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 그 세속에 물들지 않는 삶 (약1:26-27)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 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26-27)
오늘의 본문에서 참된 경건의 삶이 무엇인가를 묻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뭔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이고, 그것을 나타내는 가장 좋은 표현, 알맞은 표현이 ‘경건하게 사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터인데 그렇다면 경건의 삶이란 도대체 어떤 삶인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야고보서 저자는 먼저 말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참된 경건이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것이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속에 물들지 말라'고 했을 때 세속이란 세상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세상 정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속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테레인)이라 할 때, 그 지킨다는 표현은 어떤 물건이나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감시하고 보호하고 지켜낸다는 뜻이 있지만, 종교적 율례나 의례들을 규칙적으로 준수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만일 종교적 율례나 의례들을 규칙적으로 준수한다는 의미를 염두에 두었다면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 백성들이 신앙생활의 외적인 요구 사항들을 지키는 것으로 스스로 경건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든지 세상 속에 있든지 모든 더러운 것들과 악한 것들에서 자신을 지킴으로써 비로소 경건해진다고 말하는 셈이 됩니다. 따라서 정말 지켜야 할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적 행위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고 야고보 사도는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가 세속에 물들기 너무나 쉬운 시대입니다. 세속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을 몰아내고 우리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세속주의입니다. 그래서 세속주의란 결국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버리고 우리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기중심적인 욕망과 욕구를 따라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세속주의는 이런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욕망 즉, 이 세상에서 사는 것, 눈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합니다. 딤후 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즉, 안일을 사랑하고 세상의 부요와 지위와 소위 거만과 세상의 외모를 사랑하는 것,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그것입니다.
요일2:15-17“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적(세속적)이라는 것은 세상의 가치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대적하는 세상을 좇아가는 것, 하나님을 배격하며 자신을 높이고 기뻐하는 것, 하나님의 규칙을 인간의 것으로 대체하는 것, 하나님의 진리보다 인간의 의견을 숭상하는 것, 타락한 세상에 있는 것들을 갈망하는 죄악 된 욕망을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보다 더 높은 곳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세상의 세속적인 가치에서 우리를 지켜내는 것이 바로 경건한 삶입니다.
■ 우리가 어떻게 세속적인 가치에서 우리를 지켜 낼 수 있을까요?
1. 혀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26절에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경건하다고 하면서 자기 혀를 재갈물리지 않으면 헛된 경건’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찬송을 부르고 예배에 많이 참여한다 할지라도 혀를 다스려 말을 삼가하지 않으면 헛된 경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건한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혀를 다스리고, 말을 삼가야 합니다. 심지어 말을 삼가기 위해서는 혀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혀에 재갈을 물린다’는 것은 오늘날 기계적인 용어로 하면 ‘혀에 브레이크를 달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27절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라고 행하라고 권했습니다. 왜 하나님 앞에서 있다는 마음과 자세로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아야 모든 행동을 조심스럽게 합니다.
2. 이웃, 즉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봄으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27절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경건한 삶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야 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경건한 삶은 내적인 모습으로부터 다른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외적인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헬라어 '파라토 데오'는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편에 서서'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평가방법으로 사람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고보는 내적인 경건 생활에서 비롯되는 외적인 경건 생활의 모습에 대하여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아보고'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특별히 두 부류의 대상만을 언급하고 있으나 그 외의 다른 부류인 나그네나 병든 자, 가난하고 갇힌 자 등을 제외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이들은 한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하는 사랑의 대상들입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자신과 자기 가족들뿐만 아니라 혈연을 넘어서 자신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적극적으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경건이 외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경건의 열매입니다.
2.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어야 합니다.
27절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아담과 하와 범죄 이후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는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죄악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세속은 바로 이런 죄악 물든 세상을 말합니다. 세상의 습관, 세상의 가치, 세상의 문화입니다. 세속주의로 나가는 방향은 그 속도가 매우 느립니다. 마치 가랑비에 온 몸이 흠뻑 젖듯이 그렇게 젖어 듭니다. 우리가 매일 보고 듣는 것이 조금씩 우리의 마음에 쌓이고 쌓여서 어느새 우리는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우리를 무장하게 됩니다. 또 세속적인 가치관은 우리가 세속적인 가치관에 끊임없이 노출 될 때 형성됩니다. TV, 라디오, 영화, 등의 매체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세속적인 가치관을 우리에게 공급합니다. 사람들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뉴스를 접하고, 드라마를 보고, 영화나 노래를 따라 하다 보면, 어느 새 우리는 세속적인 가치들로 물들게 됩니다. 이런 가치와 습관과 문화에 물들이지 않고 자신을 잘 지키는 것이 바로 참된 경건입니다. 세상에 물들지 않기 위해 과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는 세상과 떨어져 은둔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자신을 지키는 것,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은 세상과 떨어져 은둔생활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생활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를 행하는 생활이 경건생활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불의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읽기를 소홀히 할 수 없으며 말씀 앞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생활이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 경건한 생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결론>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경건을 따르는 생활입니다. 경건의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삼가야 할 것을 삼가 하며 행해야 할 것을 행하는 생활이야말로 경건 생활의 표준입니다. 입으로 외치며 입으로만 자랑하는 경건 생활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 생활을 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이 세상의 시민이 아니라 천국의 시민입니다. 산 물고기가 물을 거슬어 올라가듯이 살아 있는 신앙은 세속에 거스리는 삶입니다. 도도히 흐르는 세속의 물에 우리를 맡기지 말고 마음을 지키고 생각을 지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