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mini 문학비평 118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마음 속의 님’]
마음 속의 님
님은 시대時代 넘어 따라와 그립게 입 버짐 피우며 매양 내 곁에 있다. 마음속의 내 님. 님이 익숙하고도 시큼한 향내로 내 구멍 난 가슴이나 남루한 어깰 보듬어 줄 때, 어머니 젖 냄새 마냥 온후한 옛것이 물씬댄다. 한겨울 호로병 마개나 연적硯滴 주둥이 같이, 궁상맞고 뜨악한 내 몸짓에 부벼대는 님의 참사랑이 아주 따숩다. 님은 단단해 지다가 훗날 물컹거릴 수도 있겠지. 걱정마라 난 나팔꽃 얼굴이야. 언제나 나약해지는 건 지구가 아니고 우주였었어. 오늘도 뜨겁구나 오호라 암팡진 내 님 시詩여.
⛄ Gemini씨의 비평
한기홍 시인의 〈마음속의 님〉은 시인에게 있어 ‘시(詩)’라는 존재가 갖는 본질과 의미, 그리고 그것을 대하는 시인의 열정적 태도를 감각적이고 다층적인 언어로 그려낸 수작입니다.
이 시에 대한 비평적 독해를 세 가지 주요 차원으로 나누어 정리해 드립니다.
1. '님'의 정체와 반전 : 추상적 상념에서 '시(詩)'로의 구체화
시의 도입부에서 '님'은 그리움과 어머니의 온기를 품은 대상, 혹은 시인의 궁상스러운 삶을 보듬어 주는 관념적이거나 인격화된 존재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작품의 마지막 구절인 "오늘도 뜨겁구나 오호라 암팡진 내 님 시詩여"에 이르러 비로소 그 '님'이 시인이 평생을 품고 살아온 ‘시(詩)’ 그 자체임이 밝혀집니다. 이 마지막 한 문장은 작품 전체를 반전시키며 앞선 구절들의 감각적 서술을 단순한 연가(戀歌)가 아닌 '시론(詩論)'이자 시인의 자아고백으로 승화시킵니다.
2. 감각적 모티프와 토속적 온기
이 시가 지닌 가장 큰 미학적 성취는 시라는 추상적 대상에 강렬한 '감각성'과 '토속성'을 부여했다는 점입니다.
⚫후각과 촉각의 조화 : '입 버짐', '익숙하고도 시큼한 향내', '어머니 젖 냄새' 등의 시어는 고상하고 거창한 시가 아닌, 인간의 삶과 고통, 서민적 삶의 때가 묻어 있는 지극히 친근한 언어로서의 시를 상징합니다.
⚫비유의 비범함 : "한겨울 호로병 마개나 연적 주둥이 같이, 궁상맞고 뜨악한 내 몸짓"이라는 비유는 초라하고 외로운 시인의 현실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쓸쓸하게 포착합니다. 이러한 시인의 결핍("구멍 난 가슴", "남루한 어깨")을 보듬어 주는 유일한 참사랑이 바로 '시'입니다.
3. 영원성과 변주, 그리고 태도: 우주적 의지와 열정
시인은 시의 미래와 가치에 대해 깊이 고찰합니다.
⚫시간의 가변성과 시인의 의지 : "님은 단단해 지다가 훗날 물컹거릴 수도 있겠지. 걱정마라 난 나팔꽃 얼굴이야."
시의 양식이나 의미가 세월에 따라 변하거나 유약해질지라도, 시인은 아침마다 피어나는 나팔꽃처럼 순수하고 민감하게 시를 맞아들이겠다는 다짐을 보여줍니다.
⚫관점의 전환 (지구와 우주) : "언제나 나약해지는 건 지구가 아니고 우주였었어."
단순한 일상의 시선에서 거대한 우주적 관점으로 확장되는 대목입니다. 세상의 거친 풍파(지구)보다 그것을 품어내는 시인의 내면 세계나 영혼(우주)이 흔들리고 나약해질 뿐이라는 역설적 깨달음을 던집니다.
⚫열정의 승화 : 마지막의 "뜨겁구나", "오호라", "암팡진"과 같은 격정적인 탄식과 어휘는, 시를 향한 시인의 애정이 여전히 뜨겁고 당차게 살아있음을 선언하며 강렬한 여운을 남깁니다.
💡 총 평
한기홍 시인의 〈마음속의 님〉은 결핍과 외로움 속에서 시를 짓는 시인의 숙명적 사랑을 고백한 시입니다. 자칫 관념으로 흐르기 쉬운 '시 쓰기'라는 주제를 시큼한 향내와 젖 냄새, 호로병과 연적 같은 구체적이고 토속적인 시어로 구상화(具象化)하여, 따스하면서도 암팡진 시적 생명력을 훌륭하게 창조해 낸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