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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장복(天命長福)
순오지의 작가 홍만종은 천명장복(天命長福: 천명을 다해 오랫동안 복을 누린다)을 위해 첫째, 양성보명(養性保命: 성품을 기르고 목숨을 잘 보전한다)할 것, 둘째, 입신행기(立身行己: 몸을 세우고 자기부터 행하여야 한다)할 것 셋째, 처가이물(處家理物: 가정에 거처하여 사물을 잘 다스리라) 할 것, 넷째, 거관이정(居官莅政: 관직에 나아가 정사의 자리를 지켜라) 할 것을 강조했다.
홍만종은 천수(天壽)를 누리기 위해 왜 이 네 가지에 힘쓸 것을 강조했을까? 아마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를 중심으로 가장 가깝게는 가족관계가 있고 나와 관계하는 남이 있다. 그리고 세상에 나아가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나를 바르게 경영하는 일)를 둘러싼 가족(가정을 다스리는 일)과 남(사람들과 조화롭게 지내는 것), 일(옛날에는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중요한 일로 여김)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관계 요소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관계에서 스트레스도 받고 즐거움도 얻으며 삶의 절망을 느끼기도 하고, 삶의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중요한 문제는 나를 포함하여 그것들과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에 있다. 따라서 위의 네 가지를 강조한 것이라 여겨진다. 이번에는 그 네 번째로 거관이정(居官莅政)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④ 거관이정(居官莅政)
관직에 나아가선 정사의 제자리에 서야 한다는 뜻으로, 관리로서 주어진 본분을 다하며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하자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직에 나아가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과 행동에 대한 설명이다.
居 : 살 거(尸/5)
官 : 벼슬 관(宀/5)
莅 : 임할 리(艹/7)
政 : 정사 정(攵/5)
출전 : 홍만종(洪萬鍾)의 순오지(旬五志)
새 대통령이 취임하여 각 부처의 장․차관을 임명하는 등 새로운 인물들이 관직을 명받고 나아가고 있다. 어떤 이는 적합 판정을 받고 어떤 이는 부적합 논란에 스스로 물러나기도 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당선되고 시․도지사로 시장과 군수로, 의원으로 곧 업무를 시작할 시점에 이르렀다. 어떤 이들은 연속하여 당선되었기에 업무의 연장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이들은 새로 당선되었기에 관직에 새롭게 나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각오와 계획이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관직은 국민이 부여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관직은 선출직이든 임명권자에게 임명받은 것이든 관직이 가진 고유한 의미와 특성과 직무가 있으며 거기엔 나라와 국민에 봉사하라는 숭고한 사명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겸허한 마음자세로 관직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조선 인조(仁祖, 조선 16대 왕)때 문신이자, 시평가(詩評家)였던 홍만종(洪萬鍾)은 순오지(旬五志)에서 거관이정(居官莅政)이란 말로 관직에 나아가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과 행동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거(居)란 '있을 거'로 거관(居官)은 관직에 나아가 있음을 말한다. 리(莅)는 '다다를 리'로 '무엇이 이르다. 제 자리로 가다'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정(莅政)이란 정사(政事)를 돌봄에 항상 제자리를 지킨다는 의미를 지닌다. 관직에 나아가 관리로서 제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주어진 본분을 다하며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하자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모든 사람에겐 관직에 나아가지 않더라도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지위에 따른 임무가 있다. 가장은 가장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회사원은 회사원으로서, 각자 주어진 자리가 있으며 그 자리에 따라 주어진 업무와 책임과 윤리가 있기 마련이다. 제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각자의 주어진 자리에서 본분을 다함에 소흘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만종이 순오지에서 '거관이정(居官莅政)이란 무엇이냐?'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관직에 거처하는 사람이 새기고 실천하여야 할 것들을 논한 것은 그것이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홍만종이 순오지에서 논한 것은 조선시대의 일이지만,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아도 모든 관리가 정사를 돌봄에 제자리를 늘 지킨다면 나라는 발전하고 백성의 삶은 윤택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홍만종은 먼저 관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로 명(明), 신(愼), 근(勤) 세 가지를 제시한다. 여기서 명(明)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밝게 하는 것이며, 신(愼)은 매사에 삼가는 마음과 행동으로 임하는 것이며, 근(勤)은 항상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알아야만 자기의 몸가짐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명(明), 신(愼), 근(勤)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기의 몸가짐은 어떠해야 하는가? 홍만종은 이를 일곱 가지의 요령으로 제시한다. 그것은 ①마음은 바르게 하고 ②몸은 청렴(淸廉)하게 하고 ③임금을 충성으로 섬기고 ④어른을 섬기는 데는 공손함으로 하고 ⑤남을 대하는 데는 믿음으로 하고 ⑥아랫사람을 대하는 데는 너그러움으로 하고 ⑦일을 처리하는 데는 공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요약하여 정심(正心) 청렴(淸廉) 충성(忠誠) 공손(恭遜) 신의(信義) 관용(寬容) 공정(公正)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관직에서 정사를 돌보는 사람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관직에 나아간 사람이 늘 이 일곱 가지의 덕목을 마음에 새기고 행동으로 옮기려면 명(明), 신(愼), 근(勤)의 세 가지가 늘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다음과 같은 행동지침을 제시한다. 첫째, 한 걸음 나아갈 때에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설 것을 생각하고, 둘째, 한 푼 돈이 필요하거든 한 푼 돈을 아껴야 한다. 셋째, 뜻을 얻은 듯 싶거든 일찍이 머리를 뒤로 돌려야 하고 넷째, 실력이 이루어져다 싶거든 방편대로 일을 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결국 신독(愼獨)하는 자세로 매사에 겸허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실천하지 못해 낭패를 보는 관리들이 무수히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누구나 관직에 나아가면 칭송보다는 원망을 듣기가 쉽다. 그래서일까? 홍만종은 호구장인(狐丘丈人)과 손숙오(孫叔敖)의 대화를 끌어들여 이에 대한 문제와 대책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호구장인(狐丘丈人)이 손숙오에게 말했다. "세상에 세 가지 원망이 있는 것을 네가 알겠느냐? 벼슬의 지위가 높아지면 선비들이 그것을 질투하게 되고, 직급이 높아지면 임금이 싫어하게 되고, 봉록이 많아지면 원망이 저절로 생기게 마련이다."
이에 대해 손숙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벼슬 지위가 높아질수록 뜻은 더욱 낮추며, 직급이 높아질수록 마음은 더욱 작게 가지며, 봉록이 많아질수록 남에게 주기를 더욱 넓게 한다면 내가 화를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는 무슨 말인가? 호구장인(狐丘丈人)의 말은 결국 벼슬이 높아지면 오만해지기 쉽고, 직급이 높아지면 임금을 무시하기 쉽고, 봉록이 많아지면 사치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오만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오만해지면 몸이 위태로워진다. 따라서 삼가야 한다.
그 삼가는 방법으로 지위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낮출 것, 직급이 높아질수록 포부를 작게 보일 것, 봉록이 많아질수록 베풀 것을 제시한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겸허하라'는 경고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 지금도 고위직들에 대한 질투와 원망의 소리가 사라지질 않는다.
손숙오는 이어서 "관리 노릇을 하는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폭노(暴怒)하는 일을 경계하여야 하며, 옳지 못한 일이 생기면 자세히 살펴 처리하여 사리에 맞도록 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고 폭발되는 성질을 참지 못하여 노여움을 먼저 낸다면 그것은 오직 자기에게 해로울 뿐이니 어찌 남까지 해롭게 하리요?"라고 하였다.
이는 관리 노릇을 하는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노여움 즉 화내는 일을 삼가야 한다는 경고이다. 지금도 지위가 높아질수록 아랫사람에게 혹은 민원인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관리로서의 수양이 덜 된 사람이다. 관리가 화를 함부로 내면 아랫사람은 감히 직언이나 소신을 펼 수 없고 주변 사람들은 대화를 기피하고 그에게 이로운 일도 조언하기를 꺼린다.
부모와 자식 간, 부부지간에도 화를 자주 내면 곁에서 멀어지는데, 대통령으로부터 시장이나 군수 등 자치단체장에 이르기까지 듣기 싫은 소리나 기분에 언짢은 정보에 세심하지 못하고 미리 흥분하여 화를 내면 사람들은 점차 그에게서 떠나는 것이 기본 이치이다. 그러면 결국 정사가 바로 서지 못하고 자신은 외로워진다.
그러면서 "의리를 좋아하기는 마치 맛있는 음식을 대하듯 하고, 이욕(利慾)을 두려워하기를 마치 독한 뱀을 만난 것처럼 하고, 관리 자리에 있을 때는 마치 가정에 거처할 때처럼 하고, 자기 몸을 사랑하듯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 나라가 번성할 때는 반드시 간언(諫言)하는 관리가 있으며, 집이 번성하게 될 때는 반드시 간언(諫言)하는 아들이 있기 마련이다"고 하면서, 관직에 있을 때는 의리를 좋아할 것, 이욕을 멀리할 것, 부하 관리들에게 편안하게 할 것, 백성을 내 몸처럼 사랑할 것, 특히 간언(諫言)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길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사람은 분노와 이욕과 듣기 좋은 소리에 익숙한지라 이를 실천하기 어렵다.
이어서 계속 다음과 같은 비유로 관리의 자세를 꼬집는다. "좋은 여자가 집에 들어오면 추한 여자는 이를 질투하고 충성 스런 신하가 조정에 들어오면 간사한 신하는 이를 원수처럼 여긴다. 조정에 한 번 서면 공명정대(公明正大)하도록 힘써야 하며 절대 아부하지 말아야 한다. 단 샘물은 먼저 마르고 곧은 나무는 먼저 베어 쓰게 된다. 혓바닥이 있는 것은 부드럽기 때문이며, 이가 먼저 상하는 것은 강하기 때문이다. 너무 강하면 꺾어지는 법이요, 너무 부드러우면 폐하는 법이다. 사나운 것에는 너그러움으로 조화시켜야 하나 너무 사나우면 백성이 견디지 못하게 된다. 너무 너그러운 것은 사나움으로 조화시켜야 하나 너무 너그러워도 백성이 해이해진다. 윗자리에 올라도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하며 아랫자리에 있어도 윗사람에게 아첨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가? 사람들은 완급과 중용의 도를 실천하기 어려우며, 정치에서의 부드러움과 강함의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윗자리의 사람은 아랫사람을 무시하기 쉬우며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아첨하기 쉽다. 특히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아첨을 좋아하기 쉬우며 그것이 오래가면 결국 모두가 무너진다. 그래서 오늘날도 직언을 두려워하는 단체장은 정사를 망치기 쉬우며 그 생명이 길지 못한 경우가 많다.
손숙오의 입을 빌려 하는 홍만종의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여 보자. "아무리 작은 일이 생겨도 한계는 분명하여야 하며, 아무리 의심나는 일이라도 훼방은 피해야 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면 나를 방해하지 않을까 막아야 하며, 친한 사람이면 나를 팔지 않을까 막아야 한다. 관청 일은 집안 다스리듯 해야 하며, 백성을 사랑하기는 어린아이 사랑하듯 해야 한다. 탐관오리를 원수같이 경계하여야 하며 사사로운 청탁을 막는 것은 도둑을 방비하듯 해야 한다.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 들릴 때는 이것을 참아서 처리하며, 예의로 인사할 때에는 겸손하게 받아 주어야 한다. 계획의 여유가 있으면 조화옹(造化翁: 우주 만물의 신)에게 돌리고 녹이 여유가 있으면 조정에 돌리고, 재물이 여유가 있으면 백성들에게 돌리고 복이 여유가 있으면 자손에게 돌리라."
그러나 어떤가? 많은 경우에 미세하게 작은 일은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쉬우며, 의심나는 일은 폐하기 쉽다. 나를 방해하는 사람은 분노하여 제거하려 하며, 친한 사람이 나를 팔게 하기 쉽다. 관청 일을 남의 일 하듯 하기 쉬우며, 백성(국민)보다 자기 이익에 빠지기 쉽다. 힘 있는 탐관오리에게 아첨하기 쉬우며, 청탁에 약한 경우가 많다. 특히,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 들리면 화부터 내고 분노로 내치기 쉬우며, 계획의 여유가 있으면 자랑하기 쉬우며, 봉록과 재물의 여유가 있으면 마구 쓰기 쉽고, 복의 여유가 있으면 사치하기 쉽다.
인간의 이기적 속성을 다스리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관직에 나아가는 사람이 정사의 바른 위치에서 올바른 정사를 보려면 기본적으로 그런 마음과 행동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절대 필요한 것임에는 틀림 없다.
홍만종이 순오지에서 관리로서 나아갈 때 우선 가져야 할 자세로 강조한 명(明), 신(愼), 근(勤) 은 결국 공자가 대학(大學)에서 말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상황에 맞게 풀이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늘날은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에게 능력과 도덕성을 별개로 보려는 경향이 많다. 도덕성은 능력을 지탱하는 기반이요, 능력은 도덕성의 위에 피는 꽃임을 잊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지난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후보들의 도덕성과 능력에 대한 논란이 크게 일었다. 과연 그토록 흠결이 많은 사람이 국민을 위한 공복이 되겠다고 나서도 될까? 국민은 그것을 허용하여야 할까? 이제 나라의 발전을 위해 관리가 되려는 자들, 특히 선거로 선출하는 관리들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와 능력을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지방선거가 끝나고 중앙정부나 지방 정부 모두 국정 운영과 지방행정 운영을 위한 참모를 임명하고 관리들의 체제를 정비하고 있다. 그리고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이 선출되어 각자의 위치에서 국민을 위해 일하겠노라고 하고 있다. 그들이 거관이정(居官莅政), 즉 관직에 나아갔으니 정사를 돌보는 제자리에서 소임을 다하기를 바란다. 그들이 모두 홍만종이 순오지에서 말하는 명(明), 신(愼), 근(勤)의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홍만종이 순오지에서 손숙오의 입을 빌려 말하는 이야기들을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관리에게 도덕성과 능력은 별개가 아니라 한 몸이라는 사실을 관리들도 국민도 새겼으면 좋겠다.
사정관(司正官)과 풍헌관(風憲官)
공무원은 스스로 공직기강을 세워야
요즘 사정(司正)이란 말이 국민들 사이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국민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정이란 공직(公職)에 있는 사람의 규율(規律)과 질서(秩序)를 바로 잡는 일을 말한다.
그렇다면 풍헌이란 무엇인가? 풍교(風敎)와 헌장(憲章)의 줄임 말이다. 풍헌이란 조선왕조시대에 면(面)이나 이(里)의 일을 맡아보던 향소(鄕所)의 한 소임(所任)을 이른다. 그런 소임을 맡아보던 관리를 풍헌관(風憲官)이라 부른 것이다. 풍헌관이란 요즘으로 말하면 바로 사정관(司正官)을 말하는 것이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의 기강(紀綱)을 바로 세우고 이들을 감찰(監察)하는 일을 하는 관리를 말하는 것이다.
춘추시대 남방의 강대국 초나라 장왕(莊王) 때 손숙오(孫叔敖)라는 재상이 있었다. 손숙오가 재상이 되자 호구장인(狐丘丈人)이라는 정체 모를 사람이 손숙오를 찾아와서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지위가 높고, 권력이 있고, 녹봉(祿俸)이 많은 사람에게 보통 사람들은 원한을 가지는데 시기(猜忌) 혐오(嫌惡) 원망(怨望)입니다. 들어보셨소?" 손숙오는 "저는 적어도 그 세 가지는 피하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지위가 높고 권력이 크기 때문에 가능하면 내 몸을 낮추고 사람들에게 겸손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시기와 혐오를 피하고 있고, 녹봉은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 줌으로써 혐오감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손숙오는 평생 개인적으로 재산을 축적하지 않았으며 자식에게 자기 자리를 물려받지 못하게 했다. 이 때문에 그가 세상을 떠난 뒤 후손들은 나무를 베어 생계를 유지해야 할 정도로 곤궁하게 살았다. 그 생전에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었던 악사(樂士) 우맹(優孟)이 저잣거리에서 나무를 지고 팔러 나온 그의 아들을 보았다. 궁궐로 돌아온 우맹은 손숙오 분장을 하고 그의 언행을 흉내 내며 1년 가까이 지냈다. '우맹의관(優孟衣冠)'이란 고사성어의 배경이다. 자초지종을 들은 장왕은 손숙오의 가족들을 경제적으로 배려했다.
높은 자리에서 권력을 가지고 백성들을 위해 바르게 행사하기는커녕 무조건 휘두르려고 하면 백성들은 당연히 혐오하게 된다. 여기에 많은 녹봉까지 받게 되면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로 흐르기 쉽다. 비리(非理)와 부정(不正)이 뒤따르는 것은 필연이다. 그래서 백성들로부터 원망을 받는다. 요즘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세태와 영락없이 똑같다.
땅 투기, 부동산 투기는 물론 돈이 된다면 어떤 것도 서슴지 않는 일부 지도층과 사회 지도층의 모습을 보라! 이 파렴치(破廉恥)한 공직자들과 사회 지도층의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사정을 말하고 풍헌을 떠올리는 이유이다.
세종 시대에 신개라는 풍헌관이 문어 두 마리를 받았다는 이유로 형조에서 탄핵(彈劾)했다. 세종은 비록 문어 두 마리라는 보잘 것 없는 뇌물(賂物) 일지라도 감찰과 사정의 수장인 대사헌(大司憲)을 그냥 둘 수 없었다. 세종은 단호(斷乎)히 말한다. "만약 보통 관원(官員)이라면 마땅히 문제 삼을 것이 없겠지만 개는 풍헌관(風憲官)으로 있으면서 이와 같은 일이 있었으니 세상의 여론이 어떻겠는가. 천관(遷官)시킬 것인가, 그냥 둘 것인가."
신개의 혐의를 두고 상세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신개 친척의 하인이 고성에서 문어가 아닌 생대구 두 마리를 받았으나 이는 신개와 무관한 일로 밝혀졌다. 그러나 신개는 사직(辭職)을 청한다. "풍헌의 직책은 위로는 조정의 잘되고 잘못된 점과 아래로는 중앙과 지방의 모든 관원의 시비와 사정을 말하지 않음이 없아오니 그 임무가 크고 직책의 무거움이 이와 같거늘 신은 용렬한 사람으로 이미 부끄러운 마음이 많사온데..." 사직소(疏)의 이유이다.
세종은 풍헌관에게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요구했고 신개 자신도 이를 무겁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세종의 치세(治世)는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다. 세종의 엄격한 리더십과 핵심 관료들의 예의염치(禮義廉恥)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열자(列子) 8.설부편(說符篇)
귀한 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貴以賤為本 귀이천위본)
狐丘丈人謂孫叔敖曰(호구장인위손숙오왈)
人有三怨(인유삼원)
子知之乎(자지지호)
호구(狐丘) 지방의 장로(長老)가 손숙오(孫叔敖)에게 말하였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원망이 있으니 그대는 그것을 아시오?"
孫叔敖曰(손숙오왈) 何謂也(하위야)
손숙오가 말하였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對曰(대왈):
爵高者人妬之(작고자인투지)
官大者主惡之(관대자주오지)
祿厚者怨遠之(녹후자원원지)
호구의 장로가 대답하였다. "작위(爵位)가 높은 사람은 남이 그것을 투기하고, 벼슬이 높은 사람은 군주가 그것을 미워하고, 봉록이 후해지면 많은 원망을 받습니다."
孫叔敖曰(손숙오왈)
吾爵益高(오작익고)
吾志益下(오지익하)
吾官益大(오관익대)
吾心益小(오심익소)
吾祿益厚(오록익후)
吾施益博(오시익박)
以是免於三怨(이시면어삼원)
可乎(가호)
이에 손숙오가 말하였다. "저의 작위가 높아질수록 저는 뜻하는 바를 더욱 낮추고, 저의 벼슬이 높아질수록 저는 마음을 더욱 소심하게 하고, 저의 봉록은 후해질수록 저는 더 널리 베풀겠습니다. 이것으로써 세 가지 원망을 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註)
○ 손숙오(孫叔敖) : 춘추시대 초나라의 令尹(영윤). 성은 미(羋), 씨는 위(蔿)이며 휘는 오(敖) 또는 애렵(艾獵)이고 자는 손숙(孫叔)이다. 위고(蔿賈)의 아들이며, 위오(蔿敖) 또는 위애렵(蔿艾獵)이라고도 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사기(史記)에 전기가 전한다. 손숙오는 장왕 때 영윤(令尹; 초나라의 재상) 우구자의 천거로 후임 영윤이 되었다. 백성을 교화시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화합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하여 정치는 느슨하였지만 간신도 도둑도 생기지 않았다. 진(晉)나라의 사회(士會)는 손숙오의 치세를 크게 칭송하였다.
○ 狐丘丈人(호구장인) : 호구(狐丘)는 읍 이름(邑名)이고 장인(丈人)은 장로(長老)를 말한다.
○ 祿厚者怨遠之(녹후자원원지) : 봉록이 후해지면 많은 원망을 받는다. 회남자(淮南子) 도응훈(道應訓)에는 祿厚者怨處之(녹후자원처지)로 되어 있다.
손숙오와 호구장인의 대화를 통하여 벼슬을 함에 있어 겸손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회남자 도응훈에 동일한 내용이 있으며 마지막에 노자 도덕경 제39장의 말을 인용하였다. "귀한 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밑바탕으로 한다(故老子曰 貴必以賤為本 高必以下為基/ 노자 도덕경 39장)."
(원문)
열자(列子) 제8 설부편(說符篇)
18
狐丘丈人謂孫叔敖曰: 人有三怨, 子知之乎. 孫叔敖曰: 何謂也. 對曰: 爵高者人妬之, 官大者主惡之, 祿厚者怨遠之. 孫叔敖曰: 吾爵益高, 吾志益下; 吾官益大, 吾心益小; 吾祿益厚, 吾施益博. 以是免於三怨, 可乎.
회남자(淮南子) 도응훈(道應訓) 32
狐丘丈人謂孫叔敖曰: 人有三怨, 子知之乎. 孫叔敖曰: 何謂也. 對曰: 爵高者, 士妒之; 官大者, 主惡之; 祿厚者, 怨處之. 孫叔敖曰: 吾爵益高, 吾志益下; 吾官益大, 吾心益小; 吾祿益厚, 吾施益博. 是以免三怨, 可乎. 故老子曰: 貴必以賤為本, 高必以下為基.
노자 도덕경 제39장 중에서
故貴以賤為本, 高以下為基. 是以侯王自稱孤寡不穀. 此非以賤為本耶非乎. 故致數譽無譽. 不欲琭琭如玉, 珞珞如石.
그러므로 귀함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밑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임금은 '스스로 외롭다', '덕이 부족하다', '선하지 못하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칭송 받는 명예를 원하게 되면 도리어 명예는 없어지게 된다. 찬란히 빛나는 옥같이 되기를 원하지 말고 볼품없는 돌과 같이 되어라.
직무가 커질수록 더욱 조심해야 한다
청나라 때 금영(金纓)이 편찬한 격언집(格言集) 견언련벽(格言聯璧) 종정류(從政類)에 다음의 내용이 있다. 격언련벽(格言聯璧)은 격언을 묶어 쌍벽처럼 대비시켜 모은 책이라는 의미이다.
吾爵益高 吾志益下
나의 작위가 높아질수록, 나는 뜻을 더욱 낮추어야 한다.
吾官益大 吾心益小
나의 직무가 커질수록, 나는 마음을 더욱 조심해야 한다.
吾祿益厚 吾施益博
나의 봉록이 두터워질수록, 나는 더욱 널리 베풀어야 한다.
- 격언련벽(格言聯璧) 종정류(從政類)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처사(處士) 손숙오(孫叔敖)는 초 장왕(楚莊王) 때 우구(虞丘)를 대신하여 영윤(令尹: 政丞)이 되었는데, 세 번이나 정승이 되었어도 기뻐하지 않았고, 세 번 정승의 직책을 떠났어도 괘념하지 않았다 한다. (史記 卷119 循吏列傳 孫叔敖)
손숙오가 호구장인(狐丘丈人)을 만났는데, 호구장인이 "제가 들으니 세 가지 이로운 점이 있으면 반드시 세 가지 근심거리가 있다고 하는데, 당신은 그것에 대해 아십니까(僕聞之, 有三利, 必有三患, 子知之乎)?"라고 하였다.
손숙오가 모른다고 하면서 설명을 부탁하자 "작위가 높은 사람을 사람들이 시기하고, 관직이 높은 사람을 임금이 미워하고, 복록이 두터운 사람에게는 원망이 돌아온다고 하니,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夫爵髙者人妬之, 官大者主惡之, 禄厚者怨歸之, 此之謂也)"라고 하였다.
이에 손숙오가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다. 나의 작위가 더욱 높아질수록 나의 뜻을 더욱 낮게 내렸고, 나의 관직이 더욱 높아질수록 나의 마음은 더욱 소심하게 조심하였고, 나의 복록이 더욱 두터워질수록 나의 베풂은 더욱 넓어졌다. 따라서 이 세 가지 근심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不然. 吾爵益髙, 吾志益下, 吾官益大, 吾心益小, 吾禄益厚, 吾施益博, 可以免於患乎)"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韓詩外傳 卷7)
▶️ 居(살 거, 어조사 기)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주검시엄(尸; 주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古(고; 고정시키는 일,거)로 이루어졌다. 앉아서 거기에 있음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居자는 '살다'나 '거주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居자는 尸(주검 시)자와 古(옛 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古자는 방패와 입을 함께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모양자 역할만을 하고 있다. 居자의 금문을 보면 尸자와 古자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글자의 조합이 마치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는 듯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居자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 '앉다'나 '자리를 잡다'는 뜻을 표현한 글자였다. 하지만 후에 뜻이 확대되면서 한곳에 정착한다는 의미에서 '거주하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居(거, 기)는 ①살다, 거주하다 ②있다, 차지하다 ③처지에 놓여 있다 ④벼슬을 하지 않다 ⑤자리 잡다 ⑥앉다 ⑦쌓다, 저축하다 ⑧곳, 자리, 거처하는 곳 ⑨집 ⑩무덤 ⑪법(法), 법도(法度) ⑫저축(貯蓄) ⑬까닭, 이유(理由) ⑭평상시(平常時), 보통(普通) 때 ⑮살아 있는 사람, 그리고 ⓐ어조사(語助辭)(의문)(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로 살 주(住), 살 활(活), 깃들일 서(栖)가 있다. 용례로는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머물러 사는 거주(居住), 평소에 기거하는 방을 거실(居室), 정해 두고 항상 있는 곳을 거처(居處), 집에서 한가롭게 지냄을 거가(居家), 일시적으로 머물러 삶을 거류(居留), 산 속에 삶을 거산(居山), 보통 때를 거상(居常), 그 땅에 오래 전부터 사는 백성을 거민(居民), 부모의 상을 당하고 있음을 거상(居喪),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며 살아감을 거생(居生), 잠시 몸을 의탁하여 거주함을 거접(居椄), 흥정을 붙이는 일을 거간(居間), 첫째 자리를 차지함이나 두목이 됨을 거갑(居甲), 항상 마음을 바르게 가져 덕성을 닦음을 거경(居敬), 굵고 큰 나무를 거목(居木), 이편과 저편의 사이에 있음을 거중(居中), 사는 마을을 거촌(居村), 머물러 살음이나 어떤 곳에 자리잡고 삶 또는 그 집을 주거(住居), 타향에서 거주함을 객거(客居), 세상을 피해 숨어 삶을 은거(隱居), 무리 지어 삶을 군거(群居), 나가서 활동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있음을 칩거(蟄居), 한 집에 같이 거주함을 동거(同居), 따로 떨어져서 살음을 별거(別居), 살아가는 형편이나 손님을 맞으러 일어남을 기거(起居), 혼자서 삶이나 홀로 지냄을 독거(獨居), 평안할 때에도 위험과 곤란이 닥칠 것을 생각하며 잊지말고 미리 대비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거안사위(居安思危), 사람은 그가 처해 있는 위치에 따라 기상이 달라지고 먹고 입는 것에 의해 몸이 달라진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거이기양이체(居移氣養移體), 학문에 뜻을 두려면 살아감에 편한 것만 구하지 말라는 뜻을 이르는 말을 거무구안(居無求安), 편안한 때일수록 위험이 닥칠 때를 생각하여 미리 대비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안거위사(安居危思), 발이 위에 있다는 뜻으로 사물이 거꾸로 된 것을 이르는 말을 족반거상(足反居上), 죽어서나 살아서나 늘 함께 있다는 뜻으로 다정한 부부 사이를 일컫는 말을 사생동거(死生同居) 등에 쓰인다.
▶️ 官(벼슬 관)은 ❶회의문자로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이; 많은 사람)의 합자(合字)이다. 官(관)은 많은 관리(官吏)가 사무를 보는 곳, 관리(官吏), 관청(官廳)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官자는 '벼슬'이나 '관청'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官자는 宀(집 면)자와 阜(언덕 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阜자는 흙이 쌓여있는 '언덕'이나 '구릉'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언덕을 뜻하는 阜자에 宀자가 결합한 官자는 '높은 곳에 지어진 집'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전에는 官자가 나랏일을 하던 '관청'을 뜻했었다. 나랏일을 하는 관청을 높은 곳에 지어진 집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후에 官자가 '벼슬아치'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食(밥 식)자를 더한 館(객사 관)자가 '관청'이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官(관)은 (1)일정한 직책을 맡은 군인(軍人)이나 일정한 직위에서 일하는 공무원(公務員)임을 나타내는 말 (2)관청(官廳) (3)관청(官廳)의, 관청(官廳)에 딸린의 뜻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벼슬, 벼슬자리 ②벼슬아치 ③마을 ④관청(官廳), 공무(公務)를 집행(執行)하는 곳 ⑤기관(機關) ⑥일, 직무(職務) ⑦임금, 아버지, 시아버지 ⑧관능(官能), 이목구비 등 사람의 기관 ⑨본받다, 기준(基準)으로 삼아 따르다 ⑩직무(職務)로서 담당하다, 관리하다 ⑪벼슬을 주다, 임관하다 ⑫섬기다, 벼슬살이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벼슬 위(尉), 벼슬 작(爵),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백성 민(民)이다. 용례로는 국가공무원이나 관직에 있는 사람을 관리(官吏), 관리들이나 특수한 권력을 가진 관리들을 관료(官僚), 관리들이 나랏일을 맡아보는 기관을 관청(官廳), 나라 일을 보던 집을 관가(官家), 관리의 직제나 직무나 벼슬을 관직(官職), 높은 관리가 살도록 정부에서 관리하는 집을 관저(官邸), 국가의 각 기관 또는 그 관리의 사회를 관계(官界), 관가의 계집종을 관비(官婢), 예전에 벼슬아치들이 모여 나랏일을 처리하던 곳을 관아(官衙), 나라의 관리가 맡아 다스리는 정치를 관치(官治), 정부에서 직접하는 경영을 관영(官營), 수령의 음식을 만들던 곳을 관주(官廚), 한 관청의 으뜸 벼슬을 장관(長官), 장관을 보좌하고 그를 대리할 수 있는 별정직 공무원을 차관(次官), 거세된 남자로 궁정에서 사역하는 내관을 환관(宦官), 법원에 소속되어 소송 사건을 심리하여 법률 상의 해석을 내릴 권한을 가진 사람을 법관(法官), 군인의 신분으로서 군사 관계를 맡아보는 관리를 무관(武官), 군인의 신분이 아니면서 군사에 관련된 행정 사무를 보는 관리를 문관(文官), 잘 다스려서 이름이 난 관리를 명관(名官), 먼젓번의 수령을 구관(舊官), 윗자리의 관원을 상관(上官), 통역하는 일을 맡은 관리를 역관(譯官), 관리는 높고 귀하며 백성은 낮고 천하다는 사고 방식을 이르는 말을 관존민비(官尊民卑), 관가 돼지 배 앓는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자기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 당하는 고통을 이르는 말을 관저복통(官猪腹痛), 벼슬자리에 오래 있으면 저절로 부자가 된다를 이르는 말을 관구자부(官久自富), 오랫동안 벼슬을 함을 이르는 말을 관불이신(官不移身), 관가에서 신문을 받는 사람이 관원에게 욕설을 하며 덤비는 행동을 이르는 말을 관정발악(官庭發惡), 관귀가 발동하여 이롭지 못하다를 이르는 말을 관귀발동(官鬼發動) 등에 쓰인다.
▶️ 莅(임할 리)는 형성문자로 涖(리/이), 𦲷(리/이)와 동자이다.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位(위→리)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莅(임할 리)는 ①임하다(臨--: 어떤 사태나 일을 대하다) ②참가하다(參加--: 당사자 이외의 제삼자가 관여하다) ③다스리다, 군림하다(君臨--: 어떤 분야에서 절대적인 세력을 가지고 남을 압도하다) ④집행하다(執行--: 실제로 시행하다) ⑤빨리 나는 모양 따위의 뜻이 있다. 통자로는 位(자리 위, 임할 리/이), 䇐(임할 리/이) 등이다. 용례로는 새로 부임하여 사무를 봄을 일컫는 말을 이임(莅任), 감독에 임하기 위하여 현지에 나가거나 나옴을 일컫는 말을 감리(監莅), 참형을 당함을 일컫는 말을 이참(莅斬), 나라를 다스림을 일컫는 말을 이국(莅國), 벼슬아치가 임지에 이름을 일컫는 말을 이임(莅任), 여러 벼슬자리를 두루 거침을 일컫는 말을 이력(莅歷), 신이 하늘에서 인간세상으로 내려옴을 일컫는 말을 내리(來莅), 관직에 나아가선 정사의 제자리에 서야 한다를 이르는 말을 거관이정(居官莅政) 등에 쓰인다.
▶️ 政(정사 정/칠 정)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등글월 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正(정)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등글월 문(攵=攴)部는 막대기를 손에 쥐다, 물건을 치는 일을 뜻하고, 등글월문(攵=攴)部가 붙는 한자는 '~하다', '~시키다'의 뜻을 나타낸다. 음(音)을 나타내는 正(정)은 征(정)과 통하여 적을 치는 일, 政(정)은 무력으로 상대방을 지배하는 일, 나중에 正(정)은 바른 일, 政(정)은 부정한 것을 바로 잡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정치는 부정을 바로잡고 정치가는 먼저 몸을 바로 가지면 세상도 자연히 다스려진다고 설명된다. ❷회의문자로 政자는 '다스리다'나 '정사(政事)'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政자는 正(바를 정)자와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正자는 성(城)을 향해 진격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바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바르다'라는 뜻을 가진 正자에 攵자가 결합한 政자는 '바르게 잡는다'라는 의미에서 '다스리다'나 '정사'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政(정)은 ①정사(政事), 나라를 다스리는 일 ②구실(온갖 세납을 통틀어 이르던 말), 조세(租稅) ③법(法), 법규(法規), 정사(政事)를 행하는 규칙(規則) ④부역(負役), 노역(勞役) ⑤벼슬아치의 직무(職務)나 관직(官職) ⑥정사(政事)를 행하는 사람, 임금, 관리(官吏) ⑦가르침 ⑧확실히, 틀림없이, 정말로 ⑨바루다, 부정(不正)을 바로잡다 ⑩치다, 정벌(征伐)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다스릴 치(治)이다. 용례로는 국가를 다스리는 기관을 정부(政府),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꾀하는 방법을 정책(政策), 국가의 주권자가 국가 권력을 행사하여 그 영토와 국민을 다스리는 일을 정치(政治), 정치의 국면을 정국(政局), 정치 상으로 의견이 달라 반대 처지에 있는 사람을 정적(政敵), 정치 상의 의견이나 정치에 관한 식견을 정견(政見), 정치 상의 명령 또는 법령을 정령(政令), 정치 상의 사무를 정무(政務), 나라의 정사를 국정(國政), 정치나 사무를 행함을 행정(行政), 헌법에 따라 하는 정치를 헌정(憲政), 백성을 괴롭히는 나쁜 정치를 악정(惡政), 포악한 정치를 폭정(暴政), 가혹한 정치를 가정(苛政), 백성에게 심히 구는 포학한 정치를 학정(虐政), 백성을 잘 다스림 또는 바르고 착하게 다스리는 정치를 선정(善政), 너그럽게 다스리는 정치를 관정(寬政), 둘 이상의 정당 대표들로 조직되는 정부를 연정(聯政), 정치의 방법을 그르침 또는 잘못된 정치를 실정(失政), 나라의 정무를 맡아봄 또는 그 관직이나 사람을 집정(執政), 정치에 참여함을 참정(參政), 두 나라의 정치가 서로 비슷함을 이르는 말을 정여노위(政如魯衛), 정이라는 글자의 본뜻은 나라를 바르게 한다는 것임을 이르는 말을 정자정야(政者正也), 문외한이 정치에 관하여 아는 체하는 사람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정출다문(政出多門), 코 밑에 닥친 일에 관한 정사라는 뜻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먹고 살아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비하정사(鼻下政事), 저마다 스스로 정치를 한다는 뜻으로 각각의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전체와의 조화나 타인과의 협력을 생각하기 어렵게 된다는 말을 각자위정(各自爲政), 여러 가지 정치 상의 폐단을 말끔히 고쳐 새롭게 한다는 말을 서정쇄신(庶政刷新), 새로운 정치를 베풀어 얼마 되지 아니한 때라는 말을 신정지초(新政之初), 남의 나라 안 정치에 관하여 간섭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내정간섭(內政干涉), 대화합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화합하면 이기고 그렇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을 태화위정(太和爲政)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