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벨릭스에게 전도함(행24:22-27)
총독 벨릭스가 바울을 심문하여 보고 죄가 없는 줄 알면서 놓아주지 않고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면 일을 처리하겠다고 유예를 했다. 그 후 벨릭스가 유대인인 자기 부인과 함께 바울을 찾아와서 예수를 믿는 도에 대해서 물었다.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대하여 말하자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다음에 와서 다시 듣겠다고 하고 가면서 혹시 바울이 자기에게 돈을 주지 않을까 바라보았다. 벨릭스는 바울이 자기에게 돈을 줄줄 알고 바울을 자주 불렀다. 벨릭스는 바울이 죄가 없는 줄 알면서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2년 동안 이나 바울을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1) 바울이 죄가 없는 줄 알면서 석방하지 않았다.
벨릭스는 바울을 심문하여 보니 죄가 없는 줄 았았다. 그러나 벨릭스는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면 의논하겠다는 핑계로 바울을 석방하지 않고 잡아두었다. 죄가 없으면 석방해야 하는데 죄가 없는 줄 알면서 질질 끌고 가는 것은 권세를 남용하여 인권을 유린할 뿐만 아니라 매우 잘 못된 음모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복잡해진다. 법이 혼란해지면 사회가 혼란 해진다. 질서와 혼란의 가치는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있다. 법치가 혼란해지면 한 개인과 그가 속해있는 가정이 파괴당하고, 이 피해가 사회로 확산되면 그 비용은 계산 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사회가 복잡하고 혼란해지면 기업이 위축되고, 실업이 증가하고 국민들의 삶이 불안해진다. 영국의 사회학자인 스펜서는 “사람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든다”고 했다. 질서를 잡아 사회를 안정시켜 삶을 안정되게 하는 기구가 법인데 이 법의 잣대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면 국민의 삶은 불안하여 패닉상태(a state of panic)에 빠지게 된다. 패닉상태란? 사회에 직접 접촉하는 여러 개인이 특정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 일시적이고 우발적으로 도피성을 보이는 집합적 대응 상태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현재 우리 사회는 검찰의 잘 못된 법의 잣대 때문에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합법화 된지 이미 반세기가 넘고,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검찰 독재 시대를 만난 것이다.
심지어 학교에서 아이들을 폭행하면서 “우리 아버지가 검사인데 검사는 뇌물을 받는 직업이야 나를 누구도 이길 수 없어”라고 큰소리치며 아이들을 폭행하고 그 죄로 전학을 당하자 부당하다고 대법원까지 항소를 하는 검사 정순신씨를 경찰 수뇌부로 임명하는 정부는 진실로 검찰독재 정부임을 여실히 들어내고 있다. 이미 사회가 패닉상태에 빠져서 수출이 곤두박질치고 실업이 늘어나며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월급은 그대로 있다. 국민의 대표기구인 국회는 국민의 삶은 강 건너 불구경이고 차기 공천에만 열을 올리며 검찰과 검찰독재에 편승하여 부화뇌동 하며 자리다툼만 하고 있다. 차라리 있는 것이 없는 것만 못한 사람들이 국회에 있다.
2) 벨릭스가 아내 두루실라와 함께와 전도를 받았다.
(벨릭스의 아내 두루실라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딸이며(행12:1), 아그립바 2세(행25:13, 26:1)의 누이인데 에메세 왕 아지주스와 결혼했으나 남편을 버리고 벨릭스의 셋째 첩이 되었다).
벨릭스가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가르쳐 달라고 왔다. 이는 예수를 믿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고 바울로부터 돈을 받기 위해서 핑계 삼아 바울에게 온 것이다. 26절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보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 하더라”고 했다. 바울이 돈을 주지 않으니까 자주 불러 만났다. 그 때나 지금이나 공무원들의 나쁜 습관이다. 이 나쁜 습관 때문에 없는 죄도 만들어 지고 있는 죄도 없어진다. 공무원의 이 나쁜 습관을 없애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민 정신이 필요하고 대의를 위한 고발정신이 필요하다. 이 일을 위해서 시민이 참여하고 연대하여 잘 못 된일을 바로 잡고, 부정하고 부패한 나쁜 공무원을 고발하여 그 자리에서 일을 못하게 하는 일이 매우 필요하다. 한 사람의 나쁜 공직자가 그 사회를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직자의 사명은 청렴과 정직이다.
3) 바울이 벨릭스에게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하여 전했다.
첫째, 의에 대하여는 의인과 죄인의 부활을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을 가르쳤다. 믿음으로 의인이 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여 점점 더 성화가 되어야 한다. 둘째, 절제에 대하여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으나 여전히 내재하는 부패성이 존재함으로 범죄 하기 쉽기 때문에 마음속에 있는 부패성을 복종시켜야 하는데 이는 방탕과 물욕과 정욕을 절제하라고 가르쳤다. 셋째, 심판에 대하여 인생은 이 세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행한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고 가르쳤다. 죄인은 심판을 받아 형벌을 받게 되고, 예수를 믿고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은 상을 받는다. 심판은 누구나 다 받게 되지만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신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서 책망 받지않도록살아야 한다. 세상에서는 옳고 그른 것이 숨겨져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낱낱이 들어난다. 히4:13절에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하나님)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이 말을 듣고 벨릭스는 회개하지 않고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고 연기 했다. 양심에 가책을 받을 때 즉시 회개하면 좋았을 것인데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양심에 가책이 생기면 즉시 고치고 잘못된 것을 끊고 바로 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인 맞은 양심으로 바리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벨릭스는 바울이 죄가 없는 줄 알면서도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2년 동안 감옥에 가두어 났다. 벨릭스는 바울을 희생시켜 민심을 얻었다. 전형적인 부패한 관료의 행태다. 바울이 죄가 없는 줄 알면서 핑계를 하면서 석방하지 않고 죄가 있는 것처럼 잡아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달라는 핑계로 바울을 만날 때마다 돈을 달라는 눈치를 보내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죄 없는 바울을 2년 동안이나 구류했다. 벨릭스는 분명히 탐관오리다. 지금 우리 나라는 자기 죄는 권력으로 덮고 남의 죄는 없는 죄도 있다고 정죄해서 정직한 척 백성들을 속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