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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미학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한 백석의 문학세계
문학인 신문 ・ 2023. 8. 17.
백석은 시인으로 유명하지만, 소설가이자 수필가이기도 하였다. 그가 세상에 처음 선보인 작품은 소설이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1930년 1월 《조선일보》 현상문예에소설 「그 모와 아들」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는 그 직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경의 아오야마靑山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1934년 초에 귀국하면서 자신이 속한 장학회의 간행물인 『이심회 회보』에 「해빈수첩」이란 수필을 실었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고국으로 돌아오면서 발표한 첫 문학 작품이 수필이었다. 그 후 세 편의 소설을 발표하고 1935년 8월 30일 조선일보에 「정주성」이란 시를 발표하고이듬해인 1936년 1월 시집 『사슴』을 간행하면서 본격적인 시인의 길로 나섰지만, 그 사이에도 여러 편의 수필을썼다.
백석의 삶과 수필의 전개 과정
백석은 1935년 11월 「마포」라는 수필을 발표하고, 1936년 2월에 「편지」라는 수필을 발표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함흥으로 건너가 그곳의 영생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 생활을하며 지냈는데, 이때 「가자미·나귀」,「무지개 뻗치듯 만세교」, 「단풍」, 「동해」 등의 수필을 조선일보와 『여성』,『동아일보』 등에 게재했다. 그는 함흥에 머무는 이 년 동안 스물여덟 편의 시를 발표하는 등 열정적으로 작품을 썼는데, 주목되는 것은 함흥에 가서 처음 발표한 작품이 시가 아니라 「가자미·나귀」라는 수필이란 점이다.
백석은 1938년 함흥 생활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여성』지의 편집일을 하며 지냈다. 그는 귀경 이듬해인 1939년 2월에 「입춘」이란 수필을, 5월에 「소월과 조선생」이란 수필을 발표했으며, 그해 말경 만주의 신경으로 떠나 만주국 국무원에서 일했다. 몇달 후인 1940년 5월에는 만주의 지역신문인 만선일보에 이틀에 걸쳐 「슬픔과 진실」이란 수필을 게재했고, 며칠후 역시 이틀에 걸쳐 같은 신문에 「조
선인과 요설」이란 수필을 실었다. 백석은 1942년경 만주의 안동으로 거처를 옮겨 안동 세관에서 일했는데, 이 무렵인 1942년 8월 『매순사진신보』에 「당나귀」란 수필을 발표했다. 이 수필은 백석이 해방 전에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다.
백석은 분단 이후 계속 북쪽에 머무르면서 일정 기간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중에도 산문이 몇 편 있지만 모두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쓴 보고문이나 격문의 성격이 짙다. 문학사를 문학성을 지닌 예술작품의 역사라고 볼때, 백석 수필의 여정은 「당나귀」에서일단락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백석이 분단 이전까지의 문학적 생애에서 발표한 수필은 12편이다. 비슷한 기간에 발표한 시의 양에 비하면 미흡하지만, 결코 적은 편수는 아니다. 특히 새로운 환경에 처할 때마다 수필을 먼저 썼고, 해방 이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작품이 수필이었다는 점은 수필 장르에 대한 백석의 강한 애착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작품들의 문학적인 성취이다.
백석 수필의 개성과 형식적 특징
백석이 발표한 12편의 수필은 저마다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상당수의 수필이 신문사의 기획에 맞춰 청탁된 것인데도 그때마다 다른 제재와 주제와 형식을 구사하여 개성이 물씬 묻어나는 작품을 써냈다.
백석의 첫 수필인 「해빈수첩」은 일본 도쿄 근처의 유명 휴양지인 이즈반도의 가키사키 해변을, 「마포」는 1930년대 경성의 명소인 마포나루를, 「무지개 뻗치듯 만세교」는 함경도 함흥의 명소들을, 「동해」는 동해를 배경으로 그곳의 독특한 풍광과 정취를 그리고 있다. 「가재미. 나귀」는 함경도의 특산물인 가자미와 나귀에 대한 소회를, 「당나귀」는 당나귀의 삶과 그에 대한 강한 연민을 드러낸 작품이다. 「입춘」은 절기를 제재로 인간사의 본질적 문제를 성찰한 작품이며, 「편지」는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연정과 육보름의 민속 풍속을 동시에 담아낸 작품이고, 「단풍」은 가을을 상징하는 단풍잎에 대한 소회를 드러낸 작품이다. 백석의 수필은 지리적 명소, 동물,식물, 식물, 절기 등 다양한 제재를다루고 있으며, 풍광에 대한 흥취, 연인에 대한 연정과 가엾은 동물에 대한연민, 인간사의 운명, 명절 풍속, 어린절과 소박한 것에 대한 동경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백석 수필의 강한 개성은 그의 형식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수필 미학의 새로운 형식을창조하였다. 그는 첫 수필인 「해빈수첩」에서부터 새로운 양식을 시도하였다. 이 작품은 ‘해빈수첩’이란 제목 아래 세 개의 서로 다른 바닷가 풍경이 묶여 있다.
첫째는 개, 둘째는 까마귀, 셋째는 어린아이들이다. 개와 까마귀와 어린아이들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평범한 소재이다. 그런데 일상에서 익숙하던 개, 까마귀, 어린아이들이 바닷가에서 활동할 때 그들의 모습은 특별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백석은 바닷가를 어슬렁거리는 개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바닷가에서 밤사이 물결에 떠밀려온 강아지의 사체를 쪼아대는 까마귀와, 바닷가 사람들이 참치를 버릴 때 참치를 노리는 까마귀에게 보란듯이 대나무 창에 죽은 까마귀를 꽂아 놓은 그 바닷가 풍광을 보고, 산 자들의 먹이 찾기와 종족 보존의 본능 의식을 엿본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바다 물결을 피해 모래성을 쌓고,바다에 힘차게 돌을 던지고, 바다 물결이 발끝까지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누놀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바다에 단련되며 커나가는 모습을 본다. 그것은 환경에 단련어 가는 삶의 숙명적 진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백석은 이 작품의 첫 번째 글에서는 상에 대한 묘사에 치중하고, 두 번째 글에서는 대상을 묘사하면서도 인격화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있으며, 세번째 글에서는 대상을 서술하는 가운데 운율에 대한 고려가 두드러지게 한다. 짤막한 수필 안에 시와 이야기의 매력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단풍」과 「당나귀」는 길이와 형식적인 측면에서 거의 시를 방불케 한다. 빨간 물 짙게 든 얼굴이 아름답지않으뇨. 빨간 정情 무르녹는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뇨. 단풍든 시절은 새빨간 웃음을 웃고 새빨간 말을 지줄댄다. 어데 청춘을 보낸 서러움이 있느뇨. 어데 노사老死를 앞둘 두려움이 있느뇨. 재화가 한끝 풍성하야 시월十月 햇살이 무색하다. 사랑에 한창 익어서 살찐다. 몸이 불탄다, 영화의 자랑이 한창현란해서 청청 하늘이 눈부셔한다. 시월 시절은 단풍이 얼굴이요, 또 마음인데 시월 단풍도 높다란 낭떠러지에 두서너 나무 깨웃듬이 외로이 서서 한들거리는 것이 기로다. 시월 단풍은 아름다우나 사랑하기를 삼갈 것이니 울어서도 다하지 못한독한 원한이 빨간 자주로 지지우리지않느뇨.
-「단풍」 전문
이 글은 『여성』 1937년 10월호 ‘가을의 표정’ 란에 실린 글이다. 이 기획란에는 일곱 명의 문인들이 쓴 글이 묶여 있다. 나머지 여섯 편의 제목은 코스모스, 낙엽, 갈꽃, 들국화, 기러기, 귀뚜라미 등이다. 편집부에서 가을의 대표적인 자연물을 미리 선정해 작가들에게 산문으로 청탁한 것이다. 그런데 백석은 시적인 산문을 게재한 것이다. 이 글은 시종일관 화자의 감정이 문면에 노출되어 있는데, 이렇게 자기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예를 백석 시에선 찾을 수 없다. 게다가 백석은 이 글에서 단풍에 대한 묘사보다는 그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드러내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길이가 짧고 행갈이까지 해서 외형적으로 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전형적인 산문의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백석은 시의 외양을 빌리면서 시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자기 감정과 생각의 과감한 노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의 과감한 노출을 시적인 외양으로 양식화하여 문학적인 품위와 위엄을 갖춘 것이다. 그렇다고 백석의 수필이 모두 시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편지」는 자유로운 산문체로 쓴 재래적 형식의 수필이다. 이 수필은 백석의 첫사랑이었던 통영의 난이란 여자에 대한 사랑 고백과 고향에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육보름의 명절 풍속을 서술한 작품이다.
전자가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라면,후자는 공동체적인 삶의 이야기이다.
그는 이 두 가지 이야기를 병치시켜 인간 삶의 두 국면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백석은 이 이야기를 ‘당신’을 향해 전하는 ‘편지’ 형식을 빌려서 독자 모두가 백석에게 그의 사연을 전해 받는 느낌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사적이고 내밀하며, 변두리 고향에서 펼쳐지는 저 먼 곳의 풍속이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로 독자들 가슴속에 전해지는 것이다.
백석 수필의 시적 변용
백석의 수필은 그의 시 작품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닌다. 그는 생활 환경이 바뀔 때마다 수필을 먼저 써서 발표했는데, 그 작품을 그 후에 시로 변용시킨 경우가 많다. 필의 시적 변용은 형식적, 내용적 측면에서 모두 이루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선우사膳友辭」란 시는 그의 수필 「가자미·나귀」가 직접적으로 변용된 작품이다. 먼저 「가재미·나귀」 수필을 보자.
동해 가까운 거리로 와서 나는 가재미와 가장 친하다. 광어, 문어, 고등어, 평메, 횃대… 생선이 많지만 모두 한두 끼에 나를 물리게 하고 만다.그저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가재미만이 흰밥과 빨간 고치장과 함께 가난하고 쓸쓸한 내 상에 한 끼도 빠지지 않고 오른다. 나는 이 가재미를 처음 십전 하나에 뼘가웃식 되는 것 여섯 마리를 받어들고 왔다. 다음부터는 할머니가 두 드림 마흔 개에 이십오전씩에사오시데 큰 가재미보다도 잔 것을 내가 좋아해서 모두 손길만큼한 것들이다. 그동안 나는 한 달포 이 고을을떠났다 와서 오랜만에 내 가재미를 찾어 생선장으로 겄드니 섭섭하게도 이물선은 뵈이지 않었다. 음력 8월 초상이 되어서야 이 내 친한 것이 온다고한다. 나는 어서 그때가 와서 우리들흰밥과 고치장과 다 만나서 아츰 저녁기뻐하게 되기만 기다린다. 그때엔 또이십오 전에 두어 드림씩 해서 나와같이 이 물선을 좋아하는 H한테도 보내어야겠다.
묘지와 뇌옥牢獄과 교회당과의 사이에서 생명과 죄와 신을 생각하기 좋은운흥리를 떠나서 오백 년 오래된 이고을에서도 다 못한 곳, 날이 헐리지않은 중리中里로 왔다. 예서는 물보다구름이 더 많이 흐르는 성천강이 가까웁고 또 백모관봉白帽冠峰의 씨허연 눈도 바라뵈인다. 이곳의 좌우로 긴 회담들이 맛물고 늘어선 좁은 골목이 나는 좋다. 이 골목의 공기는 하이야니밤꽃의 내음새가 난다. 이 골목을 나는 나귀를 타고 일없이 왔다갔다 하고 싶다. 또 예서 한 오 리 되는 학교까지 나귀를 타고 단니고 싶다. 나귀를 한 마리 사기로 했다. 그래 소장 마장을 가보나 나귀는 나지 않는다. 촌에서 단니는 아이들이 있어서 수소문해도 나귀를 팔겠다는 데는 없다. 얼마 전엔 어늬 아이가 재래종의 조선말 한 필을 사면 어떠냐고 한다. 값을 물었드니 한 오 원 주면 된다고 한다. 이좀말로 할까고 머리를 기우려도 보았
으나 그래도 나는 그 처량한 당나귀가좋아서 좀 더 이놈을 구해보고 있다.
-「가재미·나귀」
백석은 1936년 중반 함흥으로 건너가 영생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 교사생활을 하며 2년 정도 거주했는데, 이곳 생활이 그의 삶과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함흥은 백석의 고향인 정주와는 지형과 분위기가 크게 다른곳이다. 한반도 동북쪽의 함흥만 연안에 위치한 함흥은 남쪽으로 광활한 함흥평야가 펼쳐져 있고 그 끝에 동해가있다. 동쪽으론 부전령산맥이 있는 고원지대인 신흥군과 장진군이 면해 있다. 탁 트인 벌판에 바다가 이어진 지형은 시원한 시야를 제공하고, 주변의 산악은 숲의 냉기와 신선한 바람을 제공해 준다. 여기다가 거대한 강줄기를 지닌 성천강이 함흥을 가로지르며 흘러내리고 있다. 산과 강과 바다와 평야를 모두 갖춘 곳이 바로 함흥이다.또 이곳엔 서해에선 볼 수 없는 새로운 풍물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백석의 눈길을 끈 것은 이곳의 음식물이다.위 수필은 동해의 특산물인 가자미에 대한 소회를 다룬다.
백석은 이곳에서 여러 생선을 먹어봤지만 가자미만이 질리지 않고 ‘가난하고 쓸쓸한’ 자신의 상에 매일 오른다면서 자신은 가자미 중에서도 잔 것을 좋아한다고 적는다. 그는 그렇게 조그만 가자미를 흰밥에 고추장과 함께 먹는 소박한 밥상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흰밥과 가자미는 둘 다 소박하고 담백해서 오래가는 음식이다. 백석은 그런 가마지를 가리켜 “착하고 정다운” 것이라고 부른다. 음식에 인격을 부여하는 흥미로운 발상이다. 백석과 마찬가지로 가자미를 좋아한다는 H는 평북 용천 출신의 소설가로 백석의 가장 친한 벗인 허준을 말한다. 절친한 친구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정다운 우정의 표시이니, 가자미와 흰밥과 백석과 벗
모두 소박하고 한결같으며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존재들이다. 이 글은 이듬해 10월 『조광』지에 「선우사」란 시로 승화되어 발표된다.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아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 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
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
착하디착해서 세괏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
다
-「선우사」
수필에 적었던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시로 옮기고 있다. 가자미에 인격을 부여했던 백석은 시에서 한발 더나아가 그 음식을 삶의 처지와 가치를공유하는 친구로 간주하고 있다. 시의 제목인 ‘선우사膳友辭’의 ‘선膳’은 ‘반찬’ 또는 ‘음식’이란 뜻이다. 음식을 친구로 대하는 생각이 만들어 낸 기발한 시어라고 할 수 있다. 해정한 모래톱이 있는 물밑 바람 좋은 벌판 외따른 산골 같은 청량한 공간은 맑은 바다와넓은 벌판과 높은 산을 동시에 지닌 함흥에 와서 백석이 얻은 무욕의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백석은 함흥에 와서 가자미 맛에 빠지고 청정한 무욕의공간을 경험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참신한 수필을 썼고, 그것을 시로 승화시켰다.
(참고문헌 고형진 『정본 백석 소설·수필』 문학동네, 2019.
2001년 제12회 김달진문학상 문학평론 부문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첫댓글 백석의 시와 수필이 어떻게 어우러졌는가를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자료에 감사드립니다^^*