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1장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 오실 때에 시장하신 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20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 나무가 곧 마른지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 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예수께서 이른 아침에 베다니를 떠나 성으로 들어오시는 길에, 배도 고프고 하셔서, 길 가에 무화과나무를 발견하고 열매가 있나 보니,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화가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 하셨다.
예수께서 심술이 많으신가?
무화과 나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제자들이 무화과 나무가 저주받아 마른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하고 묻는다.
먼저 아래 21절 22절에 연결 되 있는 말씀 내용이 좀 모호하다.
그러면 말씀을 한번 읽어 보자.
21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자! 믿고 의심하지 않으며, 기도 열심히 해서 구하면, 무화과 나무 마르게 하는 기적 뿐만 아니라, 산이 들려 바다에 던지는 기적까지, 일으킬수 있다는 말인가?
인류역사상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기도 열심히 해서, 이런 기적을 일으킨 사람 있는가?
산은 커녕, 아무리 믿고 기도 해도, 돌맹이 쪼가리 1센티도 움직일수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다.
본 주제 구절에 대한 해석을, 거의 모두 구원받은 자가, 열매맺는 삶을 살지 못하면, 찍혀버리고 버림받게 된다 즉, 구원을 다시 잃어 버리게 된다는, 행위구원으로 돌아 가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어느 정도 이해할수 있는 부분은, 그 주장을 뒷받침 할수 있는 구절이 수두룩 하다는 것이다.
실례로 몇구절 소개하면, 눅3:9, 롬11:21, 요15:6, 마7:19등, 수도 없이 많다.
모두 좋은 열매 맺지 않으면, 찍혀 불사른다라는 내용이다.
이런 구절들은 문맥에 따라 올바른 해석을 해야 한다.
행위 구원론자들이 아무리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받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런 구절 붙들고, 다시 열매 맺어야 구원을 이룰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필자의 관점은 무엇인가?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면..
일단 두가지 측면으로 말하고 싶다.
첫째가, 예언적인 측면과, 둘째, 구원론적인 측면이다,
무화과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 백성, 즉, 유대인을 상징한다.
눅 13장 비유 말씀을 보자.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예수께서 3년이나 복음을 전했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은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유대인의 멸망을 예언하신 것이다.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AD70 년경 로마의 디도 장군에게 멸망 당한다.
그리고 디아스포라로, 나라 없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살다가, 1948년 다시 독립 국가를 세우게 된다.
이것은 정치적 회복이지 영적 회복은 아직 이루어 지지 않았다.
성경 곳곳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고 있는 구절들이 많다.
롬 11장
25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 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위의 말씀은 마지막때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받아들이는 명확한 말씀이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는
마21:19에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다시 회개의 기회가 없고 멸망당한다는 말씀인데, 성경에 이스라엘이 회복한다는, 수많은 명확한 말씀과 맞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버림받고 멸망당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외형적으로 그들만큼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 나라는 없을 것이다.
버림받은 이유를 말씀에서 찾아 보자.
롬 10장
2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좆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값없이 구원받았다고 말하면서도, 열매를 맺지 않으면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똑같이,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을 거부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 버림받고 멸망, 즉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다.
구원을 받았다가, 열매를 맺지 못해, 버림 받은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열매,즉, 예수의 생명이 없어,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에 구원받았다가 열매를 맺지 못해 구원을 잃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마태21장19절 영원토록 열매맺지 않게 하신다는 말씀을 유대인에게만 적용한다면, 그들의 주장은 엉터리가 되는 것이다.
왜냐면, 유대인들은 처음부터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에, 열매맺지 못해, 구원을 잃고 말고 할 것이, 없는 것이다.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속에 열매 즉, 예수의 생명이 없는 것이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이 잎사귀만 무성하다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없는 인본주의, 율법주의, 행위구원론자를 말한다.
아담,하와가 범죄 후 죄를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잎을 엮어서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
이것이 스스로 죄를 가리는 율법주의 인본주의, 행위구원론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다.
가죽옷은 예수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한다.
죄를 가리기 위해서는 예수의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토록 열매 맺지않게 저주받는 자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모든 율법주의자, 행위 구원론자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성경을 해석할때 모순되는 점이 있는 것처럼 보일때는, 말씀의 중첩성을 생각해야 한다.
예언도 과거 현재의 예언 같지만, 미래의 예언이 중첩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또 한 구절 말씀에서, 예언, 교훈, 구원론이 중첩되는 경우도 있고, 구원론에서도, 한 대상에게 말하는 것 같지만, 포괄적으로 모든 대상이 포함 되는 경우도 있다.
유대인에게 말씀하시는데, 암묵적으로, 이방인까지 포함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경우도 많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성경해석을 할때 모순점이 생기면, 이러한 중첩성을 고려해야 하며, 다소 비약적으로 보일지라도, 그러한 해석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하나님 말씀은 진리이지만, 우리가 해석을 할때는, 공식에 대입해서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뜻을 깨닫는 것이다.
결론은, 첫째, 예언론적인 측면에서 말하면, 예수께서 애꿋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시장하시다는 것은, 메시야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한, 영적인 배고프심을 말한다.
둘째, 구원론적인 측면에서 보자.
무화과 나무는 잎이 나오기전에 열매부터 나온다.
잎이 무성할때 열매가 익어서 먹을수가 있다.
잎만 무성하면 쓸모가 없는 것이다.
잎이 풍성한 것 처럼 자신의 노력이 풍성해도 속에는 열매가 없다.
열매는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다.
외적으로 율법을 잘 지켜 얻는 열매가 아니라 내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는 믿음의 열매가 있어야 한다.
롬 4장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23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무화가 나무가 마른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율법의 열매가 아니라 믿음의 열매가 열려야 한다.
유대인들의 율법주의 뿐만 아니라, 오늘날 모든 행위 구원론자를 포함해서, 그들에게 영원토록 열매 맺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마지막때 대대적으로 회개 하지만, 개별적으로 볼때, 회개하지 않은 유대인들은 영원토록 버림 받는다.
또한, 오늘날 율법주의 인본주의, 행위구원론적인 주장을 하는, 이방인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를 거절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를 거절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영원토록 구원얻지 못한다는, 경고의 말씀이시기도 하다.
롬 6장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