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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동계 국토순례>
월성중학교 2학년 6반 김민욱
제 1장.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땅. 순천을 가다.
날씨가 쌀쌀한 1월의 겨울. 아침햇살이 고수부지 앞 선도산에 비춰진다. 이런걸 선도효색이라 부르는 것일까? 이번 국토순례 참가자들이 모두 모여서 버스에 탄다. 출발하기 전 간단한 인원파악을 하고 선생님들께서 한마디씩 하셨다. 이번 국토순례에는 권종훈 선생님을 비롯하여 류우현 선생님, 권혁대 선생님, 교장 선생님께서 함께 가신다. 그렇게 40명에 가까운 사람을 싣고 버스는 순천으로 달린다.
두개의 휴게소를 지나 몇시간을 달리니 드디어 순천에 도착했다. 순천은 아래로 순천만을 끼고 있어서 일명 생태수도라고 불리는 도시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조류들이 매년 겨울만 되면 철새가 되어 순천으로 날아와 머무르고 간다. 우리의 첫번째 목적지가 순천만이라 기대가 더욱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원형이 잘 남아있는 읍성들 중 하나인 낙안읍성,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하나인 승보사찰, 송광사도 있어서 역사적으로도 꽤 중요한 도시임을 알 수 있다.
버스에서 내려 순천만 입구에서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순천만을 향해 간다. 처음에는 잔디밭하고 매점 비스무리한 것만 나와서 갯벌이나 늪지대 같지 않았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자 드디어 엄청난 순천만 갈대밭이 드러났고 생각은 달라졌다. 정말 무장산 억새밭과는 비교도 않될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중간 중간 두루미, 기러기, 오리 등 여러 새들이 보였다. 정말 생태수도라는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일행에 비해 조금 뒤쳐져 있어 빨리 가야 했지만 도저히 이런 풍광을 빠른 걸음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역시 순천만, 정말 아름답다.
(순천만. 정말 입이 안 다물어 진다. 오른쪽 긴 줄이 우리 일행.)
(갈대. 꼭 이어붙여넣기 한 것 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다.)
(순천만 뻘. 배는 아마도 물이 들어오면 순천만 일대를 떠다닐 것 같다.)
순천만에서 우리의 목적지는야트막한 산인 용산 꼭대기에 있는 용산전망대. 그리하여 순천까지 와서 원정산행을 하게 된다. 중간에 길이 두갈래로 갈라졌는데 한쪽은 명상의 길, 한쪽은 다리아픈 길로 표시되어 있었다. 일행하고 떨어져 있어서 재홍이와 나는 아마도 권종훈 선생님이시라면 다리아픈 길로 가셨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그 길로 갔다(나중에 두 길 모두 이어져 있는 것을 보고 조금 허탈했다). 그렇게 계속 걷다보니 용산전망대 바로 앞에서 일행들이 우루루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바쁘게 전망대로 갔다.
(길 가다가 본 순천만. 강을 중심으로 왼편에 '2013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라고 적혀있다.)
우여곡절 끝에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만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둥글둥글한 뻘들이 강을 따라 펼쳐져 있고 마침내 바다로 만나는 지점. 섬도 아니고 땅도 아닌 것이 뻘위에 마치 섬처럼 자라나고 있는 갈대들. 어떻게 이런 광경이 만들어졌는지 정말 궁금하다. 왜 이런 곳이 유네스코세계자연유산이 않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답사할 때 마다 자연은 정말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순천만 일대. 도데체 어떤 말로 이 풍광을 표현할 수 있을까?)
순천만은 저녁놀이 질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꼭 다시 저녁놀이 질 때 오고 싶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다시 버스를 타고 두번째 장소인 낙안읍성으로 간다. 낙안읍성은 고려 말 왜구들의 침입에 방어하기위해 축조된 성이다. 처음에는 토성으로 만들어졌다고 후에 와서 석성으로 다시 쌓아졌다. 정방형으로 되어있는 읍성은 평지에 세워져있고 총길이는 1410m이다. 지금 한창 복원공사 중인 경주읍성의 길이가 약 2300m인 것을 감안했을 때 그렇게 큰 성은 아니다. 또한 문 앞에 치성을 둘러서 적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문은 동, 남, 서문 뿐으로 북문은 불길하다 여겨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읍성 내 마을은 양동 민속마을이나 하외마을처럼 양반가문의 마을이 아니라 일반 평민들의 집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다른곳에 비해 유난히 초가집이 많은 것이 정이 많이 간다. 참고로 여기 낙안읍성은 한 때 여진족(청)을 벌벌 떨게 했던 임경업장군이 수령으로 있던 곳이어서 그의 비가 남아있다.
(낙안읍성 동문, 낙풍루. 앞에 있는 것은 개(석구)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낙풍루 앞에서 단체사진. - 류우현 선생님 사진제공)
본격적으로 낙안읍성 답사를 시작한다. 길을 따라 가는데 수많은 초가집들이 보인다. 정말 기와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 중간 쯤 오자 관아가 보이고 그 앞에 멋진 누각이 하나 나타난다. 여기가 바로 낙안읍성의 중심인 것 같다. 관아는 최근에 복원했다고 한다.
(낙민루와 관아. 오른쪽 건물이 관아이며 앞의 커다란 단일건물이 낙민루이다.)
낙안읍성 끝에 다다르자 성벽위로 올라가는 길이 나왔다. 그리하여 성벽을 따라 낙안읍성을 보았다. 성벽아래로 펼쳐져있는 낙안읍성 안 마을은 마치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했다.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초가집에 널려있는 빨래감들, 가마솥에서 나오는 김, 정말 문화재보호와 그 성격을 살리는 것, 두가지를 모두 잘 살린 완벽한 민속마을이란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 같은데 보면 종이나 불상 등을 다져온 경우가 많은데 아무리 보호가 중요하다고 해도 종은 쳐야 그 빛을 바라고 불상도 그 자리에 있어야 그 빛을 발하는 법이다. 여기 낙안읍성은 정말 내 생각처럼 된 것 같다. 보존을 위해 집에 담장을 두르고 못 들어가게 하는 것 보다는 사람을 살게헤 집을 생기있게 유지하는 것, 그 것은 보호뿐만 아니라 보전을 통해 후손들에게도 우리 조상들의 삶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진정한 문화재사랑이라고 생각된다.
(성벽에서 바라본 낙안읍성. 중앙의 동문과 오른쪽 정말 조그마하게 남문이 보인다.)
낙안읍성을 떠나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장소인 송광사로 향한다. 송광사는 불보사찰 통도사, 법보사찰 해인사와 더불어 승보사찰로서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하나다. 송광사는 신라말에 창건되었으며 지눌이 조계종을 창시하면서 여기를 수선사라 칭하고 그의 뜻을 펼치면서 대찰로 중창되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불교 종파인 조계종은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산 이름도 조계산이다. 최근에 들어서는 불교계의 성인으로 불리우시던 법정스님께서 길게 머무르시던 불일암이 있고 법정스님에 버금가시는 구산스님역시 기거하셨다고 한다. 또한 송광사가 승보사찰이다 보니 고려시대에도 16국사를 배출했고 지금도 수많은 스님들이 여기 송광사를 거쳐가고 수련한다. 또한 국제적으로도 많은 외국인 스님들이 기거하시며 수련하는 곳이기도 하다. 송광사는 그리고 해인사, 통도사, 백양사, 수덕사와 더불어 강원, 선원, 율원, 염불원을 모두 갖춘 총림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해인사, 통도사, 화엄사, 범어사와 더불어 한국 5대사찰로도 불린다.
(송광사 가는 길. 빙판길이라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송광사 입구에는 홍교(虹橋)가 나온다. 절에 이렇게 홍교를 배치한 경우는 그렇게 많지가 않는데 다른 곳의 대표적인 곳으로는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와 연화교, 칠보교가 있다.
(송광사 입구의 홍교. 현판에는 익화각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전각 이름은 우화루.)
(홍교에서 보이는 누각. 물 위에 있어서 여름에 쉬기는 정말 좋을 것 같다.)
홍교를 지나고 천왕문을 나서면 비로서 송광사가 나온다. 정면에는 거대한 대웅보전이 있는데 누구나 척 보면 무척 건물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대웅보전이 이중누각으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면 건물이 버금아(亞)자 형태로 만들어져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형태의 건물은 아마 송광사 대웅보전이 유일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건물은 오래된 것은 아니고 6.25 후 상당히 파괴된 송광사를 구산스님이 대대적으로 보수를 하면서 이런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물론 이 십자(버금아)모양 역시 구산스님께서 디자인 하신 거라고 한다. 그리고 108번뇌를 의미하는 뜻에서 대웅보전의 총 면적은 108평이다. 그리고 내부에는 특이하게도 과거의 부처 연등불, 현세의 부처 석가모니불, 미래의 부처 미륵불을 모시고 있고 관음, 지장, 문수, 보현보살이 협시보살로 모셔져 있다.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불을 함께 모시는 곳은 역시 드물며 또한 석가모니불 밑에는 남방에서 들여온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역시 승보사찰이란 명칭은 아무나 얻는 것이 아니다.
(송광사 대웅보전. 정말 보기 힘든 양식을 가지고 있는 전각이다.)
(대웅보전 앞에서. - 누가 사진제공한지 까먹음)
계속해서 다른곳을 둘러본다. 그런데 여러 보물들이 안치되어 있는 성보박물관은 문을 닫았고 16국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는 국사전 역시 출입이 불가하다. 절은 넓은데 되게 구경할 곳은 적은 것 같다. 대웅보전 좌측에는 승보전이 있고 그 옆에는 비사리구시라는 나무통이 있다. 여기에는 약 4000명가까이 되는 사람들의 밥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측으로 가면 약사전 등 다른 전각이 나온다. 그 중에서 약사전은 딱 한칸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건물이다. 한칸이란 네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는 공간을 말하는데 한칸이어서 그런지 건물안에 있는 대들보 역시 이 건물에는 없는 것이 특징이다. 송광는 알면 알 수록 다른절과 다른점이 많아서 흥미롭다.
(송광사의 비사리구시. 안에는 사람들이 넣어놓은 동전이나 지폐들이 들어있다.)
(약사전 앞에서 권종훈 선생님께서 설명하고 계신다.)
송광사를 다 둘러보고 송광사 앞에있는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애들은 여관이 좁고 콘센트가 적다며 투덜거린다. 저녁은 그 여관에 딸린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지쳐서 그런지 삼겹살은 꿀맛이었다.
오늘은 오직 순천에서만 머물렀는데 하루로는 모자란 도시 같았다. 순천만의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낙안읍성의 사람들의 삶, 그리고 송광사의 아름다운 불교건축물들이 떠오른다.
순천. 잊을 수 없고 다시찾고 싶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다.
-여정-
황실고수부지→ 통도사휴게소→ 함안휴게소→ 순천만[입구→ 순천만 다리→ 마지막화장실→ 흔들다리→ 다리아픈 길→(여러 전망대들)→ 용산전망대→ 입구]→ 낙안읍성[낙풍루(동문)→ 관아와 낙민루→ 성벽→ 낙풍루(동문)]→ 송광사[입구→ 우화루(홍교)→ 천왕문→ 대웅보전→ 승보전(비사리구시)→ 약사전→ 징검다리→ 입구]→ 숙소(여관)→ 식당→ 숙소(여관)
제 2장. 지구가 만든 최고의 보물. 남해안 일대 답사.
아침에 일어나니 방 꼴이 말이 아니다. 어질러진 쓰레기들, 어젯밤 원화가 짜놓은 치약, 큰센트가 두개밖에 없어서 서로 충전한다고 뽑고 꽂고를 반벅해서 바닥에 널부러진 휴대폰 충전기 등등 일단 간신히 치우고 방을 빠져나왔다. 정말 방주인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참 볼게 많았던 순천을 떠나 이번에는 고성으로 향한다. 고성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공룡발자국 화석, 일명 상족암! 우리는 지금 거기에 도착했다. 상족암을 보기 전에 상족암과 함께 있는 고성공룡박물관에 들렀다. 박물관에 가기 위해서 먼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했다. 단 한번도 답사 중 에스컬레이터를 타본적이 없어서 조금 신기했다. 박물관 내부에는 공룡화석과 여러 공룡에 대한 설명들이 있었다. 한반도는 예로부터 공룡들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공룡관련 화석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많은 공룡발자국화석이 존재한다. 이는 한반도가 공룡이 살았을 때도 매우 풍요로운 땅이었음을 또한 증명한다.
(고성공룡박물관 내부. 거대한 공룡화석이 우리를 반긴다.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가 생각난다.)
밑으로 내려가면 놀이터와 미로공원들이 나온다. 재밌어 보이지만 시간상 전망대로 이동한다. 전망대에서는 고성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특히 중앙에 보이는 사량도에는 지리망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여기서는 지리산이 잘 보인다 하여 지리망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여기등산도 계획에 넣을라 했으나 시간상 취소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왼쪽을 보면 절벽같이 보이는 곳이 나타나는데 여기는 바로 병풍바위다. 작년 경주 양남 읍천마을에 주상절리가 있다고 소개한 바 있었는데 여기 고성 병풍바위역시 주상절리이다. 그리고 병풍바위 옆으로 보이는 섬은 말안장을 닮았다 하여 안장도, 또는 여성의 유방을 닮았다 하여 유방섬이라고도 부른다. 정말 경치가 끝내준다.
(전망대에서 본 한려수도. 왼쪽부터 병풍바위, 안장도(유방섬), 그리고 사량도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상족암으로 향한다. 상족암으로 가던 중 두갈래길이 나왔는데 한쪽은 저번 태풍산바의 영향으로 완전히 망가졌다. 저번 경주에서도 유래없는 홍수와 산사태를 일으킨 무시무시한 태풍이 여기에도 피해를 입혔나보다. 결국 다른쪽으로 내려가보니 거대한 퇴적층과 여러 공룡발자국들이 보였다. 상족암이라는 이름은 바위가 마치 상다리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상족암 안에는 미로처럼 굴들이 뚫려 있었는데 반대쪽으로 나가는 구멍을 찾지 못해 상당히 해맸다. 결국 권혁대 선생님의 지도하에 반대쪽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상족암. 거대한 기암괴석이 우리를 반긴다. 안의 동굴을 탐험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공룡발자국화석. 수천만년전에는 이 발자국을 따라 우리 옆으로 공룡이 지나다녔을 것이다.)
상족암과 공룡발자국화석은 정말 지구가 우리에게 남긴 또 하나의 역사다. 책에 기록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그런 역사가 아닌 바위에 새겨저 버텨온 침묵의 역사. 그 침묵이 인간이 살아온 시대보다 훨신 오래된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반대편으로 나왔고 반대편에는 무너진 산책로와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공룡발자국들도 계속해서 보였다. 단체사진을 찍은 후 다들 백사장에서 물수제비를 뜨며 놀았다. 백장사 뒤에서는 청소년수련관이 있었다. 여름에 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고성 상족암에서 단체사진 - 류유현 선생님 사진제공)
고성공룡박물관을 지나서 이번에는 통영으로 간다. 이번 국토순례에서 가장 먼저 들른 통영의 명소는 성웅 이순신장군으로 모신 사당인 충렬사이다. 이순신장군이라면 전국민이 다아는 우리역사에서 세종대왕과 더불어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세계 4대해전 중 하나인 한산도대첩에서 왜군을 격퇴시켰으며 단 12에서 13척의 배로 왜군 133척의 배를 상대하여 대승을 거둔 명량대첩역시 의 공이다. 무엇보다 세계최고의 전함이라 할 수 있는 거북선역시 이순신장군과 나대용 선생님의 작품이다. 그런 이순신장군의 사당을 가게된다니 기대가 된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자 충렬사 입구가 나왔다. 문만 5개를 지났는데 이는 여기가 그만큼 성스럽고 중요한 사당임을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삼문을 지나 마침내 충렬사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충렬사에서 일하시는 해설사께서 충렬사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충렬사는 사액사당으로서 이순신장군을 모신 전국 수많은 사당 가운데 유일하게 임금이 직접 현판을 내린 중요한 사당이다. 그리고 흥선대원군이 불필요한 세금낭비와 백성들의 고혈을 덜기위해 실시했던 서원철폐령에서도 전국의 이순신장군 사당들이 철페령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유일하게 또 통영 충렬사 만이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남아있는 사당들 중 가장 오래된 사당이다. 충렬사 내에는 이순신장군의 영정과 신위, 그리고 명나라에서 하사했다던 명조팔사품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원래는 신위만 모시지만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영정도 함께 모셨다고 한다. 그리고 양 옆으로 이순신장군이 명나라로부터 하사받은 명조팔사품의 그림, 명조팔사품도가 있다. 여기 그림은 진본이 아니고 진짜 그림은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제자가 그렸다고 할 정도로 매우 뛰어난 작품이라고 한다. 명조팔사품은 밑의 유물전시관에 모셔져 있었다. 정말 일일이 다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이순신장군은 우리역사의 성웅이심은 분명하다.
(통영 충렬사. 성웅을 모신 중요한 장소다. 옆의 해설사께서 설명을 하려 하신다.)
(설명 중이신 해설사. 그리고 해설사께서 설명하시는 것을 경청하는 우리들.)
(충렬사 강한루에서 바라본 통영. 산꼭대기 큰 건물은 세병관으로 추측된다.)
(충렬사 앞에서 단체사진 - 교장 선생님 사진제공)
충렬사를 지나서 점심은 뷔페에서 먹었다. 고생 전 최후의 만찬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음목적지는 미륵도인데 미륵도는 일명 3중교통로로 유명하다. 먼저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 그리고 육지에서 섬으로 가는 배, 그리고 물 밑으로 통하는 해저터널, 이렇게 3중교통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륵도로 가기위해 우리는 해저터널을 이용해 가기로 한다. 통영해저터널은 1932년에 건립된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이다. 원래 통영과 미륵도는 밀물이 들어오면 바다가 되다가 썰물 때가 되면 육지로 연결이 되는 섬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우리를 점령하고 난 뒤 좀 더 빠르게 물자를 이송하기 위해서 운하를 뚫고 밑에 해저터널을 만들었다. 원래는 미륵도와 통영 사이를 판데목이라 불렀는데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에 쫓겨 여기 좁은 목으로 들어왔다가 퇴로가 막히자 땅을 파헤쳐 물길을 뚫어 도망쳤다 하여 그리 부른다. 또 여기서 수많은 왜군들이 죽었다 하여 송장목이라고도 불렀다.해재터널이 뚫린 것이 또 하나의 관광지가 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역사적인 장소가 없어졌다는데 안타까움이 또 느껴진다. 해저터널을 지나면서 보니 요즘도 몇몇 주민분들은 여기를 통해 왕래를 하셨다. 80년이나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차가 없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는 유용한 교통수단이란 것이다. 이런 것을 보고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나보다.
(통영해저터널 입구. 입구에는 용문선양(용문은 터널, 선양은 미륵도를 비유)이라고 적혀있다.)
(통영해저터널. 우리는 지금 바다밑을 거닐고 있는 것이다.)
해저터널을 지나서 드디어 이번 국토순례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힘든 여정인 미륵산 등산만이 남아 있다. 버스에서 내려 물을 한병씩 받고 모두들 산에 오르기 시작한다. 초반에는 길이 쉬워서 가기 좋았다. 중간에 당래선원과 도솔암을 지나자 본격적인 등산에 접어들었다. 케이블카를 타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예전에 타보기도 했고 이미 시작된 등산에서 발걸음을 돌릴 수는 없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등산을 한다. 등산을 하는 종종 고드름과 기암괴석들을 보았다. 등산할 맛이 나는 산행이었다.
(미륵치. 중간에 나온 고개다. 미륵치에는 돌탑과 찢어진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가는 길에 본 돌탑과 큰바위. 권종훈 선생님께서 주위를 둘러보고 계신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여름같은 겨울등산을 마치고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자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경치가 사방으로 보였다. 비석정면을 남으로 잡았을 때 북쪽에는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의 항구가 보였고 남쪽에는 전세계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한려수도가 병풍처럼 펼쳐졌다. 서쪽에는 지금까지 올라온 능선자락과 산불감시초소가 신선세계처럼 펼쳐졌고 동쪽에는 봉수대와 또 다른 한려수도 그림같이 펼쳐졌다. 어느 한곳 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남쪽과 북쪽은 그냥 말이 필요없고 진짜 직접 가보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케이블카를 타고 편안하게 온 사람들은 모르는 등산에 대한 보상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런 것이 또 등산의 재미 아니겠는가? 먼저 한려수도란 한산도에서 여수까지의 300리 바닷길을 뜻하는 말이다. 한려수도는 1968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 정도로 경치며 자연이며 우리나라 그 어느 바다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상표지석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다들 밑으로 내려갔다. 언젠가 어떻게 오든 누구랑 같이오든 통영에 오면 반드시 여기는 무조건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서 바라본 통영항구. 가히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릴만 하다.)
(감시초소 쪽으로 바라본 방향. 산능선과 마을의 일부, 그리고 한려수도가 펼쳐져 있다.)
(봉수대 쪽으로 바라본 방향. 정말 어디 봐도 빼어나지 않은 곳이 없다.)
(다른방향에서 본 남해안의 한려수도. 하늘이 우리나라에 준 최고의 선물이다.)
(해발 461m. 미륵산 정상에서의 단체사진 - 권혁대 선생님 사진제공)
내려가는 도중에 봉수대에 한번 올라가 보고 하산을 하였다. 하산길은 올라갔던 길보다 빙판이 많아서 정말 위험했다. 그리고 중간에 재홍이를 포함한 대여섯명 정도되는 우리일행이 길을 잃어버릴 뻔 하다가 권혁대 선생님 덕분에 올바른 길로 갈 수 있었다. 내려가는 길에 제법 큰 사찰인 용화사를 지나쳤는데 용화산 근방은 소나무재선충으로 많은 소나무들이 피해를 입고 있었다. 빠른 예방과 대처만이 소중한 우리 소나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다.
등산을 마치고 리조트에서 짐을 풀었다. 매년 갈 때 마다 두번째 날 숙소가 좋은 것 같다.이번에도 저번 숙소와 달리 정말 시설이 깨끗하고 좋았다. 게다가 콘센트도 여덟개나 된다(별거 아니지만 우리들에게는 중요하다). 그리고 조망도 너무나 멋지다. 배란다에서는 통영마리나리조트와 항구가 보인다. 정말 국토순례 하면서 이런 좋은 숙박시설이 또 올까 싶다.
저녁은 밑의 식당에서 해물탕을 먹고(본인은 해물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날따라 맛있게 느껴졌다) 숙소엣 잠을 청했다. 밖에서는 등대불이 깜빡깜빡 우리 방으로 비추어 진다. 오늘은 정말 피곤하지만 재미있는 경험도 많이 하고 즐거운 하루였다. 내일이 마지막 날이어서 조금 아쉬움이 느껴진다. 내일도 즐겁게 마무리 했으면 좋겠다.
-여정-(2013. 1. 8. 火)
숙소(여관)→ 식당→ 섬진강휴게소→ 고성공룡박물관→ 전망대→ 상족암→ 청소년수련관(앞의 백사장)→ 통영 충렬사→ 뷔페(점심식사)→ 통영해저터널→ 미륵산 입구→ 당래선원→ 도솔암→ 미륵치→ 미륵산 정상 → 봉수대→ 용화사→ 미륵산 입구→ 숙소(통영베이리조트)→ 식당→ 숙소(통영베이리조트)
제 3장. 성웅(聖雄) 이순신장군의 흔적을 만나다!
드디어 국토순례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비몽사몽으로 아침을 먹고 짐을 챙기러 다시 숙소에 들어가니 통영마리아나리조트 옆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다. 저번 일출답사 때의 해가 떠오른다. 일출도 보고 오늘 답사는 정말 즐거울 것 같다.
(숙소에서 바라본 일출. 통영에서 이렇게 일출을 맞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
짐을 챙기고 버스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여객선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우리가 처음 갈 목적지는 바로 세계4대해전 중 하나인 한산도대첩이 일어난 한산도다. 작은 유람선을 타고 우리는 한산도로 향했다.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선장님께서 가는 길에 보이는 섬같은 것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그래서 20분간의 항해는 지루하제 느껴지지 않았다.
(배를 타고 가면서 보인 통영 한산도 일대. 오른쪽 부표는 통여의 특산물, 굴 양식장으로 보인다.)
배가 선착장에 도착을 하고, 모두들 배에서 내린다. 바다여서 그런지 칼바람이 분다. 선착장에서 약 10분간 걸어가자 군인모형이 서있는 제승당 입구에 도착을 했다. 입구의 현판은 최근에 만들어서 그런지 옛날방향(오른쪽에서 왼쪽)이 아닌 요즘방향(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입구에서 좀 더 걸어가자 드디어 제승당 본건물이 나왔다. 상당히 규모가 컸다. 안에는 해전도와 여러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최근에 지은 것 같은 느낌이 많이나서 조금 아쉬웠다.
(통영 한산도 제승당. 안에는 그림이 있다.)
제승당 옆에는 이순신장군의 유명한 시, '한산도가'가 지어진 수루가 있다. 물론 수루는 옛날부터 있던게 아니라 최근에 복원한 것이다. 이곳 제승당이 이순신장군이 전쟁을 하는 동안 가장 오래 머물고 한산도대첩을 승리로 이끈 작전을 세운 곳이기도 하니 건물은 오래되지 않았더라도 매우 중요한 장소임은 알 수 있다. 수루에 올라가자 한산도가가 걸려있다. 전시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운치있는 시를 읊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이순신장군을 봐서는 그는 뛰어난 명장이자 지략가였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 자질도 뛰어난 분이셨음을 알 수 있다.
(수루. 이순신장군의 역작, '한산도가'가 지어진 곳이다.)
(수루에서 바라본 한산도 일대. 중간의 하얀 물체는 거북등대다.)
제승당 왼편에는 충렬사와 같은 이순신장군을 모시는 사당인 충무사가 있었다. 단청색깔이나 여러가지 점을 미루어 봤을 때 최근에 지은 것이거나 예전에 있었지만 서원철폐령이나 일제강점기 때 없어진 것을 복원한 것 같다. 안에는 역시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충무사. 향을 피우면서 소원을 빌었는데 장군께서 들어주실라나?)
앞에서 학년별로 단체사진을 찍고 다시 배를 타고 한산도에서 나왔다. 제승당만 둘러봐서 그런지 한산도가 조금 작게 느껴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통영에서 미륵도 다음으로 면적이 큰 섬이다. 배를 타고 와서 그런지 정말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한산도에서 나와 거제로 이동을 하는 도중에 일정에 없는 곳을 들렀다. 바로 이순신장군이 임진왜란에서 승리로 이끈 주역 중 하나인 거북선! 버스에서 내리니 거북선 세척이 나란히 물에 떠 있었다. 이 거북선들은 모두 한강에 있던 것을 여기로 옯겨온 것이라고 한다. 세척 모두 안에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다. 먼저 거북선에 대해 설명하면 나대용이라는 이순신장군의 부하가 만들어낸 최고의 전투함이다. 판옥선에서 한단계 더 진화한 것으로 단순히 사람을 태우고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들이받을 수 있을 정도로 고안된 배다. 당시 먼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서 가볍게 만든 왜선들에게는 무척 치명적인 공격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거북선은 과학적으로 설계된 당시의 최첨단 전투함이었던 것이다.
(통영 거북선. 용머리(또는 거북머리)가 거북선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논쟁은 바로 거북선이 철갑선이냐, 아니냐이다. 최초로 철갑선이라고 주장한 학자는 놀랍게도 미국인 선교사인 윌리엄 엘리엇 그리피스다. 그는 거북선을 '금속을 두른 배'라고 소개했다. 이어서 여러차례 미국에 거북선은 세계최초의 철갑선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고 거의 정설로 굳어졌다. 특히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회장님께서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을 예로 들며 기술을 받아들여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조선국가되었다는 이야기도 역시 그 근거는 거북선은 철갑선이다란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며 현재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소나무로 천장을 만들고 그 위에 검은색으로 색을 칠해서 마치 철갑선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전시상황에서 거북선에 두를만한 철이 많지 않았다. 하지막 쇠못을 막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를 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이 논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또 하나의 논쟁은 거북선이 삼충이냐 이층냐인데 대부분 이층으로 알고 있으나 이층으로는 너무 좁아서 최근에 거북선이 삼층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처럼 당시 뛰어난 전투함인 만큼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는 것이다. 과연 거북선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거북선 내부. 그당시에는 안에서는 적을 볼 수 있고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는 구조였다고 한다.)
거북선 근방에는 통영의 명물인 충무김밥과 꿀빵을 팔았다. 그런데 꿀빵은 한개당 1000원이나 할 정도로 비쌌다. 경주빵, 단풍빵(설악산)에 이어 그 지역 특산빵은 항상 비싸고 달다는 인식이 심어진 듯 했다.
이제 통영에서 다리를 건너 거제도로 간다. 일단 거제도에서 마지막 점심을 먹었다. 점심보다 눈에 띄는 것은 식당 앞에 있는 거제포로수용소공원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들러야겠다.
식사를 다 하고 옥포대첩기념공원으로 향한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이순신장군 관련 유적지 답사다. 옥포대첩 역시 옥포지역의 지형을 이용해 왜군으로부터 대승을 얻어낸 전투이다. 정말 이순신장군은 대승을 몇번이나 한 것일까? 명량대첩, 한산도대첩, 옥포대첩, 노량해전.... 정말 끝도 없다. 이러니 성웅이라는 칭호를 달고 다니신다. 옥포대첩기념공원에는 역시 이순신장군을 모신 사당인 효충사와, 기념관, 뒤로 삐죽하게 서있는 기념탑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효충사는 전에 왔던 사당과 비슷했다. 역시나 사당 안에는 이순신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영정만 지금 세개를 보는데 서로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다. 기념관 안에는 옥포대첩관련 유물이 있었다. 그 주에서도 경주의 천재무기발명가 이장손이 발명한 시한폭탄, 비격진천뢰도 같이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옥포대첩기념공원 일대. 왼쪽부터 순서대로 효충사, 기념관, 기념탑이다.)
(효충사. 여기 역시 충무사와 비슷한 구조다. 충렬사 보다는 조금 낮은 등급의 사당인 듯.)
(효충사에서 바라본 거제바다. 푸르디 푸른 남해바다다.)
옥포대첩기념공원을 나와서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거제대우조선해양로 간다. 조선소에 들어서자 해설사께서 버스에 탑승하신 후 조선소 이곳저곳을 설명해 주셨다. 특히나 눈에 띄는 것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골리앗크레인. 높이가 104m나 되고 900톤을 약 91m까지 들어올릴 수 있는, 그야말로 골리앗이다. 그리고 그 크레인 밑으로는 도크라는게 있다. 도크란 배를 들어올리고 만드는데 쓰이는 일종의 작업터(자세한건 잘 모르겠다)라고 한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쓰이는 도크는 플로팅 도크로서 ㄷ자를 왼쪽으로 90도 돌려놓은 모양(ㅂ자에서 중간 작대기를 뺀 모양)이다. 이 쑥 둘어간 부분은 물이 차있다가 배가 들어오면 도크를 띄워서 배도 같이 들어올리는 것입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의 도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크로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다고 한다. 역시 세계 1위의 조선강국, 대한민국이다.
(골리앗 크레인과 도크. 밑에 있는(잘 안보이지만) 것이 도크이다.)
(설명 중이신 해설사. 해설사께서 지도를 가리키며 이곳 저곳을 설명해 주시고 계신다.)
(대우조선해양에서의 단체사진 - 대우조선해양 해설사 사진제공)
드디어 모든 일정이 끝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직 한개가 더 남았다. 바로 거가대교! 가다가 거제.가덕휴게소에 내려 잠깐 거가대교를 보았다. 거대한 대교가 쭉 이어지더니 어느순간부터 보이지를 않는다. 여기 거가대교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해저터널이 있다. 저번 통영해저터널과는 비교가 않된다. 특히 터널을 먼저 물에 넣은 후, 그 조각들을 서로 연결하는 침매공법이 사용되어 주목을 받았다. 또한 세계에서 최초로 내해가 아닌 바람과 조류가 심한 외해에 건설된 것 역시 의미가 크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토목기술이 세계적으로 매우 앞서있다는 것을 과시한 셈이다.
(거가대교와 해저터널. 제일 오른쪽을 자세히 보면 다리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심 43m 지점. 우리는 지금 바다속을 달리고 있다. 가장 깊은 지점은 수심 48m구간이다.)
거가대교를 건너 부산을 거친 후 경주에 도착했다. 처음 올 때는 선도산으로 해가 비치는 것을 보고 떠났는데, 이제는 선도산 뒤로 해가 저물어 간다. 꼭 하루만에 모든걸 다녀온 것 같다.
이번 국토순례는 정말 볼거리가 많은 답사였다. 특히 그 중에서도 평소에 가고싶어했던 순천과 한산도 등을 방문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다. 또 이번 국토순례에서는 유난히 이순신장군관련 유적이 많았다. 그만큼 임진왜란의 격전지가 남해였다는 것이고 거기서 그만큼의 승리를 거둔 장군이 바로 우리의 이순신장군이다. 진정 이순신장군이 세계 최고의 해군장군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남해! 언제까지나 아름답고 고즈넉한 우리나라의 소중한 보물로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여정-(2013. 1. 9. 水)
숙소(통영베이리조트)→ 통영여객선터미널→(배)→ 한산도 선착장→ 제승당 입구→ 제승당→ 수루→ 충무사→ 제승당 입구→ 한산도 선착장→(배)→ 통영여객선터미널→ 통영 거북선→ 거제 옥포대첩기념공원[효충사→ 옥포대첩기념관]→ 식당(앞에 거제포로수용소공원)→ 거제 대우조선해양→ 거제.가덕휴게소→ 가덕대교→ 해저터널→ 언양휴게소→ 황실고수부지
새롭게 펼쳐라!
羅新
첫댓글 민욱아!
국토순례 답사기 쓰느라 고생 많이 했다.
가는 곳마다 나름 연구도 많이 해서 내가 몰랐던 것도 가끔씩 있고 하여튼 글쓰는 솜씨가 일취월장한 것 같다.
앞으로도 목표를 향해 열심히 나아가는 민욱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