 1998. 5. 14
대중적인 발라드 가수로서 뛰어난 것은 그의 독특한 프레이징, 휴지, 미묘한 감성적 배음이 섞인 목소리에 기인한 것이다.
시나트라는 영화배우로도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1936년경 가수 활동을 시작했으며 1937년 시나트라와 그의 그룹 호보켄 포가 아마추어 탤런트 콘테스트에서 우승했다.
1939년 7월 제임스 밴드의 반주로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를 부른 것이 시나트라의 음반 데뷔였다.
1940~42년 토미 도르시 오케스트라에서 노래를 했고, 1942년 12월 31일에는 뉴욕 시에서 솔로로 데뷔했다.
1943~45년 라디오 프로그램 '여러분의 히트 퍼레이드'에서의 솔로 연주를 통해 미국 전역을 휩쓰는 인기를 끌었다. .
아들 납치 사건, 자살시도. 그리고 네 번의 결혼까지, 결코 순탄하다고 볼 수 없는 인생의 굴곡들이 있었다.
여기에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그가 이탈리아 마피아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
때는 1968년 경 그는 아니라고 했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고 당시 미 연예계에 이탈리아 마피아가 큰 영향을
미치던 때라 그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그러면서 그와 이탈리아 마피아와 함께 찍은 사진도 나돌았고, 미연예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그는 스스로 은퇴하기로
결심을 한다.
그런 그에게 후배가수이자 절친한 사이인 폴 앵카가 손을 내밀었다.
폴 앵카는 67년에 Claude François가 부른 ‘Comme D’abitude‘에 영어 가사를 붙여 프랭크 시나트라를 존경해 온 마음을 담은 은퇴헌정곡으로 'My Way'를 준비했다.
그리고 이 곡으로 통해 프랭크 시나트라는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첫댓글
잘 듣고 갑니다
즐감합니다 .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