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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마지막 때의 징조(마태복음 24:1~14)
* 본문요약
예수님과 함께 성전에서 나오던 제자들이 예수께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켜 보이니
예수께서 이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는 날이 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세상 끝에 대하여 묻자
예수님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가 오면 거짓 그리스도가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고,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환난에 넘겨주겠으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찬 양 : 513장(새 458)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차도(가득할 때)
201장(새 267) 주의 확실한 약속의 말씀 듣고
* 본문해설
1. 예루살렘 성전 파괴의 예언(1~2절)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걸어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예수께로 나아오니
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지금 너희들이 보고 있는 이 건물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1절) :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왕이 46년에 걸쳐서 지은 건물로(요 2:20)
가장 세련된 헬라식 외장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그 규모와 아름다움이 경이로울 정도였습니다.
학자들의 고증에 의하면 확장된 뜰과 외벽을 포함한 크기가
관람석을 포함한 축구장 12개를 합한 크기였다고 하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놀라면서 감탄할 만합니다.
그러나 주후 66년부터 시작된 유대와 로마의 전쟁은
주후 70년 유대의 반란군이 성전을 요새 삼아 저항할 때 절정에 다다랐고,
분노한 로마군이 성전을 무너뜨리고 불태워버렸습니다.
그때 성전 벽의 일부만 남아 통곡의 벽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2절) :
이미 마태복음 23:38에서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고 말씀하셨고,
에스겔도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에스겔 10:1~22, 11:22~25).
그러므로 이 말씀은 아직도 이 건물의 외형만을 보고 있느냐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2. 재난의 시작(3~8절)
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올라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다가와서 이르되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사오며,
또 주께서 다시 오실 때와 세상 끝 날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리스도이다’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 난리와 난리(전쟁)의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너희는 당황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하겠으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거슬러 일어나고,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재난의 시작일 뿐이니라.
-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3절) :
랍비가 가르침을 전할 때 취하는 자세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종말(세상끝)에 관한 말씀을 주려 하십니다.
-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4절) :
예수님은 종말의 때에 있을 징조를 말씀하기 전에
먼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경고를 하십니다.
어떤 재난의 징조보다 사람에게 미혹을 받는 것이
가장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 난리와 난리의 소문(6~7절) :
주후 68~70년 사이에 로마 제국은 난리와 전쟁의 소문으로 가득했습니다.
68년 네로 황제가 죽은 후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4명의 경쟁자들이 서로 싸웠기 때문입니다.
이때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득세하였습니다.
- 이 모든 일은 재난의 시작일 뿐이라(8절) :
‘재난의 시작’은 산모가 겪는 산통이 이제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3. 교회의 수난(9~14절)
9)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나로 인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때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시험에 빠져, 믿음에서 떠나)
서로 잡아주고(서로 넘겨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또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악이 점점 기승을 부려)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 서로 잡아주고(10절) :
교회 내부의 분열과 분쟁이 일어날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재난보다도 교회의 분열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위험한 재앙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믿음을 지키는 마지막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 불법이 성하므로(12절) :
교회와 성도들은 많으나 말씀을 지키는 이가 없다는 뜻으로,
고의로 말씀을 어기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는 뜻.
- 끝까지 견디는 자(13절) : 휘포메이나스
‘견디다’에 해당하는 ‘휘포메이나스’는 ‘굳게 서다, 참아내다’라는 뜻으로
수동적으로 참으면서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도 자기의 내면적인 신앙과 소망을 버리지 않고
끈기 있게 버텨나감으로써 끝내 승리를 쟁취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의 배신과, 수많은 사람이 믿음을 버리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의 자리를 지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 묵상 point
1.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
예루살렘 성전에 천국의 열쇠가 없어진 것을...
1)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감탄을 하는 제자들(1절)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자들이 초라하게 만든 성전이 아닙니다.
헤롯왕이 46년이나 걸려서 헬라식 건물로 거의 새로 짓듯이 리모델링한 것으로
그 규모와 아름다움이 경이로울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당시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지 않았으면
화려한 건물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화려함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성전에서 나올 때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감탄을 할 만합니다.
2) 예수님의 책망 :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2절)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 건물의 화려함만 보고,
그 건물 내부에서 일어나는 온갖 추한 모습들을 볼 줄을 모르느냐고 질책하십니다.
성전 건물도 있고 그 안에서 예전적으로는 전혀 하자가 없는
경건한 예배가 드려지고 있기는 하나,
예배를 드리는 자의 마음속에 탐욕과 방탕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께서 이미 23:13~32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지도자들을 향한 여덟 화(禍)를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성전 건물의 화려함만 보고 감탄하는 것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 묵상 : 당신은 성전의 무엇을 보십니까? 건물입니까, 성도들의 심령의 상태입니까?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공동체, 성도들의 모임’을 뜻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성도들의 심령에 무엇이 담겨있는지를 보지 않고
건물의 규모나 교회의 부흥의 정도만 보려 합니다.
당신은 성전의 무엇을 보십니까?
교회의 규모가 아니라 그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의 심령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마지막 때의 징조
예수께서는 24장에서 말씀하시는 마지막 때에 일어날 모든 일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들이 살고 있던
바로 그 세대에 일어나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마 24:34).
그러나 지금 2000년이 넘게 지나도록 주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1) 연기(延期)된 마지막 때
그것은 이미 누가복음 13:6~9과 요한계시록 큐티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께서는 이때 정말 이 세상에 다시 오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본문 14절에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세상에 복음이 전해져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시려고 그때를 연기(延期)하신 것입니다.
매년 그렇게 그때를 미루어 오신 것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복음서와 바울 서신과 요한계시록을 보면
예수께서 1차로는 네로 황제와 주후 70년 예루살렘 파괴 때였고,
2차로는 요한이 계시록을 쓸 당시인 도미티안 황제 때였습니다.
공관복음서와 바울 서신은 주후 70년 이전에 쓰여진 것이므로
복음서는 마지막 때가 주후 70년에, 바울 서신은 네로 황제 때로 맞춰져 있으며,
요한계시록은 90년경에 쓰여졌으므로 도미티안 황제의 핍박에 맞춰져 기록되었습니다.
2) 마지막 남은 징조는 주님의 재림 하나뿐
복음서와 바울 서신과 요한계시록에 나온 모든 징조들은
이미 그때 다 일어난 과거 사건입니다.
그 일이 일어난 후에도 주께서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은 징조는 주께서 재림하여 오시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온 징조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니
예수께서 재림하여 오실 날이 많이 남아 있으려니 하며 넋 놓고 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고 말 것입니다.
3) 마태복음 24장의 해석의 어려움 : 주후 70년과 마지막 때가 섞여 있으므로
본래 계획대로 그때 예수께서 다시 오셨다면 기록된 대로 다 이루어졌을 것이므로
마태복음 24의 해석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2025년인 오늘까지도 오시지 않았으므로
어느 것이 그때의 징조이고, 어느 것이 마지막 때의 징조인지를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 53장의 경우를 참조하면 어느 정도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에 나오는 고난의 종의 노래는 이사야 자신의 고난을 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는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마태복음 24장의 징조들도 주후 70년과 세상 끝에 있을 징조가
함께 담긴 이중적 의미를 갖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소 무리가 되기는 하지만
본문의 징조를 주후 70년의 때와 마지막 때로 구분하여 보겠습니다.
3. 주후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파괴 때의 징조들
• 하나님께서는 큰일을 행하시기 전에 언제나 먼저 징조를 보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큰일을 하실 때 언제나 징조를 보이십니다.
노아의 홍수가 일어나기 전에도
1주일 전부터 각종 동물들이 열을 지어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이셨고,
소돔과 고모라 때에도 천사를 보내 롯과 그 딸들을 구하셨으며,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될 때에도 기근과 지진 등의 징조를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다시 오실 그 때에도
그날이 가까이 온다는 징조를 보이실 것입니다.
•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멸망 때에 있었던 징조들은 마지막 때의 징조의 모델이 됩니다.
그 징조는 예수께서 1차로 다시 오시리라 약속하셨던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파괴 때의 일이 가장 중요한 모델이 될 것입니다.
그때 예루살렘 파괴의 일과 주께서 오시리라는 말씀을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이미 과거에 있었던 일이지만,
동시에 우리 미래에 일어날 재앙의 경고가 되는 것이니
우리가 이 말씀을 마치 우리가 당할 일처럼 여기고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1)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 때의 징조들
➀ 예루살렘의 멸망
주후 66년부터 주후 70년까지 유대와 로마와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로 있던 유대가 로마의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 전쟁은 유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요새 삼아 저항할 때 최고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주후 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6개월 동안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여
모든 물과 음식을 반입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끝이 났습니다.
그 6개월 동안 예루살렘 성 안에 있던 약 110만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칼에 죽거나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 참극을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광경이었다고 보고합니다.
이때 로마는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고 불태웠고,
겨우 남은 벽 하나를 요즘에 통곡의 벽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➁ 예루살렘 멸망 때에 있었던 징조들
이 일이 있기 전에 기근과 지진이 있었습니다.
기근은 글라우디오 황제 때와 네로 황제 때에 각각 있었고,
지진은 61년 소아시아 지방에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
하룻밤 사이에 열두 개의 도시가 파괴되었습니다.
62년에도 폼페이 도시가 사라질 정도의 엄청난 지진이 있었습니다.
또 요세푸스는 유대와 로마의 전쟁이 있던 66년~70년 사이에
많은 거짓 그리스도들이 출현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➂ 산으로 도망하게 피신한 그리스도인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여러 징조들은 일단은
주후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성전 파괴 때를 향한 징조들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여
그 환난을 피하라고 미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16절).
유세비우스의 말에 의하면
그때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들을 예루살렘 성 바깥 펠라 지역으로 도피시켰다고 합니다.
2) 세상 마지막 때(종말의 때)의 징조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징조들 중에는
세상 끝인 종말의 때를 경고하는 징조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➀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마지막 때의 예고편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때 주께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세상 마지막 때를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마치 노아 홍수가 마지막 때의 재앙을 경고하는 것인 것처럼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 역시 마지막 때를 경고하는 예고편 역할을 합니다.
요한계시록 20~21장을 보면 마지막 때에는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이 완전히 파괴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것처럼
마지막 때에 세상이 완전히 사라지리라는 것입니다.
➁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다(8절)
최후의 심판을 예고하는 징조로서의 재앙들이 어떤 방식으로 오는지를
우리는 8절의 ‘재난의 시작’이라는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재난’이라는 말은 ‘오디논’이라는 말로
해산의 고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은 여인이 해산이 다가올수록 통증이 심해지고 그 간격이 짧아지는 것처럼
재난이 그 끝에 가까이 올수록 점점 깊어지고
그 간격이 짧아질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재난이 점점 더 심화하여가는 것을 볼 때에
주님 오실 날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➂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과 교회의 분열
추후 70년의 환난에서도 거짓 그리스도들이 많이 출몰했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거짓 그리스도들이 많이 출몰할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는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전에는
사교 집단으로 치부되던 것들이 정식 종교로 등록이 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그 교세를 확장시키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교회도
세상에 있는 수많은 종교들 중의 하나로 인식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교 집단의 등장이 외부로부터 오는 충격이라면,
이보다 더 큰 위협은 교회 내부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분열일 것입니다.
10절에서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한다는 말씀은
서로 분쟁하고 다투는 교회들이 많아질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믿음을 훈련하는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성도들이 갈 곳이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분열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위협이 됩니다.
➃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지고 서로를 환난에 넘겨주고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것 못지않게 성도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탐욕과 방탕에 빠지는 일들이
흔하게 일어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성도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때가 되면
이런 불법과 죄가 하나의 문화현상처럼 되어 죄의 감각을 잃게 되는 때가 옵니다.
예수님은 이런 때가 되면 사람들 사이에 사상이 식어져서 가정이 파괴되고,
모든 선한 가치관들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➄ 주를 인하여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들이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종교 통합 현상이 점차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예수님을 믿는 자들만 이 일에 참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갈수록 그리스도인들은 종교 의 다툼을 조장하는
분열주의자로 낙인찍혀 세상 사람들로부터 점차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➅ 천국 복음이 온 민족에게 전파되면 …
그러나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 아직 끝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8절에서 언급했듯 재앙이 점차 깊어지고
그 간격이 짧아질수록 마지막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주께서 주신
천국 복음이 온 세상 민족에게 전파되었을 때 주님은 다시 오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나라로 볼 때에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나라는 없습니다.
다만 그 나라 안에 종족들로 볼 때 일부 종족에 복음이 들어가지 않았으나,
그 수가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때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➆ 끝까지 이기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끝까지 이긴다는 것은 이를 악물로 참고 견딘다는 뜻이 아닙니다.
끝까지 믿음 생활과 자신이 맡고 있는 사명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있어야 할 믿음의 자리와 사명의 자리를 다 포기하고 떠날지라도
끝까지 남아 믿음을 잃지 않고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세상의 유행이나 흐름을 보지 말고, 주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교회에 대한 세상의 평가에 민감한 사람이 되지 말고,
나의 영의 상태에 민감한 사람이 되십시오.
교회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나 자신마저 무너지는 것 같은 위기를 경험하더라도
끝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믿고 신뢰하십시오.
어떤 경우라도 주님을 믿는 신앙의 자리와 주님을 섬기는 봉사의 자리를 놓치지 마십시오.
이것을 놓치는 순간 나의 생명도 잃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 기도제목
1. 세상의 평가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평가에 민감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2.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지는 때를 만나더라도
끝까지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3. 주님이 반드시 오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항상 그날을 준비하며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