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도의 대부분은 부러워하는 것들의 나열입니다. 부러워하는 것이 기도의 내용입니다. 재벌이나 자본가를 부러워하면 돈을 기도하고, 권력자를 부러워하면 권력을 기도하고, 유명한 사람을 부러워하면 명성을 기도합니다.
때로 자본가가 부럽고, 때로 권력자가 부럽고, 때로 유명한 사람이 부럽습니다. 부럽지만 차마 기도하진 않습니다. 옛날 제자들도 이것저것 부러운 게 많았지만, 부러움으론 차마 기도할 수 없었나 봅니다. 예수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냐고 물어봅니다. 「주님, 저희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세요.」(눅11:1)
예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아버지, 하ᄂᆞ님 이름이 높임받으시기를 빕니다. 하ᄂᆞ님나라가 오기를 빕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먹을 것을 날마다 주십시오. 또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서 없애 주십시오. 우리 스스로도 우리에게 빚진 사람 모두에게서 없애 줍니다. 또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시오.」(눅11:2~4)
기도의 내용을 보건대 우리가 부러워하는 것과 주님의 기도 사이엔 제법 큰 틈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것들의 집합과 예수께서 기도하기를 바라시는 것들의 집합 사이에 교집합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셨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대로 기도하진 않습니다.
단 것을 ‘좋은 것’인 줄 착각하고 재밌는 것만을 부러워하는 아이처럼, 보통 사람은 돈이 좋은 것인 줄 착각하고, 명성 높은 이를 선망하고, 권력 지닌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망하고 부러워하는 것은 ‘아버지·어머니’이신 하ᄂᆞ님의 뜻과 다르기 십상이고,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없습니다. 예수께선 이런 간격을 아시고, ‘어머니·아버지’이신 하ᄂᆞ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은 ‘생선’이나 ‘알’인데 우리가 구하는 것은 ‘뱀’이나 ‘전갈’이라고 은유하셨습니다.(눅11:11~12) 우리는 좀처럼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좋은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눅11:13)
‘뱀’이나 ‘전갈’은 사막에서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예수와 제자들은 세례요한과 요한의 제자들을 알고 있었고(눅11:1) 그들은 사막에서 동굴을 파고 기도했던 에세네파Essenes로 추정됩니다. 사막에 흔한 ‘뱀’이나 ‘전갈’은 위험할 뿐 소용없는 것들입니다. 세례요한과 그 제자들이 사막에서 기도하면서 아무 소용 없는 ‘뱀’이나 ‘전갈’을 달라고 기도하진 않았겠지요. 사막에 없는 것, ‘생선’과 ‘알’을 달라고 기도했겠습니다.
기도하는대로 하ᄂᆞ님께서 주신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눅11:9~10) 사막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기도한대로 하ᄂᆞ님께서 ‘생선’과 ‘알’을 주신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강이 흘러야 '생선'이 있고, 숲이 우거져야 '알'이 있습니다. 사막에서 기도하거든, 사막에 강이 흐르고 숲이 우거지길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나와 우리 이웃이 사는 자리가 사막 같거든, 거기 사막에 강이 흐르고 숲이 우거져, 사막에 사는 사람들도 ‘생선’을 잡고 ‘알’을 주울 수 있는 세상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막에 강이 흐르는 게 하ᄂᆞ님 뜻이니까요. 사막에 숲이 우거지는 게 하ᄂᆞ님 뜻이니까요.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할 것이다. 사막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크게 기뻐하며, 즐겁게 소리 칠 것이다.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영화가, 사막에서 꽃 피며,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며, 우리 하ᄂᆞ님의 영화를 볼 것이다.」(사35:1~2)
사막 같은 세상으로 하ᄂᆞ님나라가 오시는 것이 하ᄂᆞ님 뜻입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과 그 제자들이 기도했을 이상을 생각하며, 당신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며 하ᄂᆞ님 뜻을 펴셨습니다. 하ᄂᆞ님 뜻을 되새기며, 그 뜻이 이루어질 것을 기다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한 문장 한 문장 새겨읽습니다.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고,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십시오.」(눅11:2) 로마 황제의 이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고, 점령하고 정복하여 이룩한 평화Pax Romana가 아니라 공평한 분배를 통하여 세워진 정의로운 나라가 땅에 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십시오.」(눅11:3) ‘잉여생산’으로 토지가 독점되고 자본이 축적되는 세상은 ‘자본’과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사막입니다. 사막 같은 세상에서도 믿는 사람들이 ‘일용할 양식’으로 충족할 능력을 갖는 게 하ᄂᆞ님 뜻입니다.(빌4:11~13)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우리가 용서합니다.」(눅11:4) 토지와 자본을 독점한 사람들에게 ‘빚’을 져 ‘죄’짐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빚을 탕감 받고 ‘자유’를 누리는 게 하ᄂᆞ님 뜻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눅11:4) 사막 같은 세상에서 ‘시험’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부와 명성과 권력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 하ᄂᆞ님 뜻입니다.(마4:1~11)
사막 같은 세상으로 하ᄂᆞ님나라가 오셔서, 빚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자유를 얻고, 여러 유혹에 취약한 사람들이 예수님처럼 시험을 이깁니다.
유혹에 취약하기에 우리는 기도합니다,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졸라대’듯 기도하면 가능하다 하십니다. 이게 될까 싶은데, ‘졸라대’듯 하ᄂᆞ님나라를 초대하고, 평등한 세상을 요구하면, 약하고 악한 인간도 유혹에 끌려가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맞이합니다.(눅11:5~8) 기도를 들으시는 하ᄂᆞ님이 ‘아버지·어머니’이시기 때문에 기도는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하십니다.(눅11:11) 기도 첫 머리에 ‘어머니·아버지’를 부르는 이유입니다.(눅11:2)
‘아버지·어머니’에게 ‘졸라대’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정의와 공평과 자유가 만나 여울을 이루는 강물이 됩니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기도하는 사람이 정의과 공평과 자유가 빽빽이 우거진 숲이 됩니다. 사막에 강물이 흐르고, 사막에 숲이 우거지기를 ‘졸라대’듯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는 우리에게 진정 ‘좋은 것’이 닥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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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을 소유하기보다 흐르는 강물이 되라 하십니다. 알을 소유하기보다 우거진 숲이 되라 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한대로 변화됩니다. 흐르는 강물이 됩니다. 우거진 숲이 됩니다. 흐르는 강물이어서 물고기가 헤엄쳐오고, 우거진 숲이어서 새가 날아드는 존재가 되라 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소유한 사람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사람입니다.(출3:14) 사막 같은 세상에 살아도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흘려보내는 사람, 사막 같은 세상에 살아도 숲을 우거지게 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내가 사는 곳이 좋은 세상 아니더라도, 내가 좋은 사람이고 싶습니다. 세상이 그저 그래서 사막을 사는 내 곁의 사람들이 흐르는 강물 사이를 헤엄치고, 우거진 숲을 날 듯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ᄂᆞ님, 또 어머니 하ᄂᆞ님
어머니 하ᄂᆞ님, 또 아버지 하ᄂᆞ님
내가 아는 가장 따뜻한 이름으로 하ᄂᆞ님을 부릅니다
내가 아는 가장 미운 이름으로 하ᄂᆞ님을 부릅니다
하ᄂᆞ님 앞에 여전히 우리는 아이 같아서
세상 속에서 아직도 우리는 작은 까닭에
작은 아이가 기억하는
가장 따뜻하거나 가장 미운 이름으로 하ᄂᆞ님을 부릅니다
하ᄂᆞ님, 당신의 이름을 스스로 증명하소서
하ᄂᆞ님나라를 이루셔서, 당신 이름을 증명하소서
우리 필요한 것을 채우셔서, 당신 이름을 증명하소서
우리 사는 세상에 뜻을 이루시어, 당신 이름을 증명하소서
우리를 유혹으로부터 건지셔서, 당신 이름을 증명하소서
우리 모든 빚을 탕감하심으로, 당신 이름을 증명하소서
가장 따뜻하고, 가장 미운
하ᄂᆞ님 아버지, 또 하ᄂᆞ님 어머니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소서
사막같은 세상에서 당신마저 죽임당해
막막하고 망연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소서
지금부터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