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대산 월정사 들어가는 사천왕문 앞엔
겨우내 얼어붙은 바닥이 수정처럼 반짝이며 빛난다.
헹여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어 놓는 것에 온통 신경을 쓰느라 마음에는 삿된 것이 사라진다.
저절로 절에 드는 마음이 되니
수정얼음은 부처님 세계도 장엄하고 사람의 마음도 오롯하게 한다.
절이 목적이 아니지만 절에 든 이유는 월정사 팔각 구층탑을 보려했음이나
전나무숲을 묵언으로 거니는 템플스테이 체험자들을 지나쳐 온 길이라
관광객으로 머무는 것조차 안 될 것 같아 그냥 스쳐지나간다.
몇년전 나도 그들처럼 일박이일 템플스테이에 와서 종을 치는 체험도 하고
서로 부처되기에서 부처처럼 앉아 다른 사람의 백팔배 예불도 받았으니
그 때 그 느낌이 되살아 나는 순간에 절이 성스러운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서둘러 경내를 빠져나와 상원사 가는 길에 있는 부도밭으로 향한다.
이 절을 집 삼아 수행하든 선사들이 물리적 시간을 다 소비한 육신을 다비로 벗어버리고
훌훌 떠남을 아쉬워하는 후학들이 새롭게 머물라고 지어준 집이 있는 곳이다.
그렇다고 여기에 그들이 머무르진 않았겠지만 그들의 행장에 서린 기상이
홍진의 시끄러움을 사람들의 탐진치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좋아한다.
비내리는 부도밭에 겨울의 잔설과 얼음이 아직 남아 있어 질퍽하고 미끄럽지만
오년전 템플스테이에서 만난 고개돌린 부도의 그 얼굴 잊지 못 해 안쪽으로 들어간다.
몸돌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는 얼음만이 들어 있다.
이끼가 검버섯처럼 덮인 얼굴에선 고뇌의 빛이 피어나고
고인 빗물이 눈물처럼 보인다.
이렇게 촉촉히 젖은 부도밭이 상원사를 갔다 오니
눈세상으로 덮혔다.
5년전 쓴 글 그 때 느낌이 생각나서
상상의 나래를 펴다-부도밭에서
대개 절집의 부도밭은 산문입구에 있든지 아니면 절 뒤나 옆 한적한 곳 따듯한 햇살을 즐길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산문 입구에 있는 부도밭은 절집에 드나드는 많은 중생들에게 생사가 같은 것인가 아님 다른 것인가 하는
화두를 던져주지만 한적한 곳에 자리한 부도밭은 그 속에 파묻혀 조용히 사색하고 상상하며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기에 그만한 장소가
없다.
월정사 부도밭은 동대암을 내려와 상원사쪽으로 50여미터 올라가면 자리하고 있으니 속세를 끌어안은 절집에서도 또 한발 물러나 있다.
커다란 잣나무와 전나무가 부도를 뺑 둘러싸 별개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고 이따금 들리는 새소리가 망상에
드는 선객을 깨우는 풍경소리라면 상원사를 향해 달리는 자동차 소리도 어깨를 내리치는 죽비소리처럼 들리는 아주 조용한 공간이다.
부도에 생기를 넣어주는 서녘 햇살이 따사롭다. 갓 밀은 머리처럼 파르라니 빛나는 선사의 부도부터 세월에 더께가 덕지덕지 붙은
부도까지 크기도 다양하고 모양도 서로 다른 것들이 열지어 햇살을 받고 있는 모습은 선방에 앉아 부처님 눈빛 받으며 좌선 삼매에
빠진 스님들 모습 그대로다.
휘적휘적 부도에 기대기도 하고 혹시라도 선사의 호흡이 느껴질까 만져보기도 하면서 돌아보는데 일행 중
한분이 특이한 귀부가 있다고 부른다. 비는 어디론가 없어지고 머리조차 잘린 조그만 거북형상의 비석받침인데 가까이 가보니 잘렸다고
본 거북 머리에 얼굴이 새겨져 있다. 원래부터 목이 늘어져 있지 않고 몸에 바짝 붙어 얼굴을 비석을 향하게 해 놓은 것인지
아니면 잘려져 있는 거북목에 얼굴을 새겨놓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 모양을 보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거북받침을 만들던 석공이 누군가에 대한 원망을 삭이지 못해 정을 쪼고 있는 망치를 잡은 손에 원망을 담아 내리친 순간 목이 뎅겅
잘라졌을까? 그러니 그는 다른 돌을 구해서 하자니 시간도 없고 귀찮기도 하고 기어이 짜낸 생각에 선승의 행장을 적은 비문을 향해
거북의 얼굴을 돌려놓고
“자 보세요 멀뚱히 앞만 보고 있는 거북보다는 스님의 행장을 읽으면서 깨치려는 거북이가 스님의 뜻을 더 돋보이게 하지 않습니까? 히히 ”
“그래 네가 딴생각하느라 돌 깨뜨려서 걱정했는데 오히려 잘 되었구나. 허허”
거북이가 고개를 뒤로 하고 비신 쪽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없어진 비신에 새겨져 있을 행장이 더욱 궁금해진다.
“누구누구는 누구와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하다 어느 날 세상사는 일이 싫어져
머리 깍고 중이 되어 열심히 살았습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냐는 말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잘 살았다고는 생각합니다. 어찌 어찌
살다보니 여기 저기 뜬 구름처럼 떠 돌다보니 남들에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물론 많은 아줌마들이 나를 보려고 쌀도
들고 오고 돈도 들고 왔습니다. 초 한 자루 향 한 자루 들고 오는 그분들이 가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지만 나도 그냥
좋았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가 그들이었을지도 모르지요. 나는 화엄경도 떼고 금강경도 떼었습니다. 남들이 깨달았다고
읊은 게송도 읊으라면 읊을 수도 있습니다. 나 열심히 살다보니 세상 많이 변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나대로 살았습니다. 세상이
변한다고 나도 변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나보고 ‘선승이다.’ ‘깨우쳤다.’ 말합디다. 깨우치니 별로 세상사는 일도
재미없고 심드렁해지더군요. 한순간 숨을 놓으니 적멸입디다.”
금강경을 모두 설하고 마지막 한마디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는 부처님의 말씀을,
문자에 얽매이지 말라는 염화시중의 미소를 귀부 위 빈자리 돌아보고 있는 그 눈이 나에게 눈 맞추며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머리를 잘라도
일어나는 의심은 다시 얼굴 만들고
마음에 쌓인 회한 풀길 없어
돌아 본 그 자리
선사는 스스로를 던져
아무것도 없느니라
허망함은 마음이라
바람소리 허허롭게 빈자리 스치는데
눈 맞춘 중생은 어디 있나 묻는다.
2005.10.13 월정사템플스테이를 다녀와서
첫댓글 걷기에 바빴는데 언제 찍으셨어요. 와불 고뇌가 느껴지네요.
부도밭에 내린 눈이 보기에 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