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빛의 출렁거림이 눈이 부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물결처럼 흔들리는 은행나무 아래를 걷는 사람들의 뒷모습에도 가을빛이 출렁거렸습니다.
그러던 그 빛을 여의도 미화원 아저씨들께서 가지를 툴툴 털어, 은행잎을 걷어내고, 벌써 겨울맞이 가지치기를 해 버렸습니다.
생가지가 찢겨져 나간 자리에는 잔가지들 대신 굵은 마디만이 찬연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 찬연한 자리로 바람이 지나가고, 겨울이 돌아와 앉을것이고, 새들이 둥지를 틀것입니다. 그리고 은비늘 같은 곱디고운 시간들이 저를 이십대와는 사뭇 다를거란 짐작만을 가지고 있는, 서른이란 시간대로 데리고 갈 생각을 하니, 괜히 쓸쓸해지고 두려워졌습니다.
그러다.
매일 출근하는 지하철 역사안의 꽃집에서 아름다운 청년을 보았습니다. 매일 전철을 타면서도 역사에 꽃집이 있다는 사실을, 소국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던 가을이였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다 소국이 아름다워서 출근하는 길에 한다발을 샀습니다. 그날은 청년보다 소국이 눈에 먼저 안겼고, 다음으로 얼굴이 불편한 청년의 미소가 안겼습니다.
영업 개시였을지도 모른데, 청년이 오천원인 소국을 삼천원에 팔았던 아침이였습니다.
몸이 불편한 청년과 그의 누이쯤으로 보이는 여인이 운영하는 꽃집에는 잡다한 생필품을 팔고 있었습니다. 쵸콜렛, 음료수, 담배, 껌 복권등등
며칠이 지나고서야 그집의 소국이 여느 꽃집의 꽃들보다 향이 아름다운 이유를 찾아냈습니다. 그집의 소국은 한 다발씩 신문지에 둘둘 말려져 있었습니다. 석유 냄새가 베여 나오는 신문지에 포장된 꽃의 향기는, 그 향이 더욱 매혹적임을 저는 아주 오래전에 알았습니다.
다시 며칠의 시간이 흐르고....
가로수의 은행잎이 털리고, 생가지가 찢겨져 나가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날 아침 그 꽃집으로 저를 이끌었던 것은, 아름다운 소국의 옛 향이 아니라, 어쩌면 청년의 부지런한 손길이였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온 몸이 불편한 청년은 아침이면 찬바닥에 앉아서 불편한 손길로 잎을 다듬고, 꽃망울을 만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부지런한 손길에서 그의 삶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상을 소박하고, 단아하게, 하지만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삶의 깊이가 저를 동요시켰습니다.
청년이 저를 보고 눈웃음을 보내고,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 눈빛이 어찌나 곱던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띄여 보내고 있었습니다.
모든 성취의 요소들은 일상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서른이나 마흔은 일상처럼 익숙하게, 때로는 더듬거리면서 올거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 쓸쓸하지 않게, 슬그머니, 청년의 부지런한 손길속의 치열한 일상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